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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교와 아리안(Ariyan)족 (중요) 본문

영성수행 비전/보병궁 복음서

바라문교와 아리안(Ariyan)족 (중요)

柏道 2018. 1. 17. 11:38


바라문교와 아리안(Ariyan)족 (중요)


성경에 예수님의 잉태와 30세 이후의 기록은 있으나​ 12세에서 29세까지의

기록이 없는 이유를 이 글에서 밝히 드러내고 있어 많은 신앙인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을 풀어주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너무 놀라운 내용일 수 있으나 교리에 의해 변질된 진리를 바로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불교인들 역시 불교의 밑 바탕에는 절대자,곧 우주만물의 주관자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반야:是大神)이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글로서 틀(교리)에 갖힌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끝까지 읽어본다면 진리는 하나인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 바라문교와 아리안(Ariyan)족

 

예수님이 어린 나이(12세)에 인도로 가서 스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설(說)은 사실일까?

아니면 불교인들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거짓일까? 하는 문제는 지금도 기독교인과 불교인들 사이에 끊임없이 논쟁 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은 진실로 드러나며 거짓은 거짓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보병궁 복음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답해주고 있는 것이다.

보병궁복음서를 이해하려면 먼저 불교가 탄생하기 이전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와 아리안(ariyan)족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싯달타 태자가 영생을 얻기 위해 왕의 권좌를 버리고 출가(出家) 하여 찾아 간 곳이 바로 그 당시에 베다(Veda)를 신으로 섬기며 영생을 추구하는 아리안(Ariyan)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다를 창조신으로 믿고 있는 아리안(Ariyan)족은 인도의 자국인이 아니라 BC 2000-500년을 전후하여 서방에서 인도(서인도)로 이주해 온 유목민(遊牧民)이었다.

아리야인들은 베다(Veda)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며 또한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고 믿고 있었다.

베다(Veda)는 문헌에 우주보다 영원한 존재로 기록되어 있으며 우주보다 영원한 존재,곧 창조신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유일무이한 창조신인 베다를 인도의 바라문교에서는 브라마(브라흐만)라 하였으며 석가모니 부처님은 반야심경을 통해서 반야(般若) 곧 시대신(是大神)이라 말씀하고 있으며 기독교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병궁서를 보게 되면 베다경 이전에 이미 히브리(구약성경)성서인 모세 오경의 율법서와 선지서인 예언서와 시편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보병궁서 1419-20] 베다경이 쓰여 지기 전의 시대에도 세상에는 길을 밝혀주는 많은 성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그 이상의 빛(진리)를 필요로 하게 되자 아베스타 경전과 훌륭한 대도(大道)의 경전이 더 한 층 높은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나타났느니라. 그리하여 적당한 곳에서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을 담고 있는 히브리 성서가 인간의 진리의 광명을 위하여 나타났느니라.

 

상기의 말씀을 보면 베다경 이전에 이미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세 오경과 선지서와 시편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있는 모세오경은 모든 경전의 근윈 이며 근본인 것이다.


 

이처럼 베다경에는 모세 오경에 기록된 만물창조와 각종 제사의식과 신(여호와)을 찬양하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서방에서 인도로 이주해온 아리안(Ariyan) 족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이며 이들이 믿고 섬기는 베다(Veda)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야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생로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이들의 신앙생활은 요가 수행을 하면서 종교의식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그 의식은 양을 잡아서 창조신에게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리안 족들은 창조신 곧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아리야(Ariya)라는 뜻은 “고귀한, 성스러운, 거룩하다”는 의미로 아리야족은 신으로부터 선택된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 주장을 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사성제”(四聖諦)를 “네 가지 아리얀의 진리”(Four Ariyan truths)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베다종교를 믿는 아리야(Ariya)인들은 인도인들에게 고귀한 존재로 추앙을 받았기 때문에 베다종교는 점차 인도인들에게 계승되어 바라문교가 발생하게 되었고 바라문교는 후에 인도의 민족종교인 힌두교로 전개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라문교나 불교나 기독교나 흰두교나 이슬람교의 근원지는 모두 유대교였으며 이들이 믿고 섬기는 신은 베다(Veda) 즉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한분이시며 영원불변의 진리 또한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오늘날 이 세상에 종교는 수도 없이 많지만 참 신은 오직 창조주 한분이시며 근원지도 한 곳인 것이다.

불교의 창시자이신 부처님, 곧 싯달타 태자는 어렸을 때부터 생로병사 때문에 고민을 하던 중 바라문 교도들로부터 영생의 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29세가 되던 해에 생로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출가(出家)를 하게 된 것이다.

