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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장사 루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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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목사 설교

자주장사 루디아
행전 16:11-15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란 주제로 그동안 주기도문을 살폈습니다만 오늘부터는 다시 은사를 발견하고 사역의 기쁨을 맛본 성도들을 계속 살피려고 합니다.
교회가 제 구실을 감당하기 위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은사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공동체를 잘 섬기기 위한 특별한 능력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일꾼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목양의 은사를, 다른 이에게는 가르침의 은사를 주십니다. 중보기도의 은사, 봉사의 은사, 지도력의 은사, 전도의 은사, 손님접대의 은사 등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다양합니다. 신약 성경은 적어도 15가지, 아니면 어쩌면 21가지 이상의 은사를 언급합니다.
지난번에는 우리는 브리스가 부부의 은사를 살폈고 오늘은 개역성경을 따르면, 자주장사 루디아,개역개정성경을 따르면,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의 은사를 살펴봅시다. 오늘 우리는 루디아를 통해 그가 받은 은사가 무엇이며, 어떻게 공동체를 위해서 활용했는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하시는 메시지가 있기를 바랍니다.
루디아의 회심이 기록된 사도행전 기사는 바울의2차 전도여행에 관한 기록 가운데 나옵니다. 누가는 빌립보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2, 3차 전도여행에서 전도한 그 어떤 도시보다도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 빌립보에서 머문 기간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11-12절은 바울을 포함한 네 사람의 선교사들이 빌립보 성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한 기록이고, 13-15절은 루디아의 회심에 대한 기록입니다.
먼저 11-12절을 봅시다. 누가는 배를 타고 내린 항구를 일일이 언급하기를 즐겨했습니다. 그것은 헬라인의 민족적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그 때의 교통수단으로서 배는 아주 탁월했기 때문에, 그 때 배를 타고 다닌 것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항공기를 타고 다닌 것 이상으로 자랑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바다를 주요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던 헬라인들은 배타고 어디를 다녀왔다는 것을 내세우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누가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배를 탄 항구는 드로아이고 사모드라게를 거쳐서 이튿날 네압볼리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드로아-> 사모드라게-> 네압볼리라고 말해도 성지순례를 해 보지 않은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다녀와도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으로는 드로아를 떠나 사모드라게를 거쳐 네압볼리까지 오는데 이틀 걸렸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같은 코스를 배로 닷새 걸렸다고 20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선박들은 지금처럼 디젤엔진이 장착된 기관선이 아니고 주로 바람에 의존한 범선들이었습니다. 배의 속도는 엔진의 성능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로아를 출항한 배가 사모드라게를 거쳐250km나 되는 네압볼리에 이튿날 도착했다는 것은 굉장히 순조로운 항해를 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네압볼리는 빌립보가 끼고 있는 항구입니다. 배를 타고 서울에 오는 사람은 인천항을, 평양을 가는 사람이라면 남포항을 거치듯이 빌립보를 가는 사람이라면 네압볼리에 내려16km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누가는 빌립보를 소개하면서 두 가지 사항을 밝힙니다. 첫째는 마게도냐 지경의 첫 성이라는 것입니다. 로마가 세계의 문명사회를 통치하고 있을 때 행정구역을 나누어 다스렸습니다. 마게도냐라는 지역도 네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그 네 구역 가운데 여기 빌립보는 첫 째 가는 도시라고 내세우는 듯합니다.
