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도마복음(28~29 절): 육체에 영혼이 거주함은 경이로운 일이로다! 본문
도마복음(28~29 절): 육체에 영혼이 거주함은 경이로운 일이로다!
도마복음 28 절
Jesus said, "I took my place in the midst of the world, and I appeared to them in flesh. I found all of them intoxicated; I found none of them thirsty. And my soul became afflicted for the sons of men, because they are blind in their hearts and do not have sight; for empty they came into the world, and empty too they seek to leave the world. But for the moment they are intoxicated. When they shake off their wine, then they will repent."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세상 한가운데 와서 육체로 사람들에게 나타났노라. 나는 사람들 모두가 취했음을 알았고 그들 어느 누구도 목말라 하지 않았노라. 내 영혼은 사람들의 아들들 때문에 마음 아팠노라. 그들은 마음의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고 빈손으로 세상에 와서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려하기에 그랬노라. 그러나 지금 당장은 취해 있겠으나 그들이 자신들의 포도주를 던져버릴 때 비로소 그들은 (잘못을) 회개할 것이니라.
해석
예수는 육체로 윤회할 필요가 없는 위대한 혼이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고자 예수는 자유로운 혼에게는 무덤에 해당하는 육체를 입고 다시 사람들 사이에 나타났음을 첫 문장에서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물질 욕망에 빠져 누구도 진리를 갈구하지 않았다. 예수는 물질 욕망에 눈이 멀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줄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을 보고는 마음이 아팠다.
깨닫지 못하여 그 빈곤함을 채우고자(영적성장) 이 세상에 보내졌으나(윤회) 물질 욕망에 사로잡혀 진리와 지혜를 얻지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려하는 사람들을 보니 예수의 마음이 답답하고 아픈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물질에 취해 있으나 진리를 배워 이 물질 욕망을 던져버릴 때 비로소 자신들이 잘못 살아왔음을 알고 회개 할 것이라 뜻이다.
도마복음 29 절
Jesus said, "If the flesh came into being because of spirit, it is a wonder. But if spirit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body, it is a wonder of wonders. Indeed, I am amazed at how this great wealth has made its home in this poverty."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영혼 때문에 육체가 생겨났다면 이것은 경이로운 일이로다. 그러나 육체 때문에 영혼이 생겨났다면 이것은 경이 중의 경이로다. 이 위대한 부가 이처럼 가난 속에 자신의 거소를 만들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도다.
해석
영혼과 육체는 서로 대비된다. 전자는 무한하고 불사이며 후자는 유한하고 한시적이다. 영혼은 육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으나 물질계에서는 영혼의 현현 수단으로 육체가 필요하다. 신성한 영혼을 담기 위하여 조잡한 육체가 생겨났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귀한 보석을 허름한 종이에 보관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육체 때문에 영혼이 생겨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영혼은 불사(不死)이나 육체(肉體)는 사라질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육체 때문에 영혼이 생겨났다면 이것은 경이 중의 경이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음을 반어적으로 말하고 있다.
위대한 부는 영혼을 말하고 가난은 육체를 의미한다. 자신의 신성을 알고 있는 예수 입장에서 보면 찬란히 빛나는 영혼이 조잡한 육체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무지 속에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사라질 육체에 탐닉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출처] 도마복음(28~29 절): 육체에 영혼이 거주함은 경이로운 일이로다! |작성자 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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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마 복 음
The Gospel of Thomas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Patterson and Robinson Translation
29. 육이 영을 위해
영육 관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육이 영을 위해 생겨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영이 몸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큰 부요함이 어떻게 이와 같은 궁핍 속에서 나타났는지 놀라워할 따름입니다.”
Jesus said, "If the flesh came into being because of spirit, it is a wonder. But if spirit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body, it is a wonder of wonders. Indeed, I am amazed at how this great wealth has made its home in this poverty."
29a. Jesus said: If flesh (sarx) came into being because of spirit it is wonderful. If spirit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body it is exceedingly wonderful.
29b. I am amazed that this great wealth has appeared in this poverty.
Jesus says:
(1) "If the flesh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spirit, it is a wonder.
(2) But if the spirit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body, it is a wonder of wonders.
(3) Yet I marvel at how this great wealth has taken up residence in this poverty."
고대에는 육sarx이 영pneuma 때문에 생긴 것이라 믿었다. 영이 먼저 있고 그로 인해 육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에서 물질세계가 흘러나오거나 창조된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물질 세상이 ‘유출流出’의 결과든 ‘창조創造’의 결과든 이렇게 존재한다는 자체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왜 공허만이 아니라 존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인가?Why are there beings at all, rather than nothing?" 하는 질문을 계속했다. 이른바 ‘존재의 신비mystery of being' 혹은 ‘존재의 충격shock of being'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1724~1804)는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을 경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워주는 두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 위에 별들이 총총한 하늘이 있고 내 속에 도덕률이 있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현상세계’ 자체만으로도 경탄과 경외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이 절에서는 “영이 몸을 위해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요,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했다. 무슨 뜻일까?” 본문에서는 ‘육sarx’과 ‘몸soma'을 구분하고 있다. 그 당시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영soulㆍ육flesh 간의 관계에서 육flesh은 영혼soul이 극복할 대상이었다. 이렇게 인간의 영혼이 육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바로 하느님의 영spirit이 우리 ‘몸soma’속에 내재하여 우리를 도와주는데, 우리 몸속에서 발견되는 이런 성령의 내재야말로 신비스럽고도 놀라운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우리 인간이 이런 현상세계를 통해서 그것을 초월하는 신적 존재를 감지하고 신비스럽게 여기거나 충격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결국 물질세계로 인해 그 전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초월의 세계,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셈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물질세계는 그것을 초월하는 세계를 일러주는 표지sign, code나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말과 같다. 좀 어려운 말을 쓰면, 궁극 실재인 비존재non being가 현상세계의 존재being를 가능하게 하는 근원이지만, 그 존재는 우리에게 비존재의 실재를 체험하도록 인도해주는 ‘암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이 구절은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빚으시고 “생기rauch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창2:7)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몸이 먼저 있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이 생령으로 나타난 것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이것도 몸 안에 있는 하느님의 영의 존재를 더욱 기이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신의 현존에 대한 경이를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 “나는 이 큰 부요함이 어떻게 이와 같은 궁핍 속에서 나타났는지 놀라워할 따름입니다.”라고 한 것은 영적 세계라는 그 ‘큰 부요함’이 일반적으로 ‘궁핍’한 것으로 여겨지는 물질세계에 속한 내 몸에 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재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영의 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랍고 신기하다는 말로 새겨도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좁혀서 생각한다면, 인간 안에 있는 신의 임재야말로 신비 중의 신비라는 말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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