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도마복음 38 절 도마복음(38 절): 예수의 비밀가르침! 본문
도마복음 38 절 도마복음(38 절): 예수의 비밀가르침!
Jesus said, "Many times have you desired to hear these words which I am saying to you, and you have no one else to hear them from. There will be days when you will look for me and will not find me."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그대들은 여러 차례 내가 그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런 말들을 듣고 싶어 하였도다. 이런 가르침을 그대들에게 전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도다. 그대들이 나를 찾는 날이 있겠지만 나를 찾지는 못할 것이니라. “
해석
예수는 자신이 전해주는 지식의 귀함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 어록은 훌륭하고 도덕적 지침을 주나 여기서는 그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런 말은 예수 말고도 인품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상식적인 말이다. 하늘나라 이야기, 도덕적 훈계가 예수를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 위대한 가르침은 아니다.
예수의 참 가르침은 숨겨져 있다. 예수는 죽은 자를 살려내고 물위를 걷고, 물고기나 빵과 같은 물질 창조를 하였고 부활까지 하였다. 이런 기적때문에 예수를 높게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예수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고 있다. 이런 기적 뒤에 존재하는 우주법칙이 그것이다. 왜 이런 기적이 가능하였는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가 하느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라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수의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우주법칙의 작동 법을 알면 누구나 자신처럼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통하여 구원이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법칙을 통하여 구원(무지탈출, 깨달음)을 얻기를 바랐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이 딱 맞다.
법칙의 결과만 나와 있을 뿐 그 법칙이나 원리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적 설명은 있지만 구체적 설명이나 가는 방법 즉 수단은 없다. 믿음도 알아야 믿는 법이다. 동양 종교에 비하여 기독교는 수련법이 거의 없다. 그냥 하늘나라만 믿으면 가는 것이 아니다. 강 건너에 목적지가 있으면 그 강을 건너야한다. 그런데 그 강을 건너는 일이 믿음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가 필요하고 배를 젓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웃을 자신의 영혼처럼 사랑하라 했는데 성경을 믿고 예수를 따른다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게 되던가? 그렇게 못하니까 문제인 것이다. 성경만 읽는다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게 되지는 않는다. 행동이 따르려면 물질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정화해야 한다. 그 방법 즉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지긋지긋하게 버리기 힘든 물질 욕망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 방법이 없다보니 말만 하늘나라를 내세우지 마음은 지옥에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예수는 “이 위선자들아!”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다.
예수의 이런 핵심 가르침은 성경에 나오지 않으며 예수는 그런 가르침을 준비된 제자들에게만 전하였다. 이름 하여 카발라라는 비밀가르침이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전수한 가르침은 이러하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마태복음 13:17)"
예수의 가르침은 예언자도 듣기를 원하였을 만큼 누구도 줄 수 없는 귀한 우주의 신비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는 도덕적 지침이 대부분이며 깊은 내용은 상징으로 숨겨져 있고 대부분은 성경에서 사라져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출처] 도마복음 38 절 도마복음(38 절): 예수의 비밀가르침! |작성자 우타
38. 나를 찾아도 나를 볼 수 없는 날이
천재일우千載一遇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하고 있는 이런 말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서도 이런 말을 들어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나를 찾아도 나를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Jesus said, "Many times have you desired to hear these words which I am saying to you, and you have no one else to hear them from. There will be days when you will look for me and will not find me."
Jesus said: You often wanted to hear the words I am speaking to you. You have no one else from whom you can hear them. The days will come when you will seek me and you will not be able to find me.
Jesus says:
(1) "Many times have you desired to hear these words,
these that I am speaking to you, and you have no one else from whom to hear them.
(2) There will be days when you will seek me (and) you will not find me."
이 절의 내용은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Osiris나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 페르시아의 신 미트라스Mithras, 시리아의 신 아도니스Adonis처럼 하늘에서 왔다가 이 땅에서 사명을 다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는, 그 당시 보편적이던 신화론적 신인神人, godman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나는 잠시 동안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께로 간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 너희가 올 수도 없을 것이다.”(요7:33-34) 이렇게 잠시 동안이나마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은 인간들이 그렇게도 오랫동안 갈망했지만 들어보지 못했던 그런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예사 말씀이 아니니, 찾아도 볼 수 없는 날이 이르기 전에 이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 말씀을 잘 들어 깨달으라는 뜻이다.
공관복음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뵐 수 있는 것은 우리 앞의 어느 누구도 누리지 못했던 큰 특권이라고 하면서,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많은 예언자와 의인들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 싶어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마13:16-17, 눅10:23-24)라고 하고 있다.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직접 보고 들을 수는 없지만 영의 눈과 영의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도 인간이 진리를 필요로 할 때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원전 6세기 인도에서 난 석가모니 부처님도 사실 우리 인간들을 위해 이렇게 이 땅에 나타난 여러 부처님 중 한 분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전에도 여러 부처님이 있었고, 또 앞으로 미륵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믿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난 이후 아직 아무 부처님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만 보아도 부처님이 나타나는 시간적 간격이 무척 긴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교인들은 부처님이 우리 인간들을 위해 나타나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의 진리를 귀담아들으며 깨침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힌두교에서도 ‘아바타르’라고 하여 신이 적절한 때에 적절한 형태로 이 세상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가르친다. 『장자』에서도 성인들이 나타나 우리를 일깨우는 일이 너무나도 오랜만이기에, 성인이 나타나고 그 다음 성인이 나타날 때까지의 시간에 비하면 웬만한 기간은 그저 잠깐에 해당될 정도라고 하면, 성인의 출현이 드문 것이니 성인이 나타났을 때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큰 특권으로 여기라 하고 있다. 플라톤도 자신이 가진 세 가지 행운 중 하나가 바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그에게 배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예수님이나 기타 성현들처럼 위대한 스승을 직접 뵙고 그들의 가르침을 듣는 것도 무한한 특권이지만,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우리처럼 그들이 남겨놓은 가르침을 간접적으로 얻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직접 들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 당시 그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깨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마음의 문을 열고 가르침을 배울 준비를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려는 생리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그리스 사람들은 타우마젠thaumazen이라 했다. 뭔가 경이롭게 생각하고 호기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지혜를 사랑함’이 바로 ‘philo+sophia'이다. 이런 열린 마음이 있을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준비만 되었으면, 제23절 풀이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오늘 우리 같은 정보화 시대에, 위대한 스승을, 그 스승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을 통해, 책을 통해, 다른 매체를 통해, 언제나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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