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參佺戒經),8理, 제 55사 제 2 강령 신(信)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3
마침내 8가지 대강령 가운데
첫번째 강령 성(誠)에 대한 공부를
마쳤다.
366事 중 54事까지 왔다.
어쨋든 받은 은혜가 크고
깨달음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 소절씩 풀이할 때마다
마음이 밝아지고 강해지며,
뿌듯함이 넘친다.
절말 감사한 은사다.
이 은혜가 크니 병아리들이
몰사하는 비극을 당해도 의연해 진다.
애초에 내가 가는 길이 그 길이 아니었기에
잃은 바도 없다.
3주간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진리의 힘이 이처럼 삶에서 효력을 나타낸다.
더 깊이, 더 높이 오르기를 힘써야겠다.
이제 두번째 강령 信(신)으로 넘어간다.
제 55사 제 2 강령 신(信)
信理訓(신리훈)
信者天理之必合(신자천리지필합)으로
人事之必成(인사지필성)이라
有五團三十五部(유오단삼십오부)라
1團 : 意(의)
2團 : 約(약)
3團 : 忠(충)
4團 : 烈(열)
5團 : 循(순)
'믿음의 이치에 대한 가르침
믿음이란 하늘의 이치와 합하는 것으로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게 하느니라
여기에는 5가지 단 아래
35개의 부가 있느니라
1단은 의로움이요
2단은 약속이며
3단은 충성에 대한 것이라
4단은 열정이요
5단은 자연이 주는 믿음에 대한 것이라'
성경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참전계경에서는 믿음을
'하늘의 이치와 합하는 것으로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둘 다 용어의 차이는 있으나
개념의 차이는 없다.
성경에서는 바라고 보지 못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이미 가진 것과 같고,
결국은 얻게 된다는 의미요
참전계경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면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같은 말이다.
성경에서도 믿음을 단순한 기대나
욕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철저히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결과를
지금 체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말하지만
이 핵심적인 요소가 빠졌다.
그러다 보니 믿음은 '확률에 근거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 깨닫고 체험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주장하니 맞을 거야'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
'내가 공부해 보니 믿을만 해'
하는 식의 생각을 품고 믿음이라고 여긴다.
물론 그런 차원의 믿음도 믿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이성과 의식을 과감하게
넘을 수 없다면 믿음이란 세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받아들이거나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도
믿음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맹신이나 광신이나 불신이나 사실은 다 같은 뿌리다.
성령께서 밝혀주시는 본성을 보지 못하고,
그 본성이 이끄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무리 믿는다고 주장해도
그 믿음은 헛되며, 자기 생각이나 경험을 믿고 있을 뿐이다.
이해되어야 믿겠다고 하는 자나
믿으면 이해가 된다는 주장은 둘 다 틀렸다.
믿음은 그런식의 도박이 아니다.
영원한 진리에 입각하여
그 진리의 빛을 통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여정,
그리고 결과를 삶 속에서 발견하는 과정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까지를 믿음의 과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성령과 성령께서 이끄시는
자신의 영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자는
믿음이 존재할 수 없다.
본문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성경도 그것을 말한다.
하늘의 뜻을 모르면 믿음도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믿음이 없다.
하나님의 존재나 하늘의 이치를 아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것을 믿음에 포함시키는 것은 어리석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요,
하늘의 이치를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금수로 취급하는 자기비하일 뿐이다.
아직도 유신론, 무신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딱하다.
무신론자에게 신 존재의 증거를 주고
믿으라고 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유신론자에게 신의 부재의 증거를 주고
믿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의 존재 증명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믿고 싶은가, 싫은가를 물어보면 된다.
사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세상의 부정이요, 자신의 부정이며, 삶 자체의 부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만물 안에 계시며, 위에 계시고,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기를 거부하는 것을 굳이 좋게 해석한다면
이제 의존적 신앙을 넘어 자립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비난할 일이 아니고 격려할 일이다.
왜냐하면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
참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못한다고 뒤로 빼고, 도와달라고 찡찡대고 있다면
이제 그만 그런 하나님을 과감하게 버리고
-이 말이 걸린다면, 그런 수준의 믿음을 청산하고-
자기 안에서 자신을 격려하여
삶으로 증거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많은 자들이 하나님을 말하면서
자기 삶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며 산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사실 자아의 속임이요,
마귀의 둔갑일 뿐이다.
군대 조직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5개의 단과 35부..
