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쇼 변형 타로 - 지혜 본문
오쇼 변형 타로 - 지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것은 우리의 타고난 권리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어
그들의 타고난 권리조차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런 것들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결코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결코 자기 자신의 집에서 찾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내면의 존재부터 찾기 시작할 것이다.
먼저 그것을 탐험할 것이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찾을 수 있겠는가?
세상은 너무나 광대하다.
그런데 내면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즉시, 곧바로 그것을 찾는다.
그것은 점진적인 향상의 문제가 아니다.
갑작스러운 현상이며,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다.
나는 위대한 여성 수피 현자였던
라비아 알 아다위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도로에 앉아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늙어서 눈이 침침했던 그녀는 시력이 몹시 약했다.
그래서 이웃들이 그녀를 도우려고 다가갔다.
그들이 물었다.
"무엇을 그렇게 찾고 있나요?"
라비아가 대답했다.
"관계없는 질문이군요. 나는 찾고 있어요.
나를 도울 수 있다면 도와 주세요."
그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라비아, 제정신인가요? 우리의 질문이 관계없는 질문이라니요.
당신이 뭘 찾고 있는지를 모르면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어요?"
라비아는 말했다.
"좋아요. 당신들이 그렇게 궁금하다면 얘기해주죠.
나는 바늘을 찾고 있어요. 바늘을 잃어버렸어요."
그들은 돕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로는 너무 넓고 바늘은 너무 작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말했다.
"바늘을 어디서 엃어버렸는지 정확한 장소를 말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찾기가 힘들어요.
도로가 너무 넓어서 끝없이 찾아야 할 거에요.
대체 바늘을 어디서 잃어버렸나요?"
라비아가 말했다.
"또다시 관계없는 질문을 하는군요.
그 질문이 내가 찾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들은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은 분명히 미쳤군요!"
라비아는 말했다.
"좋아요. 당신들이 정말 궁금하다면 얘기해주죠.
나는 내 집에서 바늘을 잃어버렸어요."
그들이 물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여기서 바늘을 찾고 있나요?"
라비아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빛이 있지만,
집 안에는 빛이 없기 때문이에요."
태양이 지고 있었으며
길 위에는 아직 약간의 빛이 남아 있었다.
이 우화는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본 적이 있는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깊이 명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비록 어떤 흐릿한 순간들에, 꿈을 꾸는 순간들에,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알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정확하거나 엄밀하지 않다.
당신은 아직 그것을 분명히 파악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파악하려 한다면,
그것이 더 분명해질수록 그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더욱더 알게 될 것이다.
추구는 오로지 모호한 상태에서,
꿈꾸는 상태에서만 계속될 수 있다.
어떤 것들이 분명하지 않을 때 당신은 그것을 계속 찾는다.
내면의 어떤 충동에 이끌려,
내면의 어떤 절박함에 떠밀려 당신은 한 가지를 알게 된다.
당신이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것은 내적인 필요이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모호하다.
당신은 그것이 돈이나 권력, 명예, 존경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존경받는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라.
그들도 역시 찾고 있다.
엄청난 부자들을 보라.
그들도 역시 찾고 있다.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들은 찾고 있다.
따라서 부유함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있건 상관없이 추구는 계속된다.
그러니 분명 다른 무엇을 찾고 있을 것이다.
돈, 권력, 명예 등 이런 이름들, 이런 딱지들은
단지 당신의 마음을 만족시키려는 것일 뿐이다.
그것들은 당신이 다른 어떤 것을 찾고 있다고 느끼도록 돕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 어떤 것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으며,
매우 모호한 느낌일 뿐이다.
진정한 추구자, 약간 알아차리게 된 추구자가 먼저 할 일은
그 추구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의 개념을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꿈꾸는 의식의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직면하는 것이다.
그러면 즉시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만약 당신의 추구를 분명히 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추구에 관한 관심을 잃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더 분명해질수록 덜 추구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지면,
갑자기 그것은 사라진다.
그것은 오직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에만 존재한다.
그것이 반복되도록 하라.
당신이 졸고 있을 때만 추구가 존재한다.
당신이 알아차리지 못할 때만 추구가 존재한다.
알아차리지 못함은 추구를 창조한다.
그렇다. 라비아가 옳다. 안에는 빛이 없다.
안에는 빛이 없고 의식이 없으므로 당연히 당신은 바깥에서 계속 찾고 있다.
바깥에서는 그것이 더욱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 기관들은 모두 바깥을 향하고 있다.
눈은 바깥으로 열리고,
손은 바깥으로 움직이고 뻗으며,
다리는 바깥으로 움직이고, 귀는 바깥의 소음과 소리를 듣는다.
모든 감각들은 바깥을 향해 열려 있고,
모든 오감은 외향적으로 움직인다.
감각의 빛이 바깥을 비추므로
당신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만지는 곳에서 찾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찾는 자는 안에 있다.
이런 이분법이 이해되어야만 한다.
찾는 자는 안에 있지만, 빛은 밖에 있다.
그래서 찾는 자는 자신을 충족시킬 무언가를
바깥에서 찾으려 하며 야심 차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런 일은 본래 일어날 수 없다.
찾는 자를 찾지 않으면,
당신의 모든 추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이 찾는 모든 것은 헛될 뿐이다.
찾는 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찾는 자를 알지 못하고 어떻게 올바른 차원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만약 모든 탐구가 멈춰지고, 이제 알아야 할 것이
"내 안의 이 찾는 자는 누구인가?
찾기를 원하는 이 에너지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한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갑작스레 깨닫게 된다면,
변형이 일어난다.
모든 가치는 갑자기 변한다.
당신은 내면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더 이상 라비아는
자기 내면의 영혼의 어둠 속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도로 위에 앉아서 찾지 않는다.
일단 내면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처음에 그곳은 매우 어둡다.
라비아가 옳다.
그곳은 매우, 매우 어둡다.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은 내면으로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눈은 바깥세상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것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때때로 눈부시게 밝은 도로에 있다가 방 안으로 들어올 때면,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오면, 그곳은 매우 어둡다.
눈이 바깥의 빛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양의 빛이 있을 때는 눈의 동공이 줄어든다.
어둠 속에서는 눈이 풀려야 한다.
그러나 잠시만 앉아 있으면, 머지 않아 어둠이 사라진다.
더 많은 빛이 있게 되고, 눈이 익숙해진다.
많은 생애 동안 당신은
바깥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세상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안으로 들어갈 때 눈을 다시 적응시키는 법을 완전히 잊고 있다.
명상이란 눈을 다시 적응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내면을 계속해서 바라본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서서히 조금씩 당신은
내면에서 아름다운 빛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공세적인 빛이 아니다.
그것은 태양과 같지 않으며 오히려 달과 더 비슷하다.
그것은 눈부시거나 번쩍이는 빛이 아니다.
매우 서늘하다.
그것은 뜨겁지 않다.
매우 자애롭고 매우 진정시키는 빛이다.
고통을 가라앉히는 향유와 같다.
이윽고 내면의 빛에 적응이 되면,
당신은 자신이 바로 근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찾는 자가 찾고 있던 대상이었다.
그러면 당신은 자신 안에 보물이 있으며,
그것을 바깥에서 찾고 있던 것이
바로 모든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바깥에서 찾고 있었는데
그것은 언제난 여기 내면에 있었다.
당신은 잘못된 방향에서 찾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다.
-오쇼-
[출처] 오쇼 변형 타로 - 지혜|작성자 에르나 Er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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