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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천 록(開 天 綠 ) 본문

배움과 깨달음/역사와 철학

개 천 록(開 天 綠 )

柏道 2019. 2. 6. 19:56

                        

                                개       천      록


                       -  지리산 어느 숯굽는 노인이 가지고 있던 비서 - 

                                                                                      

                                                         작가 : 구름 이경숙



 

개천록 1 ♣ 開 天 綠 (1)♣       

                       

개천록을 읽으시는 분께...                              

 

이 개천록은 지리산의 숯굽는 노인이 가지고 있던 한권의 비서를 번역하면서 그 열전(列傳)류의 기록들과 사건 중심의 일화체 기록을 년대순으로 배열하여 써나간 것이다.


이 개천록은 총 3부로 이루어진 것 중에서 가운데 편이다. 1편이 선천기(先天記)로, 이것은 우주가 혼돈하던 태초로 부터 최초의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는 순간까지의 과정과 그 원리이다. 서양의 진화론이 메우지 못하고 있는 간격을 충분히 메울 정도로 과학적 법칙을 가지고 서술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 올리기에는 내용이 적합치 못해서 그냥 넘어 갔다.


이런 문제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지겨워서 몸이 뒤틀릴 내용이다. 나체서방님 뗑깡나오면 말리기 어렵다. 2편이 지금 올리고 있는 개천록(開天綠)이다.


이 개천록은 최초의 남녀인 나반과 아만이 천계에 나타나서부터 신시개천을 거쳐 단군국조께서 고조선을 건국하기까지 3만년 역사의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3편이 후천사(後天史)이다. 이것은 고조선으로부터 고구려가 당군에 멸망할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특히, 당군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을 함락시킬 때, 서고를 불태우므로서 어떻게 환국의 역사서들이 소실되었는지 하는 것과, 하늘의 뜻에 따라 몇 권의 비서가 누구에 의해 비밀리에 보존되면서 세상에서 사라졌는지에 대한 비화들이 나온다.


천표율사가 기술한 정감록의 바탕을 이루는 환국과 신시시대의 예언서들의 내용이 들어 있다. 先天記, 開天綠, 後天史는 아직까지도 미완이다. 내가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많이 있다. 여기에 올리는 내용은 통신공간에 걸맞게 압축하고 골치아프고 지겨운 부분은 생략한 내용이다. 읽어봐 주시는 이상한 나라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개천록 2 ♣ 開 天 綠 (2)♣


하에 갇힌 유인원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불을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어렵게 잡은 동물이나 각종 과실을 오랜 동안 보존하기 위하여 그릇을 만들거나 가축으로 사육하게 되었으며 열악한 환경은 그들에게 보다 많은 도구의 필요성을 심어 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2만년의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상의 곳곳에 찬란한 태양이 그 옛날의 따뜻한 햇살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 눈 속에 파묻혀 개벽의 시련을 견뎌낸 소수의 유인원들이 다시금 푸르러진 초원에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들은 2만년전 개벽이 시작될 때의 그 유인원들과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더욱 갸름해지고 다듬어진 것이 되었고, 훨씬 더 곧은 자세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으며, 빙하기의 생존을 통해 체득한 발달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갖고 있었다. 즉 말을 할줄 아는 최초의 동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인간이었고 이들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옥황상제께서도 크게 기뻐하셨다. 천상의 모든 신들이 그들을 축복했다.


상계에서는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두 남녀를 골라 "나반"과 "아만"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최초에 이 인간들은 그 지혜의 빛이 그 이전의 모든 동물들 보다 탁월한 정도에 이르긴 했지만 아직 그 능력이 불완전하고 그 생명력도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이 우주 대자연의 궁극적 목적이랄 수 있는 완전한 지혜의 존재 - 신의 변환체로서의 생명이 될 소중한 싹을 보호하여 주기 위해서 천상에서는 진지한 회의가 열렸다.


하늘님이 직접 지상에 내려가서 이들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것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아직 까지는 인간 이 그 지혜의 문이 완전히 열려 있지 않고 이전의 동물이었던 단계의 야성과 우매함이 남아 있어 하늘의 교화를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고 여겨졌다. 결국 천상의 회의는 이 초기 단계의 인간을 보호할 네 마리의 신령한 동물을 대신 보내는 것으로 결정지어 졌는데 이 신령물들이 바로 우리민족의 수호신인 용, 봉, 맥, 호의 4신수였다. 이들은 각각 천상의 일주기인 삼천년씩 지상에 내려와 자연적 재해와 질병, 수환(獸患)등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게 되었는데 이들 중 가장 먼저 지상에 내려온 것이 용(龍)이었다. 용이 2만년전 지상에 내려와 삼천년을 거하다가 이윽고 그 기한이 차매 천계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때 비늘 하나를 인간들에게 떨어 뜨려주었는데 이것이 거울로 화했다.


이 용의 비늘이 변하여 거울이 된 것을 "용경(龍鏡)"이라고 하는데 훗날 환인이 이 용경의 뒷면에 "천부경(天符經)"을 새겨 커다란 가르침으로 삼게 되었다.


용이 돌아간 후, 다음 삼천년을 봉황(鳳凰)이 왔는데 이 봉황은 항상 암수가 같이 다니는 신조(神鳥)였다. 그 숫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하는데 이 황이 천계로 돌아가는 날 그 깃털 하나를 남겼다. 황의 깃털은 양쪽으로 가지가 세 개씩 나있는 형상인데, 이것이 그대로 칼로 변해 사람들이 "황검(凰劒)"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훗날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칠지도도 먼 옛날 환국시대의 신표였던 "황검"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것이었다.


그 다음에 온 것이 "맥(貊)"이었는데, 이 맥은 코끼리와 돼지를 합친 것처럼 못생긴 짐승이었지만 사람에게 해로운 독초와 독충을 샅샅이 잡아먹는 신통력을 가져서 해충과 독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하는 신물이었고 이 맥이 삼천년을 다한 후 천계로 돌아갈 때 허물을 벗어서 가죽을 남겼다. 이 맥이 남긴 가죽으로 사람들이 큰 북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맥고(貊鼓)"라 한다. 훗날 신시개천 때 환웅이 환인에게 물려받는 천부인 세개가 바로 이 "용경(거울)", "황검(칼)", "맥고(북)"의 세가지 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상에 내려온 신수가 바로 "백호(白虎)"이었는데, 이 백호가 삼천년을 거의 채워갈 무렵, 그러니까 최초의 인간인 나반과 아만이 생겨 난 이래 일만이천년이 흐른 즈음 인간은 그 수가 점점 불어났고 유치한 단계이긴 했지만 문명이란 것이 그 원시적인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천계 주위엔 여러 마을이 생겼고 사냥과 더불어 초보적인 농사가 시작되어 조, 옥수수, 콩, 깨 등을 심었고 개와 돼지 닭들을 가두어 놓고 길렀으며, 움집이란 거주형태도 조금씩 발달하여 온돌과 비슷한 구조의 난방도 하고 살게 되었다. 그 일만이천년 동안 지구의 환경도 조금씩 바뀌었고 빙하가 물러 간 후 따뜻한 초원지대였던 천계의 일대가 점차 추어지기 시작해서 오늘날의 시베리아 기후대에 속하는 지역으로 바뀌어 갔다.


조금씩 여름이 짧아지고 겨울이 길어졌으며, 겨울의 바람은 갈수록 매서워져 갔다. 많은 동 물들이 남쪽으로 사라져 가고 겨울이면 사냥할 동물을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이때의 상황을 우리의 옛 역사서인 "환단고기"에는 사람은 많고 생산은 줄어 갈수록 천계의 백성이 살기에 어려워 지므로..." 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나라 여러 신들이 의논해서 지상에 내려가 있는 백호에게 지시하기를, 삼천년이 끝나는 날 백호는 천상으로 돌아오지 말고 훗날 천계가 더이상 사람이 살기에 힘든 땅이 되었을 때 천계의 백성이 이주해 갈 땅을 찾아 가서 그 표식을 남기도록 하였다.


앞의 세 신수들이 모두 하나씩의 신표를 남긴 반면에 백호는 그 대신 천계를 떠난 후 훗날 천계의 사람들이 세세토록 살아갈 땅을 찾아 해뜨는 곳 동쪽으로 달려갔지요. 마침내 동쪽 땅의 끝에 다달은 백호가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땅으로 변했는데, 그 땅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때 이땅의 모양이 토끼의 형상이라고 비하시켜 주입시킨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토끼모양의 땅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이 땅은 영락없이 백호가 두 앞발로 대륙을 부여잡은 형상을 하고 있다.


개천록 3 ♣ 開 天 綠 (3)♣


백호가 동쪽으로 떠나간 후 천계의 사람들 기억 속에는 하늘이 백호를 보내어 미리 준비시킨 신의 땅에 대한 전설이 남게 되었고,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잊혀지지 않고 전해져 갔다.


전설로 전해져 온 그 약속의 땅, 신의 땅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천계의 땅이 좁고 척박해 지면 사람들이 찾아갈 하늘백성의 땅은... 물을 건너지 않고는 그 땅을 밟을 수 없으니 섬은 섬이나 섬이 아니고, 이 세상의 가장 큰 땅(주:유라시아 대륙)과 가장 큰 물(주:태평양)의 중앙에 있으며, 가장 추운 곳과 가장 더운 곳의 한 가운데라 춥지도 덥지도 않아 4계절이 모두 있으며, 이 세상의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이 그 땅에서 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주:한반도는 없는 것이 없어 광물의 박물관으로 불린다. 아마 석유도 곧 발견 될 거다.) 그 땅의 형상은 백호의 형상이 그대로 변한 것이라 이세상에 유일하게 그 모양이 자연히 생긴 땅이 아니며, 그 땅의 물은 이세상에서 가장 깨끗하며, 땅은 기름지고 산수는 수려해서 금수강산이라 불리우며, 훗날 있을 마지막 개벽의 시대에 이 세계의 모든 밝은 기운이 그리로 모일 것이니라 하는 내용이었다.


그 땅을 찾아 갈 시기와 그 땅의 표식에 대해서는 대대로 환인만이 그 비밀을 알고 계셨다. 백호가 동해바다로 떠날 즈음 이제 인간의 인지(認智)가 발달하고 그 영적인 능력이 능히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끼리 위함(敬天愛人)이 가능한 정도가 되매 비로소 천상의 하늘님이 지상의 인간을 친히 보살필만 하게 되었다.


