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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한일 본문

배움과 깨달음/좋은책과 글

사랑이 한일

柏道 2021. 3. 8. 16:43

편집장의 선택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 내가 지시하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 (창세기 22장) '생의 이면'을 바라보는 작가, 이승우가 창세기를 인간의 이야기로 다시 썼다. 바치라 말하는 전능하신 신과 바치겠다 말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 이삭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것은 사랑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사랑이 한 일> 97쪽) 가장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제물로 바쳐야 했기에 자기 자신의 몸이 아닌 아닌 아들의 몸을 바쳐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 일의 시작이라면, 이 사건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 맞다. 그렇지만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반복해 말하면 사랑이 이유이므로 납득할 수 있나. 불가해만 남은 텅 빈 자리에 우리가 인간다움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

소돔의 마지막 밤, 자신의 아이와 함께 사막에 버림받은 하갈,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 아브라함, 이삭의 끝없는 허기와 편애, 신의 존재를 인식한 야곱. 이승우는 성경의 빛나는 순간들을 연작 소설의 형태로 묶어 논리의 여백이 없는 단단한 문장으로 인간다움에 대해 묻는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신은 옳지 않습니다." (<하갈의 노래> 89쪽) 아무리 외치고 물어도 들리지 않는 대답. "그렇지만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만 사랑하기가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거예요."(<사랑이 한일> 107쪽) 납득해보려 해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탐식. "법과 도리의 세계에서 사는,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것을 넘어서고 뛰어넘으려고 할 때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허기와 탐식> 148쪽) 계속되는 질문. 답을 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되는 그 물음이 만약 소설이 된다면 꼭 이승우의 이 소설 같을 것이다.

- 소설 MD 김효선 (2020.11.17)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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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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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사십 년 가까운 작가인생을 갈망 너머의 구원에 대한 천착으로 채우며 독보적인 성취를 거두어온 소설가 이승우. 그는 '관념의 토르소'(김윤식),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르 클레지오), '조용하고 진지한 영혼에서 분출된, 감동적이면서 묵직한 소설'(르몽드), '갈리마르 폴리오 시리즈에 오른 최초의 한국소설' 등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수식과 상찬이 전혀 과한 것이 아님을 소설로 인생에 복무함으로써 증명해가고 있다.

한국소설로는 흔치 않은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통찰로 '생의 이면'을 파고든 그가 신작 소설집에서 「창세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삶의 궁극적 물음들을 마주 세운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텍스트로 「창세기」를 다시 읽고 다시 쓴 밀도 높은 작업, 그 가운데 키워드가 되어준 단어 '사랑', 그러므로 이 책은 이승우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이 총동원되었다 할 수 있겠다. 열한번째 소설집이자 첫 연작소설집, <사랑이 한 일>이다.

 

 

목차

소돔의 하룻밤
하갈의 노래
사랑이 한 일
허기와 탐식
야곱의 사다리

해설│무서운 사랑의 미메시스_서영채(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책속에서

 

  • P. 101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 덜 사랑했어야 했다.
    _ 「사랑이 한 일」
    P. 101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 덜 사랑했어야 했다.
    _ 「사랑이 한 일」

  • P. 128 사람에게는 균형을 잡는 재주가 없고 사랑에게는 균형에 대한 감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_ 「허기와 탐식」에서
    P. 128 사람에게는 균형을 잡는 재주가 없고 사랑에게는 균형에 대한 감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_ 「허기와 탐식」에서

  • P. 63 당신의 침묵은 비겁하다. 고통을 위장하지 마라. 고통을 가하는 자가 죄책감을 면제받기 위해 부리는 고통의 위장만큼 가증스러운 것이 있을까. 그녀의 마음속에서 말들이 회오리치며 솟구쳤다. 당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할 수 없어요. 이건 옳지 않아요.
    _ 「하갈의 노래」에서
    P. 63 당신의 침묵은 비겁하다. 고통을 위장하지 마라. 고통을 가하는 자가 죄책감을 면제받기 위해 부리는 고통의 위장만큼 가증스러운 것이 있을까. 그녀의 마음속에서 말들이 회오리치며 솟구쳤다. 당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할 수 없어요. 이건 옳지 않아요.
    _ 「하갈의 노래」에서

  • P. 21 쉽게 사로잡힐 수 없는 무시무시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쉽게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행동을 쉽게 한다. 이념과 종교는 종종 인간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에 동기를 제공하는 신념 체계로 작동한다. 이때 이 이념과 종교가 제공하는 신념은 일종의 알리바이다.
    _ 「소돔의 하룻밤」에서
    P. 21 쉽게 사로잡힐 수 없는 무시무시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쉽게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행동을 쉽게 한다. 이념과 종교는 종종 인간의 비정상적인 행동들에 동기를 제공하는 신념 체계로 작동한다. 이때 이 이념과 종교가 제공하는 신념은 일종의 알리바이다.
    _ 「소돔의 하룻밤」에서

