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마스터와 가르침/다석 (456)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한국의 골짜기 정신에서 세계 사상 나온다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겸직교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⑧ 김흡영 교수 조선 사회는 유교 중에서도 가장 근본주의적인 성리학의 지배를 받으면서 본산인 중국보다 더 유교적인 사회가 됐다. 유학의 지나친 보수성과 배타성으로 결국 조선 유교사회를 멸망시켰다고 김흡영 교수는 에서 지적한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1,000년 동안 꽃을 피웠다. 조선에서 억불숭유(抑佛崇儒)를 했다고 하지만 민간에서는 물론이고 왕실의 여인들까지도 불교 신앙에 의지했다. 조선은 국방의 중요 부문을 사찰과 승려에 의존할 정도였다. 개신교는 유교 불교에 비해 역사가 짧지만 세계 최대의 교회가 한국에서 나왔다. 북한의 김일성교를 종교로 분리하는 학자들도 있다. 세계에서 공산주..
다석 사상은 한국 신학의 광맥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⑦ 김흡영 교수 경북 영주는 중국에서 들여온 한국 유학의 본향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享)을 배향하는 소수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소수서원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무섬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감싸고 흘러가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이다. 다양한 형태의 구조를 지닌 40여 채 고택이 옛 그대로 남아 있다.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 해우당(海愚堂) 고택이다. 이 건물은 선성 김씨 입향조인 김대(金臺)의 손자가 1830년에 건립했고 고종 때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이 1879년에 중수(重修)했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해우당 ..
21세기 생태문명의 맹아를 담은 다석 사상 황호택 논설고문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⑥ 이정배 교수 이정배 교수의 스승인 변선환 전 감신대 학장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폭탄 선언과 함께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제창했다. 그는 기독교와 불교 간 대화를 중심으로 종교간 대화를 활성화하는 운동도 벌였다. 그러다 결국 보수적인 기독교계 목사들의 표적이 되다시피 해 소속된 감리교단으로부터 출교(黜敎)당했다. 변선환 신학을 계승한 대표적인 제자가 이정배 교수다. -변선환 학장이 1992년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주도하는 교리수호대책위원회로부터 출교 조처를 당했더군요. 김홍도 목사는 지난해 광화문에서 광복절 태극기 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를 대형교회 부흥 목사로 데뷔시켜준 사람인데요. "그 ..
하늘로 이끄는 뜻이 한글에 있다 하셨죠 황호택 논설고문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⑤ 이정배 교수 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서울에서 인사동 삼청동 부암동 같은 곳은 그나마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다. 한양도성 성곽이 지나가고 사소문(四小門) 중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이 자리 잡고 있다. 부암동에는 김환기 미술관, 윤동주 문학관, 석파정 서울미술관, 젓가락 갤러리 ‘저집’ 등 문화 명소가 많다. 고풍스런 동네에 눈발이 날리니 분위기가 더 살아나는 것 같다. 윤동주 문학관 옆에 차를 세우는데 이정배 교수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교수의 집은 문학관에서 멀지 않았다. 대문에서 안채로 이르는 가파른 돌계단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교수 집 2층 창밖으로 부암동의 푸근한 설경(雪景)이 액..
코로나 이후 교회, 기복 신앙 힘 잃을 것 황호택 논설고문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④ 오강남 교수 내가 오 교수와 처음 만난 것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하던 2001년경이다. 오 교수는 그때 현암사에서 라는 책을 펴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기독교에 대해 새로운 개안(開眼)을 하는 느낌을 받고 동아닷컴에 칼럼을 썼다. 이 칼럼을 읽은 오 교수가 서울에 왔을 때 신문사로 찾아와 처음 만나게 됐다. 그 뒤로 나는 종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그에게 전화나 메일로 자문(諮問)을 했다. 는 2001년 5월 초판이 나온 이래 개정판까지 42쇄를 찍은 장기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면 정통 기독교인 중에는 오 교수의 안티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기독교 계통의 어느 목사가 ‘하느님 보호해주심으..