때에 하늘의 상제가 지상에 나리셔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桓國), 즉 하늘나라(한:하늘)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분을 "안파견" 또는 "한님(하늘님)으로 불렀고 훗날 한자로 표기할 때 환인(桓因)이라 하였다. 환인은 하늘의 상제가 그 자리를 바꾸어 지상에 오신 것이니 인간처럼 정해진 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천상으로 돌아가고 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내려오시니 첫번째 한님이신 안파견으로부터 마지막 환인이신 지위리까지 7대 3천년을 역사하시니 이 시대를 천신역사(天神役史)의 시대라고 한다. 4신수(四神獸)의 시대 일만이천년 동안 사람들은 천계를 중심으로 이 지구상의 곳곳으로 퍼져 나갔는데, 당시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알라스카가 연결되어 있어 동쪽으로 이동해간 사람들은 알라스카를 지나 북미로 들어갔으며 (구름 주:당시의 알라스카는 오늘날 처럼 만년설에 뒤덮인 상태가 아니었음, 그리고 에스키모인들은 우리 한국사람들과 외모로 봤을 때 전혀 차이가 없어 구별할 수가 없음, 오히려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과 한국인은 약간의 구별이 됨, 아메리카 인디언 역시 우리와 혈통과 언어가 거의 유사 함) 대흥안령산맥을 넘어 황화 유역에 다달았고 서쪽으로는 몽고의 초원과 고비 사막을 넘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까지 그 발길이 닿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세계 각지에는 빙하시대에 따뜻했던 몇몇 지역에서 변화되지 않고 살아남은 마지막 유인원들(네안데르탈인)들이 아직도 군집해서 살고 있었으므로 인류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이들과의 충돌을 야기시켰고 보다 발달한 그들의 사촌인 인류에 의해 유인원들은 그 주거지에서 쫓겨나 멸절되어 갔다.(주:고고학적 발굴의 근거와 인류학의 발달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인류가 진화한 것이 아니라 빙하기의 말에 갑자기 나타난 인류에 의해서 네안데르탈인들이 멸종되었다는 것을 밝혀지게 되었고 이것이 인류학의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 사촌간인 유인원과 인류와의 사이에 통혼이 이루 어지기도 하였으므로 진화의 벽을 뛰어 넘은 인류의 핏속에 그 이전 단계의 동물인 유인원의 피가 섞이면서 인류는 복잡한 분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개천록 4 ♣ 開 天 綠 (4)♣

 

처음 안파견께서 천계에 내려오신 것이 지금으로부터 9천년전 그러니까 서력으로 치면 B.C. 7000년경 때였다. 그때 인간들은 신석기 시대의 후기에 접어들고 있었는데 천계의 사람들은 밑바닥이 뾰족하고 무늬가 없는 그릇들을 손으로 빚어 만들어 사용할 줄 알았고 천해(天海 : 바이칼호)의 가장자리에서 조개를 줍기도 하고 생선 가시 로 만든 낚시로 고기를 잡기도 했다. 물론 남자들의 주된 일은 사냥이었 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옷으로 앞을 가릴 줄을 몰랐으므로 안파견께서 처음 지상으로 오신 후에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앞을 가릴 옷을 찾는 것이었다. 천제의 체통이 있지, 벌거벗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천제환인께서 풀잎을 덩굴로 엮어 허리에 둘렀다. 그때의 안파견의 모습은 오늘날 아프리카의 추장님과 비슷했을 것이다.


안파견께서 자신이 하신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으라 하시고 당시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번개와 바람과 비를 설명하여 안심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먹기 전에 자신에게 보이라 하셔서 독있는 식물과 먹어도 좋은 열매를 일일이 가리어 가르쳐 주셨고, 과일을 먹은 후 씨를 뿌리면 그 자리에 똑 같은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천계의 주위에 사람을 괴롭히던 호랑이며 늑대며 승냥이들이 천제께서 오신 후로 사람사는 마을 주위에 접근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마음 놓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들판에 버려 짐승들의 밥이 되던 것을 그러지 말라 하시고 장사지내는 법을 가르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는 것과 낮과 밤이 되풀이 되는 것을 이치로서 가르쳐 때가 되면 양식을 준비하고 불을 간수하며 그 주거지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환인천제를 숭앙하고 진심으로 따르며 복속하여 점차로 사람이 동물과 다른 구별들이 지어져 갔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줏어오고 흙을 이개어 환인천제께서 거하실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은 마당에 천해 주위의 청석을 깔고 지붕위에는 사철 푸른잎으로 덩굴을 놓아 햇빛과 비를 가렸고 벽에는 풀잎을 짠 액을 발라 칠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세가지 푸른색의 궁이라 하여 삼청궁이라 불렀다. 물론 환국이 번창하면서 역대 환인들께서 개수를 거듭하여 환국말기에는 궁궐로서 손색이 없는 건물이 되었지만 안파견 환인 시대의 삼청궁은 요즘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초가집과 같았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인류 최초로 지붕을 얹고 칠을 한 건물이었다.


동굴과 움집밖에 만들줄 몰랐던 당시의 사람들은 완성된 삼청궁을 시골노인이 63빌딩을 쳐다보듯 하였던 것이다. 삼청궁이 완성되자 그 마당에 환인께서 지석(솟대)을 세우시고 그 둘레에 사람들이 모이게 하신 다음 과일과 곡식을 올리고 처음으로 하늘에 제를 올렸다. 인류 최초로 하늘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지던 날, 천계의 사람들은 나무등걸(당시의 유일했던 타악기)을 동물의 뼈다귀로 두들기며 서로 손을 잡고 지석의 둘레를 돌며 춤을 추었어요. 노래(라기 보다도 동시에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는)도 불렀지요. 오늘날 우리민족의 춤 강강수월래의 풍속도 환국시절 부터 솟대의 둘레를 돌며 춤추던 것의 전승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일만년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춤인 것이다. 그 후부터 남자들은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잡아오면 삼청궁 마당에 모아 놓고 의례히 제를 올리고 사냥 을 도와준 하늘에 감사했고, 여자들은 과일을 따오면 역시 솟대 앞에 모아 놓고 풍성한 과실을 주신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올렸다.


내가 앞글에서 첫 환인이셨던 안파견을 아프리카의 추장 비슷한 모습으로 말씀드렸는데 천지의 이치와 섭리를 두루 아시고 하늘과 땅의 일을 자유로 자재하시는 환인을 추장처럼 묘사한 것이 불손한 것 같지만 환인께서는 어디까지나 그 당시의 사람들을 교화하러 오셨으므로 그 가르침과 보여 주심의 범위가 당시 인간들의 사유능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을 뿐이다. 인간의 탄생은 결국 이 우주의 존재목적이요 그 의의이며 인간이 바로 우주와 같은 동본의 이상(同本異象)이므로 개벽 이후 인간이 태어나자 온우주가 이 자신의 인식자요 자신의 사유자로서 우주자체의 존재에 그 의미를 갖게하는 - 따라서 무량억겁의 세월 동안 우주가 준비한 끝에 탄생시킨 축소 된 우주자체 - 이 인간을 보호하고 아직까지 어리고 갸날픈 생명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섭리의 인화로 환인이 오신 것이라 그 분은 기꺼이 초의에 목우에 거하면서 인간사를 보살피셨던 것이다.


개천록 5 ♣ 開 天 綠 (5)♣

 

천제가 오실 때에 천상에서 사신수가 인화(人化)하여 따라 왔는데 이들이 바로 이사(二師), 이백(二佰)으로 우사(雨師)와 운사(雲師), 그리고 풍백(風 伯)과 하백(河伯)이었다.


이들이 천제를 도와 바람과 구름과 비와 하천을 다스려 천계의 백성들을 번창케 하였다. 그리고 이 이사, 이백은 대대로 천계에서 환인을 보좌하는 환국의 최고 벼슬이 되었는데 이것은 마지막 지위리 환인때까지 이어졌다. 지위리 환인이 환웅에게 천부인 세개를 넘겨 줄때 이를 봉립하여 나갔던 풍백과 우사, 운사 중, 운사가 "초성군"이시다. 이 초성군의 아들이 이 개천록의 주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초기에 인간들은 환인을 비롯한 온 우주의 기운이 그들을 보호하고 개벽 이후 첫 인류로서 그 지혜와 기운이 청정하였으므로 그 이전의 어떠한 동물들보다도 빠른 시간내에 그 수가 불어갔고 또 그 행동반경이 넓어져 갔다.


모험심에 충만된 인간의 무리가 더 짐승들이 많은 사냥터를 찾아 갔다가 그곳에 정착하여 가족을 형성하였고 더 맑은 물과 고기가 많은 강가를 찾아 멀리 떠나갔다. 천계를 떠나 버린 이들은 언제 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그들은 자자손손 전인미답의 땅을 지나 아득한 대지의 저편 너머로 사라져 갔다. 물론 천계 주변엔 다른 곳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고 가족 단위로 모여 살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고 그 흩어진 땅의 넓이가 확대되자 사람들은 때마다 삼청궁으로 모이기가 어려워 졌고 점차 마을 마다 그 한가운데에 하늘에 제사하는 터를 마련했고 무리들 중에 하늘의 뜻을 아는 사람을 뽑아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으례히 삼청궁에 와서 환인께 배례하고 그 가르침을 얻어 갔다. 안파견께서 오백수를 다하실 동안 사람들은 많이 개화되고 그 지혜가 밝아져 원시적인 경작을 하게 되었고 움집은 점차 벽과 지붕이라는 개념을 가진 귀틀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수렵은 여전히 주된 생업이었으나 이 시기에 돼지와 닭이 비로소 사람의 마을에서 길러지는 가축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날고기를 먹었지만 풍백이 이들에게 고기를 익혀먹는 법을 가르쳤고 하백이 짐승을 사로잡는 법을 가르쳤다.


사람들이 파 놓은 함정에 맷돼지며 사슴들이 빠져서 산채로 잡혔고 막힌 계곡에 말이나 소떼를 몰아넣고 그 입구를 나무울타리로 막아 수백마리의 짐승들을 한꺼번에 포획할 수도 있을 만큼 지혜가 발달해 갔다. 마침내 안파견께서 그 수를 다하시니 모습을 달리한 "혁서환인(赫胥桓因 )"께서 삼청궁의 역사를 물려 받으셨다. 때에 이 지구에는 커다란 지각의 변동과 기후의 일변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 엄청난 홍수가 있었고 대륙이 지구의 태반을 덮고 있었던 얼음들이 따뜻해진 기후에 녹아 내리면서 전 세계의 해수면이 높아져서 아시아와 북미 대륙이 베링해협으로 끊어 졌고 대서양의 물이 지브랄탈의 방벽을 넘어 대륙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여러 원시 문명을 수장시키고 지중해가 생겼다. 호주와 아시아의 남쪽을 이어주던 기다란 육지는 바다에 잠겨 곳곳에 섬으로 남으면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문명세계의 바깥에 남겨 버렸다. 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혁서천제가 주관하시므로서 인류의 탄생을 있게 한 개벽을 마무리 지으셨다.


개천록 6 ♣ 開 天 綠 (6)♣

 

원래 이 세계는 태극에서 출발해서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상극상생으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그 어느 하나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는 법이다.


생(生)이 없는 명(明)이 없고, 귀(鬼)가 있어야 신(神)이 있으며, 혼(魂)과 백(魄)이 같이 있어야 영혼이 살고 땅이 없는데 하늘이 있을 수 없고 양기가 일면 음기가 같이 동하는 법이다. 따라서 개벽 이후에 이 우주의 모든 양기의 정수(情隨)가 천계에 모여 인간을 만들 때 이 지구의 음의 극지인 숙방(肅方)에는 이 음기의 진수(眞隨)가 서리었고 그 기운이 역시 인간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양의 극지인 천계가 <커다란 땅에 둘러싸인 작은 물>이었는데 반해 음의 극지인 숙방은 <큰물에 둘러싸인 작은 땅>이었다. 물론 그 위치는 천계의 정 반대편에 있었다. 대서양의 한 복판에 있던 땅에서 발생한 이 음의 인류는 비슷한 시기에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동쪽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은 후 수천년을 이어 북상해서 마침내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이르렀고 (아직 지중해에 바닷물이 들어차기 전에 - 지금 지중해의 바닥에는 고대문 명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음) 서쪽으로는 남미의 천연림 속으로 사라져 갔는데 이들이 훗날 마야와 잉카의 문명을 일으키게 된다. 즉 지금 인류학이 약 3만년전에 발생한 두개의 원초인류로 보는 북방인류(황인종)가 우리의 조상들인 밝달족이요, 남방인류(흑인종)라 부르는 니그로가 바로 이 음의 인류이다. 양과 음의 두 극지에서 발생해서 동시에 전세계로 퍼져 나간 이 두 인류 는 이만년이 흐른 후 최초로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에 이 두 원초 인류간에 벌어졌던 대 투쟁의 서사시가 바로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이야기이다. 지중해를 건너 그리이스에 정착했던 남방인류와 서남아시아를 지나 중근동에 도달한 환족(桓族)이 세운 국가인 독로국 (주 : 지금의 터키다. 터키의 고언어와 우리말은 그 체계상 아주 유사하다.)과의 싸움이 바로 그 것이었다. 환국십이연방의 하나인 독로국이 바로 용장 헥토르가 아킬레스와 싸웠던 트로이의 한자표기이다.


