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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 Kundalini 본문

배움과 깨달음/역사와 철학

쿤달리니 Kundalini

柏道 2022. 12. 9. 11:46

쿤달리니 Kundal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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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dalini Symbool.jpg

 

쿤달리니(산스크리트어: कुण्डलिनी Kuṇḍalinī)는 인간 안에 잠재된 우주 에너지이다. 이것은 생명과 영혼의 근원이며, 이것이 있으므로 살고 없어지면 죽는다.[1] 이것을 잠에서 깨우는 자[2]는 초인이 될 수 있고 못 깨우는 자는 속인으로 머문다. 산스크리트어인 쿤달리니는 '똘똘 감겨진 것'을 의미한다. 감겨있는 쿤달리니는 모든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 속에 잠재된 형태로 존재하는 여성적인 에너지다. 각 개인의 쿤달리니 에너지는 일생 동안 자신속에 잠재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3]

 

마음(Chitta, 의식)은 계속 정보가 주어지면 그 진화가 방해를 받는다. 그러나 감각에 의한 정보를 차단해 버리면 마음은 순식간에 진화한다. 다시말해 눈, , , , 입 등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로부터 마음을 분리시키면 마음은 독자성(獨自性)을 경험하게 된다.[4]

 

쿤달리니 각성의 예[원본 편집]

 

고피크리슈나[원본 편집]

 

갑자기 폭포수와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의 척추를 거쳐 뇌속으로 투명한 액체와 같은 빛의 흐름을 느꼈다ㆍㆍㆍㆍ 그 빛은 점점 밝아지고 그 소리도 점점 커졌다. 내 몸이 흔들리더니 이어서 내가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느꼈고, 한 무리의 빛으로 완전히 감싸졌다.

 

고조된 흥분이 거의 쉬지 않아서 발작적인 우울증이 뒤따라 일어났다. 이러한 영향이 너무나 강력해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나는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나는 때때로 울지 않으려고 내 입을 막았고,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이상한 행동이라도 할까봐 혼자서 방에 있었다ㆍㆍㆍㆍ 언제나 밤새 한잠도 못 잔 다음날 아침에는 언제나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났다. 이미 만신창이 된 몸에는 새로운 합병증이 생겼고, 마음은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더욱 불안해졌다. 나는 이러한 증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낮을 견디고 나면, 나는 또 더 큰 괴로운 밤을 맞을 준비를 해야했다. 고피크리슈나의 이러한 고통과 위기는 그의 육체와 정신이 쿤달리니가 활동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하타 요가나 쿤달리니 각성을 위한 요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많은 고통과 위기를 맞이했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그의 쿤달리니 체험에 관한 자서전은 이러한 위기를 영웅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내용으로 기술하였다. 물론 그는 이 쿤달리니 각성에 성공해서 의식은 물론 신경조직까지도 바뀐 상태로 인생을 마쳤다. [5]

 

은곡[6][원본 편집]

 

과거 수행의 부작용으로 구안와사 및 연하장애가 발생하였는데 여러 병원을 방문했지만 의학적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서 단지 무념무상으로 수행을 하면서 건강의 회복을 기대하였고 그 후 쿤달리니를 각성하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정수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있었고 그 날 밤부터 온 몸이 뜨겁지만 뜨겁지 않은 느낌과 함께 몸 속의 장기와 신경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체험을 하였다. 보름 이상 잠이 오지 않았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고 이 때부터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실제로 구안와사도 회복되었다.

 

이 후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신체 부위에 마치 소용돌이와 같이 수렴되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기운의 흐름이 느껴졌으며 그 부위가 회복되면 이러한 기운의 흐름이 점차적으로 약해지고 사라지며 수렴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체험은 단시간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지속되었다. 쿤달리니를 각성한 당시에는 쿤달리니라는 말을 알지 못했지만 훗날 이 체험을 쿤달리니 각성이라고 부른다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쿤달리니 각성의 수행법은 상당히 위험하므로 반드시 이를 경험하고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지식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꼬리뼈를 자극하는 방식의 수행법과 다르게 쿤달리니를 각성하였고 힌두교적인 관점보다는 불교적인 관점에서 이를 포섭하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수돌 이영일[원본 편집]

 

강렬한 호흡이나 열정만으로는 이 에너지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이다와 삥갈라 나디를 제어할 수 있는 수련자에 의해서만 수슘나 나디 수련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또한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그것이 자연적으로 몸과 마음을 재구성하게 되는데, 이때 아나하따(마음)가 완전히 열려서 심리적으로 모든 가능성의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즉 하타요가 수련을 완성하는 토대는 쿤달리니와 아나하따의 열림입니다.