"나를 섬기면 종교된다" 다석이 경계 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② 윤정현 성공회 신부 윤 신부와 나는 1955년생 양띠 갑장이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교과서(국정)를 읽고 박종철 사건을 비롯해 동세대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이야기다. 나이를 알고 나니 또래집단(cohort) 의식이 생겼다. 윤 신부가 차를 따를 동안에 서울서 갖고 간 내 저서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항쟁’을 내놓았다. 내가 “제가 3년 전에 쓴 책인데요. 박종철 탐사보도가 6월 항쟁의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는 관점에서 썼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6월항쟁이면 제가 사제 서품받았을 때인데…”라며 책을 들춰봤다. 나중에 보니 “없이 계시는 하나님” 박사학위 논문 첫머리의 ‘연구동기와 목적’ 주석에 박종철 고문치사 ..
文字를 넘어 신의 속나를 보라 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③ 오강남 교수 아주경제와 유튜브 채널 '다석의 생각교실'이 공동 기획한 '내가 본 다석, 내가 들은 류영모'의 두 번째 인터뷰이는 비교종교학으로 명망이 높은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오강남 명예교수다. 코로나 19로 오 교수가 한국에 오지 못하고, 나를 비롯한 취재진이 캐나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줌(Zoom)을 이용해 인터뷰가 이뤄졌다. 대학을 갓 졸업한 유수민 인턴기자가 카카오톡 통화로 오 교수에게 줌 작동법을 코치하기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오 교수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나고 목소리가 들렸다. 음성 전달에서 캐나다와 서울 사이에 0.5초 정도의 시차가 있었으나 큰 불편은 없었다. 서울의 아주경제 스튜디오와 캐나..
"그분은 제 소리를 냈던 사람입니다" 황호택 논설고문·서울시립대 초빙교수 2021-01-13 19:14 황호택 릴레이 인터뷰 ① 윤정현 신부 윤정현 신부는 인터뷰에서 "다석은 동양철학과 기독교 사상을 회통했던 큰 스승"이라고 말했다. [사진=유수민 인턴기자] 한국이 낳은 위대한 종교 철학자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후반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지구는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근본주의 신앙으로 인한 전쟁과 살육이 그치지 않는다. 한국같은 다원주의 종교국가에서도 종교간 갈등이 심한 편이다. 세계의 한쪽에서는 탈(脫)종교 현상이 번지고, 다른 쪽에서는 근본주의 종교가 세계 평화를 깨트린다. 다석이 서구의 기독교 정신과 동양 전래의 유불선(儒佛仙) 사상을 회통(會通)..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70) 없음의 신, 죽음의 맛 (70) 없음의 신, 죽음의 맛 류영모, 석가의 공(空)과 '육신 부정'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다 [다석 류영모] 자신의 몸을 만져보라. 살이 있고 뼈가 있고 체온이 있고 굴곡이 있다. 손과 발이 움직이고 살과 주름이 형상과 동작을 이룬다. 돌아보면, 태어나 시간이 지나면서 꾸준히 몸의 형상과 상태가 바뀌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몸'이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몸이야 말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몸은 무엇인가 과학적으로 인간의 몸을 분석해 구성요소를 보면 이렇다. 물이 2말 정도이고 지방질은 세숫비누 7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연(鉛)은 9자루 연필의 심을 만들 수 있고, 석회질은 방 한 칸을 바를 수 있다..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9) "나는 하느님 빽이 있다" 공자가 외친 까닭 (69) "나는 하느님 빽이 있다" 공자가 외친 까닭 류영모의 '중용(中庸)신학', 유학 속에 숨은 '얼나'를 발견하다 하늘이 날 보냈는데 사람들이 어쩌겠는가 류영모는 20세 때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 교사로 갔다. 여기서 학생을 가르치던 시당 여준(1862~1932)과 단재 신채호(1880~1936)를 만나면서 동양학에 눈을 뜬다. 노자와 불경, 그리고 '중용'을 읽었다. 월남 이상재(1850~1927)의 뒤를 이어 서울 종로YMCA 연경반 강단에서 35년간 강의를 하면서 류영모는 기독교 신앙인들 앞에서 동양고전을 두루 가르치는 스승이었다. 유교경전 가운데서 특히 중용을 직접 우리말로 풀어 강의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왜 ..