음의 인류인 그리이스의 군대는 수십년의 원정에도 불구하고 독로국을 이기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거짓 항복하므로써 트로이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그 독로국의 이웃에는 그리이스보다 훨씬 강성했던 수밀이국이 있어(주 : 이수밀이국은 역시 슈메르의 한자표기다.) 이의 동진을 저지했다. (이 그리스와 독로국의 싸움에 대해서는 뒤에 상세히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훨씬 후대의 일로써 제 5대 환인이신 석제임 시절의 일이었다.


이 두 원초인류가 하나는 북에서 남으로 다른 하나는 남에서 북으로 그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처음에는 곳곳에 남아 있던 유인원들과의 싸움이 계속되었으나 결국에는 두 발상지의 중간인 중근동에서 맞딱뜨려지게 되었다. 이것이 양대 인류가 부딪힌 최초의 격돌이자 이문명간의 대 충돌 이었다. 이 독로국과 그리이스간의 전쟁이 있기 2,000년 전인 혁서천제의 시절에 그 유명한 대홍수가 있었고(주 : 비도 물론 그 원인이었지만 빙하기의 얼음이 녹아내린 홍수였음) 급격한 지각의 변동이 뒤따라 음의 인류의 발상지였던 숙방이 물속에 가라 앉아 플라톤의 '국가'에서 언급한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남았고 길마메쉬 서사시를 비롯한 고대문명이 남긴 많은 기록 속에 당시의 홍수와 지진, 화산의 폭발 등이 남게 되었다.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이때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다가 정리된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확산과정에서 유인원들과 양대 인류가 통교하게 되고 혼혈이 섞이면서 수많은 인종이 나타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오늘날의 백인종이 등장하게 된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백인은 원초 인류인 뿌리가 아니라 훨씬 후대에 나타나는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미개한 유인원들의 피가 섞이면서 백인들에게는 태초의 순수한 하늘의 정기가 둔화되고 그 육체와 심성 속에 야만과 동물적인 우둔함이 심어졌다. 그들의 하얀 피부는 이종간의 교배에 의한 변종으로서 돌연변이에 가깝고, 그 크고 높은 코는 입 보다 코를 먼저 갖다대는 짐승들의 흔적이며 몸에 덮인 노란 털들과, 금발의 머리들 역시 동물의 털로서의 흔적이며, 여러가지 습성들 역시 동물적인 것들이 많이 남아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사는 이 원초적인 양대 인류 간의 투쟁과 화합의 기록이며, 음과 양의 서로 다른 기질에 따른 문화와 문명과 종교의 성격이 다른데서 오는 격돌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중 한쪽의 정통인류라 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이 이전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지, 어떤 존재 의의를 갖고 있는지, 앞으로의 미래세에 이 적통인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예정되어 있는지, 이런 것들이 내가 할 이야기의 주된 내용들이다. ♥ 앞에서 내가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이야기를 했는데 지위리 환인의 시대에 사람에게 회자되던 옛 영웅들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독로국의 왕자 혁도 (이 혁도왕자를 옛 희랍인들은 자기네 발음으로 혁또르-->헥또르-->헥토르로 꼬부려 부른거다)의 영웅담이 포함된 환국삼웅전이 단연 백미였다.


호머의 일리야드 오딧세이는 그 장대함과 영웅적 서사미에 있어서 따라 오지 못한다. 이 환국삼웅전도 옛문자를 풀어서 한번 올려 드리겠다. 환국시대 처녀들은 어른들이 혁도왕자의 이야기만 해 주면 가슴을 조리며 재미있어 했던 이야기다. 까마득한 옛날에 독로국에 혁도왕자가 있었고, 수밀이국에 해수왕자가 있었으며 파내류국에 진오왕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환국 삼웅이라 혁도왕자가 머나먼 서쪽 나라의 어여쁜 혜련공주 (慧蓮 公主 : 그리스인들은 헬렌이라고 부른다)를 사모하여 ... 하고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연방기 독로국편과, 수밀이국편, 파내류편 등의 정사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고 과장되기도 했지만 오늘 날의 사람들이 단군신화를 듣는 것 보다는 훨씬 사실적인 선대의 역사요 영웅담들이었다.


일리아드 오딧세이는 희랍인들이 그들의 참담한 패배를 미화시키려는 노력이 담긴 책이라 오히려 그리이스의 용장,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고, 그 내용도 우리쪽의 기록과는 상당히 다른데 실제로 그들의 원정은 참담한 패전의 연속이었고 혁도, 아부, 어과율, 사라문두 등 독로국의 쟁쟁한 영웅들 손에 수만명이 희생되고 그들이 돌아갈 때 배위에는 시체만이 가득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희랍에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녀자들의 곡성이 천지에 가득했고, 전사자들의 시체를 실은 검은 깃발을 매단 배가 돌아올 때 마다 해변가에는 통곡소리가 파도를 잠재울 정도였다고 전한다.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우리쪽 이야기가 바로 "환국삼웅전의 혁도왕자편"이다. 들려드릴 때가 있을 것이다. ♥


개천록 7 ♣ 開 天 綠 (7)♣

 

혁세천제께서 그 수를 다하고 천상으로 돌아가실 때 천제께 아홉명의 아들이 있어 그 첫 아드님이 삼신의 영기를 받아 그 덕이 산과 같고 그 지혜가 바다와 같이 깊으시므로 삼청궁에서 제위를 물려받으시니 이를 고시리 천제라 하였고, 나머지 여덟분의 형제가 당시에 천계를 중심으로 사방 이천리에 퍼져 있던 환국의 제 부족들을 각각 여덟씩을 맡아 나누어 다스리시니 구환 (九桓)이라 하고 그 아홉 형제분들을 구황(九皇)이라 하여 당시의 환국을 구환64민(九桓六十四民), 또는 구황64민(九皇六十四民)이라 하였고 이 64민의 씨족이 각기 아홉형제 분의 성을 따랐으므로 천하에 9본 64성씨가 생겼다.


이 구황이 훗날 석제임환인 대에 열두개의 분국으로 나뉘어서 환국12연방 이 되었다. 혁서제가 고시리께 위를 물리실 때에 처음으로 이 우주만물의 원리와 세상의 이치와 삼신의 도를 담은 계송을 불러 내려주시니 고시리께서 한번 듣고 다 외워 길이 전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천부경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문자가 없어 글로 담지 못하고 다만 말로써 암송되어 전해지다가 훗날 지위리환인께서 옛부터 삼청궁의 비처에 소장되어 있던 용경의 뒷면에 전자로 그 뜻을 새겨 환웅께 물려 주셨다.


후일 환웅께서 신시를 여시고 백두산 중턱에 용경에 전자(篆字)자로 씌여 있던 이경을 가림토(한글의 창제시 그 바탕이 되었던 우리의 옛글)로 새긴 석비를 세우셨는데, 고조선대에 이르러 여러 곳에 비가 세워지고 경이 전해 졌으며 낙랑시대에 까지도 비가 남아 있었다 전한다.


고구려 멸망 후 사람들이 이를 해독치 못하여 괴이한 비로 여기다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당대의 석학이었던 최치원이 이를 해독하여 여든한글자의 한자로 번역하여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고시리 천제께서 선제로부터 천부경을 받고 이를 근본으로 삼아 우주자연의 법칙을 깨닫고 그 원리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리시니 그 모양이 커다란 하나의 원 속에 삼극이 서로 조화하여 어우러진 것이었다. 이 그림이 바로 태극의 형상으로 정해져 삼청태극이라 했다. ♣ 이 태극이란 것은 주역과 음양오행의 중심이 되는 것인데 주역의 발상국이라 하는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우리나라는 이것으로 국기(國旗)로 삼고 있다. 조선시대 까지도 격식을 갖춘 양가집의 대문에는 이 삼청 태극이 그려져 있었는데 현재 태극기에 그려지고 있는 것은 이청태극이다. ♣ 고시리 천제의 대에 와서 흙을 이개어 말린 후 불에 구어 벽돌을 만들줄 알게 되었고, 기와를 서로 이어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을 얹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에 삼청궁을 크게 개축하여 천제께서 방위를 잡고 삼청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전각을 세우므로, 이때부터 삼청궁의 의미는 태극의 세 기운을 일컬는 삼청의 궁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훗날 모든 도교의 사원을 삼청궁이라 하고, 도교가 번창했던 송, 원 시절 궁전이나 대궐에는 반드시 삼청전이 따로 있게 되었다. 삼청은 곧 삼신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삼신각이라 하고,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다음에도 이 태극사상을 받아들여 절마다 삼신각을 두게 되었다(삼신각은 원래의 불교에는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제외한 어떠한 나라의 불교사원에도 삼신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시리 천제의 재임 중에 사람들은 비로소 씨족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했고 점차로 몇개의 씨족들이 그 근거지를 중심으로 부족으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볼 때에는 이제 인류의 발길이 지구의 곳곳에 닿아 무리의 수가 많아진 곳에서는 비로소 훗날 그 흔적이 발견될 수 있을 만한 규모와 수준의 문명을 일으키게 되었어요. 물론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하면 천계 주위의 환국문명과 혁서제 시절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이전의 아틸란티스 문명이 되겠지만 그 두 문명의 흔적이 하나는 그 이후 역사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외지가 되었고, 또 한 문명은 바다 밑에 잠기어 버려 그 자취가 전해지지 않으므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발자취는 현재 까지 발견된 것보다 앞으로 발견될 것 들이 훨씬 많으므로 머지않아 두 문명의 흔적들이 발굴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믿어도 좋을 것이다.


고대의 유물들이 발굴되고 발견될수록 인류의 역사는 점점 더 오랜 이전으로 소급해가고 있다. 이십년 전만 해도 인류문명의 발상지로서 황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를 들어 사대문명의 발상지 어쩌고 가르쳤지만 슈메르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이후 오늘날은 이 사대문명만을 인류문명의 시작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독로국(트로이)의 유적은 이미 찾았지만 그 흔적이 너무 미약해 당시의 일들을 밝히기가 어렵고 아틀란티스의 유적에 대한 조사도 한참 진행 중이다.


언젠가 환국문명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날 인류사는 근본적인 수정을 하게 될 것이다. 평양이 불타던 날 사라진 많은 고대의 역사서들이 하나씩 나타나게 되면서 동양사의 근본이 바뀔 것이다.


개천록 8 ♣ 開 天 綠 (8)♣

 

고시리 천제의 대에 씨족단위의 부락을 이루어 공동사회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인류는 그 이전의 원시공동 사회에서는 있지 않았던 재산의 사유가 생겨났고 비로소 내것과 네것의 구별이 생겼다.


