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신과 나누는 우정 본문
원제: Friendship with God
닐 도날드 윌시 저/조경숙 역 | 아름드리미디어 | 1999년 3월 30일
<내용 요약>
o 너희와 나의 관계는 너희 서로간의 관계와 전혀 다르지 않다. 너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서로 간의 관계를 시작하여, 잘 되어나가면 우정을 나눈다. 그것이 잘 되어나가면, 너희는 하나되는 느낌, 즉 영적 교섭을 체험한다. 나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너희가 확실히 알고 나면, 그때 우리는 우정으로 옮아갈 수 있고, 마침내 영적 교섭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너와 나는 지금 이 순간 하나다. 단지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너는 그것을 체험하기를 선택하지 않고 있다. 또한, 너희 서로가 우정을 나누지 않는 한, 너희는 신과도 우정을 나눌 수 없다. 내가 남이고, 나 말고 남이 없기 때문이다.
신과 도움이 되는 참된 우정을 나누려면 마음의 변화와 가슴의 변화,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먼저 신에 이르는 일곱 단계를 적어보자.
1) 신을 안다. 2) 신을 믿는다. 3) 신을 사랑한다. 4) 신을 받아들인다. 5) 신을 활용한다. 6) 신을 돕는다. 7) 신에게 감사한다.
너는 이 일곱 단계를 써서 네가 원하는 누구라도 친구로 삼을 수 있다.
o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긴 하지만, 나를 찾아내지는 못한다. 그들은 눈앞에서 나를 보면서 나른 찾아내지는 못한다. 나를 알아보는recognize 건 나를 다시 인식re-cognize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너희는 내가 존재한다는 걸 믿어야 한다. 신을 알려면 너희는 신을 믿어야 할 뿐 아니라, 나를 기꺼이 진실로 알고자 해야 한다. 내가 네 아버지가 아니라 네 가장 친한 친구라면, 내게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부탁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라.
나는 너희 정신으로 결코 나를 찾지 못할 테니, 너희 정신의 여정이 아닌 너희 가슴의 길을 따라 내게로 오라. 너희 정신은 과거에 붙들려 있고, 너희 몸은 현재를 붙들고 있으며, 너희 영혼은 미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즉, 정신은 분석하고 기억하는 반면, 몸은 체험하고 느끼며, 영혼은 관찰하고 안다. 그러니 네 영혼이 알고 있는 미래에 접촉하고 싶다면, 네 몸에 귀를 기울려라. 네 몸이 지금 이 순간 네게 말하는 바에 귀를 기울여라. 네 영혼은 모든 것을-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알고 있다. 또 영혼은 너희에게 가장 가까운 내 부분이니 나를 잘 안다.
o 너희 일부는 참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들도 가슴속에 갈망을 지니고 있다. 신의 존재조차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 내면 깊은 곳의 갈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다른 뭔가에 대한 갈망이라 여기지만, 결국에는 그들도 그것이 집으로 돌아오려는 갈망, 다시 한번 신의 구성부분이 되려는 갈망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자신이 도달한 다른 어떤 것으로도 자기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비로소 이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참된 자신을 완전히 알면, 에고도 완전히 없어진다. 에고가 너무 커서 분리된 자신밖에 볼 수 없다면, 합일된 자아를 체험할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너희는 길을 잃고 만다. 너희는 분리의 환상과 외로움을 충분히 겪고 나서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올 길을 찾아내려 할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너희는 거기 있는 나를, 언제나always 거기에 있었던 나를 발견할 것이다. 모든 면에서all ways.
o 너희가 참된 자신을 알고 나면, 너희는 자신과 사랑에 빠질 것이고, 너희가 자신과 사랑에 빠지고 나면, 너희는 나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너는 네 과거가 아니다. 너희 과거를 놓아버려라. 그건 그 집착을 그만둔다는 뜻이다. 너희는 과거 때문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 네 월계관에 안주하지 말고, 네 실패에 머물지 마라. 그리고 다시 출발하라. '이게 나인가?'라는 간단한 질문 하나로 너를 바꿔나가라. 너희가 생각하는 자신이 되지 말고, 너희가 원하는 자신이 되어라.
