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97절) 곡식이 가득한 항아리 본문
97. 곡식이 가득한 항아리
비움의 미학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곡식이 가득한 항아리를 이고 가는 여인과 같습니다. 먼 길을 가는 동안 항아리 손잡이가 깨어져 곡식이 흘러 내렸으나, 그 여인은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여인이 집에 이르러 항아리를 내려놓자 그 안이 비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Jesus said, "The kingdom of the father is like a certain woman who was carrying a jar full of meal. While she was walking on the road, still some distance from home, the handle of the jar broke and the meal emptied out behind her on the road. She did not realize it; she had noticed no accident. When she reached her house, she set the jar down and found it empty."
Jesus said: The kingdom of the father is like a woman who was carrying a jar full of grain. As she walked along a handle of her jar broke off and grain trickled out but she didn't notice. When she arrived in her house she put the jar down and found it empty.
Jesus says:
(1) "The kingdom of the [Father] is like a woman who is carrying a [jar] filled with flour.
(2) While she was walking on [the] way, very distant (from home),
the handle of the jar broke (and) the flour leaked out [on] the path.
(3) (But) she did not know (it); she had not noticed a problem.
(4) When she reached her house, she put the jar down on the floor (and) found it empty."
『도마복음』에만 나오는 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하버드 대학교의 신학부 교수인 하비 콕스Harvey Cox는 예수님의 비유들이 기본적으로 선禪의 공안公案이나 화두話頭와 같은 성격을 띤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다면 이 비유야말로 여러 비유들 중 그와 같은 성격을 가장 많이 띤 것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사신 다음 혼자 계실 때 제자들이 그 비유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막4:11-12)라고 하셨다. 비유는 결국 외부 사람들이 못 알아듣게 하기 위한 암호와 같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위의 비유가 그런 암호인가?
그래도 나름대로 한 가지 의미를 찾아낼 수는 있다. 하느님의 나라, 곧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우리의 이기적 자아를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비우는 일이다. 그러다가 항아리가 다 비워질 때 집에 이르게 되고, 집에서 그 항아리를 완전히 내려놓을 때 우리는 그 항아리의 비워진 상태를 보고 놀라게 된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예수님을 두고 “자기를 비워”(빌2:7)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 비유도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러나 “손잡이가 깨어져”하는 부정적인 말에 따라 앞의 풀이는 정반대로 읽을 수도 있다. 깨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 속에 있던 훌륭한 것, 예를 들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 같은 것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우리도 모르게 다 잃어버리고, 인생의 길을 끝낼 무렵에 가서야 그것을 깨닫고 후회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렇게 읽든 저렇게 읽든 아버지의 나라, 곧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일에 힘쓰라는 말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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