나와 남을 구별하고 내것과 네것을 가르게 된 다음부터 내것을 늘리기 위한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은 내것을 위해 남의 것을 바라는 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한 욕망의 시발은 식량과 재산과 같은 경제적인 필요품이 아니라 바로 이성에 대한 권리의 주장에서부터 먼저 나타났다.


이전의 공동사회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의식이 희박했으므로 자연히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만을 기억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점차로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서로의 경계가 좁아지면서부터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사냥터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인간은 비로소 자기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바로 자신과 같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점차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동료로 삼아 그들 상호간의 믿음과 협조를 통해 생존을 확보해 나가게 되었다. 그러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바로 혈연적인 관계에 의한 친족들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자신의 보호세력을 필요로 하면서 비로소 남자들은 여자를 통해서 아이들과의 유대를 주장하여 자신의 세력을 만들게 되었다. 즉 너는 내 아들이므로 내가 적과 싸울 때 나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게 된 것이고 그 때부터는 아버지가 누구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또한 남자는 자신의 세력으로써 가족의 수가 대단히 중요 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서 자신의 세력(즉 생존능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점차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남자들 간에 벌어졌고 이것은 때때로 씨족과 씨족간의 대규모 다툼의 성격으로 발전했다.


자신들의 숫자를 늘리는 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자를 통한 생산과 다른 사람들을 강제로 자신의 세력속에 편입시키는 두가지 뿐이었다. 따라서 이웃 씨족을 힘으로 굴복시켜서 그 구성원들을 데려오면 자연적인 방법에 의한 것 보다 훨씬 빠르고 용이하게 그 세력 (사람의 수)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생존에 유리하게 됨을 알게 되면서 인간들은 서로간에 정복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되었고, 그 투쟁의 제 일의적인 목적은 여자의 획득이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집단끼리의 투쟁은 고시리천제의 시대에 와서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아 갔고 동시에 인류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 즉 인류라는 종의 폭발적인 확대재생산에 그 불이 당겨졌고 그 이후로 이 종의 증가를 막아낼 수 있는 힘은 자연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혁서천제의 시대에 지구의 환경적인 변혁이 이루어 졌다면 고시리천제의 대에 와서 비로소 인간사회의 대변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혁서제시대의 무위(無僞)로서의 다스림이 더 이상 곤란해 졌으므로 고시리천제의 대에 처음으로 규범이란 것을 정하여 이 영물들의 행동을 타율로 규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대한 생명계의 진화와 그 결실로의 전진을 천제께서 막으실 생각은 없었지만 최소한 이 인간들이 보다 더 원숙하게 그 길을 가기를 원하셨으므로 환국오법(桓國五法)을 제정하여 환국의 각 부족을 다스리는 여덟형제를 통하여 경계내의 모든 부족들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때에 땅은 넓고 교통은 불편하였으며 곳곳에 흩어진 모든 사람들 을 천제의 령으로 다스리기는 이미 어려워져 가고 있었다.


천제께서는 개벽 이후에 청령하고 순수했던 인간의 심성이 점차 사악해지고 그 생활에 악업을 쌓는 것을 한탄하시었지만 어찌하리오 이미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하늘의 정기와 신의 지혜를 받은 존재인 것을.. 스스로 나아가는 인간들의 그 발길을 누가 막을 수 있었으랴. 고시리 한인께서 환국의 제방(諸邦)에 내리신 환국오법(환국오훈이라고도 한다)은... 믿음을 지극히 여겨 거짓이 없을 것. 성신불위(成信不僞) 부지런함을 받들어 게으르지 않을 것. 경근불태(敬勤不怠) 순함으로 효를 다하여 거역하지 말것. 효순불위(孝純不威) 염치를 알고 의를 행하여 음행을 삼갈 것. 염의불음(廉義不淫) 양보함으로써 화목하여 서로 다투지 말것. 겸화불투(兼和不鬪) 이 다섯가지 계율이었다.


훗날 불가의 팔정도나 유가의 삼강오륜, 화랑의 세속오계 등이 이 오훈의 범주를 넘지 않는 것인데 오히려 후대의 계훈들은 군(君)에 대한 충과 남자에 대한 여자의 복종이 추가되면서 환국 시대의 저 순후했던 가르침에서 퇴보했을지언정 한발짝도 나아가질 못했다.


개천록 9 ♣ 開 天 綠 (9)♣

 

때에 환국은 서서히 전성기로 접어들어 나라의 넓이가 동서로 2만리요 남북으로 5만리에 달하였고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독로국 (희랍과의 싸움에 서 트로이를 잃은 후 동쪽으로 옮겨 구다천국이라고 개명함), 일군국, 우루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맥구여국, 직구다국, 사납아국, 수밀이국(슈메르)의 12연방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시에 세계 각지에는 환인의 덕음(德音)이 닿지 아니하는 수 많은 종족 들이 곳곳에 산포되어 더러는 정착하고 더러는 무리로 떠돌며 후미진 곳의 사람들은 아직도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에 환국의 12연방은 점차로 부족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자연히 12연방들 간에도 영토와 산물을 위한 다툼이 생겼고 고시리환인께서 주우양환인께 위를 물리실 즈음에 독로국과 직구다국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직구다국이 우세하여 독로국의 토성이 있던 쿤란을 포위 하여 60여일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의 병장기는 돌로 만든 도끼와 창, 몽둥이가 주였는데 독로국 사람들은 돌팔매질이 장기여서 다가오는 직구다국 사람들을 돌을 던져 무수히 쓰러뜨렸고, 직구다국 사람들은 나무를 얽어 방패를 만들어 돌을 막으며 토성을 기어올라 갔다.


마침내 토성을 빼 앗긴 독로국 사람들이 자그만한 언덕으로 도망가 몰렸고 직구다국 사람들이 그 언덕 아래에 몰려와 둘러싸기에 이르렀다. 산 위에는 부상당하고 지 친 독로국 사람들이 마지막 저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독로국의 구원군이 직구다국의 뒷쪽에 나타났다.


그들은 통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백해(카스피해)를 건너 쿤란의 뒤에 상륙했고 갑자기 등뒤에서 나타난 독로국의 공격에 직구다국 전사들은 당황하여 달아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크게 지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직구다국의 장정들이 천명이나 죽었고 마침내 직구다국은 금산(지금의 히말라야의 서쪽 네팔 부근)아래로 옮겨 가게 되었다(석가모니가 이 직구다국 사람들의 후손이다). 이 싸움에서 이긴 독로국은 서남아시아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 후 수밀이국의 세력에 밀려 점차 서쪽으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이 독로국과 직구다국의 싸움은 트로이전쟁이 있기 570년 전의 일이었다.


주우양 환인의 대에 와서 수밀이국은 백해 남쪽에 제국을 건설할 만큼 융성해 졌고 파내류산(지금의 파미르고원 : 파의 원산지이다.)에서 가져 온 파를 대량으로 심어 주식으로 삼았다.


주우양환인께서 처음으로 전자를 만들어 제방에 훈령을 보냈는데 전자는 진흙에 써서 그것을 말린 후 보관하였다. 수밀이국은 이 전자를 기초로 독특한 설형문자로 발전시켜 사용했는데 환국의 사람들은 이것을 쓰기가 어려워 오히려 그림으로 문자를 대신했다. 훗날 신지혁덕이 정리해서 한자가 되는 초기의 그림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천계에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 많은 사람이 놀라게 된 일이 생겼다.


사람들이 운석이 떨어진 자리에 가 본즉 아직도 대기와의 마찰과 충격열로 녹아내리는 누런 돌들이 있었는데 광채가 났다. 토숙이 기다란 작대기로 그것을 뒤척이니 그 끝이 타들어 갔다. 돌창으로 이리 저리 찔러 보니 찌른 대로 모양이 생기는데 곧 굳어 버리는 것이었다. 차가워진 다음에 그 끝을 구부리니 부러졌는데 토숙이 그것을 가져다 가 불속에 넣고 다시 녹여 봤더니 녹이면 다시 물러져 돌로 그것을 치는 대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평평하게 두드려 편 후에 식히니까 돌 보다 반반하고 광택이 나면서 거기에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토숙이 그것을 환인께 바치니 환인께서 보시고 이것은 무른 돌이라 가히 요긴하게 쓰일 것이니 더 찾아보라 하셨다. 천계 주위에 땅위에 드러난 여러 철광석을 주어서 불에 집어넣었는데 당시에 나무가지들을 모아 벽돌을 쌓아 불을 지핀 열로는 철은 녹이지를 못했고 구리만이 열로 녹일 수가 있었다. 이후에 사람들은 구리만 보면 줏어다가 여러가지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몇 가지 색깔이 다른 돌들을 섞어서 녹이면 굳은 후의 빛깔과 그 단단함이 다르다는 알게 되면서 수백년이 흐르는 동안 경험이 축적되어 마침내 석제임 시절에는 청동이 만들어지게 되어 청동기 문화의 시작을 보게 되었다.


개천록 10 ♣ 開 天 綠 (10)♣

 

석제임 환인 대에 와서 천계 주위는 점점 더 추어져 가고 여름이 짧은 대신 겨울이 길어져 갔다. 겨울에는 살을 에는 매서운 북풍이 휘몰아쳤고 천해는 얼어붙어 버렸다. 무섭게 많은 눈이 내려 겨울 내내 천계는 눈속에 파묻혔고 짐승들은 동면에 들어갔다. 강과 바다가 얼어붙어 고기를 잡기가 어려웠고 온천지가 눈에 뒤덮인 들판에는 짐승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 사냥도 곤란했으며 더구나 곡식류나 과일과 같은 채식은 불가능한 일 이 되었다.


아직까지 천을 짤줄 몰랐던 환국사람들이 추위로부터 자신을 감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짐승들의 모피였는데 몸에 두를 만큼 큰 짐승들의 수효가 점점 줄어갔다. 천계의 백성들은 환인님과 이사 이백의 가르침을 쫓아 그러한 자연환경을 극복해가는 지혜를 발달시키면서 점차로 문화라는 것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옥의 형태를 발달시켜 추위가 스며들지 않는 밀폐된 공간으로서의 거주지를 만들고 천해 주위의 청석들을 주워 바닥에 깔고 그 아래에서 불을 때어 돌이 그 열을 오랫동안 유지하므로서 잠자는 동안에도 집안이 따뜻할 수 있게 하는 온돌이라는 것을 만들어 추위를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물론 초기의 온돌은 몇개의 작은 돌 위에 넙쩍한 큰돌을 올려 밑에 땔 감으로 불을 지펴 돌을 데우는 단순한 것이었는데 밤이면 가족들이 이 뜨꺼운 돌 주위에 둘러 앉아 이야기 했고 또 그 둘레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긴 겨울은 사람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주어 사냥이나 낚시를 할 수 없는 시간에 다른 것을 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겨울 동안에 토기를 만들었고 돌을 갈아 여러가지 연장을 만들었으며 여름에 있었던 사냥이나 혼인의 일들을 떠올리며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토기를 때 그릇의 바깥쪽에 단순한 무늬를 넣던 것을 점차 어떤 형태를 가진 그림으로 발전시켜 자기가 잡았던 큰 소나 곰의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자기 가족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또한 이때에 환국에는 여러가지 원시 문자들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문자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고시리 대에 환인의 공식 문서에 사용되던 전자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날로 복잡해져 가는 인간 사회의 일들을 담기에 부족함이 있고 또 쓰기가 어려운 글자라 사람들은 그림으로 뜻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그리는 방식이 달랐는데 석제임 대에 와서 는 거의 3백개가 넘는 사물을 지칭하는 그림들이 정해져서 통일된 약속으로 쓰이기에 이르렀다. 악기도 여러가지가 발명되어 속을 파낸 통나무에 가죽 을 입힌 북이 만들어 졌고(이때의 북은 가죽이 한쪽 면에만 대어진 것이었다),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입으로 부는 피리 비슷한 것들도 만들어 졌다. 그리고 석제임 대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지난 세월 동안 야생동물들이 점차로 가금화되어 단순한 식용이 아니라 그 노동력을 인간에게 제공하게 되었다.


