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77절])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 본문
77.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
우주적 자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입니다. 내가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통나무를 쪼개십시오.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돌을 드십시오. 거기서 나를 볼 것입니다.
Jesus said, "It is I who am the light which is above them all. It is I who am the all. From me did the all come forth, and unto me did the all extend. Split a piece of wood, and I am there. Lift up the stone, and you will find me there."
77a. Jesus said: I am the light above everything. I am everything. Everything came forth from me and
everything reached me.
77b. Split wood, I am there. Lift up a rock, you will find me there.
Jesus says:
(1) "I am the light that is over all. I am the All.
The All came forth out of me. And to me the All has come."
(2) "Split a piece of wood – I am there.
(3) Lift the stone, and you will find me there."
앞에서 진정 종교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라고 한 몇 절의 결론인 셈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나’는 빛이고, 또 그 ‘나’가 모든 것의 근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나’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3)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 절에서 세 가지 정도를 검토할 수 있다. 우선 생각해볼 것은 ‘나는 빛’이라고 했을 때 여기서 말하는 ‘나’가 무엇일까 하는 문제이다. 도마복음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나’는 한 개인으로서의 역사적 예수님 한 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이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요8:58) 있었던 그 ‘우주적 나Cosmic I’, 곧 모든 사람들 속에 내재한 신성, 하느님, 참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앞의 제4절에서 본 것처럼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이 제사를 지낼 때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을 향한 제사임을 강조한 향아설위向我設位의 개념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 한울님을 모신 내가 곧 한울님이니, 제사를 지내도 그것이 곧 자신에 대한 제사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도 부처님이 어머니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나자마자 큰 소리로 “하늘 위와 아래에 나밖에 존귀한 것이 없다天上天下唯我獨尊.”라고 했다. 이때의 ‘나[我]’도 한 개인으로서의 아기 부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속에 있는 ‘초개인적 자아transpersonal self’, ‘참된 자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불교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이런 신적 요소를 ‘불성佛性’이라 부른다. 이것이 천상천하에서 가장 존귀하기에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 의미를 가질 뿐이라는 뜻이다.
사실 『요한복음』 서두에서도 예수님을 빛이라 선언한다. 여기서는 예수님만 빛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고 『요한복음』 전체를 차근히 읽어보면 그것이 반드시 예수님만 빛이라 단언한 것으로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좀 모호할 수 있는 『요한복음』과는 달리, 『도마복음』은 우리 모두가 빛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모두가 빛임을 분명히 밝힌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빛’이라는 것이 상징하는 종교적 의미이다. 종교사를 통해 볼 때 많은 종교 전통들은 우리 속에 있는 ‘내면의 빛’을 강조한다. 우리 속에 있는 신적 요소, 신성, 참나, 참생명은 바로 ‘빛’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상적이고 인습적인 의식에서 벗어나 변화되고 고양된 순수 의식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그 ‘빛’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 보면 우리 속에 있는 브라만[梵] 혹은 참나[我]를 두고, “그대 홀로-그대만 영원하고 찬연한 빛이시나이다.”라고 하였다. 불교인들이 염불을 통해 체현하려고 염원하는 ‘아미타’불도 ‘무한한 빛’, ‘무량광無量光’의 부처님이다.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 전통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13세기 문헌 『조하르Zohar』도 문자적으로 빛을 의미하고, 그 문헌에서 언급되는 절대자 아인소프En-Sof도 분화 이전의 무극無極 상태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빛’으로, 그 빛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는 열 가지 빛이 흘러나온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교 동방정교 전통세서도 ‘신의 영광’이란 빛이신 신의 특성을 이야기한다고 보고, 이런 빛을 보는 사람이 신과 합일의 경지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퀘이커 교도들도 침묵의 예배를 통해 ‘내적 빛’을 체험하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신비주의 전통에서 ‘빛’은 때 묻지 않은 순수 의식을 통해 발견 할 수 있는 우리의 내면세계의 찬연함을 말해주는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주목할 것은 이 절이 말하고 있는 ‘범재신론汎在神論적 신관’이다. 본문에 ‘나’혹은‘신성神性’이 ‘통나무’에서도, ‘돌’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했다. 도가 문헌 『장자』에 보면, 누가 장자에게 “이른바 도道라고 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장자가 “없는 데가 없다.”라고 하자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한다. 결국 땅강아지나 개미에도, 기장이나 피에도, 기와나 벽돌에도, 심지어 대변이나 소변에도 있다고 하며 이른바 도의 ‘주편함周遍咸’적 특성, 도의 편재성遍在性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함께 강조해야 할 것은 도가 만물 안에 있을 뿐 아니라 만물이 도 안에 있다는 변증법적 관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나 신의 내재와 초월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을 ‘범재신론汎在神論, panentheism’이라 하여, 일방적으로 도의 내재만을 강조하는 범신론汎神論, pantheism과 구별한다. 많은 세계 신비주의 전통은 만물이 그대로 신이라는 범신론적 주장보다는, 만물과 신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는 역설의 신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 이 절도 “내가 모든 것”이라고 한 것을 보면 나와 만물을 하나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만물이 “나로부터 나왔고 또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할 때 이것은 동시에 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성수행 비전 > 도마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79절) 당신을 낳은 자궁이 (0) | 2019.01.02 |
---|---|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78절) 무엇을 보러 광야에 (0) | 2019.01.02 |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제76절 다 팔아 진주 하나를 (0) | 2019.01.02 |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75 절): 홀로된 자만이 신부의 방에 들어가리라! (0) | 2019.01.02 |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74 절): 바른 스승을 찾으라 (0) | 2019.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