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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柏道 2021. 3. 8. 16:50

 

엔도 슈샤쿠 - 홍성사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소설가로 평가받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새롭게 손질되어 나왔다. 국내 유일의 저작권 계약본인 이번 판에서는 한국어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양장본과 보급판을 함께 내놨으며, 저자 후기와 해설을 첨부했다.

기독교인들이 심하게 박해받았던 17세기 일본. 그런 와중에 많은 사람의 신뢰를 얻으며 선교활동을 펴던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 페레이라의 배교 사실이 알려진다. 확인을 위해 잠복한 제자 로드리고는 수많은 고난과 갈등을 겪고...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을 외면한 채 침묵하고만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내면 묘사를 통해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란 신학적 문제를 조용하지만 가슴 뜨겁게 그려낸다.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재미가 곁들여져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다.

책속에서

책속에서

  •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 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 백지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 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 백지

  • 그렇지만 제게도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밟은 자에게도 밟은 자로서의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제가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억지이고말고요. - 177p

    <... 더보기

    - 내남자그렇지만 제게도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밟은 자에게도 밟은 자로서의 할 말이 있어요. 성화를 제가 즐거워서 밟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밟은 이 발은 아픕니다, 아파요. 나를 약한 자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강한 자 흉내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건 억지이고말고요. - 177p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는 거요.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고통스럽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소. - 294p 접기

    - 내남자

  •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리라 - 미료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밟는 너의 발이 아플 것이니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리라 - 미료

 

 

저자 및 역자소개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지은이)

 

1923년 3월 27일, 도쿄의 스가모(巢鴨)에서 태어났다. 1926년,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전근으로 만주의 다롄으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부모의 불화와 이혼이라는 어두운 체험을 하고, 1933년에 어머니와 함께 일본 고베로 돌아온다. 이때에 가톨릭에 귀의한 어머니를 따라서 니시노미야(西宮)에 있는 슈쿠가와(夙川) 가톨릭교회에 출석하게 된 그는 1935년 6월에 세례를 받는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그 어머니의 말을 따라 자신의 결단 없이 받았던 세례는, 향후 엔도 문학 전체를 결정짓는 근본 체험이 된다. 게이오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 더보기

1923년 3월 27일, 도쿄의 스가모(巢鴨)에서 태어났다. 1926년,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전근으로 만주의 다롄으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부모의 불화와 이혼이라는 어두운 체험을 하고, 1933년에 어머니와 함께 일본 고베로 돌아온다. 이때에 가톨릭에 귀의한 어머니를 따라서 니시노미야(西宮)에 있는 슈쿠가와(夙川) 가톨릭교회에 출석하게 된 그는 1935년 6월에 세례를 받는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그 어머니의 말을 따라 자신의 결단 없이 받았던 세례는, 향후 엔도 문학 전체를 결정짓는 근본 체험이 된다. 게이오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후 1950년부터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현대 프랑스 가톨릭 문학을 전공하던 중 결핵으로 인해 1953년에 귀국한다. 1955년에 『백색인(白い人)』으로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지만 1960년부터 세 번에 걸친 수술과 입원 생활을 하다가 이후 자택에서 요양한다. 그러다 1962년, 스스로를 코리안 산인(狐狸庵 山人)이라고 명명하고 유머에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66년 『침묵』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 1978년 『예수의 생애』로 국제다그함마르셀드상, 1980년 『사무라이』로 노마문예상 등을 받았으며, 특히 『침묵』은 2016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화하여 다시 한뻔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6년 9월 29일, 폐렴에 의한 호흡부전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던 그는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사에 맞닿은 작품 세계와 타자의 고뇌와 연대하고 타인의 슬픔에 대해 공감하려는 자세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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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소설의 흡인력은 이미 비교적 쉽게 획득한 핍진성보다는 사실들의 행간의 맥락, 인물의 내면의 심리의 묘사력에 기대는 바가 크다. 이미 벌어진 일들은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는 독자가 그러한 사태와 상황 속의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전제일 것이다. 시공간의 낙차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러한 내면의 묘사가 가지는 공감의 힘이다.

     

    그러한 면에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배교자들은 비겁해 보이지 않는다. 17세기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 포르투칼 로드리고 신부의 수난의 과정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그의 스승이었던 페레이라 신부가 고문에 굴복해 배교한 과정은 결국 제자인 '나'의 여정에서 비로소 다른 측면에서 이해되고 재조명될 것이다. 기적도 극적인 해피엔딩도 없이 건조하고 어쩌면 외형적으로는 패배의 여정이라 할 만한 그 처절하고 사실적인 선교 과정의 묘사는 실제 가톨릭 신자였던 엔도 슈사쿠와 종교를 공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하고 감동 받을 만한 것이다.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는 우리가 삶에서 청춘일 때 인생에 기대하는 어떤 열정, 이상과 합치하지 않는 생의 간극에서 가지게 되는 회의의 정경에서 흔들리는 대목을 그래도 체현하고 있다. 비겁자 스승의 발자취를 좇으며 그가 결국 깨닫게 되는 것들은 비단 종교적인 것들만이 아니다.

     

    드라마틱한 기적도 신의 응답도 실종된 침묵의 현장에서 고통받으며 순교하는 무고한 신도들 앞에서 무기력하게 성화를 밟고 배교하기를 강요 당하는 고문의 현장에 선 로드리고 신부의 고통의 묘사가 절절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대체 이 머나먼 이국으로 와 응답이 없는 신을 위해 이 생에서도 굶주리고 위정자들에게 핍박받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고문에 몸부림치며 죽어가야 하나, 라는 회의론적 의문은 치열하게 그를 압박한다. 모든 흔들리는 희미한 질문들을 엔도 슈사쿠는 피하지 않는다. 선교라는 미명하에 변형되어 아예 실체조차 불확실한 종교의 변용에 대한 회의도 비록 일본인의 입을 빌렸지만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하나님이 없다면 수없이 바다를 횡단하여 이 작은 불모의 땅에 한 알의 씨를 가져온 자신의 반생은 얼마나 우스꽝스럽단 말인가. 그건 정녕 희극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매미가 울고 있는 한낮, 목이 잘린 애꾸눈 사나이의 인생은 우스꽝스럽다. 헤엄치며 신도들의 작은 배를 쫓은 가르페의 일생도 우스꽝스럽다. 신부는 벽을 향하고 앉아 소리를 내어 웃었다.

    -p.215

    유다처럼 로드리고를 밀고하고 팔아 넘기고 부인하고 도망치지만 끝내 그의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기치지로라는 인물도 어쩐지 눈물겹다. 약한 본성과 엄혹한 상황에 몰려 계속 자신의 신앙을 부정해야 했던 그지만 그럼에도 반복해서 돌아오고 신부 곁을 맴도는 그의 현실은 신앙을 위해 기꺼이 순교하는 용감한 신도들의 모습보다 더 현실적이다. 엔도 슈사쿠의 인물들은 고정적이고 용감하고 이상주의적인 대신 현실적이고 유동적이고 회의하고 모순적이라 우리의 삶과 더 가깝다. 그 모두의 변심과 배교는 그래서 미약한 마침표가 아니다. 수많은 질문들과 실종된 답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취다. 그는 감히 답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채 마친다. 그것은 한계이기도 하고 최대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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