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27 】예수를 따르려는 세 사람 본문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 Q27 】예수를 따르려는 세 사람
章 | 말 씀 |
Q 27 | 예수의 일행이 길을 가고 있을 때에, 어떤 이가 여짜오되, "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둥지가 있으되, 인자(人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 하시니라. 또 다른 사람에게, " 나를 좇으라. " 하시니, 그가 가로되, "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 예수께서 가라사대, "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라. " 하시니라.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 예수께서 이르시되, "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 하시니라. |
마태 8 |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
누가 9 |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매우 강렬한 에피소드이다. 예수의 제자됨에 관한 조건(on becoming a follower of Jesus)이 간결하고 명료하게 서술되고 있다. 첫 케이스에서도 " 인자 " (人子)는 그 평범한 의미맥락이 명료해진다. 이 이야기는 도마복음서 제86장에도 그대로 채록되어 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는데, 즉 그러한 동물도 몸 둘 곳이 있는데, 정작 사람인 나에게는 정착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여기의 " 인자 " (人子)는 종말론적이거나 특별한 의미규정이 없는 문자 그대로의 " 사람의 아들 " 임을 맥락적으로 시인한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의 삶의 " 방랑자적 성격 " 이다. 예수의 천국선포는 어떤 영토를 주장하여 뜻에 맞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착하고자 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신앙촌이나 쿰란을 만들어 상부상조하면서 살자는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 생각의 전환 " 이며, 무형의 정신적 운동이며, 소유와 집착을 거부하는 방랑의 카리스마의 낙관적 개혁이었다. 로마제국이나 여타의 모든 정치적 행위가 " 영토적 욕심 " 에 집착하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하면 예수의 운동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두 번째 케이스에서 부친의 장례를 지낸다고 하는 것은 모든 공적인 행동에 앞서는 효(孝)의 의무이며 종교적 의무이기도 했다. 보통 죽은 시체를 만지지 않아야 하는 사제들도 한식구인 부모와 아들과 딸과 형제의 시체, 그리고 시집가지 않은 친누이의 시체는 만지는 것이 허락되었다(레 21:1~3).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예수의 입장은 단호하다: " 죽은 자들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케 하라. " 이 말의 해석이 매우 어렵다고 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명료하다.
" 죽은 자로 하여금 " 의 " 죽은 자 " 는 실제로 죽은 자가 아니라, "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 " " 예수를 따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안된 사람들 " 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자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문제일 뿐이다. 하나님 나라, 천국을 " 죽은 자들의 천당 " 으로만 생각하는, 기껏해야 바울이 말하는 추상적 부활의 은총으로만 생각하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예수 자신의 말씀이다. 음산한 " 죽음의 제식 " 이 발랄한 " 삶의 천국 " 보다 앞서야 하는 사람들은 결단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당대의 복음선포의 긴박성이 매우 리얼하게 표현되고 있다.
세 번째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열왕기상 19:19~21에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나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 때도 엘리사가 먼저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바로 예수는 이러한 상식적 유대인 관행조차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 손에 쟁기 쥐고 뒤돌아본다 " 는 표현은 궁극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을 혼동하는 사태에 관한 관용구적 표현일 것이다. 과거의 삶의 안락에 집착하는 자는 천국을 맞이할 수 없다. 갈릴리지역의 밭은 돌이 많고 척박하다. 또 쟁기는 두마리의 황소(겨릿소) 사이로 밭고랑을 통과하는데, 한 손(보통 왼손)으로 쟁기를 누르고 한 손으로 2m 길이의 채찍으로 다루기 어려운 황소를 휘몬다. 이 밭갈이 방법은 숙련과 집중을 요한다. 쟁기질 하는 사람이 한눈을 팔면 새로나는 고랑은 비뚤어진다. 예수운동에 가담하려는 자들은 이와같이 단호하게 과거를 잇는 교량들을 모두 끊고 오직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만을 주시해야 한다. 쟁기 뒤로 가는 것은 잊고 쟁기 앞으로 전개되는 고랑만을 응시해야하는 것과 같다.(예레미아스,『 예수의 비유』, p . 189).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천국은 장소(topos) 개념이 아니며, 따라서 " 천당 " 이 아니다. 천당(天堂)이라는 말은 기독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서에 한 구절도 없다. 그것은 통속화된 불교신화의 한어적(漢語的) 표현일 뿐이다. 천당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천시하는 민간신앙의 경배자들일 뿐이다. 따라서 천국의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사태는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의 사건이다. 미뤄놓고 다음에 처리해야 할 어떤 실체가 아닌 것이다. 지금 여기, 예수의 제자가 되라!
전체적으로 이 장의 대화들도 유모어 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 천국이 선포되고 있는 마당에 아버지 장사를 치러야 한다든가 가족에게 작별인사 해야 한다든가 하는 상황설정이 일종의 개그인 것이다. 종교란 본시 코믹한 것이다. 권위주의란 진리를 상실한 자신없는 중생들의 도피처일 뿐이다.
다음 장부터는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당부하는, 천국의 도래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의 삶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The Mission Speech)가 이어진다. 그것은 예수운동에 관한 지침(Instructions for the jesus Movement)이기도 하다.
출처: 큐복음서 도올 김용옥 / 통나무
'영성수행 비전 > 큐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29 】예수운동 지침, 무소유의 당부 (0) | 2018.12.09 |
---|---|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28 】추수할 일꾼이 모자란다, 늑대 속의 양 (0) | 2018.12.09 |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26 】장터의 아이들, 미친놈과 술주정뱅이 (0) | 2018.12.09 |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25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의 높은 평가 (0) | 2018.12.09 |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24 】세례요한의 탐문 (0) | 2018.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