o 너희가 내리는 온갖 결정들, 그 모든 결정들은 무엇을 할지에 대한 결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결정이다. 참된 자신을 공표하고 선언하며, 참된 자신이 되고, 참된 자신을 표현하고 실현하는 것이 너희 영혼의 목적이다. 지구는 몽유병자들로 가득하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려면 결심만 하면 된다. 가슴과 영혼과 마음 깊은 곳에서 내려질, 이건 '내가 아니다'는 결정뿐이다.
o 속죄의 기회는 너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순간에 자동으로 너희에게 온다. 너희는 속죄 atonement 가 바로, 하나됨 at-one-ment 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라는 자작이다. 너희는 육신을 떠나는 죽음 직후에 이것을 체험할 것이고, 이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제 막 완료한 삶의 모든 순간들을 다시 한번 밟아가도록 허용되는데, 그때 자신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순간 영향 받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바로 그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진술은 더 이상 개념이 아닌 체험이 된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결말과 결과들을 불러왔는지를 체험할 것이며,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 성장과 관련되며, 진화의 과정이지, 결코 신의 심판이 아니다.
o 체험의 세 수준:
초의식 수준은 영혼의 수준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충분히 자각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알고 그것을 창조하는 그런 체험의 자리다. 너희 대다수는 자신의 초의식의 의도가 무엇인지 인식하고 자각하지 못한다.
의식 수준은 물질의 수준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어느 정도 자각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알고 창조하는 체험의 자리다. 너희가 얼마나 많이 자각하는가는 너희 '의식수준'에 달려있다. 영적인 길에 헌신할 때, 너희는 끊임없이 자신의 의식을 끌어올리길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잠재의식 수준은 자신의 현실을 모르거나, 그것을 의식하면서 창조할 수 없는 체험의 자리다. 너희는 까닭은 물론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사실조차 거의 자각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한다. 이것은 일종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머리를 자라게 하고, 눈을 깜박이고, 심장을 뛰게 하고, 즉석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의식 수준과 초의식 수준, 무의식 수준이 동시에 같은 의도를 설정할 때, 이런 삼위일체 의식을 초월의식이라 부를 수 있고, '그리스도 의식'이나 '승화된 의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완전히 통합된 의식이다. 이 자리에 있을 때 너희는 완전하게 창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순수한 존재함being의 속으로 옮아갈 수 있다. 이 존재함이 너희 내면에 있는 창조의 궁극적 근원이다.
너희는 초월의식에서, 가장 효과 있고, 가장 효율성 높고 가장 빠르게 창조할 수 있다. 이것은 생각을 넘어서 있는 자리다. 이것은 너희의 참된 존재상태이며, '참된 자신'이다. 그것은 너희의 생각에 교란되지도 영향 받지도 않는다.
o 중요한 사랑의 종식자; 1.필요, 2.기대, 3.질투.
이 셋 중 하나라도 존재할 때, 너희가 남을 진실로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에게 잃을 게 있다는 생각보다 더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걸 가로막는 건 없다. 필요처럼 기대 역시 치명적이다. 기대는 사랑의 본질인 자유를 줄인다. 행복이 네 외부의 것에 좌우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너는 질투에서 벗어날 것이다.
기억하라. 사랑은 조건 없고, 한계 없고,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솔직함은 사랑의 최고 형태다.
의도를 가져라. 하지만 기대를 갖지 말고, 당연히 필요도 갖지 마라. 네 집착을 선호로 승화시키고, 네 선호를 받아들임으로 승화시켜라. 이것이 평화에 이르는 길이고,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
o 내면으로 가라. 황홀경을 찾아낼 곳은 너희 내면이다. 거기에서 너희는 다시 한번 '자신이 누군지'를 기억해낼 것이고, 다시 한번 자기 외부의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음을 체험할 것이다. 거기서 너희는 나와 닮은꼴로서 너희의 형상을 보게 되리니, 너희의 모든 필요는 사라지고, 마침내 너희는 진실로 사랑하고 진실 되게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
그냥 고요히 있어라. 그 고요 속에서 너 자신과 더불어 있어라. 자주, 날마다 이렇게 하라. 아니, 가능하면 시간마다라도 잠깐씩 이렇게 하라.
