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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 풀이 19/ 단군신화 해설 11 본문

천지인 공부/삼일신고

삼일신고 풀이 19/ 단군신화 해설 11

柏道 2019. 2. 11. 17:04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19 
 
웅녀와 마리아....
왜 이제까지 몰랐을까?
왜 이 둘을 그렇게 철저하게
떼어 놓아야 했을까?
부정적으로 보면 무지와 편견의 결과로
여길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섭리차원으로 보면
때를 기다린 것이 아닐까?
누군가 나타나서 연결해 주기를 말이다.
거기에 내가 뽑혔다면 더 없는 영광이겠다.
특히 이를 통해 우리 민족과
기독교의 같은 뿌리를 확인하게 된다면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이상의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엉뚱한 내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면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요,
진리라면 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생명을 나타낼터이니 나도 지켜볼 따름이다.
웅녀와 마리아...
도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말인가?
지역적으로나 시기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고,
사실역사와 신화라는 성격도 완전히 다른데
무슨 얼토당토 않는 시도인가 싶겠지만
어디 한 번 보자.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해 본다. 
 
1. 먼저 차이점부터 보자.
첫째로, 사람이 된 웅녀는 아들을 낳을 수
없음을 알고 신단수 밑에서 간절히
아들배기를 간구한다.
반면 마리아는 전혀 아들을 기대할 수 없는
처녀상태였다.
따라서 아들배기를 구할 상황도 아니었고
구할 마음도 전혀 없었다.
둘째로, 웅녀는 환웅에게 간청을 했다.
결과를 보면 이는 단순한
아들을 얻고자 하는 간청이 아니다.
신의 아들을 얻고 싶어했다.
만일 웅녀가 단순한 아들을 원했다면
주위에서 아무나, 혹은 마음에 드는
남자를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웅녀가 환웅에게 지속적으로
간구한 이유는 환웅의 아들, 그러니까
신의 아들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마리아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는 하고 순수한 마음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품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당연히 일말의 기대도 없었으니 구할 수도 없었다. 
 
이 차이점을 통해서도 멧시지가 나온다.
유대민족의 특성과 우리 민족의 특성의 차이다.
하와를 보나, 마리아를 보나 그들은 수동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 웅녀는 적극적이며,
그 유전자가 우리를 통해 내려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타난 것은 반대다.
유대인들은 적극적으로 세계를 지배했고,
우리 민족은 소극적으로 늘 침략과 고통만 당해왔다.
그러나 외형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
실상을 보면 반대다.
유대인들은 그 실패의 역사와 소극성에 대한
자책과 수치의 반동으로 저런 모습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열등의식이 강한 자가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과 같이...
우리 민족이 한정없이 침략과 수탈을 당한 것은
외형적으로 보면 약해서라고 하겠지만
실상은 반대다.
승리자의 유전자가 담대하게 고난을 수용하는
위대한 결단의 결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가 뭐하려고 이 땅에 와서 갖은 수치와
고통을 당했겠는가?
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강해서가 아닌가?
강한 자라야 내려오고, 고난을 견뎌내지
약한 자는 수단방법을 안가리고 억압하고
고통을 벗어나려 하게 되어 있다.
이제 유대인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
그들의 공헌은 물론 있다.
그러나 2000년 동안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보면
치열한 갈등과 전쟁이다.
그 여파는 지금도 강하게 몰아치고 있는데
수습할 길이 없다.
이제 한민족이 등장할 때다.
억압과 침략으로 인내의 내공이 쌓인 것이 아니라
이미 강한 승리자의 유전자가 있었기에
오천년을 짓밟히면서도 감당해 왔던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후천개벽이라는 말을 통해
우리 민족의 유전자가 빛을 발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실패와 수동적 유전자가 아니라
승리와 적극적 유전자가 우리 몸 속에,
정신 속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온 세상이 우리를
누르려고 난리를 부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핍박을 통해
우리 스스로에게 있는 승리의 유전자,
적극성의 유전자를 발견하고 발휘하도록
기다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