실제로 마게도냐의 행정수도는 데살로니가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라고 한 것은 빌립보를 거쳐야 마게도냐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빌립보야 말로 자랑할 만한 로마의 도시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학자들은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빌립보를 내세우는 것으로 보아 아마 누가와 특별한 관련이 있는 도시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합니다.그런 근거로서, 누가는 의사였는데, 빌립보에 고대 의과대학이 있어서 많은 의사로 배출시켰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그곳이 누가의 고향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로마의 식민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식민지에 대해 우리는 별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다는 것은 그들에 의해 착취를 당했다는 것이므로 전혀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은 자랑할 만한 사실이 아닙니다. 필리핀이 화란의 식민지였고 미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 또한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식민지라고 번역된 단어는 로마의 직할시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즉,로마가 직할하는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의 역사는 바울일행이 방문하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 왕이 이곳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곽으로 둘러싼 도시를 건설하여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주전 3백년 정도의 일이므로 상당히 오래전부터 그 지역이 중요한 지역으로 역사에 부각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직할시가 된 것은 주전 42년 빌립보에서 큰 전투가 있은 후입니다. 안토니오와 옥타비안이 부르터스와 캐시우스를 무찌른 후, 그곳이 아가야와 더 가서는 로마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숙련된 군인들을 주둔시켜 로마의 직할시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10년 정도 지난 뒤 황제가 된 옥타비안(아우구스투스)이 이곳에 더 많은 고위 퇴역 군인들을 보내, 이태리내의 로마 식민지와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빌립보는 완연한 로마식의 행정, 사법권 하에 있는 도시로 변모하여 로마 직할시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로마의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왕래하고, 로마의 법률이 통용되고, 공휴일도 로마와 동일하게 지켰습니다. 다른 직할시는 주로 그리스말을 사용했으나 빌립보에서는 라틴어가 공용어로 통했습니다. 그 시민들은 채찍질을 당하지 아니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포당하지 아니했고 황제에게 호소할 권리를 가진 로마시민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바울이 1, 2차 전도여행 때 거쳤던 도시들 중에서, 비시디야 안디옥, 루스드라, 드로아도 로마의 직할시이긴 하지만 빌립보만큼 로마적인 특성이 물씬 뭉기는 곳은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그가 들렸던 도시와는 현저히 다른 분위기였고 외국에 건설된 작은 로마라고 생각해도 무방했습니다.
로마 옷을 입은 군인이 활보하고, 로마 말과 로마법이 통용되는, 로마시민권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겨지던 곳이 빌립보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에 와서 비로소 로마 문화권에 접하게 됩니다. 거기에 도착하자 그곳은 이미 다른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본래 다소성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헬라문명에 대해서는 아주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외국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빌립보에 들어가서는 다른 문화권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빌립보는 이태리에서 떨어진 곳이지만 로마 그대로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황제 글라우디오가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명령을 내렸을 때 그 황제의 명령이 즉각 시행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역사 깊은 도시에 유대인 열 가정이 없어 회당대신에 기도처에 몇몇 여자들이 모여 기도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직할시 빌립보는 로마에 과잉충성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오기까지 수일동안 기다라면서 수소문했지만 전도를 시작할 거점을 제공할 회당은 빌립보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남자 세대주가 있는 열 가정만 있으면 회당을 여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생각해 보면 정규출석이 가능한 유대인 남자 열 명도 빌립보에는 없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모임이 성내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 밖에서 모였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유대인들은 회당설립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흔히 기도처를 강가에 마련해서 모이곤 했습니다.
막연한 유대인식의 기대에서였는지, 아니면 정보를 듣고 갔는지 모르지만, 거기 도착했을 때, 여자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비공식적인 모임이었지만 사도는 거기 모인 여자를 위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도들의 이야기에 접하게 되면 저는 바울 사도에 비해 참으로 행복한 설교자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남자들을 포함해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도가 그 주일날 누리지 못했던 특권 아니겠습니까?
몇 명의 여자만 앉혀놓고 말하기 시작했으나 아주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다 들으려고 하는 한 여자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루디아입니다.
이 몇몇 여자들을 모아놓고 말씀을 전했던 그곳이 유럽의 첫 교회가 설립되고 유럽의 첫 개종자가 나온 곳입니다. 2천 년 동안 유럽 교회가 세계선교를 주도할 수 있었던 첫 시작이 그 몇몇 여자가 모인 장소에서부터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수가 적고 강가에 모였다고 해서 우습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누가는 루디아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두아디라 시에서 온 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사람이라는 뜻인데, 루디아가 살던 두아디라라는 곳은 자주 빛 물감의 특산지입니다.
