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삼일신고 풀이 10/ 단군신화 해설 2 본문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10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다.
문자 그대로 믿지 말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발견하라는 뜻이다.
항상 문제는 극단주의에서 발생하는데
의미 없는 문자진리를 주장하거나
문자 자체를 문제시 삼아 의미까지
부인해 버리는 양극단이다.
문자에 매이지 않으면서
의미를 파악하여 전달하는 것이 신화의
속성이라면 받아들이는 자도
같은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기독교에서 동정녀 탄생을
문자진리로만 강조하게 되면,
비웃음을 살 것이요,
그렇다고 이치에 안맞다고
교리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어리석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신비의 옷을 입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파악하고 그 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낼 때 비로소 논쟁은 그치게 된다.
안타깝게도 믿으라고만 주장하지
왜 그런지, 그 속에 담긴 진리성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해석을 만나지 못헸다.
그러니 동정녀 탄생을 두고
기독교 안에서도 서로 싸우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속 시원한 해석을 만나지 못하여
내가 직접 묵상하고 연구하여
본질적 의미를 찾아냈다.
그 후로 당당하게 동정녀 탄생에
대해 설교를 하고,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방어진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해마다 성탄절 기간이 되면
이 주제를 가지고 다시한 번 은혜를
나누는데 아무리 반복하고, 강조해도
지치지 않고 당당함이 약해지지 않는다.
십자가도 그렇고 부활도 마찬가지다.
본질이 파악되고 생명력이 나타나면
그렇게 힘이 있을 수 없다.
진리의 속성이 바로 이것이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 출생에 대해
그런 변증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각종 건국신화나 신비한 역사에 대해서
생명력 있는 설명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의심과 경계를 받을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진리로 승격될 수 없다.
단군신화도 같은 운명이다.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로만 끝난다면
이런 유치한 신화를 가진 것이
창피한 것이고, 깊고 오묘한 본질을
밝혀 그 진리성을 드러낸다면
당당한 역사, 자랑스러운 자긍심의 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런 시도는 도리어 더 그 신뢰성을
감할 뿐이니, 무지한 자들이 그런 식으로
교리를 옹호하려고 하다가 더 낭패를 만난다.
이제 단군신화를 한 번 해부해 보자.
비판과 옹호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말이다
일단 긍정적인 면으로 시작한다.
하늘나라의 주인 환인(桓因)과
그의 아들 환웅(桓雄)이 등장하는 것은
신적기원을 가진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개인과 민족의 기원이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됨을 증거하는 것은 그 이상 자부심을
줄 지혜가 없다.
그리고 이는 진리로서 충분히 입증된다.
도대체 이 신비롭고 오묘한 세계와
인간이 어디서부터 왔겠는가?
우연히, 저절로 단백질 분자나
아메바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생명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어리석은 자기 부정이요, 악한 거역이 될 뿐이다.
이렇게 신적기원을 가지는 면에서
단군신화는 진리성과 생명성을 갖추고 시작한다.
다음으로, 신의 세계에 나타나는 가족개념이다.
환인에게 여러 아들이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환웅을 서자(庶子)라 한다.
그러니까 정실에서 난 아들이 아니라
첩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이런 내용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세계를 연상시킨다.
이집트 신화나 가나안 신화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들이 거의 인간수준이다.
인간과 같은 가족단위를 가지고
부인과 자녀들이 있다는 점 등은
인간의 이해를 도울 수는 있지만
신의 격과 권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당시 의식수준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이런 신의 모습과 행동들은
재해석 될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와(혹 야웨)도
당시 의식수준에서 이해해야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는 너무 이상하고
과격한 신의 모습을 하고 있어
재해석이 요구된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한
하늘 아버지와는 그 속성이 너무 다르다.
결국 여호와는 유대인의 하나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구약의 여호와를 계속 고집을 하면
중동전쟁은 끝장을 봐야 된다.
당시의 블레셋은 지금의 팔레스타인인데
여호와와는 영원한 상극이요, 원수이다.
이삭과 이스마엘 후손의 갈등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남는다.
그 결과를 지금도 보고 있다.
테러의 공포가 온세상을 뒤 덮고 있는데
그 기원이 어디인지, 그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결국 구약을 문자 그대로 믿고 주장하는 한
끔찍한 피의 복수극은 온 세상을 뒤 덮을 것이다.
그런데도 무비판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는 자들은 이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슨 재주로 중동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로 하나님과
예수를 받아들이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
속히 재해석 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서자 환웅?
좀 이상하다.
왜 하필 서자 딱지가 붙었을까?
그럼 환인은 제우스 같은 바람둥이란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연구해 봐야겠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10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다.