아직 농경이 발달하지 못해 밭을 간다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소를 농사에 이용하지는 못했지만 무거운 돌이나 나무 또는 사냥한 큰 짐승들을 옮기는 소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바퀴라는 것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냥 등위에 싣거나 아니면 대나무나 나무줄기로 얽어 만든 바구니 같은 걸 잡아매어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가는 방식이었다. 아직도 말은 야생을 길들이지 못해서 부릴 수 없었는데 말을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훗날 지위리환인대에 가서였다. 역대 환인들은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계셨으나 그 도가 하늘과 닿아 있고 또한 그 수양의 깊이가 범인과 달라 제병이 침범치 못하였고 스스로 우주와 일신의 기를 다스리는 힘이 있어 스스로 돌아가실 때를 정하여 수를 마치므로 가장 오래지상에 계셨던 고시리 환인이 700년을 채우셨으며 나머지 환인께서도 보통 수백년의 수를 누리셨고 그 외에도 삼신의 법으로 신선의 경지에 다달은 많은 분들이 계셨다.


혁서제 시절에 서방 만리에 환국의 법을 전한 광서제가 있었고, 주우양환인의 대에는 발귀리가 있어 동방 삼역에 삼의법을 전하였고. 후대에는 자허선인, 법수선인, 자부진인 등 많은 선인들이 나타나 환인과 천지의 법을 논하기도 하고 삼청궁에서 노닐기도 하였다.


개천록 11 ♣ 開 天 綠 (11)♣

 

구을리 환인의 대에 천하 환국의 모든 선인들께서 한자리에 모여 하늘에 제를 올리고 이것을 "소도제천"이라 했는데 천하 지상의 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을 쌓고 축원을 하며 소도의 한가운데에 십팔층의 나무단을 쌓고 불 을 붙여 그 기운으로 하늘과 땅을 이었다. 그리고 문자가 발달하여 옛 환인의 가르침과 삼신의 교를 가르치고 배우며 이를 남겨줄 수 있게 되었을 때 삼묘산 아래에 "서자부(庶子部)"를 세웠다. 삼신의 교를 가르치는 세계 최초의 종단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인도에 가람이 서기 2천년 전의 일이었다. 환인과 삼신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을 서자(庶子)라 했는데 지위리 환인대 에는 이 서자의 수가 삼백명이 넘었다고 전한다. 훗날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자(出家者)"의 뜻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이 서자였다. ♣ 지금은 이 서자란 단어를 정실부인이 아닌 측실에게서 얻은 아들의 뜻으로 변해져 쓰이지만 당시의 서자는 우두머리가 될 삼의 뜻이었고 "서"는 머리를 의미하는 "수"의 발음이었다.(수머리-->우두머리) 한자 "서"의 뜻은 빛과 같은 의미도 있었다. 훗날 이 "서"자의 풀이가 변해 버리면서 서자의 뜻도 다른 것이 되었다.♣ 구을리 환인 때에 사람은 더욱 많아지고 천계 주위의 환경도 갈수록 한냉한 것으로 바뀌어 사람들이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자 마침내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백호가 해 돋는 곳으로 가 준비해 둔 그 땅에 대한 전설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떠나기도 했다.


정든 땅 천계를 떠나면서 사람들은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아루라 아루라(기억해 줘 생각할거야)" 소리치며 고개를 넘어 갔다. 당시에 "안다"는 말은 "기억한다"는 말과 "생각한다는" 말 과 분리되어 쓰이지를 않았다. 즉 안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은 그 뜻이 혼재되어 쓰였던 것이다.


천계에서 천해의 남쪽을 돌아 동방으로 가는 길목에는 까마득히 삼청궁이 보이는 고개 마루가 있었고, 그 고개를 넘으면 환인 계신 삼청궁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넘어가면서 마지막 돌아보며 "아루라!"하고 외치던 그 고개를 사람들은 "아루리(기억하리)고개" 또는 "아르이고개, 아랑고개"로 불렀다고 한다. "아랑 아랑 아르리 아르이 고개" 마침내 안파견께서 천계에 처음으로 하늘 백성의 나라를 여신 후 하늘의 일주기인 3000년이 차매 천계의 지덕이 쇠하고 천하의 기운이 동쪽으로 옮겨가므로 드디어 천신역사의 마무리를 할 때가 오게 되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번성하고 생육하여 지상의 주인으로서 부동의 위치를 가지게 되고 인류에 더 이상 위협이 될만한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한 천제께서는 하늘이 인신을 빌어 인간을 교화하고 보호해 줄 시기가 지났음을 아시고 이제 인간이 스스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천계를 봉할 것을 명했다. 마지막 환인이 되시는 지위리께서 그 대업을 위하여 천계로 가시게 되었다. 이때에, 천계의 주위에는 사방 이백리에 마을들이 있었고 큰 부락에는 삼백호가 넘는 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어느덧 혈거생활의 티를 벗고 비록 흙벽돌을 쌓고 짚으로 이은 지붕이라 해도 정지와 방들이 나누어진 가옥들을 짓고 살 무렵이었다.


집집마다 아녀자들이 말린 삼줄기에서 실을 뽑아내고 그것으로 베를 엮었으며 부족장이나 그 가족들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맨 발이었고 신을 신는다는 것을 생각도 못해보고 있었다).  대대로 토숙의 후손들이 쇠를 다루는 비법을 전수 받아 구리나 청동으로 갖가지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그 공방은 비밀로 되어 있어 보통사람들이 그 안을 볼 수가 없었다. 거울과 칼, 각종 장신구나 장식물들을 금, 은, 청동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이러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든 물건은 신분을 나타내는 귀중한 신표로 쓰였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길들여진 말을 가지고 있어 타고 다녔는데 안장이나 마구 같은 것이 없이 말의 맨등에 그냥 타고 다녔으며 삼사와 오가를 비롯한 지배계층의 사람들이라야 호피나 녹피를 말등에 얹고 타고 다닐 수 있었다. 수레는 선대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바퀴와 축의 제작은 당시의 기술로서는 지난한 것이어서 극히 만들기가 어려웠다. 오늘날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것과 당시의 사람들이 바퀴를 만들고 그것이 잘 구를 수 있도록 축을 만들어 끼우는 작업은 그 기술적 난이도에서 비슷한 것이었다. 


커다란 돌을 돌로 때려 둥근 바퀴로 만드는데 일년이 넘는 시간과 작업이 소요됐고 바퀴 한가운데를 둥글게 뚫어 꼭 맞는 나무를 끼워 축을 만드는 것은 대부분의 연장이 돌이었던 당시에는 엄청난 숙련을 요하는 첨단기술이었다.


개천록 12 ♣ 開 天 綠 (12)♣

 

초기에 천계의 환인과 각 연방의 단군들이 모두 선인들이어서 서로 신법(神法)으로 교통(交通)하고 서로 뜻을 전하여 수만리를 격하고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환인의 령(令)과 훈(訓)이 전하여져 왔지만 이제 사람들이 육식으로 다른 생명의 피와 살을 먹으므로써 그 피가 탁해지고 살생의 업이 쌓여 그 영력(靈力)이 쇠미해 지므로 천부경이 말하는 바의 하늘의 기가 그대 로 화하여 된 개벽 이후 첫 인간들의 신성과 청정한 심력이 퇴화되어 몇리만 떨어져도 의사를 전하지 못하고 일년을 걸어도 국(國)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더구나 하늘과 사람 사이의 교감(交感)은 막히어 환국 말기에는 오히려 지평선 저 너머에 다른 연방들이 있음 조차 잊혀지더니 지위리 환인 대에는 12연방이며 옛 선인들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 전설처럼 변해 버렸다. 그리하여 서로 만리를 격해 있는 연방들은 서로를 잊고 희미한 옛기억을 신화로 간직한 채 서로 독자적으로 문명의 여명을 열어가게 되었다.


지위리께서 천계를 봉하실 무렵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밀이국은 그 전성기를 열고 있었고 이집트에는 나일강 유역에 훗날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태양신의 아들들이 서쪽으로부터 이동해 오고 있었어요. 독로국에 패하여 금산의 아래로 이동해 온 직구다국은 히말라야와 티벳고원의 사이에서 수많은 소왕국으로 분열되었는데 환국의 신교(삼신교)를 계승하여 많은 선인들이 도를 닦고 덕을 쌓으니 여러 연방 중에서 가장 환국 의 신교를 굳건히 유지하여 훗날 치우천황 대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로 불리는 묘선공주 자매가 태어났으며 그 천년이후에는 인류사상 가장 큰 정 각을 이룬 석가모니불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양자강 이남은 그 때까지도 유인원의 세계였으며 황하유역은 천계에서 흥안령 산맥을 넘어온 소수의 사람들이 황토 속에서 미개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세계각지의 사람들 간에 교통은 끊어지고 소식 은 두절되어 서로 간에 그 존재조차를 모르게 되어 버렸다. 삼청궁은 동으로 천해에 닿아 있어 취선루에 올라서면 푸르고 맑은 천해 가 한눈에 보였는데 아침에 해가 뜰 때는 수면 가득한 안개 위로 햇살이 퍼지면서 오색영롱한 서기가 삼청궁을 감싸듯 피어올랐다.


서쪽으로는 자정 전을 지나 자하루로 이어졌고 북쪽으로는 소선정이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삼청궁의 정문인 태정문이 있었고 그 안과 밖은 커 다란 뜨락이었는데 바닥에는 모두 청석이 깔려 있어 비오는 날에도 흙을 묻히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 태정문을 마주 보면서 나트막한 언덕 위에 소도가 서 있었고 그 주위 십리에 걸쳐 천호에 달하는 인가들이 있었다. 흙으로 벽을 바른 나트막한 집들과 나무 기둥을 세우고 짐승의 가죽으로 둘러친 움막과 같은 집들 있었고 천계를 조금 벗어난 지역에는 동굴을 이용해 거주로 삼은 마을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천계 주위의 넓은 들판에는 양과 소가 무리지어 다녔고 사슴들이 뛰어 다녔으며 가끔씩 수만마리가 넘는 소떼들이 지나 가고는 했다.


한번씩 천계의 장정들이 이런 소떼나 양떼를 몰러 나갈 때는 온 천계가 떠들썩할 정도였다. 운사와 우사가 사냥에 앞서 환인께 고하고 소도에 올라 엄숙하고 경건하게 하늘에 제를 올렸다. 그들은 여름 사냥을 나가면 달이 한번 차고 기우는 시간이 지나야 돌아오기도 했는데 소나 양떼를 쫓아 수백리 밖 까지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수백마리가 넘는 소나 양을 몰 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면 여자들과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하였다. 평화스러운 천계였지만 늘 그렇게 안온하지만은 않아서 때때로 사나운 부 족들과 싸우는 때도 있었다. 일정한 정착생활을 배우지 못한 종족들이 사냥감을 찾아 광활한 대륙을 옮겨 다녔는데 그들이 천계 주위에 나타나면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던 것이다. 사냥을 나갔던 천계사람이 그들에게 죽거나 부상당해 돌아오기도 하고 여자와 아이들이 끌려가기도 했다.