그냥 멈춰라. 네가 하는 모든 일을 멈추고, 네가 하는 모든 생각을 멈춰라. 아주 잠깐이라도 그냥 있어라. 그렇게 하는 것으로도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날마다 새벽에 한 시간씩 잡아서 그것을 너 자신에게 주어라. 그 성스런 순간에 그곳에서 너 자신을 만나고, 그런 연후에 하루를 시작하라. 네가 다른 사람이 되리니.
이름이나 방법론에 사로잡히지 마라. 너희가 명상이라 부르는 건 너희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고, 마침내 자신이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 고요히 않아 있는 것으로, 자연 속에서 홀로 걷기로, 사원의 바닥에 엎드려 솔로 돌바닥을 닦는 것으로도 명상이 될 수 있다. 외부인들은 '얼마나 힘들게 사는가'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은 더 없이 행복하고 더 없이 평화롭다. 봉사는 명상의 심오한 형태일 수 있다.
o 벽도 마루도 천정도 희고, 모서리가 전혀 없는 방에,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너를 공중에 매달고 있다고 상상해 봐라. 아무것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고, 보이는 건 오직 하양뿐이다. 이 경우 너는 얼마 후 그야말로 정신을 놓아버릴 것이다.
너희 정신은 들어오는 온갖 자료들을 의미 있게 만들기로 되어있는 너희 부분이다. 하지만, 들어오는 자료가 없다면 너희 정신은 할 일이 없다. 네가 정신을 놓아버리는 순간, 너는 자신을 체험하기를 그만 둔다. 자신에 대해 알기를 그만 둔다.
벽에 작은 점이 나타나면, 이제 네가 있고, 그 점이 있다. 갑자기 몇 가지 결정, 몇 가지 체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네가 점과 맺은 관계가 너를 제정신을 되돌려준다.
'너 아닌 것'이 없으면, '너인 것'도 없다. 네 삶에 나타난 모든 것이 축복이고, 그것들이 자신이 누군지를 규명하고 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o 네가 지니고 있는 세상 모습과 관련해 네 마음을 바꾸어라. 좋은 것들, 경이로운 것들을 생각하고, 빛나는 순간들, 영광스런 전망들, 사랑의 표현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먼저 천국을 구하라. 그러면 다른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보태지리니.
나는 너희 영혼 속에 온화한 지혜를 놓았다.
나는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 순수한 사랑을 심었다. 순수한 사랑은 '나인 것'이고 '너희인 것'이다. 너희 가슴은 이 사랑으로 가득 차 넘쳐흐르고 있다.
신의 5가지 마음가짐: 절대 앎의 순간에는 너희 역시, 내가 항상 느끼듯이, 오로지 기뻐하고, 오로지 사랑하고, 오로지 받아들이고, 오로지 축복하고, 오로지 고맙게 느끼게 될 것이다.
o 기쁨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준다. 기쁨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웃음은 가장 좋은 보약이라고, 기쁨은 영혼을 위해 좋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쁨 자체가 영혼임을 말하려 한다. 영혼은 너희가 기쁨이라 부르는 것이다. 순수한 기쁨, 무한한 기쁨, 순도 백퍼센트의 한정없는 무제한의 기쁨. 바로 이것이 영혼의 천성이다. 미소는 영혼을 향한 창문이고, 웃음은 그 문이다.
그러나, 너희가 가슴속에 있는 기쁨을 풀어놓으려면, 기쁨에 찬 마음으로 있어야 한다. 너희 가슴은 영혼과 마음을 잇는 회랑이다. 너희 영혼 속의 기쁨은 너희 가슴을 거쳐 옮아가야 한다.
느낌은 영혼의 언어다. 너희 마음이 닫혀 있을 때 느낌은 가슴속에 묶여 있게 된다. 너희가 무척 슬플 때 흔히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하고, 무척 행복할 때 가슴이 터진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을 열어서 네 감정이 표현되게 하고, 밀려나오게 하라. 그러면, 네 가슴은 너희 영혼 속 생명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이다.
기쁨은 생명의 표현이다. 생명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을 너희가 기쁨이라 부르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은 하나됨, 존재 전체와의 합일이다. 이런 합일의 표현이 생명이고, 소위 말하는 사랑의 느낌이란 게 합일의 느낌이다. 따라서 생명의 본질을 사랑이라 하며, 기쁨이란 사랑의 자유로운 표현이 된다.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기쁨이 바로 슬픔이라 부르는 느낌이다.
