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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7 본문

천지인 공부/삼일신고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7

柏道 2019. 2. 11. 16:39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7 
 
요즘 매일 꿈을 꾼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명상 수련을 시작한 후로,
아니 이런 현상의 시작은 그 이전이다.
간절히 부르짖고, 땀흘리는 찬송 1시간씩
할 때부터 뚜렷한 변화와 함께
비상한 꿈이 매일 꾸어졌다.
그 일이 잠시 주춤하다가
명상 수행에 집중하면서부터
이제는 꿈을 꾸고 기억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게 뭐 대단하냐면 할 말이 없지만
내게는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현상이다.
특히 더 기가막힌 것은
꿈 속에서 간혹 번개처럼,
또는 천둥처럼 말씀이 들려온다는 것이다.
주로 오늘처럼 새벽녘에 말이다.
조금 전 그러니까 5시 반쯤
난데 없이 한 말씀이 강하게 들려왔다.
너무나 많이 들어 잘 아는 말씀,
영생에 대한 예수의 정의와 선포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 17:3)

이 말씀과 더불어 질문이 함께 던져졌다.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고 할 자 누구냐?
진정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현현,
그리고 삶 속에서 체현되는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구냐?'
강력한 도전의 말씀이 준엄한
권위 속에서 내려진다.
마치 욥기 38장에 폭풍 속에서
등장하시는 하나님처럼 말이다.
'... 하나님을 안다는 자 있으면
대장부 답게 허리를 묶고 한 번 답해보라'
그 질문에 생각해 보았다.
'정말 그런 자가 누가 있을까?'
모든 종교,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
영생인데... 그 영생이 안 죽고 영원히
산다는 얄팍한 정의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 하나님, 즉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그 하나님이 보내셔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아는 것이라는데...
다들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정작 들어보면 껍데기 지식이요,
사전적 정의 수준을 못 벗어난다.
'전지전능, 무소부재, 영원불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혜와 권능과 사랑이시며,
빛 되신 아버지...'
줄줄 잘도 꿰지만 사전적 정의를
되풀이하는 기본 정보차원에서
알고 있을 뿐, 그 존재양상이나
활동과 펼침 등에 대해서는 꽉 막혀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종교, 어느 사상에도
하나님, 절대자에 대한 정의가
정확하게 일치하면서도
극한 대립과 투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종교에 가서 물어보라.
원시든, 고등 종교든, 이단이든...
하나같이 같은 신, 같은 절대자를 말한다.
무신론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인격적 존재에 대해 거부할 뿐이지
진리나 도, 법 등으로 표현된
절대자 같은 속성에 대해서는 전혀
이견이 없다.
안타깝게도 같은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게 된 이유가
'안다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모르면서
자기가 안다, 심지어는 자기가 잘 알고,
자기만 잘 안다는 아집과 교만에 빠지니
같은 말을 하면서도 싸우는 것이다.
낚시대를 들고 가는 사람을 보고
'낚시 가십니까?'하니
'아니요. 저 낚시 갑니다.' 한다.
그러니 이 사람이 말하기를
'아...나는 낚시 가는 줄 알고..' 했단다.
이 정도야 재미라도 있고,
서로 싸우지는 않지...
그런데 내가 믿는 하나님과
저가 믿는 신이 정확하게 같은데
이름이 다르다고, 인종, 문화, 지역, 역사가
다르다고 서로 지독하게 싸우고 있으니
이 어찌 비극이 아닐까?
신의 현현, 즉 신의 메신저나 대리자가
다르다면 그것 때문에 싸우지 말고
그 보다 한단계 더 근원으로 들아가
같은 뿌리임을 확인하면 되련만
파생된 가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만일 예수와 석가, 혹은 마호메트,
공자, 조셉 스미스, 대종사, 강증산, 단군 등
그 누구라도 서로 대립이 되면
한걸음 더 들어가 뿌리를 더듬어 보면 된다.
그런데 그럴 노력은 않고 죽어도 서로 다르다고,
같은 근원이 아니라고 하니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대로 모시지 못한 증거라 할 수 밖에 없다.
이 구절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이 자랑하고 떠들 것 없다.
배타적 예수를 주장하는 자들은
바 예수, 그러니까 자신이 만들어 믿는
예수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예수 자신이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라 한 것은
그런 폐쇄적이고, 제한된 예수가 아니다.
물론 예수가 맞다.
그는 보냄을 받은 자,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자이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하나님이 인정하신 자이다.
그러나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
근원과 삶, 그리고 사역이 본질이다.
과연 그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있는지,
그리고 그에 합당한 지혜와 능력, 그리고
사랑을 증거하는지, 나아가 하나님의 뜻,
즉 인류 구원의 사역을 담당했는지..
그게 시금석이며,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증거를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자들을 무시하고
거부하며, 배척 내지 대적하라는 말로
오해하면 큰 일 난다.
예수 자신도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 했다.
그러니까 크든 작든 이상에서 언급한
특징이 나타나면 그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인정해야 한다.
바로 우리 자신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의 지혜를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사랑,
인류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면
나 또한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다.
그래서 예수는 단호하게 이 말도 했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누가복음 11:15-23)
이 말씀이 무슨 의미겠는가?
기독교에 속하지 않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적이다로 들리는가?
그렇게 시시한 예수로 취급하면 안된다.
바로 이 말씀의 의미가 위의 설명이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지혜와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 예수 하면서
오히려 벽을 쌓고, 비난 정죄하며
저주와 심판을 선언하는 자들을 보라.
과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편이겠는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아는 자들은 절대 이런 짓 안한다.
자기 몸을 형제와 이웃을 위해,
심지어 원수까지라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내어주려 하는 자들...
바로 그들이 진짜 예수 편이다.
그러한 자를 알고, 자신이 그런 자가
되어 점점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
그게 '성통공완'이다. 
 
오늘은 꿈 이야기로 한 단락을 채운다.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보게 히시고, 풀게 하신 뜻이 선명하게
알려졌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도록 이끄심이
분명하다.
그럼으로 나 자신부터 영생을 얻고,
나아가 그릇된 개념과 사상, 종교에 갇힌
자들을 자유케 하라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