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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37 본문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37
갑자기 불똥 튀는 감동이 와서
시원하게 폭발을 시켰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얼마든지 용감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삼망의 감정 가운데 욕심이나,
기운 가운데 요동치는 흐름에
빠지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해도
악함이나 탁함이 없다.
止感, 調息에 이어 禁觸으로 간다.
성을 바로 통하면 상철이요,
명을 알면 중철이다.
그 만한 수준이 안되면 할 수 없이
또 내려가야 한다.
낮은 수준의 지혜(하철)라 하지만
우습게 보면 안된다.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지혜로 나아가는 관문이기에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가는 법은 사실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금촉을 통한 몸의 제어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가장 실천 가능한 효율적인
공부가 될 것이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37
갑자기 불똥 튀는 감동이 와서
시원하게 폭발을 시켰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얼마든지 용감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삼망의 감정 가운데 욕심이나,
기운 가운데 요동치는 흐름에
빠지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해도
악함이나 탁함이 없다.
止感, 調息에 이어 禁觸으로 간다.
성을 바로 통하면 상철이요,
명을 알면 중철이다.
그 만한 수준이 안되면 할 수 없이
또 내려가야 한다.
낮은 수준의 지혜(하철)라 하지만
우습게 보면 안된다.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지혜로 나아가는 관문이기에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가는 법은 사실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금촉을 통한 몸의 제어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가장 실천 가능한 효율적인
공부가 될 것이다.
우리의 육신, 몸을 삼망이라고 했다.
요즘 몸의 긍정이론과 상반되어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몸의 존중은 몸을 제대로 알 때 가능한 일이지
껍데기 몸을 다듬고 보살핀다고 몸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몸을 더 망치고,
더 그릇 대하는 일이 된다.
왜 몸이 삼망에 포함되었는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후함과 박함, 즉 두터움과 엷음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본 삼진의 '정'은 두터움만 있지, 엷음이 없다.
그런데 우리의 몸에는 후함과 박함이
함께 섞여 있어 귀와 천이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양분된 상황을 삼진의 본질로
돌이켜 후함만 남게 하는 것, 그렇게 이끄는 것이 바로
금촉이라 한다.
금촉은 한마디로 '접촉을 금한다'는 뜻인데
물론 아무 것도 손대지 말라는 극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몸을 가지고 있는 한, 그리고 그 몸을 유지해야 하는 한
접촉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금촉은 분별을 의미하고, 절제를 의미한다.
무분별한 접촉, 과도한 접촉이 몸을 천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나친 억제나 고행도 금물이다.
이는 금촉이 아니라 몸을 죽이는 행위,
혹은 몸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귀함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고행하는 자들이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그 존경은 구경거리지 진정한 존대가 아니다.
어리석은 자는 고행을 자랑스러워 하는데
구경거리로 천시 받는다는 것을 모른다.
삼망에 빠지면 이런 어긋난 현상이 쉽게 발생한다.
몸에 집중하고 생명의 본질인 정을 파악하지
못하면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 중독현상이다.
거기에 '聲色臭味淫抵 (성색취미음저/소리, 색깔,
냄새, 맛, 성욕, 겨룸)이 다 포함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미술, 향기, 미각, 섹스, 운동 다 들어간다.
기분을 좋게 하는 일은 자주 접촉하게 되어 있고,
그것은 습관과 중독으로 발전하는 것이 우리의 몸이다.
중독은 모두 파괴적인데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좋게 생각하는
그런 중독들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에게 해를 끼치나 자신에게 해로우나 결과는 같다.
몸의 본질인 '정'의 실체를 알고 보존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같다.
그래서 쾌락주의나 금욕주의나 결국 뿌리가 같다는 것이다.
이 두 사상은 본질을 향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혹에 빠진 상태이니 차별이 없다.
금촉을 통하여 정을 보하는 일을 주로 성(섹스)과
강하게 연관을 시키는데 틀리지는 않으나
그 또한 극단에 치우칠 위험이 크다.
생명의 본질이 남자의 '정액'에 있다하여
이를 쏟지 않기 위하여 독신, 금욕을 하며,
'접이불루'(교접은 하되 사정은 않는다)등
무슨 방중술, 도인술 많이도 설파하는데
대단한 노력들은 분명하지만 잘 못 짚은 것이다.
