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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와 구원받는 것과의 관계 본문
침례와 구원받는 것과의 관계
2013. 10. 3. 0:57
주님의 이름을 불러 주님의 생명을 영접하는 것은 아주 영광스런 일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초기단계의 절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3장 5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느니라 여기에서 주님은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먼 성령으로 나야 할 뿐 아니라 물로도 나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물로 난다는 것은 침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침례는 능히 사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할 뿐 아니라 거듭난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사도행전 22장 16절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주님의 말씀은 침례가 우리 죄를 씻을 수 있고 우리 죄가 사함을 받아 성령을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해준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람앞에서 하나님을 대항하고 반대한 죄를 씻고 또한 죄 사함 받아 성령을 받으려면 (1)회개[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것]하고 (2)주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야 하며 (3) 삼일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아들이신 예수님,성령) 안으로 침례 받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로마서 6장 3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골로새서 2장 12절 너희가 세례(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성경의 이러한 말들은 침례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 준다. 침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수속이며,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단계이다. 우리는 침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과 그의 죽음심 안으로 들어가며 그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부활한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그러나 내적으로 믿는 마음은 외면적인 침례의 행동으로써 부합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과 그의 죽으심 안에 들어가 그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함께 부활하려면 안의 믿음을 의지해야 하고 또한 밖의 침례로 말미암아야 한다.
마가복음 16장 16절 믿고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베드로전서 3장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침례)라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며 그것으로 충분하니 침례받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믿기만 하고 침례를 받지 않으면(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지만 주민등록증을 받지 못해 모든 권리를 누릴수 없는 것과 비슷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태어났지만 옷을 입지 않고 다니는 것과 같아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됨) 주님의 구원의 한 방면과 일부분을 얻을 수 있을 뿐 구원의 각 방면과 전부를 취하지는 못한다. 또한 침례의 시기는 믿는 즉시이다.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로 약간의 시간의 차이가 있을수 있지만 말씀에 근거해서 가장 합당한 침례의 시기는 믿는 즉시 침례를 받는 것이다.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침례를 받을 것이요"가 아니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고 성경은 말한다. 주님의 구원의 각 방면에 참여하고 구원의 전부를 얻으려면 반드시 [믿고 침례를 받아야 한다].
[출처] 침례와 구원받는 것과의 관계|작성자 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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