태자는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온갖 고행을 참아가며 열심히 수행을 하였으나 태자에게 영생이나 해탈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태자는 할 수 없이 우루빌바 숲 속을 홀로 들어가 모진 고통을 참아가며 수행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태자는 이러한 가르침이나 수행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네란자라 강으로 가서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고 보리수나무 아래 좌정을 하시고 참선을 하시다가 무상정등정각(無上正登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신 것이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30세가 되던 해에 요단강에 들어가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사건과 동일한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앉아 계셨던 보리수(菩提樹)는 화두(話頭)중의 화두로 자연계에 서식하는 나무가 아니라 반야(般若), 곧 깨달음의 근원이신 창조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부처님께서 성불을 하고나신 후에 자신이 성불 하게 된 것은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에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을 하여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반야(般若)를 향해 깊이 참선을 행하고 있을 때 반야의 도우심으로 오온(五蘊)으로구성 되어있는 자신의 존재가 무상(無相)함을 깨닫고 모든 제도와 고액(苦厄)에서 벗어나 성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반야를 시대신(是大神), 곧 참으로 큰 신이라 말씀하시면서 반야는 능제일체고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능제일체고(能濟一切苦)란 무명(無明)의 중생들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으로 반야(般若)는 탐(貪)진(瞋)치(癡)로 인해 죽어가는 무명(無明)의 중생들을 구원하여 부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부처님은 시대신(是大神)이신 반야(般若) 곧 베다(Veda)이며 브라만이며 여호와이신 창조주하나님에 의해서 해탈하여 부처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며 무명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구원자이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정황과 근거로 볼 때 예수님이 탄생하였을 때 동방에서 라마승(성경에는 동방박사라고 번역함) 세분이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 하러온 것이나 예수님이 12세에 진리를 찾기 위해 오릿사 왕자를 따라 인도로 가서 바라문교의 승단에 입단하여 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인도는 각종문명이 발달한 대국(大國)이었으며 팔레스타인이나 유대인들이 사는 나라는 소국(小國)으로 서로 왕래를 하며 교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는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모든 종교를 포용하고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동방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온 스님들

[보병궁서 5장2절-4절] 마기교도들 가운데 다가오는 시대의 주님을 보고자 갈구하는 세명의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값비싼 선물을 들고 새로 태어난 왕(예수)을 찾아 경배하기 위하여 서쪽을 향해 급히 길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고귀함의 상징인 황금 다른 한 사람은 동서 권력의 상징인 몰약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성인의 지혜를 상징하는 유향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마기승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모두 놀래어 그들이 누구이며 왜 왔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보병궁복음서 5장 16절] 그들은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귀중한 선물인 황금, 유향, 몰약 등을 바쳤습니다.

 

상기의 말씀을 보면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동방에서 보물(황금 유향, 몰약)을 가지고 찾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는 세분의 동방박사는 곧 스님들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마기(배화교)승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유대 사람들은 모두 놀라면서 스님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의아 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던 동방박사가 스님이라는 사실이나 예수님께서 인도 로 가서 승단에 들어가 스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자기가 믿고 섬기는 신()이나 자기 종교만이 옳다는 아만(我慢)과 교만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3. 예수님께서 12세때 오릿사 왕자를 따라 인도로 감

 

[보병궁서 21장 3절]남부 인도의 오릿사 지방의 왕자인 라반나는 유대인의 제례에 참석했습니다.

[보병궁서 21장 15절] 왕자 라반나는 소년(예수)의 보호자가 되어 동양으로 데리고 가서 그 곳에서 브라만교의 지혜를 배우게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가서 꼭 배우고 싶다고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뒤에 그의 부모는 승낙을 했습니다.

[보병궁서 21장 18절] 브라만 승려들은 그 왕자의 귀국을 환영했으며 유대소년(예수)을 호의로서 받아 들였습니다.

[보병궁서 2119] 예수님께서는 쟈간나스 사원의 생도로서 입학했으며 여기서 베다경과 마니 법전을 배우셨습니다.

 

상기의 말씀과 같이 당시에 인도의 스님들은 서방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유대로 오기도 하고 유대인들은 인도로 가서 베다경을 배우고 스님들이 하고 있는 수행도 하기 위해 인도로 가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당시에 예수님께서 인도로 가서 승단에 들어가 베다경과 마니법전을 통해 베다의 지혜(智慧) 곧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의 지혜를 배운 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문제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불교의 '불'자만 들어도 마귀나 사탄처럼 배척을 하며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체는 사랑이며 만유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종교나 지정된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물론 만물까지도 사랑하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글을 접하시는 분들은 종교의 편견이나 그동안 각종교리로 쌓아놓은 고정관념들을 내려놓고 보병궁 복음서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뜻과 경(經)속에 감추어져 있던 영적인 비밀들을 알게 될 것이다.

​글/옮긴글

[출처] 바라문교와 아리안(Ariyan)족 (중요)|작성자 산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