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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29절) 육이 영을 위해 본문
도 마 복 음
The Gospel of Thomas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Patterson and Robinson Translation
29. 육이 영을 위해
영육 관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육이 영을 위해 생겨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영이 몸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큰 부요함이 어떻게 이와 같은 궁핍 속에서 나타났는지 놀라워할 따름입니다.”
Jesus said, "If the flesh came into being because of spirit, it is a wonder. But if spirit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body, it is a wonder of wonders. Indeed, I am amazed at how this great wealth has made its home in this poverty."
29a. Jesus said: If flesh (sarx) came into being because of spirit it is wonderful. If spirit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body it is exceedingly wonderful.
29b. I am amazed that this great wealth has appeared in this poverty.
Jesus says:
(1) "If the flesh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spirit, it is a wonder.
(2) But if the spirit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body, it is a wonder of wonders.
(3) Yet I marvel at how this great wealth has taken up residence in this poverty."
고대에는 육sarx이 영pneuma 때문에 생긴 것이라 믿었다. 영이 먼저 있고 그로 인해 육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에서 물질세계가 흘러나오거나 창조된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물질 세상이 ‘유출流出’의 결과든 ‘창조創造’의 결과든 이렇게 존재한다는 자체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왜 공허만이 아니라 존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인가?Why are there beings at all, rather than nothing?" 하는 질문을 계속했다. 이른바 ‘존재의 신비mystery of being' 혹은 ‘존재의 충격shock of being'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1724~1804)는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을 경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워주는 두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 위에 별들이 총총한 하늘이 있고 내 속에 도덕률이 있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현상세계’ 자체만으로도 경탄과 경외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이 절에서는 “영이 몸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요,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본문에서는 ‘육sarx’과 ‘몸soma'을 구분하고 있다. 그 당시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영soulㆍ육flesh 간의 관계에서 육flesh은 영혼soul이 극복할 대상이었다. 이렇게 인간의 영혼이 육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바로 하느님의 영spirit이 우리 ‘몸soma’속에 내재하여 우리를 도와주는데, 우리 몸속에서 발견되는 이런 성령의 내재야말로 신비스럽고도 놀라운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우리 인간이 이런 현상세계를 통해서 그것을 초월하는 신적 존재를 감지하고 신비스럽게 여기거나 충격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결국 물질세계로 인해 그 전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초월의 세계,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셈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물질세계는 그것을 초월하는 세계를 일러주는 표지sign, code나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말과 같다. 좀 어려운 말을 쓰면, 궁극 실재인 비존재non being가 현상세계의 존재being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지만, 그 존재는 우리에게 비존재의 실재를 체험하도록 인도해주는 ‘암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이 구절은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빚으시고 “생기rauch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2:7)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몸이 먼저 있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이 생령으로 나타난 것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이것도 몸 안에 있는 하느님의 영의 존재를 더욱 기이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신의 현존에 대한 경이를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 “나는 이 큰 부요함이 어떻게 이와 같은 궁핍 속에서 나타났는지 놀라워할 따름입니다.”라고 한 것은 영적 세계라는 그 ‘큰 부요함’이 일반적으로 ‘궁핍’한 것으로 여겨지는 물질세계에 속한 내 몸에 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재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영의 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랍고 신기하다는 말로 새겨도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좁혀서 생각한다면, 인간 안에 있는 신의 임재야말로 신비 중의 신비라는 말이라 볼 수 있다.
[출처] 도마복음 제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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