  • P. 24 “제발 이러지들 말게. 이건 악한 짓일세.” 악한 짓은 행위자가 그 행위의 악함을 인지하든 하지 않든 악하다. 악한 짓은 그 행위를 유도하는 동기가 그럴듯하든 그럴듯하지 않든 악하다. 악한 짓은 짓의 악함이다.
    _ 「소돔의 하룻밤」에서
    P. 24 “제발 이러지들 말게. 이건 악한 짓일세.” 악한 짓은 행위자가 그 행위의 악함을 인지하든 하지 않든 악하다. 악한 짓은 그 행위를 유도하는 동기가 그럴듯하든 그럴듯하지 않든 악하다. 악한 짓은 짓의 악함이다.
    _ 「소돔의 하룻밤」에서

  • P. 130~131 이런 사랑의 속성을 감안하면 공평하게 사랑한다는 사람의 말은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하고 항의하거나 왜 나를 누구처럼, 누구만큼, 누구보다 사랑하지 않나요? 하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사랑을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혈육이나 법이나 제도나 관습이 ... 더보기

    P. 130~131 이런 사랑의 속성을 감안하면 공평하게 사랑한다는 사람의 말은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하고 항의하거나 왜 나를 누구처럼, 누구만큼, 누구보다 사랑하지 않나요? 하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사랑을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혈육이나 법이나 제도나 관습이 의무나 역할을 강제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자발적인 것만이 사랑이다. 자발성은 매끈하거나 일률적이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매끈하고 일률적인 것은 비자발적인 것, 부과된 것, 만들어진 것, 강요된 것이다.
    _ 「허기와 탐식」에서 접기

  • P. 190 그러나 밤하늘의 별이나 드넓은 광야의 깎아지른 벼랑에서 느끼곤 했던 신성함과는 달랐다. 그가 느끼고 있는 신성함은 일종의 숨결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거기 있는 것 같은. 말하자면 생명. 자연이 아니라 인격. 두려움과 떨림이 그의 온 감각과 신경을 지배했다. 그는 놀라서 눈을 떴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는 소리질렀다. 그는 소리질... 더보기

    P. 190 그러나 밤하늘의 별이나 드넓은 광야의 깎아지른 벼랑에서 느끼곤 했던 신성함과는 달랐다. 그가 느끼고 있는 신성함은 일종의 숨결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거기 있는 것 같은. 말하자면 생명. 자연이 아니라 인격. 두려움과 떨림이 그의 온 감각과 신경을 지배했다. 그는 놀라서 눈을 떴다. 이것이 무엇인가! 그는 소리질렀다. 그는 소리질렀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목에 갇혀 나오지 않았다.
    _ 「야곱의 사다리」에서 접기

  • P. 199 일어난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모든 일에는 처음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여건이 무르익어 때가 되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 아주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 땅의 의지를 뛰어넘는 하늘의 작용이 있는 것처럼 바라지 않아도 일어나고 꿈꾸지 않아도 나타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_ 「야곱의... 더보기

    P. 199 일어난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모든 일에는 처음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여건이 무르익어 때가 되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 아주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 땅의 의지를 뛰어넘는 하늘의 작용이 있는 것처럼 바라지 않아도 일어나고 꿈꾸지 않아도 나타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_ 「야곱의 사다리」에서 접기

  • P. 145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고뇌도 이해했다. 긴 질문과 사색을 통해 아버지가 자기에게 어떤 일을 했든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그의 안에 자리했다. 그 일이 사랑이 없거나 부족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랑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긴 것임을 충분하고 온전하게 이해했다. 그런데도 그 ... 더보기

    P. 145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고뇌도 이해했다. 긴 질문과 사색을 통해 아버지가 자기에게 어떤 일을 했든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그의 안에 자리했다. 그 일이 사랑이 없거나 부족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랑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긴 것임을 충분하고 온전하게 이해했다. 그런데도 그 질문은 그의 충분하고 온전한 이해의 막을 찢고 계속 솟아올랐다.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어떤 충분하고 온전한 이해도 충분하지 않고 온전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묶던 아버지, 자기를 칼로 내리치던 아버지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접기

  • 진짜이건너무너무감명깊게본책입니다 - 김미래진짜이건너무너무감명깊게본책입니다 - 김미래

  • P. 25 그들은 그들이 하려고 하는 악한 짓에 대한 의식이 없었고, 롯은 그 사실을 지적했다. 롯이 의도한 것은 구별하는 것이었다. 악과 악이 아닌 것,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나누는 것이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섬세해지는 것이었다. 잠든 그들의 윤리적 감각을 깨우는 것이었다. 윤리적 감각은 무분별,무차별의 함몰 상태를... 더보기