쿤달리니에 의해서 정신적인 차원의 대전환이 가능한 반면, 나디를 제어하는 원리를 모르는 수행자는 자신을 상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좌법으로서 아사나의 원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강렬한 쿤달리니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나디 즉 경락이라고 할 수 있는 기의 흐름 노선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양의학의 원리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나디(경락)체계에 대한 연구와 체험은 고대 요가수행자들이 어떻게 요가 수행을 하였을 지를 가늠할 수 있는 토대입니다. 동양의 경맥과 인도의 나디/차크라에 대한 체험을 통해서 인체는 새장과 같다는 우빠니샤드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새장과 그 속에 갇혀있는 새와 새알은 인간의 실존을 드러내는 고대 현자들의 매우 적절한 비유입니다. 자유롭게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쿤달리니는 알속에서 깨어나서 새장을 벗어난(moksa) 아트만입니다.

수슘나 나디 수련 단계에 이르면 명상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히 라자요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 단계는 새로운 인식체계를 가져오기 때문에 초월적 인식으로 여겨집니다. 정신의 새로운 대전환점을 만듭니다. 수슘나는 가슴에서 머리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며 물라다라에서 척주를 따라 머리에 이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단전과 임독맥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는 수슘나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슴의 무한한 확장에 기초한 쿤달리니 수련의 경험은 존재 자체에 대한 변화와 새로운 자각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더욱 명확한 존재의 현상을 확인시켜줍니다.

육체 안에 진동하는 미세한 몸의 전체성에 대한 자각이 쿤달리니 수련 과정에서 병행될 수 있어야 합니다. 쿤달리니는 존재의 전체성에 대한 자각으로서, 체내 모든 열기의 응집체입니다. 하타요가 문헌들은 뜨거운 열이 몸의 중심으로 몰입하면 체내 생명 에너지는 그 열기를 따라서 강렬하게 융합하고 물라다라짜끄라 위에서 쿤달리니를 형성할 수 있는 수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쿤달리니 요가 수련을 통한 삼매의 체험 과정

1. 복부에 뜨거운 열기(소화의 불)가 모여서 복부 중심 내부로 들어가면 수슘나의 입구를 열고,

2. 뇌부 중심(송과체)에 이른 그 기운에 의해 마음이 그곳에 집중되면,

3. 복부 좌우의 충맥(이다와 삥갈라)이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4. 좌우맥은 전면의 모든 cakra로 융합되어 몸의 중심으로 몰입된다.

5. 복부에 충만한 精氣와 함께 체내의 모든 쁘라나가 수슘나로 몰입되어,

6. 미간에서 영롱한 빛이 일어나며,

7. 이 빛이 지속되어 원만하게 방사되면서 무아의 상태에 이르는데.

8. 그때는 오로지 ananda(환희)만이 존재한다.

 

 

우리 몸은 가장 쉽게 인지 가능한 전체성의 가장 확실한 단위다. 그래서 그것을 소우주라고 한다!

쿤달리니는 정신과 물질이 융합된 사이코소마틱(Psychosomatic) 존재다. 그것은 소우주로서 몸이 하나의 전체성을 이루고 있다는 직접적인 자각을 통해서 분리된 개체를 전체성으로 안내한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하나로 이어진 생명에너지의 흐름이 동시에 하나로 움직이는 순간 우리는 전체성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쿤달리니 각성의 진정한 의미를 자각하게 된다. 하타요가쁘라디삐까에서 모든 나디의 근원은 하복부의 깐다라고 하며, 우빠니샤드에서는 가슴 중심이라고 한다. 또한 아래를 향한 천개의 연꽃잎인 정수리의 사하스라라짜끄라는 전체성 자체를 의미한다.

 

이들은 모두 쿤달리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 곳은 각기 다른 의식의 층위를 대표하기도 하며, 모두 나디(경맥)의 전체성이 발현되는 곳들이다.

 

하복부에서 일어나는 진동만으로 쿤달리니 각성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성에 대한 자각을 동반하지 않는 쿤달리니는 자만심만 키운다. 부분적인 현상으로 쿤달리니 각성을 이야기한다면 이미 어긋난 길이다. 자기 자신 조차도 부분들로 인식하니, 거기서 에고와 분별심이 시작된다.

 

쿤달리니나 단전호흡이 부작용과 자주 함께 언급되는데, 전체성에 대한 자각이 없는 쿤달리니 수련이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다.

 

전체성으로서 인격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 에너지는 스스로를 과대하게 포장하는 도구일 뿐이다.

 

쿤달리니는 그 자체로 전체성의 발현이다.

 

이태영[원본 편집]

 

필자의 미천한 체험으로 보면 위와 같은 체험 이외에 다음과 같은 경험도 있다. 하체가 마르고, 몸 특히 하체가 가볍게 느껴지고, 때로는 강렬한 성욕을 느끼고, 성기가 극단적으로 작아지고, 성욕이 사라지고, 머리속이 액체 같은 것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 있고, 특히 이마 쪽에 모여지는 불쾌감 또는 빛이 보이고, 척추와 머리속이 빛으로 가득차고, 척추가 빛의 기둥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우주의 중심에 선 기둥처럼 느껴지고, 아름다운 종소리가 며칠씩 들물이 나도록 감사하고 삶이 행복하다는 느낌들이 일어난다.