천계에는 이미 남자들이 그러한 외부종족을 쫓아낼 힘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남자들은 언제나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천계의 직할지 내에서만 삼백명이 넘는 장정들이 한시각내에 모일 수 있었고 간혹 큰무리의 종족이 천계의 접경을 침범해 올때는 천계 주위 오백리에 산재한 부락마다 환인의 파발이 달려 각 부락에서 수천명의 전사들이 모였다. 천계를 침범하려다 전사들을 보면 기겁을 하고 도주했던 것이다. 이미 천계의 장정들은 끝에 청동으로 만든 촉을 단 창을 쓰고 있었고 전사들의 우두머리들은 청동검을 휘둘렀다.


돌도끼나 돌창, 또는 돌칼을 들고 덤빈 원시종족들은 천계의 전사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싸움에 져서 달아나거나 아니면 무리져서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씩 수백명이 넘는 유랑족들이 잡혀서 천계로 끌려오기도 했는데 환인께서 이들을 타일러 천계내에 살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지위리 환인대에 가장 커다란 세력으로 천계를 침범해 왔던 무리가 바로 반고가한의 종족(나중에 중국인이 됨)이었는데 이들은 천해의 남쪽에서 짐승의 떼를 쫓아 북으로 올라 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종족의 우두머리인 반고란 자는 머리가 영리하고 힘이 장사였으며, 또한 어디서 배웠는지 신선의 술을 익혀 여러가지 호풍환우하는 재주를 부렸다. 맨 처음 천 삼백리 남쪽에 있던 선비 부락에서 연락이 왔을 때 환인께서는 의례히 있어 왔던 조그만 사건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다급한 사자들이 남쪽의 각 부락에서 달려 왔으며 여러번의 싸움에서 천계의 장정들이 다치고 죽었으며 수 많은 가축을 빼앗겼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해서, 환인의 명을 받고 운사가 천계의 전사들을 인솔하고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운사의 큰 아들인 혁덕도 이때에 처음으로 아비를 따라 싸움터로 떠났다. 그때 혁덕의 나이가 열여섯이었고 그 아래로 다섯의 아우가 있었는데 제일 늦게 태어난 애만이 딸이었다. 반고와의 싸움이 있던 해 애만은 다섯 살이었다.


개천록 13 ♣ 開 天 綠 (13)♣

 

운사가 지휘하는 천계의 전사들과 남방의 반고족과의 싸움은 여러달을 끌었다. 반고는 기술을 부려 돌멩이를 날리고 구름과 안개를 불러 싸움터를 가리기도 했으며 때때로 숲에 불을 일으켜 천계의 전사들을 크게 괴롭혔다. 게다가 짐승들을 다스리는 재주가 있어 수백마리의 호랑이와 곰을 앞세워 쳐들어오기도 하고 소떼들을 우리 전사들을 향해 몰아대기도 하여 크게 고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운사가 주문을 외어 바람과 비를 잠재우고 성난 맹수들도 운사의 발앞에 얌전히 엎드리며 공중을 나르던 돌들도 먼지로 변해 힘을 못쓰게 만드는 것을 보자 흉폭한 반고의 무리들도 더 이상 저항치 못하고 항복하게 되었다.


남쪽으로 떠난 뒤 여러달이 지난 후 운사는 항복한 반고의 무리 들을 데리고 천계로 개선했다. 환인께서 마당에 꿇어 엎드린 반고를 보시고 그 재주가 범상치 않음을 아깝게 여기셔서 살려 주시고 천계에 따로 구역을 주어 자기 종족들을 데리고 살게 하셨다. 반고는 그 후에 환인께 여러가지 선법과 비결을 배웠는데 원래의 바탕이 비뚤어진 자라 자꾸 사술과 기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여러 잡신과 통교하고 난학(亂學)에 몰두하여 나름대로 사파(邪派)로 일가를 이루게 되는데 원래 천계의 백성들 중에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더러 생겼다. 환인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고 아주 못 마땅히 여기셨다. 하지만 재주가 있으니 잘 가르치면 언젠가 큰 인물이 되리라 여기시고 크게 나무라시지 않았다. 지위리께서 천계를 다스리신지 150년이 되던 해 환인께서는 이사 이백과 여러 부족의 삼사와 오가를 삼청 궁으로 부르시고 천지의 기운이 한번 순환하여 이제 그 끝에 왔으므로 지금부터 옛 안파견으로 부터 삼천년 동안 계속되어 온 천지공사를 마무리하리라 하시고 십년간 자정전에 드시어 하늘의 뜻을 헤아려 결정하겠노라 하셨다. 그 십년간 누구도 자정전에 출입치 말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환인께 고하지 말라 하시고 자정전에 들어가시니 10년간 아무도 환인을 뵐 수가 없었어요. 이 환인묵거 십년간에 천계에는 많은 이변이 있었다. 태양이 사라져 사람들이 심히 놀랐으며(일식현상이었을 것이다), 사흘 밤 낮 동안 해를 볼 수 없었으며 (대규모의 황사바람이 북국을 휘몰아 덮어 왔음), 일주야 동안 하늘이 붉은 빛이었고 (천계의 서북쪽에 엄청난 산불이 났는데 그 불빛이 일주일 동안 하늘을 붉게 만들었다), 갑자기 짐승들의 떼가 땅에서 사라졌으며, 천해의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지진과 홍수가 잇달아 일어났다. 지위리께서 묵거에 들어가신지 8년째 되는 해 여름, 천해가 바닥을 드러낼 만큼 극심한 가뭄이 있어 물을 찾으러 사람들이 말라 버린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겨울에 소나기가 내렸으며 여름에 우박이 떨어져 사람들을 심히 놀라게 만들었다. 9년째 되는 봄에는 지진이 있어 을루족 마을이 땅속에 함몰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이 피난처를 구해 천계로 몰려 왔다. 드디어 환인께서 말씀하신 10년 묵거의 마지막 해에 천해에서 거북이 한마리가 뭍으로 올라 왔는데, 그 크기가 어른 키의 두배만 하고 입가에 기다란 흰 수염이 나 길 때 땅바닥에 길게 끌릴 정도였다고 한다.


천해에서 뭍으로 올라 온 거북은 엉금엉금 기어 삼청궁을 향해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놀라고 두려워 아무도 거북을 막지 못했어요. 마침내 삼청궁에 다달은 거북은 자정전 앞마당에 와 기진했는지 땅바닥에 엎디어 꼼짝을 안 했다. 환인께서 자정전의 문을 열고 십년만에 모습을 보인 것이 바로 그때였다. 우리들은 깜짝 놀라 땅에 엎디어 배례하고 그 모습을 우르렀더니, 환인께서 입으신 옷은 앉은 채로 낡아 다 떨어 졌고 하얀 수염이 성성하게 가슴 아래 까지 휘늘어졌는데 두눈에 광채가 빛나 감히 쳐다보지를 못하였다. "네 오기를 여태 기다렸도다." 하고 환인께서 거북에게 말씀하셨는데 이미 거북은 엎드린 채 숨을 거둔 후였다.


환인께서는 소도에 온 천계의 백성들을 다 모이게 하시고 커다란 단을 쌓고 나무를 모아 올린 후 신귀(神龜)의 등껍질을 불에 굽기 시작했다. 북두칠성이 도는 것을 따라 하늘이 도는 대로 거북의 등껍질이 절로 돌더니 새벽 여명에 잔월이 빛을 잃을 무렵이 되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거북의 등껍질이 부풀어 쪼개졌다. 육각형의 무늬 마다 가늘게 금이 가 오묘한 형상들을 나타내었는데 환인께서 단 앞에 등껍질을 올리고 칠주야의 제를 올리셨다. 환인께서 그 거북의 등껍질과 선천시대부터 전하여 오던 용경을 '서자부'에 보내어 거북의 등껍질에 나타난 무늬의 뜻과 용경의 뒷면에 새겨진 옛글의 뜻을 아는 자를 데려 오라 하셨다. 서자부의 수백명 도인들이 다 그 뜻을 풀지 못하더니 한 사람이 있어 한손에 용경을 높이 들고 귀갑을 밟고 서서 일곱번을 돌며 춤추면서 계송을 하니 옛 환인께서 가르치신 바라 백교의 으뜸이요 천학의 수자리요, 만법의 중앙이니 바로 밝닥족의 신교의 가르침이라 천부경의 양광정명을 외치는 소리였다. 또한 하늘이 거북을 보내어 하늘의 뜻을 전한 것이니 선천 시절 하늘의 약속을 이룰 때가 왔음을 널리 알리는 소리였다. 이가 바로 서자부의 제일선인(弟一仙人) 환웅이었다.


개천록 14 ♣ 開 天 綠 (14)♣

 

환웅이 서자부를 나서서 삼청궁을 향할 때에 천계일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환웅이 삼청궁에 도착하여 부복하자 환인께서 그에게 당 부하여 말씀하시기를... "선제 안파견께서 이곳에 첫 나라를 세운지 어언 삼천년, 이제 천계의 지덕이 다하고 선천의 대운이 끊기매 이제 이 땅이 사람들을 풍족히 지탱치 못하나니 그대는 환국의 백성을 이끌어 신시로 갈지어다."하셨다. 환웅이 머리를 조아려 여쭙기를, "신이 부덕하고 재주 미천하여 대업을 망칠까 심히 두렵사오나 어찌 몸을 아끼며 마음을 쉬게 하리이까."하니 천제께서 매우 흡족해 하셨다. "오늘 공과 같은 인물이 있어 천하지대사를 맡기노니 공은 떨쳐 일어나 이 무리와 함께 나라를 옮겨 하늘의 밝은 뜻을 널리 전하고(광명이세) 세상에 거하며 이치를 밝히며(제세이화) 능히 온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라(홍익인간)." 고 말씀하셨다.


환웅이 다시 여쭙기를, "먼 옛날에 하늘이 신수를 보내어 오늘날 이 백성이 살자리를 준비하셨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오나 신이 무리를 이끌고 어디까지 가야 그 땅이 있사오며, 무엇을 보고 그 땅인줄을 알리이까?"하였다.


환인께서 이르시기를, "공은 해가 뜨는 곳을 바라고 나아갈지라. 만리 동쪽에 한 산이 있을지니 눈처럼 희리라. 그 산의 중턱에 이르면 무리 팔백명이 그 그늘에서 쉴만한 커다란 나무가 있느니 바로 신단수이니라. 그 나무 둘레에 도읍을 정하라. 족히 후천세계를 준비할 땅이니 지금에 삼위와 태백을 두루 보아도 그 보다 낳은 곳이 없느니 그곳에 나라를 열고 신시(神市)라 할지니라." 환웅이 백배하고 물러 나오매 우사와 운사가 용경과 황검을 받들어 나오고 풍백이 맥고를 울리며 나아와 환웅께 봉납하니 환웅이 천부인 세개를 받들어 천지신명에 대업의 완수를 축원하였고 삼청궁 둘레에 삼천남녀가 모두 부복하였다가 일어서 환호하였다. 삼청궁에서 환인으로부터 천부인 세개를 받고 물러 나온 환웅께서는 곧 제가의 장을 난하에서 소집하여 회의를 열었다. 환웅께서는 이 제가의 장들에게 이제 천명이 있어 천계를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알리고 각 부족은 그 준비를 하도록 명하셨다. 환웅의 명이 있은 그날로부터 환국의 경계 내에 있는 모든 부락과 마을에서는 짐승들의 가죽을 모아 천막을 만들고, 소와 말의 고기를 말렸으며, 곡식의 종자를 준비하고, 데리고 갈 가축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삼년간의 준비가 끝난 후 환국의 모든 사람들이 천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상에 인류가 생긴 이후에 한 장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환국의 밝달족이 17만명이요, 남쪽의 숙신씨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9만5천, 서쪽의 선비씨가 11만3천이요, 그외 여러 소수 부족의 사람들이 십만을 넘었다. 그들이 끌고온 소와 양떼들이 천계의 들판을 가득 메우고 세워 놓은 천막들이 서로 이어져 그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환인께서는 말을 탈 수 있는 일흔명을 천령사로 명하여 각 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게 하고 그 준비상황을 혁덕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했는데 이때 혁덕이 사람과 가축의 수를 기록하기 위하여 산목을 만들어 계산을 했다. 당시의 보통사람들이 셀 수 있던 것은 열손가락으로 나타낼 수 있는 범위가 고작이었고 그 보다 많은 것은 그저 많다는 정도의 개념뿐이었다. 혁덕이 나뭇가지를 양피에 실로 매어 수를 적고 그 수를 계산하는 법을 세우면서 비로소 열손가락의 수에서 벗어나 무한히 많은 수를 셀 수 있게 되었다.