    - 다락방P. 25 그들은 그들이 하려고 하는 악한 짓에 대한 의식이 없었고, 롯은 그 사실을 지적했다. 롯이 의도한 것은 구별하는 것이었다. 악과 악이 아닌 것,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나누는 것이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섬세해지는 것이었다. 잠든 그들의 윤리적 감각을 깨우는 것이었다. 윤리적 감각은 무분별,무차별의 함몰 상태를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똑바른지 휘어졌는지, 명중했는지 빗나갔는지, 선 안에 있는지 선 밖에 있는지 묻고 따지는 것에서 비롯한다. 롯은 몰려온 소돔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무엇이 악한 짓인지 아닌지, 선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구별해내라. 차이를 찾아내라. 접기

    - 다락방

  • P. 32 롯은 그 도시에 매혹되어 이십 년 넘게 그곳에 살았지만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 도시 사람들이 그를 향해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라고 비난한 이유이다. - 다락방P. 32 롯은 그 도시에 매혹되어 이십 년 넘게 그곳에 살았지만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 도시 사람들이 그를 향해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라고 비난한 이유이다. - 다락방

  • P. 40 갑자기 눈이 어두워져 앞을 볼 수 없게 된 무리는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볼 수 있을 때는 바로 앞에 있던 대문이 볼 수 없게 되자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었다. 대문은 멀어지고 급기야 사라졌다. 사라졌으므로 그들은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때리며 엉겨붙어 난장판을 벌였다. 누가 때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든 때렸다... 더보기

    - 다락방P. 40 갑자기 눈이 어두워져 앞을 볼 수 없게 된 무리는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볼 수 있을 때는 바로 앞에 있던 대문이 볼 수 없게 되자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었다. 대문은 멀어지고 급기야 사라졌다. 사라졌으므로 그들은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때리며 엉겨붙어 난장판을 벌였다. 누가 때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든 때렸다. 대문이 부서질 때 그들이 대문 안의 나그네들에게 하려고 했던 일을 대문 밖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행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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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 52 그들에게는 두 가지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들은 소돔을 멸망시켜야 하고, 동시에 멸망하는 그 도시에서 롯의 가족을 구해내야 한다. 그들 가족을 구해내기 전에는 도시를 멸망시킬 수 없다. 멸망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 두 가지 임무는 실은 한 가지 사건의 양면이다. 물에 잠긴 곳에서만 물에서 건져지는 사람이 생기는 이치이다. ... 더보기

    - 다락방P. 52 그들에게는 두 가지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들은 소돔을 멸망시켜야 하고, 동시에 멸망하는 그 도시에서 롯의 가족을 구해내야 한다. 그들 가족을 구해내기 전에는 도시를 멸망시킬 수 없다. 멸망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 두 가지 임무는 실은 한 가지 사건의 양면이다. 물에 잠긴 곳에서만 물에서 건져지는 사람이 생기는 이치이다. 물에 빠지지 않은 사람을 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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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 61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내보일 수 없고 있으면서 없는 것처럼 감출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잠깐 위장할 수는 있지만 오래 속일 수 없고, 한때 감출 수는 있지만 결국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아들을 향한 눈빛과 미소와 말투를 통해 그는 늦게 얻은 외아들에 대한 속깊은 사랑을 어쩔 수 없... 더보기

    - 다락방P. 61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내보일 수 없고 있으면서 없는 것처럼 감출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잠깐 위장할 수는 있지만 오래 속일 수 없고, 한때 감출 수는 있지만 결국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아들을 향한 눈빛과 미소와 말투를 통해 그는 늦게 얻은 외아들에 대한 속깊은 사랑을 어쩔 수 없이 자주 노출했다. 그녀를 대하는 눈빛과 미소와 말투에서 언뜻언뜻 느껴졌던 것이 아들을 보는 눈빛과 미소와 말투에서는 자주자주 느껴졌다. 그것은 그녀의 은밀한 기쁨이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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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 114 신은, 너의 아들, 너의 사랑하는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는 걸 보니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이제 확실히 알겠다, 라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에게 한 말을 나도 듣는다. 이 말은 놀랍다. 그분이 요구하셨으니 그분이 마련하실테지, 하고 한 아버지의 말만큼이나 놀랍다. 신은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사랑 ... 더보기

    - 다락방P. 114 신은, 너의 아들, 너의 사랑하는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는 걸 보니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이제 확실히 알겠다, 라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에게 한 말을 나도 듣는다. 이 말은 놀랍다. 그분이 요구하셨으니 그분이 마련하실테지, 하고 한 아버지의 말만큼이나 놀랍다. 신은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마음보다 더 간절하고 절실한 것은 없다. 시험이라는 비순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사랑보다 더 순수하고 큰 사랑은 없다. 비순수를 통해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종류의 순수가 있다. 사랑이야말로 그러하다. 심지어 순수한 사랑일수록 그 표현이 더 순수하지 않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순수하지 않은 것들이 순수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동원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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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 128 사람에게는 균형을 잡는 재주가 없고 사랑에게는 균형에 대한 감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 다락방P. 128 사람에게는 균형을 잡는 재주가 없고 사랑에게는 균형에 대한 감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 다락방