남의 내면에 있는 기쁨을 풀어줘라. 그러면 너희 내면에 있는 기쁨도 풀리게 되리니. 미소나 찬사나 자애로운 눈길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나, 노래나 춤이나, 붓질이나 점토 조형으로, 서로 손을 잡거나 마음을 나누거나 영혼의 짝이 되는 것으로, 사랑스럽고 쓸모 있는 뭔가를 함께 창조하는 것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
신은 그 가장 높은 진동수에서 그 자체로 기쁨인 삶이다. 신은 오로지 기뻐한다.
o 너희는 너희의 사랑을 허락하거나 않는 것으로 너희 아이들의 처신을 규제하고, 그것을 바꾸고 통제하고 만들어내고자 해왔다. 처벌로는 거의 배우지 못한다. 처벌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지만, 귀결은 자신이 내면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사랑함이니, 이는 모든 성숙한 지각 존재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되고, 그것을 하고,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온전한 자유를 기꺼이 준다는 뜻이다.
아이들을 성숙의 길로 끌어주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이른 시기에 가능한 한 많은 선택을 내릴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다.
사랑은 놓아주지만, 필요는 붙잡는다. 너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짐 지우던 그 모든 요구와 규율과 규제들을 놓아버려라. 그들을 제한하는 건, 그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건 오로지 사랑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사랑한다는 것은, 완전히 열려 있고, 완전히 솔직하며, 완전히 투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며, 완전히 기꺼이 하겠다는 뜻이고, 가슴속에 있는 사랑을 완전히 쏟아내서 표현하겠다는 뜻이며, 숨겨둔 어떤 것도 없이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냥 사랑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서 네 모든 선택과 결정들이 그곳에서 나오게 하라. 그러면 네가 평화를 발견하리니.
너희가 예지력을 갖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이해하며,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갖고 있어도 사랑을 갖지 못한다면, 너희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해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다. 사랑은 시기하거나 뽐내지 않고, 사랑은 거만하고나 무례하지 않다. 사랑은 자기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사랑은 안달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사랑은 옳고 그름을 모르니, 그릇된 것을 즐기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알며, 모든 것을 견지고, 모들 걸 받아주지만, 사랑은 용서받아야 할 어떤 상황,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하니,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o 모든 것을 자기 속에 있는 신성의 성스런 드러남으로 받아들여라.
(악마마저도 껴안아라.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그를 치유하겠느냐?)
신은 오로지 받아들이지만, 인간들은 무척이나 제외하길 좋아한다.
사람들은 서로 사랑할 때도, 상대방이 이러저러할 때만 제외하고 서로를 사랑한다. 오로지 받아들이는 것과 오로지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같은 것이다. 받아들임은 축복이다. 사랑과 받아들임이 있기에, 너희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다.
o 네가 어떤 것에 네 최상의 에너지, 네 최고의 생각들을 줄 때, 너는 그것을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싫어하는 것들을 바꾸려 할 때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것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사실 너희는 말 그대로 그것이 되풀이되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심판하지도 비난하지도 마라.
사람들은 흔히 변화를 구하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분노를 사용하고, 분노하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비판을 사용한다. 마치 분노 없이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고,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바꿀 수 없기라도 한 것처럼 분노를 터뜨린다. 축복하라. 너희의 적들을 축복하고, 너희의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들에게 너희가 가진 최상의 에너지와 최고의 생각들을 보내라.
o 감사는 모든 걸 바꾸는 마음가짐이다. 감사한다는 건 그것을 거부하길 그만둔다는 것이며, 어떤 체험이나 상황이나 결과에 대해 미리하는 감사는 너희 현실을 창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고, 깨달음의 확실한 표식이다.
o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보다는 각각의 날과, 시간과, 순간이 자신을 새롭게 창조할 또 한번의 시작이고, 또 한번의 기회이며, 또 한번의 호기임을 반듯이 기억하라.
o 너희 어휘 중에서 '옳다', '더 낫다'는 말만큼 위험한 말도 없다. 어떤 민족, 어떤 문화집단도 내 선민으로 삼은 적이 없고, 내게 이르는 어떤 길도 유일한 참된 길로 정한 적이 없다. 신에게 이르는 길은 얼마든지 있고, 그 하나하나가 다 너희를 거기로 데려가 준다. 그러니, '우리 방식도 그냥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라고 선언하라. 그들이 그렇게 하는 날,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다. '더 낫다'를 끝장내라.
