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카발라 본문

천지인 공부/카발라

카발라

柏道 2021. 5. 28. 06:01

카발라

다음백과
카발라

카발라는 신비스러운 경험에 내재해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내자가 교리와 의식을 전수하여 준다는 점에서 구전 전승이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유대교의 기본 교리였지만, 카발라는 하느님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카발라의 기원은 메르카바 신비주의에서 시작되었다. 메르카바 신비주의는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번성했는데, 신비적 명상을 통해 하느님의 보좌를 보는 황홀경 체험을 강조했다. 카발라에 관한 주요문헌인 12세기의 <세페르 하 바히르>는 유대교의 비의적 신비주의의 발전과 유대교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10가지 숫자를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도구로 해석했고, 영혼의 환생 같은 관념들을 유대교에 도입했으며, 폭넓은 신비적 상징주의를 통해 카발라의 기초를 확고히 했다.

12세기에 나타나 수세기 동안 유행했다. 카발라는 신비스러운 경험에 내재해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내자가 교리와 의식을 전수하여 준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구전 전승이다. 비의적 하느님이 모세와 아담에게 전해주었으나 성문화되지 않은 토라(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비밀 지식이라는 점에서 카발라 역시 '전승'이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유대교의 기본적 교리였지만, 카발라는 하느님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하느님에게 다가가려는 자세를 범신론적이고 이단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위험시했지만, 어쨌든 카발라는 유대교에 종교적인 중요성을 부여했다.

카발라의 뿌리는 메르카바 신비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르카바 신비주의는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번성했는데, 신비적 명상을 통해 예언자 에제키엘이 본 '4륜 마차'(메르카바)나 하느님의 보좌를 보는 황홀경 체험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마술과 우주론에 관한 최초의 유대교 문헌인 〈세페르예치라 Sefer Yetzira〉는 3~6세기 사이에 나타났는데, 이 책은 창조를 창조주 하느님의 10가지 신성한 숫자인 세피로트와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와 관련된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했다(→ 세페르예치라). 이들을 모두 합하여 '32가지의 은밀한 지혜의 길'이라고 했다. 초기 카발라에 관한 주요문헌은 12세기의 〈세페르 하 바히르 Sefer habahir〉인데, 이 책은 유대교의 비의적 신비주의의 발전과 유대교 전반에 심대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페르 하 바히르〉). 이 책은 10가지 숫자를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도구로 해석했고, 영혼의 환생 같은 관념들을 유대교에 도입했으며, 폭넓은 신비적 상징주의를 통하여 카발라의 기초를 확고히 했다.

세피로트(Sefirot)
세피로트(Sefirot) 카발라에서 하느님의 10가지 신성한 숫자, 근원에서 뻗어 나온 나무의 모습을 형성하고 각 가지는 신의 드러난 힘을 의미한다.

ⓒ Eliyak / wikipedia | Public Domain

스페인의 카발라
13세기에 〈세페르 하 테무나 Serfer ha-temuna〉는 스페인에서 씌어졌는데, 이것은 우주순환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세페르 하 테무나〉). 각 순환기마다 하느님의 속성에 따라 토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유대교는 불변의 진리를 담은 종교가 아니라 각 순환기, 즉 시대마다 토라가 달라지는 종교로 제시된다. 또한 스페인에서는 〈세페르 하 조하르 Sefer ha-zohar〉를 탄생시켰는데, 이 책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토라에 버금 가는 신성함을 가진 책으로 인정되었다(→ 〈세페르 하 조하르〉).

이 책에는 창조의 신비와 신성한 10가지 숫자들의 기능을 다루고 있으며, 악·구원·영혼에 관한 신비로운 사유가 나타나 있다.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메시아 대망과 종말론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카발라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루리아의 카발라
16세기 중엽 카발라의 최대 중심지는 갈릴리의 사페드로, 이곳은 카발라주의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의 하나인 이사크 벤 솔로몬 루리아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카발라를 연구하는 현대 유대인 학자 게르솜 게르하르트 숄렘에 따르면, 루리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세페르 하 조하르〉 뿐이다. 루리아의 카발라는 신의 빛이 '물러남'(tzimtzum)으로써 최초로 우주가 창조된다는 것, 빛의 입자들이 물질(qellipot:'껍질들')로 침전된다는 것, 집중적인 신비생활과 끊임없이 악과 투쟁하여 유대인들이 '우주의 회복'(tiqqun)을 얻게 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기본적인 교리를 발전시켰다(→ 되찾음).

루리아의 카발라주의는 17세기 유대인들의 메시아 운동인 샤베타이 운동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18세기에 시작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부 주요 유대인 공동체들 안에서 유행하고 있는 사회·종교 운동인 현대 하시디즘 교리 역시 루리아의 카발라의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