환국의 모든 사람들이 모이고 준비가 끝나자 환웅께서 모든 마을의 삼사 오가를 대동하고 삼청궁에 나아가 환인께 하직인사를 올렸다.


개천록 15 ♣ 開 天 綠 (15)♣

 

환인께서 천계에 오신지 벌써 백오십년이 넘어 환인의 흰머리와 수염이 온몸을 덮고 있었고 자애하신 표정과 지혜에 밝은 눈만이 여전하였다. 환인께서는 풍백에 명하여 삼청궁의 모든 보화를 건네주셨는데 그중에 약간을 따로 남기시면서 이것은 나중에 달라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또한 삼청궁의 창고를 열어 저장되어 있던 모든 양곡을 내어주었다. 마침내 환인께서 주렴을 내리시고 돌아앉으시매 모든 사람들이 땅에 엎디어 눈물을 흘리며 떠남을 슬퍼했다.


환웅께서 커다란 녹각장을 높이 들어 출발을 명하자 이백개의 북이 큰소리로 울리고 각 부족의 표식을 따라 사람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환국의 각 나라에서 모인 기마천령이 5십인씩 열두대로 나뉘어 각 부족의 선두에서 향도하였고 사람들은 자기 부 부족의 표식을 따라 열지어 움직였다. 천계 주위에는 사람과 짐승들이 일으킨 먼지가 하늘을 가렸고 소떼들의 울음소리, 달리는 말들의 발굽소리, 천령들의 고함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들이 뒤섞여 와글거렸고 사람들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백호의 땅을 그리며 희망과 불안이 엇갈리며 머나먼 여정의 첫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첫번째 사람들의 모습이 아랑고개 너머로 사라진지 닷새째 되는 날,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린 천계는 휑하니 비어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을 집들이 늘어선 거리에 먼지 바람만 소리내어 지나갔으며, 더이상 아이들의 소리도, 아침이면 들리던 닭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삼청궁에서 환인을 모시고 살았던 이사, 이백의 가족들은 가장 나중에 출발했는데 그 때는 이미 환인께서는 삼청궁을 폐하고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모두 다 떠나고 텅 빈 삼청궁의 마당에 몰려온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으니 그들이 반고와 그가 데리고 온 종족들이었다. 


반고도 환인께 나아가 자정 전 마당에 엎드려 하직을 고하고 저들 무리를 데리고 남쪽으로 가겠다고 주청하였다. 환인께서는 그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목소리만 들려 나왔는데 환인은 그가 환웅을 따라 같이 가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다. 따로이 남겨둔 재보들을 가지고 떠나라 하시고, 앞으로 5천년 간 너의 자손들이 천계의 자손들을 위한 벽이 되리라 하셨다. 반고가 감읍하여 일곱번을 절하고 환인께서 주신 재보들을 거두어 남쪽으로 떠났다.


훗날 반고는 무리와 함께 황화유역에 도착하여 스스로 반고가 한이라 칭하고 황토인의 나라를 세웠는데 중국이 자기들의 시조라고 말하는 반고가 바로 이사람이다. 반고가 황토인의 나라를 세운 후 이천년 동안 환웅이 연 신시의 속방으로 남게 되며, 신시의 환족 중에서 사람을 가려 그 땅을 통치하러 보내게 된다. 이렇게 환웅의 명을 받들어 속방인 황토를 다스렸던 사람들이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이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황토인들은 신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상고의 역사 중 가장 대규모였던 셈이며, 역사서인 "신지(神誌)"에 "황제(簧帝)의 반란"으로 기록되어 남는다.


미개했던 황토인을 이끌고 신시배달국의 치우천황과 아홉번의 싸움 끝에 독립하게 되는 역사상 첫 한족(漢族)의 지도자가 이 황제(헌원 : 오제의 첫임금)이다. 대륙의 남과 북을 무대로 장대한 서사시와 같았던 두 영웅의 전쟁은 나중에 신시의 역사에서 상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치우천황에게 여덟번 패하여 여덟번이나 죽을 뻔 했던 황제를 도와서 아홉번째에 이기도록 해준 것이 훗날 석가세존의 대에 관세음보살이라고 불리웠던 서왕모(지장보살인 지선공주의 언니로 묘선공주라고도 불린다)였다. 왜 서왕모(西王母)가 황제를 도와 지나를 독립시켰는지, 거기에는 미래세를 내다보는 관세음보살의 숨은 배려가 있었다. 그 의미를 오늘날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다.


개천록 16 ♣ 開 天 綠 (16)♣

 

환웅이 이끄는 밝달족의 이동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었다. 모세의 출애급보다 2천년 앞서 있었던 한민족의 이동은 당시의 세계였던 동북아 전 체를 뒤흔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땅은 누구도 걸어가 본적이 없는 원시와 동물의 땅이었다. 길도 없고 지도도 없었으며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곳곳에서 살고 있던 원시종족들과 사나운 맹수들과 독충들이었다. 환웅은 수십만의 무리 속에서 날래고 용감한 삼천인을 뽑아 몸소 인솔하고 길을 개척해 나갔다. 환웅의 선발대와 가장 뒤에서 따라오는 부족간에는 오천리의 간격이 있었다. 후미의 부족들은 환웅의 소식을 몇달이나 지나서야 듣기가 일쑤였다. 이동 중에 낙오한 부족들은 따라 가기를 포기하고 더러는 그 자리에서 정착하기도 하였다. 곳곳에서 미개한 정착민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직면했다. 그들은 이동 중이거나 겨울을 나기 위하여 머무르는 밝달족의 캠프를 습격했고, 한발을 옮길 때마다 피를 흘려야 했다. 불을 숭상하던 화족(火族)의 근거지를 지나갈 때 상저(湘猪) 땅에 머물렀던 선비족은 오천명이 그들의 습격으로 몰살당하기도 했다. 화족은 밝달족의 이동 중에 가장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사나운 용사들의 종족이었다. 환웅이 이 천도역사 중의 영웅이었던 아배지에게 팔천의 군사를 주어 화족을 삼멸하라 하니 그들의 본거지인 둔성에서 마침내 화족은 떼죽음을 당하고 상강은 붉은 핏물이 되어 흘렀으므로 신시시대에 이 강을 적하(赤河) 라 불렀다고 한다(주 : 신지에 나오는 지명들이 오늘날 어디를 말하는지는 모르겠음).  밝달 족의 이동은 환웅이 천계를 떠나서 백두산에 도착 할 때까지 27년이 걸렸고, 천계를 떠난 한민족의 대부분이 신시에 도착해 합류하는 것은 수백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천계와 신시의 사이에서 태어나고 죽어갔다. 그들은 흰머리산(白頭山)을 찾아 서른세개의 큰 산을 넘고 열아홉개의 강을 건넜으며 끝없는 들판을 맨발로 걸어, 뚫을 수 없는 숲을 지나고, 넘을 수 없는 준령을 넘어 동쪽으로 동쪽으로 나아갔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그들을 달구어 광야에서 수없는 사람들이 기갈로 숨졌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줄기가 만든 홍수와 탁류 속에 휩쓸려 죽었으며, 짐승 한마리 눈에 뜨지 않는 설원에서 서로를 안고 얼어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수없이 넘기면서 한민족은 하늘이 정해준 땅을 찾아 해뜨는 곳으로 움직여 갔다.


어떤 때는 한 자리에서 수십년을 살다가 이동하기도 했고, 아예 그 땅에 누질러 살기도 했다. 밝달족의 이동은 그때까지도 신석기 시대였던 동북아에 청동기 문화를 전파하면서 세계에 새로운 문명의 여명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청동검을 휘두르며 말을 탄 기마민족의 출현은 야만의 대지를 충격으로 흔들었다. 서구열강이 잠들어 있던 동양에 침략자로 나타났을 때, 서구열강의 기술문명이 가져다 준 아시아인에게의 충격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석기문명이 정복되어 흡수되고 붕괴되어 가면서 이동하는 밝달족의 수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늘어 갔다. 오십만 정도였던 환국의 무리는 환웅이 백두산을 발견할 즈음에 장도의 미개인들을 흡수하여 이미 백만에 가까운 수로 불어나 있었고, 치우천황의 시대에는 천계로부터 신시까지 만리의 지역에 수백만의 밝달족의 흩어져 살게 되었다. 신시는 만리 강역을 그 영토로 하는 대제국의 토대를 대이동을 통해서 마련했다. 환웅은 삼천의 무리를 데리고 숲을 뚫어 길을 만들고 강에 다리를 놓으면서 뒤에 오는 부족들이 머물 자리를 만들고 다시 이동하기를 거듭했다. 마침내 환웅이 한 언덕에 올라서자 멀리 산의 머리가 흰눈에 덮인 듯 하얗게 빛나는 장엄한 산을 보게 되었다. 때는 여름이었는데 산에 눈이 있음을 괴이히 여겼으나 산에 도착해 본즉, 그것은 눈이 아니라 산의 정상 부분을 뒤덮은 웅상나무의 흰 꽃이었다.


마치 만개한 벗꽃처럼 여름이면 웅상 나무의 흰꽃이 산의 머리를 완전히 뒤덮었다.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史記) 에 중국의 옛천자가 웅상나무의 껍질을 구하러 매년 동이에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은 이 웅상나무가 멸종되어 백두산은 머리가 희지 아니해서 왜 백두산인지를 모르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신지의 예언에 후천개벽시 백두산의 검어진 머리가 다시 희어진다 했으니 기다려 볼 일이다. 환웅이 백두산에 도착해 찾아보니 과연 그 나무의 키가 백척이요 그 가지가 사방으로 백장이나 펄쳐져 그늘 아래 수백명이 앉을 만한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신단수였다.


환웅이 우물을 파게하니 땅이 갈라지면서 한 마리의 용이 나타나 황웅에게 절하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용이 나온 땅속에는 옥같이 맑은 물이 가득차 출렁거렸다. 이 우물을 용정이라 이름하여 용정 주위에 집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고 나라를 세웠다. 이 나라의 이름이 신시(神市)이다. 때가 지금으로부터 오천팔백구십사년전이었다.


개천록 17 ♣ 開 天 綠 (17)♣

 

돌이켜 보면 신고의 세월이었다. 얼마나 많은 산과, 들과 강을 넘어왔던가? 천계를 떠날 때 장년의 모습이던 환웅은 어느덧 수염과 머리가 희어져 이 세상 사람같지 않은 진인의 풍모를 보이고 있었고, 환웅과 함께 길을 열어 온 영웅들은 어느 덧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그들의 아들들이 메우고 있었다.