무분별한 접촉, 과도한 접촉이 몸을 천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나친 억제나 고행도 금물이다.
이는 금촉이 아니라 몸을 죽이는 행위,
혹은 몸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귀함을 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고행하는 자들이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그 존경은 구경거리지 진정한 존대가 아니다.
어리석은 자는 고행을 자랑스러워 하는데
구경거리로 천시 받는다는 것을 모른다.
삼망에 빠지면 이런 어긋난 현상이 쉽게 발생한다.
몸에 집중하고 생명의 본질인 정을 파악하지
못하면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 중독현상이다.
거기에 '聲色臭味淫抵 (성색취미음저/소리, 색깔,
냄새, 맛, 성욕, 겨룸)이 다 포함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미술, 향기, 미각, 섹스, 운동 다 들어간다.
기분을 좋게 하는 일은 자주 접촉하게 되어 있고,
그것은 습관과 중독으로 발전하는 것이 우리의 몸이다.
중독은 모두 파괴적인데
남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좋게 생각하는
그런 중독들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에게 해를 끼치나 자신에게 해로우나 결과는 같다.
몸의 본질인 '정'의 실체를 알고 보존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같다.
그래서 쾌락주의나 금욕주의나 결국 뿌리가 같다는 것이다.
이 두 사상은 본질을 향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혹에 빠진 상태이니 차별이 없다.
금촉을 통하여 정을 보하는 일을 주로 성(섹스)과
강하게 연관을 시키는데 틀리지는 않으나
그 또한 극단에 치우칠 위험이 크다.
생명의 본질이 남자의 '정액'에 있다하여
이를 쏟지 않기 위하여 독신, 금욕을 하며,
'접이불루'(교접은 하되 사정은 않는다)등
무슨 방중술, 도인술 많이도 설파하는데
대단한 노력들은 분명하지만 잘 못 짚은 것이다.
삼일신고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정'을 '정액'으로 보는 것 자체가 피상적이다.
'정'의 본질은 두터움에 있다.
그럼 이 두터움은 무엇의 두터움을 말하는가?
살이 쪄서 두터우면 후해 보이고 귀해 보인다는 말일까?
귀가 두텁고, 눈두덩이가 두터우며,
뼈와 장기가 튼튼하면 귀함을 받는다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삼진의 '정'은 하늘의 명을 받들어 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몸의 건강, 그 본질을 말한다.
단전이나 경락, 기맥, 일곱 차크라 등이 바로 이 정의 본질이다.
이를 알지 못하고, 이를 보하지 않으면
몸 기초가 약하여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정을 활성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다시 호흡과 명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명상은 호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명상과 호흡은 건강에 직결된다.
그래서 최고 지혜자는 명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중간 지혜자는 호흡을 통해 두가지를 해결하며
하급 지혜자는 단전수련 등을 통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스스로의 몸을 점검해 보라.
건강검진을 받아서 나온 결과는 다 믿을 수 없다.
아무리 수치가 좋다고 해도 만일 그가 헛된 영광과
자랑을 위해 S라인을 만들고, 복근을 다진다면
그 자체가 삼망에 빠진 증거다.
오히려 하늘과 통하고, 하늘의 명을 받들기 위해
근기를 튼튼하게 하고 체력을 강화하는 훈련은
지혜로운 일이며, 그에 맞는 운동은 따로 있다.
바로 오랜 전통으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무술과 요가이다.
경쟁을 위한 무술이나
몸 자체를 위한 요가 훈련은 무의미하다.
무술과 요가는 오직 하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몸을 두텁게 보하는 것이 그 본질이며,
그 결과는 속일 수 없다.
무술과 요가는 그 효력을 영적인 것을 강화하는
증거로 나타내지, 세속적인 영광을 향하지 않는다.
요가의 핵심은 절제요, 부드러움이며, 느림이다.
숨가쁘게 하는 운동은 몸에도 해롭고,
정신에도 좋지 않다.
그렇다고 힘 안들게, 편하고 쉽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정을 보하는 것인지,
몸이 존재하는 이유인지를 제대로 알고
천천히 몸을 단련하고, 조절하여
든든한 바탕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출처] 삼일신고 풀이 37|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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