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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 4 】물의 세례와 불의 세례 본문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 Q 4 】물의 세례와 불의 세례
章 | 말 씀 |
Q 4 | 세례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이제 곧 오시나니, 나는 그 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 분은 성령(聖靈)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 분의 손에는 이미 쇠스랑이 들려져 있으니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리리라.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
마태 3 |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누가 3 |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던 터였으므로 요한을 보고 모두들 속으로 그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 (눅 3:15)라는 구절은 Q에 없다. Q자료를 기독론적으로 변화시키는 후대 교회의 내러티브 삽입방식의 한 유형을 볼 수 있다.
요한과 예수의 관계에 관해서는, 나의 저술『 요한복음강해』(서울: 통나무, 2007), 112~141쪽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참고하였으면 한다. 이 장의 상단은 마가복음 1:7~8에도 나오고 있다.
Q의 유기적 완정성(完整性)을 인정한다면 세례요한과 예수의 관계설정의 설화들은 상당히 초기의 전승임을 알 수 있다. 세례요한은 역사적 실존성이 어느 누구보다도 확실한 인물이었으므로 세례요한과 예수의 관계는 매우 일찍 구전으로 성립했을 것이다.
그러나 " 물 " 과 " 불 " 의 대비, 동양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화상극(水火相克)의 이 대비는 아주 초기의 전승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나치게 헬레니즘적인 철학개념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물세례와 불세례의 대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물론 " 세례요한의 격하 " 이다. 이 격하현상을 볼트만은 초기기독교공동체 내의 예수교회와 세례요한교회 사이의 치열한 경쟁의 결과이며 이 경쟁의 언어들이 헬레니즘적 맥락으로 둔갑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공관복음서전승사』pp. 210~211), 이렇게 본다면 이 파편의 저성(著成) 연대는 상당히 후대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례요한파를 예수파의 입장에서 격하시킨 설화양식이 이미 예수 사후에 곧바로 성립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사실은 Q의 가장 오리지날한 범위 속에서 세례요한과의 교섭설화들이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신들메 " 는 희랍 · 로마시대에 흔히 신발로 사용된 샌달(νποδημα)의 끈을 가리킨다. 샌달은 지체가 높은 사람들만 신었는데, 이들은 집안에서는 맨발로 살았다. 외출할 때 문깐에 반드시 샌달을 신겨주는 노예가 있었다. 샌달은 가죽창에 고리가 달려있어 그 고리에 끈을 걸어 발을 감아 발목까지 감싼다. 이 샌달끈 즉 신들메를 잘 묶어주는 노예가 있어야 하루종일 가뿐하게 견딜 수 있다. 집에 돌아오면 노예가 신들메를 다시 풀어주어 흙탕이 된 발을 물로 씻어준다. " 나는 그 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 라는 표현은 세레요한이 예수집 문깐의 노예가 될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극단적인 자기비하의 발언이다. 예수추종자들측에서 기술된 언어라 해도 좀 과도한 표현이다.
개역판의 해석은 "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打作)마당을 정(淨)하게 하사 " 로 되어 있으나 우리말의 " 키 " 는 한문의 그 기(其 → 箕)자에서 온 말인데, 기(其)라는 글자 자체가 키의 상형이다. 그러니까 키는 우리 동아시아에서는 시대가 은(殷)나라에까지 소급되는 매우 오래된 기물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지역에서는 우리식 키를 쓰지 않는다. 여기 " 프튀온 " (πτυον)은 키가 아니라 " 쇠스랑, " " 갈쿠리, " " 삼지창 " (pitchfork)이다. 그것으로 타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작한 알곡더미(αλων)를 쇠스랑으로 공중에 던져 바람에 날려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서는 성서시대 사람들의 일상적 실생활을 정확히 알아야만 그 뜻이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
출처: 큐복음서 도올 김용옥 /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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