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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 네빌고다드의 부활] 8. 우리를 비추는 거울을 넘어서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네빌 고다드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 네빌고다드의 부활] 8. 우리를 비추는 거울을 넘어서

柏道 2022. 9. 17. 06:01


네빌 고다드의 부활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 네빌고다드의 부활] 8. 우리를 비추는 거울을 넘어서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로들을 거친 후에 우리의 뇌가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주변의 환경들과 직접 결속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은 대개 감각이 주는 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것들이 제한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감각을 넘어서 마음속에 품은 상상들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마음속에 충분히 자리 잡게 하면 '감각이 시선을 머물게 한' 것들보다 더 실제 같이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인간은 환경에 그대로 영향을 받기만 하는 자동 기계가 되어, 환경을 조금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상상력의 본질인 인간은 뇌에 종속되어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닌 그것의 주인입니다. 외부 세상에서 인식되는 것들에 만족하며 살 필요가 없이 감각으로 인지되는 것들을 넘어 관념적인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계 같이 있는 그대로 반응하기만 하는 감각의 체계를 넘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발견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구조를 바꾼다면 환경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상상의 주체로서, 인간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의식은 상상의 선봉대에 서 있으면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감각에 이끌려 외부를 향해 뻗어나가거나, 아니면 '우리가 기쁨을 느낄 때' 감각을 넘어 내부로 인도되어서는 소망이 성취되는 느낌 속으로 들어갑니다.

감각기관을 통한 인식에서 관념적인 인식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면 보이는 것들로부터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실제로 그곳에 있고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면 우리가 보고 듣고 행동할 만한 것들을, 가능한 생생하게 상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해 걷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걷는다.

눈에 의지해 걷는다면 보이는 것들로 우리의 길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에 의지해서 걷는다면 상상 속에서 보고 있는 세상과 행동들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

우리가 상상의 눈을 통해 인식하지 않는다면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게 됩니다. 두 가지 마음의 태도 모두 가능합니다. 상상 속에서 만든 것들을 현실로 불러낼 수 있는, '창조력이 있는 상상의 힘'을 쓰든지, 아니면 상상의 힘은 내버려 둔 채 있는 그대로만을 비추면서 '시선이 머문 곳'에 의지하든가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인간 안에는 생명의 원리와 죽음의 원리가 모두 있습니다. 하나는 넓은 상상의 바다로부터 상상의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실이라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형상' 으로부터 그 모습 그대로 상상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입니다. 전자는 창조를 하고, 후자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유지할 뿐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길을 선택하거나 눈에 보이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상상의 바다로부터 끄집어 낼 수 있는 범위만큼, 그는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그대로를 나타내기만 하는 '감각의 세상을 넘어 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삶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현실이라는 그럴 듯한 모습은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줄 수 있는 '상상의 시선'을 뺏어버리고 현실이 비추는 것만을 보게 할 뿐 그 안에 있는 진실은 삼켜버립니다.

'상상의 시선'은 그 시선을 뺏기지만 않는다면 현실이라는 거울이 비추는 것을 넘어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

'결과를 생각하는 상태에서 결과로부터 생각하는 상태'로 옮겨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결과로부터 생각하는 것이고, 다시 말해 그 결과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런 경험은 주체와 객체를 하나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내려놓는 것. 이것이 바로 비결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상태와 사랑에 빠져 그 상태에 우리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현재의 상태는 물러가고 우리가 원하는 상태 안에서 살게 됩니다. 상상력이 그 상태의 생명 위에 뿌리를 내리면 그것의 생명이 피어나게끔 상상력 그 자신을 내어줍니다.
믿음에 사랑이 더해지면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지도 않는 것에 우리를 내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대가 그것을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결코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니." 그리고 원하는 상태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살아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으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은 창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셔서 믿음으로 인간이 되셨고, 이런 자아를 내려놓는 행동이 창조물을 창조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하나님의 모방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우리에게 내려놓으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떤 상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그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상상의 초점을 옮겨갈 수도 있고, 지금은 단지 소망에 불과한 것이 마음을 가득 채운 시야가 되어 그렇게 보고 있는 것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상상의 초점이 그렇게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상상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을 감각의 세상에 창조합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외부 세상을 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상상의 힘을 의지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것이 창조적인 과정에 맞추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상식은 우리가 단단하고 감각적인 세상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단한 세상처럼 보이는 것들을 모두 상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거실에 앉아서 런던에 있는 딸의 거실에 제가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제 주변을 딸의 거실로 채워나갔죠. 딸이 살고 있는 거실의 모습은 이미 잘 알고 있었거든요. 거의 완벽해지자 제가 그곳에 실재로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딸은 벽난로 옆에 서 있었는데 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잠시 후 저와 마주하게 되었고 서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딸은 놀라고 당황했고, 저 역시 당황스러웠는데 그러자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제 거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닷새 후에 딸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는 내가 상상 속의 영행을 시도한 날 쓰인 편지였습니다. 딸은 마치 제가 실제로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거실에서 저를 봤다고 했습니다. 너무나도 당황했었는데 정신을 차려 말을 걸려든 차에 제 모습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방문 시간은 바로 그 정신적인 여행을 시작한 시간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인간은 단지 상상력입니다. 그렇기에 상상 속에서 우리가 있는 곳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상상력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활동하고 그 인식하고 있는 상태를 통해 활동합니다. 진지하게 의식의 이동을 실험해 본다면 그곳에서 우리는 믿고 있는 것을 넘어선 가능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의식의 변화가 아주 조금이라도 일어났다면 우리는 그 미세하게 변화된 시선에서 세상을 다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대 자신을 시험해보라.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우리는 영적인 유산을 받기 위해서 '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오직 상상력이고 하느님은 인간일지니." 이 이야기 속의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여러분 자신을 시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소망이 성취된 결실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를 비추고 있는 거울을 넘어, 소망이 성취된 것을 나타내는 행동을 상상 속에서 시작해야만 합니다.

네빌 고다드의 부활

저자네빌 고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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