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8) 류영모는 왜 노자를 펼쳐 기독교를 강의했나 (68) 류영모는 왜 노자를 펼쳐 기독교를 강의했나 상대세계의 인간과 절대세계의 신 노자 도덕경은, 춘추전국의 난세에 등장해 '치세(治世)'의 길을 일깨워주는 리더십 바이블로 자주 읽혀왔다. 이 경전에 대한 이 같은 이해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자는 그 시대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파격적인 '신의 리더십'을 거론하고 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의 도(道)와 덕(德)을 말하면서, 그 벤치마킹할 대상을 '신(神)'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독창적이다. 그 신은 고대에 유행했던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의 신이 아니었고, 초인적인 인격신(人格神)도 아니었다. 노자의 신은, 만물을 일궈낸 우주의 허공이었다. 그 허공은 절대세..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8) 육체와 상대세계를 벗어나라, 류영모의 '노자신학' (68) 육체와 상대세계를 벗어나라, 류영모의 '노자신학' 노자와 다석(2) 도덕경을 품은 류영모, 기독교의 본질로 들어 상대세계의 인간과 절대세계의 신 노자의 도덕경은, 춘추전국의 난세에 등장해 '치세(治世)'의 길을 일깨워주는 리더십 바이블로 자주 읽혀왔다. 이 경전에 대한 이같은 이해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자는 그 시대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파격적인 '신의 리더십'을 거론하고 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의 도(道)와 덕(德)을 말하면서, 그 벤치마킹할 대상을 '신(神)'으로 삼고있다는 점은 독창적이다. 그 신은 고대에 유행했던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의 신이 아니었고, 초인적인 존재로서의 인격신(..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7) 노자와 다석은, 놀라운 '없음'을 발견했다 (67) 노자와 다석은, 놀라운 '없음'을 발견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노자 출관(老子出關). 그림 = 간송미술관 소장] 국경 검문소 함곡관서 써준 도덕경 노자는 주나라의 정치 문란을 슬퍼하며, 멀리 떠날 결심을 했다.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은 아랍지역(서역)이었다. 태어날 때 81세였던 걸 감안하면 150세쯤 됐을 때였을까. 왜 하필 아랍이었던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를 '접속'했던 우주인인 만큼, 노자는 다른 세계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서쪽의 진나라를 지나, 국경 검문소가 있는 함곡관을 지나간다. 두 골짜기 사이에 상자처럼 움푹 패인 고개에 세워진 관문이었는데, 이곳의 검문소장은 윤희였다. 어..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6) 함석헌 철학의 알짬이 된, '류영모의 참' (66) 함석헌 철학의 알짬이 된, '류영모의 참' 예수는 질투할 이 없고 바라는 바 없는 자유남이었다 목숨이 끝나면 말숨으로 산다 류영모의 모든 가르침은 '말씀'에서 시작해서 '말씀'에서 끝난다. 그의 '말씀론(論)'은 가필이나 부연이나 풀이가 필요하지 않다. 그중 꼭 거듭 읽고 마음에 인(印, 도장)을 치듯 받아써야 할 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얼님은 고요히 사람의 귀를 여시고 마음에 인(印) 치듯 교훈하신다.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한얼님의 말씀을 막을 길은 없다. 잠잘 때나 꿈꿀 때나 말씀하신다. 한얼님의 소리를 들어라. 그것은 사람을 멸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기 위해서다. 한얼님 말씀은 공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진실이다..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5) 태어날 때와 죽을 때, 똑같은 점 하나가 보인다 (65) 태어날 때와 죽을 때, 똑같은 점 하나가 보인다 생과 사의 '신비'를 깨달은 류영모 독일 유학파 신학자가 깜짝 놀랐다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1952~ )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신학박사로 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장을 지낸, 국내에서 손꼽히는 신학자 목자(牧者)이다. 그는 류영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독일에 있으면서 왜 우리가 라틴어나 독일어로는 신학을 하면서 같은 소리글인 우리글과 말로는 신학을 할 수 없는 듯이 생각해왔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왔다. 