너희가 갈등과 폭력과 유혈과 증오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하니,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겠노라. 그런 세상을 가질 수 있는 방법, 그런 세상을 실제로 하루밤만에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우리는 하나다.' '우리 것도 그냥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더 나은 방법인 건 아니다.' 라는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고 그것에 따라 사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
옛 메시지는 전혀 너희가 바라던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너희 역사 전체가 실패의 반복이다.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결과만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축복되어야지 비판되어서는 안 된다.
o 너희는 원하던 모든 걸 다 가졌다! 그 영혼이 갈망했고 의도했던 체험과 표현을 낳아주기에 딱 맞는 사람과 장소와 사건들을 완벽하게 제공했다. 특히 상황이 완벽해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그것은 너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굉장한 것이 있다는 확실한 표식이다.
너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충분히 있다. 시간도, 돈도, 먹을 것도, 사랑도 충분히 있다.... 나는 너희 모두에게 충분할 만큼 넉넉하게 주었다.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나누는 것뿐이다. 너희가 이 진리에 따라 살 때, 너희는 어떤 것도 나누기를 꺼려하지 않을 것이고, 쌓아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에게 충분히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충분한 것 이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적은 부분만을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 중 몇 퍼센트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이 세상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자원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정도로 불균형한 소유구조이며, 이 불균형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o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신이 그 해결책을 찾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실 신은 세상 속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세상에서 일할 수 있기에, 너희가 그 문제를 놓고 뭔가를 하는 게 바로 신의 유일 한 해결책이다.
o 네가 아니라면 누구겠느냐? 또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겠느냐?(유대 격언)
너희는 이 메시지를 자신으로서 전하는 것이다. 너희 자체가 그 메시지다. 너희 메시지는 살아온 자신의 삶이고, 너희가 퍼뜨리는 그 말은 자신인 것이다.
o 은혜롭게 살기로 작정하라. 자신의 삶과 일이 남들에게 이로운 것이 되게 하겠노라고 작정하라. 그러면 너희는 신중하고 조화롭게 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조화롭게 살게 해줄 3가지 도구; 자각, 정직, 책임-을 주겠다. 이것들은 '온전한 생활의 핵심개념'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자각은 너희가 그렇게 살겠노라고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상태로, 그 순간에 깨어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명상이다. 자각은 모든 것을 명상으로 바꾼다.
정직이란 도구를 꾸준히 사용하라. 네 삶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되리니. 대인관계에서, 사업 활동에서, 정치에서, 학교에서, 언제 어디서나 정직이란 도구를 사용하라.
각자 나름의 길을 가면서 자신의 현실을 창조하고 있으니, 각자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에 책임이 있다. 책임은 위대한 성숙, 위대한 영적 성장의 표식이다.
그러고 나면 너희는 '우리는 하나다'라는 새로운 복음에 근거하고, 자각과 정직과 책임이라는 핵심 개념들로 지탱되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남이란 없으니, 다른 사람의 체험이라고 해서 책임을 피할 순 없다는 알게 될 것이다.
o 21세기는 깨어남의 때, 내면의 창조주와 만나는 때가 될 것이다. 많은 존재들이 신 및 삶의 모든 것과 '하나됨'을 체험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되어온 신인류의 황금기, 너희 중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감동적으로 묘사해온 '보편인간의 시대'가 시작되는 때가 이때다.
이제 너희가 깨어날 때가 코앞에 왔다. 너희는 이제 자신에 대해 지금껏 가졌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번 가장 숭고한 해석으로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새 천년에 너희 세계가 밟아갈 일정이다.
동서양이 만나고, 백인이 유색인종을 껴안으며, 종교가 합쳐지고, 정부들은 적응하며, 경제는 확대되고 있다. 이 모든 것에서 너희는 지구적인 접근과, 시야로 지구적인 체제를 창조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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