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힘 숨 4
머리말
요한복음 강해 서문
제12장 나알알나
48. 죽음에의 존재(요한 12:1~11)
49. 진리의 왕(요한 12:12~19)
50. 밀알 철학(요한 12:20~28)
51. 빛의 아들(요한 12:29~36)
52. 나알알나(요한 12:37~50)
제13장 새 계명
53. 구족제자具足弟子(요한 13:1~20)
54. 서로 사랑하라(요한 13:21~38)
제14장 기독교의 근본사상
55. 길, 진리, 생명(요한 14:1~11)
56. 독립, 통일, 자유(요한 14:1~11)
57. 성령의 도움(요한 14:12~17)
58. 임마누엘(요한 14:18~24)
59. 무름, 부름, 푸름(요한 14:25~31)
제15장 사랑
60. 선생을 붙잡다(요한 15:1~8)
61. 십자가의 의미(요한 15:9~17)
62. 박해와 고난(요한 15:18~25)
63. 증거와 증인(요한 15:26~27)
제16장 성부, 성자, 성령
64. 나무땜, 불사름, 내가남(요한 16:1~4)
부록 1 요한복음의 목적
후기
부록 2 차례(제1~3, 5권)
찾아보기
* ‘나무땜, 불사름, 내가남’ 아궁이에 나무를 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이 붙어서 온돌이 따뜻해진다는 말이다. 굴뚝으로 연기가 팔팔 나간다는 것이 ‘나무땜, 불사름, 내가남’ 이것이 내가 발견한 말씀이다. 그런데 내가 유영모 선생님 말씀 속에 이것을 집어넣었다.
물론 내 뜻은 무엇인가 하면 ‘나무땜’ 하는 것은, 유영모 선생님의 유柳 자가 버들 유 자니까 버드나무라는 것이다. 선생님 때문에 ‘불사름’ 내 정신의 불이 살아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나’하고 ‘남’하고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이 ‘남’이 아니다. 그냥 ‘나’다. 내가 ‘남’이다. 그것을 알게 됐다. 뜻은 그 뜻이다. 유영모 선생님 때문에 정말 정신이 살아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됐나. 남하고 나하고 하나가 된다. 남이 곧 나라는 것을, 그것을 내가 알게 됐다. 선생님의 덕이라면 그게 덕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일 핵심이 무엇인가. 내가 남이다. 나는 곧 남이다. 남이, 남이 아니다. 그것이 곧 나다.
내가 남, 이것이 내 신앙고백이다. ( p.318-19) ![](https://image.aladin.co.kr/img/shop/2012/btn_close2.gif)
* 세계는 한 집이다. 모든 종교가 그것이지, 그것을 벗어나서 무슨 종교가 있겠는가. 유교도 그것이고, 불교도 그것이고, 기독교도 다 그것이지, 어디 다른 것이 또 있겠는가. 우리가 다 한 식구인데, 불교 그러면, 기독교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불교지, 불교가 원수가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렇잖겠은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해야 된다, ...
* 세계는 한 집이다. 모든 종교가 그것이지, 그것을 벗어나서 무슨 종교가 있겠는가. 유교도 그것이고, 불교도 그것이고, 기독교도 다 그것이지, 어디 다른 것이 또 있겠는가. 우리가 다 한 식구인데, 불교 그러면, 기독교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불교지, 불교가 원수가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렇잖겠은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해야 된다, 그러면 나는 불교도佛敎徒부터 사랑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유교도 우리의 친구지, 왜 내 원수겠는가. 그러니까 다 한 식구지, 남이 어디 있겠는가. 불교도 한 식구고, 유교도 한 식구고, 다 한 식구지, 가톨릭이니, 장로교, 감리교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 한 식구다. ( p.320-21) ![](https://image.aladin.co.kr/img/shop/2012/btn_close2.gif)
* 어느 날 내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은 그날 내가 죽었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아무 때 죽어도 죽는 것과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벌써 나는 죽었기 때문에 더 죽을 것이 없는 것이다. ( p.36)* 어느 날 내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은 그날 내가 죽었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아무 때 죽어도 죽는 것과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벌써 나는 죽었기 때문에 더 죽을 것이 없는 것이다. ( p.36)
* 기독교로 말하면 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기독교다. 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려면 내가 밥이 되어야 한다. 밥이 안 된 생쌀을 바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또 사과라면 제대로 익은 사과라야 바칠 수 있지 익지 못한 사과를 바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바쳐진다고 생각할 때 정말 내가 바칠 수 있을 만큼 익었는가, 그것이 언제나 문제...
* 기독교로 말하면 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기독교다. 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려면 내가 밥이 되어야 한다. 밥이 안 된 생쌀을 바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또 사과라면 제대로 익은 사과라야 바칠 수 있지 익지 못한 사과를 바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바쳐진다고 생각할 때 정말 내가 바칠 수 있을 만큼 익었는가, 그것이 언제나 문제가 된다. 충분히 익었다고 할 때 성인成人, 즉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 p.67) ![](https://image.aladin.co.kr/img/shop/2012/btn_close2.gif)
* 자신은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는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살기 위해서 왔는데 예수는 죽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아직 설익었다는 말이다. 죽기 위해서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완전히 익었다는 말이다. 익은 열매는 언제나 떨어진다. 설익은 열매는 가지에 붙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
* 자신은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왔다는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살기 위해서 왔는데 예수는 죽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아직 설익었다는 말이다. 죽기 위해서 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완전히 익었다는 말이다. 익은 열매는 언제나 떨어진다. 설익은 열매는 가지에 붙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예수의 차이이다. 우리는 아직 설익어서 백년이고 천년이고 더 살아야 하겠다, 라고 하지만 예수는 서른세 살에 완전히 익고 말았다. 그러니까 예수는 죽어야 하는 것이다. ( p.69) ![](https://image.aladin.co.kr/img/shop/2012/btn_close2.gif)
* 우리는 가족, 가정에 대한 의식은 아주 강하다. 어느 집에 가도 반들반들하게 다 만들어 놓는다. 집안에는 조그마한 쓰레기도 없도록 깨끗하게 해 놓으면서 바깥에는 쓰레기를 마구 버려 놓는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도 국가의식이라는 것이 부족하다. 국가라는 것이 바로 내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식이 나오기 전에는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가...
* 우리는 가족, 가정에 대한 의식은 아주 강하다. 어느 집에 가도 반들반들하게 다 만들어 놓는다. 집안에는 조그마한 쓰레기도 없도록 깨끗하게 해 놓으면서 바깥에는 쓰레기를 마구 버려 놓는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도 국가의식이라는 것이 부족하다. 국가라는 것이 바로 내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의식이 나오기 전에는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 p.154) ![](https://image.aladin.co.kr/img/shop/2012/btn_close2.gif)
*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속죄라고 한다. (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