그것은 물론 지금까지 우리 신학이 지나치게 유럽지향적이었기 때문이거나 어려운 중국문자의 개념을 빌려와야 비로소 그것이 학문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4) 한글 속에 하느님 있다, 류영모는 '우리 말글의 성자' (64) 한글 속에 하느님 있다, 류영모는 '우리 말글의 성자' 글자 하나에 철학 개론이 들어있다 말은 보이게 하면 글이고, 글을 들리게 하면 말이다. 말과 글은 신의 뜻을 담는 신기(神器)요 제기(祭器)다. 신의 뜻을 나타내자는 것이 말이요, 신에 대한 사모를 드러내자는 것이 글이다. 이렇게 광야에서 외쳤던 사람이 이 땅에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았던 철학사상가 다석 류영모(1890~1981)다. "우리 말도 이런 정도가 되어야 좋은 문학 좋은 철학이 나오지, 지금같이 외국서 얻어온 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글자 한 자에 철학개론 한 권이 들어있고 말 한마디에 영원한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말에..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3) 인도서 났으면 부처가 됐을 분입니다 (63) 인도서 났으면 부처가 됐을 분입니다 신의 관상을 본 사람 [광주 귀일원에서 강의하는, 이현필의 제자 김준호.] 이현필 제자 김준호의 '인생 반전' 1967년 류영모는 광주 무등산의 산양목장에 머물렀다. 그 목장은 류영모를 존경하던 김정호 교수(목포대)가 경영하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中庸)'을 우리말로 풀어냈다. 류영모는 '중용'을 '가온씀'이라고 했다. 가온(中)은 참나를 의미하며 '씀'은 참나를 사는 생활을 뜻한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통하는 것이 바로 공자의 사상이라고 푼다. 산양목장에서 류영모는 모여든 제자들 앞에 경전과 자작한 글들을 펼쳐 놓고 강의를 하곤 했다. 하느..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2) 수녀들의 '진달래 할아버지'와 류영모 작대기송(頌) (62) 수녀들의 '진달래 할아버지'와 류영모 작대기송(頌) 하늘이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이현필과의 촌철(寸鐵)논쟁 [다석 류영모] 류영모와 이현필의 '이-아' 차이 광주 양림동 양림교회 앞을 지날 때였다. "이이이이이" 류영모가 나직한 소리를 냈다. 처음엔 그냥 내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계속해서 그 소리를 내자, 옆에서 걷던 이현필이 입을 뗐다. "이보다는 아가 먼저 아닐지요?" 이것이 두 사람이 나눈 첫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류영모가 이현필 옆에서 '이'를 계속해서 발음하며 노래로 부른 것은, '신통(神通, 하느님과 통함)'의 흥(興)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나는 몸이 아..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1) 광주역에 내린 류영모가 만난 그 눈빛 (61) 광주역에 내린 류영모가 만난 그 눈빛 여순사건 고아들을 맡다, 이현필 '동광원 운동' 이세종을 성인이라 호칭한, 다석 이세종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산 것이 내게 붙어있다. 그것이 떠나면 나는 죽는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살 것이요, 하느님께서 내게서 당신의 선한 것을 도로 찾아 가시면 그때는 찌꺼기 밖에 남지 않으니 나의 육체도 살 수 없어 죽고 마는 것이다. 인간들은 이것을 죽었다고 한다. 사실은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게서 맑은 것을 도로 찾아가시므로 남은 것은 썩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썩었다고 하는 것이다. 나무를 불에 태워버리면 그 나..
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 (60) 류영모는 왜 광주를 빛고을이라 명명했나 (60) 류영모는 왜 광주를 빛고을이라 명명했나 "난 없는 사람이니 공(空)이라 불러주오" 빛고을 성인, 이세종의 빛 빛고을 호칭 처음 쓴 다석 류영모 대한민국 남녘의 호남 최대도시, 광주는 저항의 이미지가 강하게 배어있는 곳이다. 가까운 역사로는 5·18민주화운동의 중심지다. 전두환 독재에 항거한 이 투쟁은 이 도시를 민주화 성지로 각인했다. 1987년 민주화투쟁의 상징인 이한열도 이곳 출신이다. 광주는 이뿐 아니라 1894년 동학농민운동 궐기가 있었던 곳이며 또 1929년 광주 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난 곳으로, 외세와 압제에 굴하지 않는 뚜렷한 의기(義氣)를 보여준 곳이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펼친 이 고장의 대단한 면모를 보여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