둘째는, 그녀가 개역성경을 따르면, 자주장사 루디아, 개역개정성경을 따르면, 자색 옷감 장사라고 소개합니다. 패류에 속하는 물고기의 목을 따면 한 방울 나오는 액체를 모아서 그것을 자주색 염료로 사용했습니다. 옛날에는 화학염료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염료를 사용했는데 그 물고기는 두아디라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었으므로 그 지역이 자주염료의 특산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자주 색은 오늘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자주 빛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해서 큰 부자가 되든지 출세를 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자주 빛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왕복이 자주 색깔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는 Royal Purple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주 색깔은 왕이 입는 옷의 색깔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얼마나 비싼 값에 팔렸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루디아가 자주 장사, 자주 옷감 장사를 하였다니까 무슨 보따리 장사쯤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루디아는 보따리 장사가 아니라 무역을 한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자본이 든든해야 할 수 있는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자주색 상품을 모두 취급하는 전문 상인입니다. 두아디라 고향에서 자주 빛 염료를 수입해 와서 빌립보에 파는 무역상으로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안식일이 되자 이 여자는 기도처를 찾아 재빠르게 성 밖을 나가고 있습니다.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업에 능통한 여자였지만 성 밖의 기도처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업가들 중에는 사업 때문에 바빠서 예수를 못 믿는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그러나 루디아는 사업 때문에 바빠서 기도처를 못 찾아 가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사업에 바쁘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현명한 여자였습니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의 영혼이라는 것을 아는 여자입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바쁜 사업을 그만두고 기도처가 있는 강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혹 “하나님을 섬기는” 여자라고 누가가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하나님을 알던 이방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 중에 유대종교에 개종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혹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습니다.
그 말은 출신은 이방인이지만 유대종교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두아디라에서 부터 예수를 믿었는지, 아니면 이 빌립보에서 일찍이 황제의 명령이 내리기 전부터 예수를 믿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빌립보에서 믿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이 도시에 복음을 전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다른 곳에서 복음을 듣고 온 여자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마련했고 제우스나 아폴로 등을 섬기는 동료 시민들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여인이었습니다.
여느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종종걸음으로 기도처로 나간 그 안식일에는 예상치 못한 남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늘 여자 몇 사람, 그것도 루디아가 잘 아는 여인들로 이루어진 기도 모임이었는데 그 날에는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 왔습니다.
위대한 선교사 바울과 그 동역자 실라, 그리고 누가와 디모데가 드로아에서 빌립보에 도착한 첫 안식일 이었습니다. 환상가운데 마게도냐 남자를 만나 “빨리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그 요청을 받고 갔는데 남자는커녕 여자 몇 사람만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여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해 주었습니다.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게 되면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게 되고 기쁨이 넘친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죄의 용서가 십자가에 돌아간 아들,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속과 영생에 관한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에 그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귀를 기울여서 듣고 있는 여자가 바로 루디아였습니다. 열심히 듣고 있던 여자였습니다.
무역상을 해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그냥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 다른 열심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어쩌면 매사에 열심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그 안식일에 몇 명이 모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중에 열심히 듣고 있던 사람이 루디아였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은 루디아말고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냥 앉아 있는 사람과 열심히 듣고 있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이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있었지만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친밀한 부자관계에 들어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좋은 분이라는 것은 느꼈지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열려있는 여인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채워질 수 있는 그 공허를 그날 바울의 설교가 채웠습니다.
누가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듣는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듣고 있으나 듣지 않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들으며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사역입니다.
설교자는 공개적으로 말하지만 들으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영역입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하는 여러분의 책임을 면해 주지는 않습니다. 저는 열심히 전해야 하고 여러분은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마음을 여시는 분은 주님이시지만, 빗장을 벗기고 문을 여는 하나님의 손길은 우리가 들은 그 말씀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듣고 있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를 기울여 말씀을 들으십시오.
바울 역시 같은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해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과 확신 가운데 선포될 때 회심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고후 4:3-4).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역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4,5)
복음은 항상 말로 전하는 것이지만, 말로만 전하지 아니하고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너희에게 이른 것을 기억할 때에 너희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는 방법은 말로써 설명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성령으로, 그리고 확신으로 선포될 때에 빛 가운데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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