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의 참된 의미 본문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의 참된 의미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예레미야 33:3은 우리나라 성도들에게 손꼽히는 암송 구절입니다. 성도들이 이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성경 구절은 중요한 부분에서 오해받고 오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르짖으라”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라(קָרָא)입니다. 카라(קָרָא)는 ‘부르다’, ‘선포하다’, ‘소환하다’, ‘읽다’ 등을 뜻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부르짖는다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모두 카라(קָרָא)가 아니라 자아크(זַעַק) 혹은 차아크(צָעַק)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카라(קָרָא)는 114번 나오는데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고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실 때,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물을 바다라 부르실 때 카라(קָרָא)를 사용했습니다. 또 창세기 1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도시를 바벨이라고 부르셨을 때도 사용했습니다. 또 창세기 16장에서 하갈이 낳을 아들을 이스마엘이라고 하라고 하실 때와 19장에서 사라가 낳을 아들을 이삭이라고 하라고 하실 때도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상의 용례에서 카라(קָרָא)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게 이름을 붙일 때 혹은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 사용된 것을 봅니다. 특히 레위기 1:1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카라(קָרָא)가 쓰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소리높여 부르짖을 상황은 아닙니다.
영어 성경 KJV, NIV, NASB, MSG, GNT 등은 모두 카라(קָרָא)를 cry out이 아닌 call(부른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은 대부분이 ‘부르짖으라’로 번역되어 있지만 새번역성경과 공동번역성경은 ‘불러라’로 번역했고 현대어성경은 ‘의지하여라’로 의역했는데 이는 본문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에서 2절을 정독한 후 3절을 보면 “내게 부르짖으라”보다 “나를 부르라”가 קְרָא אֵלַי의 옳은 번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나를 부르라(קְרָא אֵלַי)’라고 하신 것은 예레미아에게 사람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럴 때 네가 모르는 비밀을 알게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계획을 알리셨듯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구원 계획을 설명하셨듯이, 요한에게 장차 될 일을 보이셨듯이 하겠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카라(קָרָא)가 부르라는 뜻이라고 해도 부르짖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부르는 대신 부르짖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르는 대신에 ‘내가’ 부르짖는 것에 주력하면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을 내 노력 혹은 수고의 결과로 돌리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는 마치 모세가 물을 내라고 반석에게 명령하는 대신 반석을 지팡이로 친 것과 비슷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비성경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소리를 높여 간절히 기도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교회는 한마음으로 소리를 높여 기도했고 그 기도가 끝났을 때 그곳이 진동했고 무리가 성령이 충만했으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소리 높여 기도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다만 예레미야 33:3의 본래 뜻이 부르짖는 사람의 행위보다 부르는 대상이신 하나님의 언약과 자비하심에 달렸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언약과 그의 자비하심에 달린 것이지 사람의 행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큰 소리를 내며 자기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며 미친 듯이 떠들었으나 바알은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대상이 잘못되었을 때는 어떤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도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는 말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에 주신 언약을 의지하여 여호와를 불렀을 때 여호와께서는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피를 흘리며 미친 듯이 소리치기보다 언약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간절히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응답은 인간의 행위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달렸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언약 백성의 올바른 마음가짐입니다.
최광희 목사, 신학박사, 17개광역시도 악법대응본부 사무총장
'성경과 영성신앙 > 복음과 구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묵상 24. 02. 27 (마가복음 6: 45-56.) (1) | 2024.02.27 |
---|---|
천국열쇠 (0) | 2024.01.22 |
하나님의 말씀, 쉐마, 로고스, 레마에대하여 (1) | 2023.10.24 |
마라나타와 샬롬의 뜻 (0) | 2023.09.07 |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타이밍 (0) | 202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