 

물론 이러한 체험은 쿤달리니가 각성됐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은 항상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이렇게 좋은 경험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는 이러한 경험은 사라진다. 때로는 일상으로 돌아오면 약간의 상기증을 동반한 소화장애, 변비, 불면증, 초조감, 히스테리 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과거보다는 훨씬 좋아진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특히 인생관의 확립과 윤리적인 마음은 전적으로 쿤달리니 각성에 의해서 확립된다. [5]

 

자운선가[원본 편집]

쿤달리니는 자기만이 깨울 수 있다.[7]

 

인피니티[원본 편집]

자기이상 없습니다. 최고의 스승도 여기 있고, 최고의 지존도 여기있습니다.[8]

 

ksjs[원본 편집]

소주천(小周天)과 쿤달리니의 상승[9]

 

김득주[원본 편집]

자율신경 조절법[10]

쿤달리니 관련 추천도서[11][원본 편집]

 

쿤달리니란 무엇인가?[원본 편집]

 

쿤달리니란 무엇인가[3]

 

한국요가연수원 추천도서[원본 편집]

 

한국요가연수원[12]

 

불멸의 의식[원본 편집]

 

불멸의 의식[13]

 

쿤달리니 요가[원본 편집]

 

쿤달리니 요가[14]

 

천안요가 추천도서[원본 편집]

 

천안요가 추천도서[15]

 

하타요가[원본 편집]

 

하타요가[16]

 

쿤달리니 각성 누구나 할 수 있다[원본 편집]

호흡에 의한 방법 (프라나야마 즉 호흡에 의한 방법) 요가에 의한 방법 (하타요가나 크리야요가 등 요가 행법) 쿤달리니 각성 누구나 할 수 있다[17]

 

쿤달리니 요가[원본 편집]

 

쿤달리니 요가[14]

 

쿤달리니의 각성 방법[18][원본 편집]

 

탄생과 더불어서 오는 것[원본 편집]

 

일반인들은 이런 것을 통해 얻을 수 없다.

 

만트라를 통해 각성시키는 방법[원본 편집]

 

지나가는 일인.무명인.

 

꼬리뼈 하단부 혹은 꼬리뼈 시작점에 마음을 고정하고 최소 3시간을 아..........옴을 암송한다. 옴 암송이 제일 간단하고 효과도 매우 빠르며 심령계에서 가장 빨리 알아들을 수 있는 진동수를 내포한다. 목소리는 목에 완전히 힘을 뺀 상태여야하고 일주일 이상된 날부터는 진동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동이 확실해진다면 열이나게 될 것이다. 몇 번의 열감을 느끼는 중간 혹은 처음이라도 쿤달리니는 각성된다. 그러나 쿤달리니가 각성된 것은 끝이아닌 다른 차원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보통 32시간정도의 삼매를 예정하지 않을 바에는 시도하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쿤달리니가 각성되어도 별 효험이 없을 것이다. 아 이런 것이 있구나 하는 정도의 경험과 확장된 성취감과 행복 만족의 지복정도 느끼리라. 32시간은 최소시간이니 한 시간이나 두시간정도의 명상으로는 제대로 된 깨달음을 획득하기에는 부족하리라. 140여개의 차크라 중 40여개 이상의 차크라의 기능을 할 때 비로소 초인의 감각이 가능해진다.(다른 차원과 연결되어있는 현실과 초자연적 존재로 변환된 자아를 경험한다.). 차크라 7, 혹은 아즈나 각성이 있다 해도 지극히 초보적인 기능일 뿐 이마저도 제대로 작동하려면 적어도 3시간의 삼매에 있어야 가능하리라. 만트라는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님을 알고 단지 열심히 암송하여야 한다. 구루나 깨달은 자가 마주보고 쿤달리니를 직접 깨워주는 방법이 있으나 먼저 모든 상황에의 부동심을 획득하여야 부작용을 면할 수 있다. 실제 인도 구루들은 쿤달리니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하면서 가장 빠른 길이며 가장 큰 이익이 있다고 하였다. 요가나 호흡 그리고 만트라 염송등의 방법으로 쿤달리니 각성을 처음 경험한 사람이라면 다시 언제라도 쿤달리니는 다시 깨울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알았겠는가! 온몸을 서서히 덮을만한 거대한 쿤달리니 본체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마음의 열정은 선신으로 하여금 도움을 필히 받는데 고마운 표시(기도)는 확실히 하여야한다. 결코 이 세상은 물리적 작용만 있는 것이 아닌 심령계도 영령계 신령계도 같이 작용함을 스스로 깨닫기를 서원한다.

 

히말라야 칼라쉬 호수나 티벳 사원에는 에너지 position, energyball, 선신의 도움으로 번개 같은 고압의 전기를 몇 시간씩 느끼며 에너지가 증폭되는 성스러운 발전을 이루었다고도 하니 꼭 가볼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