문자 그대로 믿지 말고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발견하라는 뜻이다.
항상 문제는 극단주의에서 발생하는데
의미 없는 문자진리를 주장하거나
문자 자체를 문제시 삼아 의미까지
부인해 버리는 양극단이다.
문자에 매이지 않으면서
의미를 파악하여 전달하는 것이 신화의
속성이라면 받아들이는 자도
같은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기독교에서 동정녀 탄생을
문자진리로만 강조하게 되면,
비웃음을 살 것이요,
그렇다고 이치에 안맞다고
교리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어리석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신비의 옷을 입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파악하고 그 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낼 때 비로소 논쟁은 그치게 된다.
안타깝게도 믿으라고만 주장하지
왜 그런지, 그 속에 담긴 진리성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해석을 만나지 못헸다.
그러니 동정녀 탄생을 두고
기독교 안에서도 서로 싸우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속 시원한 해석을 만나지 못하여
내가 직접 묵상하고 연구하여
본질적 의미를 찾아냈다.
그 후로 당당하게 동정녀 탄생에
대해 설교를 하고,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방어진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해마다 성탄절 기간이 되면
이 주제를 가지고 다시한 번 은혜를
나누는데 아무리 반복하고, 강조해도
지치지 않고 당당함이 약해지지 않는다.
십자가도 그렇고 부활도 마찬가지다.
본질이 파악되고 생명력이 나타나면
그렇게 힘이 있을 수 없다.
진리의 속성이 바로 이것이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 출생에 대해
그런 변증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각종 건국신화나 신비한 역사에 대해서
생명력 있는 설명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의심과 경계를 받을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진리로 승격될 수 없다.
단군신화도 같은 운명이다.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로만 끝난다면
이런 유치한 신화를 가진 것이
창피한 것이고, 깊고 오묘한 본질을
밝혀 그 진리성을 드러낸다면
당당한 역사, 자랑스러운 자긍심의 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런 시도는 도리어 더 그 신뢰성을
감할 뿐이니, 무지한 자들이 그런 식으로
교리를 옹호하려고 하다가 더 낭패를 만난다.
이제 단군신화를 한 번 해부해 보자.
비판과 옹호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말이다
일단 긍정적인 면으로 시작한다.
하늘나라의 주인 환인(桓因)과
그의 아들 환웅(桓雄)이 등장하는 것은
신적기원을 가진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개인과 민족의 기원이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됨을 증거하는 것은 그 이상 자부심을
줄 지혜가 없다.
그리고 이는 진리로서 충분히 입증된다.
도대체 이 신비롭고 오묘한 세계와
인간이 어디서부터 왔겠는가?
우연히, 저절로 단백질 분자나
아메바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생명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어리석은 자기 부정이요, 악한 거역이 될 뿐이다.
이렇게 신적기원을 가지는 면에서
단군신화는 진리성과 생명성을 갖추고 시작한다.
다음으로, 신의 세계에 나타나는 가족개념이다.
환인에게 여러 아들이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환웅을 서자(庶子)라 한다.
그러니까 정실에서 난 아들이 아니라
첩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이런 내용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세계를 연상시킨다.
이집트 신화나 가나안 신화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들이 거의 인간수준이다.
인간과 같은 가족단위를 가지고
부인과 자녀들이 있다는 점 등은
인간의 이해를 도울 수는 있지만
신의 격과 권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당시 의식수준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이런 신의 모습과 행동들은
재해석 될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와(혹 야웨)도
당시 의식수준에서 이해해야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는 너무 이상하고
과격한 신의 모습을 하고 있어
재해석이 요구된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한
하늘 아버지와는 그 속성이 너무 다르다.
결국 여호와는 유대인의 하나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구약의 여호와를 계속 고집을 하면
중동전쟁은 끝장을 봐야 된다.
당시의 블레셋은 지금의 팔레스타인인데
여호와와는 영원한 상극이요, 원수이다.
이삭과 이스마엘 후손의 갈등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남는다.
그 결과를 지금도 보고 있다.
테러의 공포가 온세상을 뒤 덮고 있는데
그 기원이 어디인지, 그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결국 구약을 문자 그대로 믿고 주장하는 한
끔찍한 피의 복수극은 온 세상을 뒤 덮을 것이다.
그런데도 무비판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는 자들은 이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슨 재주로 중동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로 하나님과
예수를 받아들이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
속히 재해석 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서자 환웅?
좀 이상하다.
왜 하필 서자 딱지가 붙었을까?
그럼 환인은 제우스 같은 바람둥이란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연구해 봐야겠다.
[출처] 삼일신고 풀이 10/ 단군신화 해설 2|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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