어떤 내용으로 우리를 감탄케 할지 기대가 된다.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63
마침내 8가지 대강령 가운데
첫번째 강령 성(誠)에 대한 공부를
마쳤다.
366事 중 54事까지 왔다.
어쨋든 받은 은혜가 크고
깨달음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 소절씩 풀이할 때마다
마음이 밝아지고 강해지며,
뿌듯함이 넘친다.
절말 감사한 은사다.
이 은혜가 크니 병아리들이
몰사하는 비극을 당해도 의연해 진다.
애초에 내가 가는 길이 그 길이 아니었기에
잃은 바도 없다.
3주간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진리의 힘이 이처럼 삶에서 효력을 나타낸다.
더 깊이, 더 높이 오르기를 힘써야겠다.
이제 두번째 강령 信(신)으로 넘어간다.
제 55사 제 2 강령 신(信)
信理訓(신리훈)
信者天理之必合(신자천리지필합)으로
人事之必成(인사지필성)이라
有五團三十五部(유오단삼십오부)라
1團 : 意(의)
2團 : 約(약)
3團 : 忠(충)
4團 : 烈(열)
5團 : 循(순)
'믿음의 이치에 대한 가르침
믿음이란 하늘의 이치와 합하는 것으로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게 하느니라
여기에는 5가지 단 아래
35개의 부가 있느니라
1단은 의로움이요
2단은 약속이며
3단은 충성에 대한 것이라
4단은 열정이요
5단은 자연이 주는 믿음에 대한 것이라'
성경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참전계경에서는 믿음을
'하늘의 이치와 합하는 것으로
사람의 일을 반드시 이루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둘 다 용어의 차이는 있으나
개념의 차이는 없다.
성경에서는 바라고 보지 못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이미 가진 것과 같고,
결국은 얻게 된다는 의미요
참전계경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면
반드시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같은 말이다.
성경에서도 믿음을 단순한 기대나
욕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철저히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결과를
지금 체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말하지만
이 핵심적인 요소가 빠졌다.
그러다 보니 믿음은 '확률에 근거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 깨닫고 체험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주장하니 맞을 거야'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
'내가 공부해 보니 믿을만 해'
하는 식의 생각을 품고 믿음이라고 여긴다.
물론 그런 차원의 믿음도 믿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이성과 의식을 과감하게
넘을 수 없다면 믿음이란 세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받아들이거나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도
믿음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맹신이나 광신이나 불신이나 사실은 다 같은 뿌리다.
성령께서 밝혀주시는 본성을 보지 못하고,
그 본성이 이끄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무리 믿는다고 주장해도
그 믿음은 헛되며, 자기 생각이나 경험을 믿고 있을 뿐이다.
이해되어야 믿겠다고 하는 자나
믿으면 이해가 된다는 주장은 둘 다 틀렸다.
믿음은 그런식의 도박이 아니다.
영원한 진리에 입각하여
그 진리의 빛을 통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여정,
그리고 결과를 삶 속에서 발견하는 과정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까지를 믿음의 과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성령과 성령께서 이끄시는
자신의 영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자는
믿음이 존재할 수 없다.
본문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성경도 그것을 말한다.
하늘의 뜻을 모르면 믿음도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믿음이 없다.
하나님의 존재나 하늘의 이치를 아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것을 믿음에 포함시키는 것은 어리석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요,
하늘의 이치를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금수로 취급하는 자기비하일 뿐이다.
아직도 유신론, 무신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딱하다.
무신론자에게 신 존재의 증거를 주고
믿으라고 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유신론자에게 신의 부재의 증거를 주고
믿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신의 존재 증명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믿고 싶은가, 싫은가를 물어보면 된다.
사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세상의 부정이요, 자신의 부정이며, 삶 자체의 부정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만물 안에 계시며, 위에 계시고,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기를 거부하는 것을 굳이 좋게 해석한다면
이제 의존적 신앙을 넘어 자립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비난할 일이 아니고 격려할 일이다.
왜냐하면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
참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못한다고 뒤로 빼고, 도와달라고 찡찡대고 있다면
이제 그만 그런 하나님을 과감하게 버리고
-이 말이 걸린다면, 그런 수준의 믿음을 청산하고-
자기 안에서 자신을 격려하여
삶으로 증거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많은 자들이 하나님을 말하면서
자기 삶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며 산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사실 자아의 속임이요,
마귀의 둔갑일 뿐이다.
군대 조직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5개의 단과 35부..
어떤 내용으로 우리를 감탄케 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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