영산(靈山)을 눈에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눈을 감았다. 하늘백성들의 땅은 인간이 그 경계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비단자락 같은 은빛 강물이 동서로 흘러 여기가 신의 땅임을 보여주었다.


인간이 땅에 그은 경계 중 천년을 가는 것이 없는 법이나 하늘이 정해준 백성의 땅은 그 누구도 경계를 지우니 못하니 백호의 숨결 인 압록과 두만은 만년의 세월을 흐르고 있음이다. 성산(聖山)의 장엄한 모습을 눈앞에 보고 사람들은 말을 잊었으며 이윽고 서로 서로 부등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두고 온 천계가 그리워 환인을 향해 엎드려 절하니 만리 서쪽의 고향은 아마득한 구름 저편의 꿈이었다.


구름은 흘러 동서 만리를 떠돌건만 사람은 백리를 경계로 삼고 살아가는 몸이니 사람들은 애써 고향을 잊고 새로운 땅에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백두산은 동해에 뛰어든 백호의 코끝에 해당하는 자리다. 거대한 신수가 숨을 쉴 때마다 대지의 기운이 뿜어져 하늘로 솟구쳤다. 부여잡은 앞발에 힘을 줄때마다 대륙은 흔들리고 하늘이 바뀌었다.


자고로 백호의 땅을 침범한 자들의 말로를 보라. 천리 땅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었던 백만대군의 수나라는 백호를 범하고 이대를 못 이었고, 당태종이 백호의 발톱 앞에서 화살 한대로 쓰러졌으니(한쪽 눈을 잃음), 정관의 치는 허망한 꿈이 되었다.


백호의 심장에 칼을 들이댄 당고조의 이후가 어떠하드냐, 천년제국 대당이 양귀비의 눈물 속에 사라졌다. 나니와의 영화가 아침이슬로 사라지니 이 땅을 침범한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외아들이 무너지는 오사까 성에서 불타죽는 날까지 고작 30년이었음이다. 을사년에 이땅을 가졌을 때, 왜왕조의 앞날은 정해진 것이었다.


하늘의 진노는 섬나라의 하늘을 불로 덮었으며 마침내 우주 원래의 화기(火氣)가 그 땅에 죽음의 재를 뿌렸다. 이 땅에 발을 들여놓고 무사했던 것은 오로지 같은 밝닥족의 자손들 뿐이었다. 징키츠칸의 아들들이나 누르하치의 자손들이 그들이다. 그들 역시 환인과 환웅의 후손들이었으므로 백호의 땅을 괴롭히고도 수백년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몽고의 말발굽이 지나간 자리에 살아남은 왕조가 어디 있었던가? 오직 이땅에만 그들이 공주를 보내었다. 주원장의 대명(大明)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중화(中華)만리가 애신각라(愛薪覺羅)의 노예로 전락하여도 백호의 나라는 없애지 못하였다(주 : 만주족(여진족)을 이끌고 후금(後金)을 세운 여진족의 수장 누르하치는 그 성(姓)이 "애신각라(愛薪覺羅)"이다). 누르하치가 자신의 본래 성을 버리고 애신각라를 새로운 성으로 삼으면서 모든 여진족에게 공표하기를, "우리는 신라의 아들들이니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여 우리 뿌리를 잊지 않아야 하니 성을 애신각라로 하노라" 하였다. 누르하치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들의 뿌리요 어버이의 나라인 조선이 왜의 침략을 받음을 보고 군대를 보내어 돕겠다고 자청해 왔으나 명의 눈치를 본 조정이 이를 거절했고, 누르하치가 자기들을 한 핏줄의 형제로 여겨줄 것을 여러번 간청했는데도 이를 뿌리치는 우를 범하였다.


그나마 광해군 때는 명과 후금과의 사이를 잘 조정하여 현명하게 대처했으나, 인조반정 이후에 친명배금으로 외교정책을 바꾸고 명의 장수 모문룡이 평북 앞바다의 작은 섬에 주둔하는 것을 용인하면서 마침내 누르하치가 군대를 보내게 되어 정유호란이 일어났다. 전쟁은 "형제의 맹"을 가지므로서 끝났다. 그러나 후금이 명과 전쟁을 하는 동안 이 형제지맹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의 편을 들므로 훗날 병자호란을 불러오고 형제가 아닌 군신지례를 지키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왕과 전 조정 대신을 남한산성에서 포위하고 명목뿐인 군신관계가 아니라 청의 영토로 아예 복속시킬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강화를 맺고 청군이 즉각 돌아간 것은 이 땅을 정복대상으로 생각지 않은 누르하찌의 모국애(母國愛) 때문이었다. 몇년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부의가 모택동시절 재판받는 광경이 나오는데, 판사가 피고인 부의의 성을 묻자 "애신각라"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판사가 '거 참 별 희한한 성도 다 있군' 하고 중얼거린다. 우리민족이 대대로 중국의 지배를 받는 것 같았으나, 그것은 명목상의 지배였을 뿐이지만, 밝달족에 의한 중국의 지배는 확실한 정복의 형태였다. 원조와 청조가 그랬다. 우리민족이 변방의 약소국이 되어 이웃 강대국들에게 이리저리 시달리기만 하면서 살아 온 것으로 보이나 그 실은 반대로 백호의 땅을 침범한 쪽이 언제나 먼저 멸망해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예정된 하늘의 뜻이고, 역사의 힘이다. 이 하늘의 뜻을 아는 이 오늘에 몇이나 되리.


개천록 18 ♣ 開 天 綠 (완결)♣

 

환국의 천계를 떠난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것이 바로 거울처럼 맑았던 천해(天海 : 바이칼 호)의 물이었다. 신시에 옮겨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백두산 정상의 거대한 연못에서 발견하고 환성을 올렸다. 그 크기는 천분지 일 밖에 안 되었지만 그 물의 맑음과 사방의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고요한 연못은 바로 천해의 축소판이었다. 마치 하늘님이 천해의 물을 그리워 할 환국 사람들을 위해서 아주 조그맣게 만든 천해를 거기에 갔다 놓은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신시 사람들은 이 연못을 천지(天池)라 이름했다. 그리고 천해와 천지 사이의 땅을 자기들의 나라로 삼았다. 이제 눈을 다른 또 하나의 인류에게 잠깐 돌려볼 때가 되었다. 배달민족이 대륙을 횡단하는 대이동을 하고 있을 때 지구의 반대편에서 는 인류의 또 다른 적자인 숙방 사람들이 고난에 찬 여정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혁서천제께서 인류의 탄생을 가져온 대개벽의 천지공사를 마무리 하실 때에 전 지구를 강타했던 기후와 기상의 이변으로 빙하가 물러가면서 지구를 뒤덮었던 만년설이 녹아내려 지구 곳곳에 대홍수가 있었으며 해수면이 높아져서 대륙의 상당부분이 바다속으로 잠기어 들었다는 얘기는 앞에서 한 바가 있었다. 이때에 큰물 가운데 작은 땅이었던 숙방이 바다 속에 잠기었고 소수의 사람들이 큰 배를 타고 탈출할 수 있었다. 이 땅에 지혜로운 자가 있어 환난에 대비하여 큰 배를 만들고 태울 가축과 식량을 준비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이 노아이다.


노아가 숙방이 잠길 때 일가권속과 가축들을 실을 수 있는 대로 싣고 운명에 맞긴 채 바다에 떴을 때 환인 계시던 천계와 버금가는 고대 문명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끝없이 망망한 대서양의 바다에 떠있게 된 노아의 일행은 수십일의 표류 끝에 해류의 흐름을 타고 아프리카의 북서해안에 당도했다. 그들은 표류 중의 극심한 고통을 그들의 신에 의지해서 견뎌냈다. 자신들을 여호와라 이름하는 하나님이 만든 존재로 생각하고 그에게 선택받은 선민임을 굳게 믿은 노아의 후손들은 배달민족과 마찬가지로 여호와가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찾아 해뜨는 동쪽으로 머나먼 이동을 계속해 갔다. 그들이 처음 내린 곳이 지금의 모로코 해안 이다. 동으로 가고자 하는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산들이었다. 그들은 그 산들을 자신들이 살았던 나라의 이름을 따 아틀란티스 산이라 이름했다(오늘날에는 발음이 변해서 아틀라스 산맥이라 부른다). 그들은 그 산맥을 넘어가면 가나안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틀라스를 넘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배달민족이 가야했던 것처럼 전인미답의 황량한 땅이었다. 급류 굽이치는 강과 험준한 산맥들 대신에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끝없는 사막이었다.


왼쪽으로 지중해를 바라보며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 해안 도로(물론 그 당시는 도로가 없었지만)를 최초로 지나간 인류가 이들이었다. 이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북쪽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데 천년의 세월이 필요했다(주 : 고고학에서 유대민족의 발상지를 중근동으로 보고 있는데, 물론 고고학적 증거는 없는 추정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집트로 가기 위해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서인 구약의 기록에는 노아가 육지에 도착한 후에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들어가기까지 그들이 이동해 간 방향은 줄곧 동쪽이라고 되어 있다. 의심스러운 분은 바이블을 지금 펴서 읽어 보시도록...). 


그들은 계속 걷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머물러 살기도 했는데 아프리카의 북부는 큰강이 없어 농경지가 없고 땅이 황폐하여 오래 머물러 있을 만한 장소가 없었다. 강은 문명을 일으키는 첫번째 필요조건인데 강을 만나지 못한다. 이들은 그들의 고난을 여호와께 죄를 지은 탓으로 자위하고 감내하려 애썼다. 한편으로는 비옥하고 기름졌던 그들의 도시 에덴을 그리워했다. 지금 그들 앞에 놓인 황량한 사막에 비한다면 에덴은 실로 낙원이라 부를만 했다.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비원과 신이 약속한 가나안에 대한 믿음에 가득찬 이들이 지치고 절망하여 정착하기로 결심한 곳이 지금의 리비아 땅이다. 수백년의 유랑 끝에 그나마 약간의 물과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을 발견한 이들은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신에 가까이 감으로써 해결하고자 하여 거대한 탑을 세우는데, 그러나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탑을 아무리 하늘 높이 쌓아가도 하늘은 말이 없었고, 여호와는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과 물을 주 지 않았다.


절망은 분노로 바뀌고 허탈은 그들의 단결을 와해시켰다. 그들은 쌓아 올리던 바벨탑을 쓰러뜨려 파괴해 버린 후에 뿔뿔이 흩어졌다. 끝까지 여호와의 약속을 믿은 소수의 사람들이 다시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때의 이들은 인류의 적통을 물려받은 위대한 민족이기는 커녕 유랑하는 꺼러지떼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이 마침내 아프리카 북부에 하나 뿐인 큰 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강은 태양의 아들들의 것이었다. 나일강 하류에는 아몬을 섬기는 파라오들이 거대한 제국의 초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꺼러지떼들의 두목에 지나지 않았던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파라오에 바치고서야 이집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꺼러지떼가 보통 꺼러지리요, 몰락하여 유랑민이 되었다 해도 그들은 신의 아들들이었고, 그들의 영적인 수준은 파라오를 능가했던 것이니 훗날 모세가 이들을 이끌고 출애급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세계사는 이들과 배달민족이라는 두 원초 인류의 정신세계가 굴리는 공이 되어 후천세계를 향해 달려 왔다. 하회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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