  • P. 137 위장에 빈 공간이 없는데도 여전히 음식을 갈구한다면 이 갈구는 어떤 공간을 채우기 위한 갈구인가. 위장은 꽉 찼는데 어디가 비어 있어서 어디를 채우려고 음식을 탐하는가. 탐식하는 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가 비어 있는지 안다면 그곳을 채울 것이다. 그러나 어디가 비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가 비어 있는지 ... 더보기

    - 다락방P. 137 위장에 빈 공간이 없는데도 여전히 음식을 갈구한다면 이 갈구는 어떤 공간을 채우기 위한 갈구인가. 위장은 꽉 찼는데 어디가 비어 있어서 어디를 채우려고 음식을 탐하는가. 탐식하는 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가 비어 있는지 안다면 그곳을 채울 것이다. 그러나 어디가 비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가 비어 있는지 모르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음식을 찾고 부르고 음식에 손을 대고 이미 꽉 차 있는 위장 속으로 집어넣는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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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 146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가 주인인 세계, 집에 있는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 속해 있는 세계였다. 아들인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 사랑이 ‘속해 있는 것‘을향한 지배의 방법이라는 사실이 어렴풋이 깨달아지자 견딜 수 없었다. 집은 사랑이 없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굴레인... 더보기

    - 다락방P. 146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가 주인인 세계, 집에 있는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 속해 있는 세계였다. 아들인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 사랑이 ‘속해 있는 것‘을향한 지배의 방법이라는 사실이 어렴풋이 깨달아지자 견딜 수 없었다. 집은 사랑이 없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굴레인 곳이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곳, 달아나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는 집을 튼튼하게 하는 효율적인 재료의 역할을 하는 사랑을 털어내기 위해 떠돌이가 되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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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 148 쫓아낸 아버지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신의 뜻을 앞세웠을 것이다. 최선을 넘어서는 최선, 법과 도리를 뛰어넘는 신의 섭리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들을만큼 들어 알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삭은 회의했다. - 다락방P. 148 쫓아낸 아버지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신의 뜻을 앞세웠을 것이다. 최선을 넘어서는 최선, 법과 도리를 뛰어넘는 신의 섭리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들을만큼 들어 알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삭은 회의했다. - 다락방

  • P. 149 신과 아버지는 넘어서고 뛰어넘었지만, 그래서 그렇게 했지만, 그래서 그렇게 하고도 현재를 살고 인간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 일을 당한, 아마도 아버지처럼 넘어서고 뛰어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형과 형의 어머니인 하갈은 어땠을까? 그들 안의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파괴되고 훼손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 다락방P. 149 신과 아버지는 넘어서고 뛰어넘었지만, 그래서 그렇게 했지만, 그래서 그렇게 하고도 현재를 살고 인간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 일을 당한, 아마도 아버지처럼 넘어서고 뛰어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형과 형의 어머니인 하갈은 어땠을까? 그들 안의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파괴되고 훼손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 다락방

  • P. 151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이 먹는 사람은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맛을 모르는 사람이 먹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맛을 모르는 사람만이 탐식할 수 있다. - 다락방P. 151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이 먹는 사람은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맛을 모르는 사람이 먹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맛을 모르는 사람만이 탐식할 수 있다. - 다락방

  • P. 166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항상 다른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다른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부르는 일은 뜻밖에 흔하다. - 다락방P. 166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항상 다른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다른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부르는 일은 뜻밖에 흔하다. - 다락방

  • P. 180 그녀가 미래를 기다렸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녀는 기다리는 일을 했다.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나서서 맞아야 하는 것임을 그녀는 어렴풋이 의식했다. 기다림이 바람이고 참여, 즉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 더보기

    - 다락방P. 180 그녀가 미래를 기다렸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녀는 기다리는 일을 했다.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나서서 맞아야 하는 것임을 그녀는 어렴풋이 의식했다. 기다림이 바람이고 참여, 즉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바라지도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기다리는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접기

    - 다락방

  • P. 228 그런데 이승우는 그런 이삭에게 입을 달아주었다. 그 입은 구양에 없는 입이다. 그뿐 아니다. 이삭보다 먼저 하갈에게 입을 달아주었다. 입이 생긴 자들은 묻는다. 하갈도 이삭도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은 내게 왜 이러는가. -해설, 서영채 - 다락방P. 228 그런데 이승우는 그런 이삭에게 입을 달아주었다. 그 입은 구양에 없는 입이다. 그뿐 아니다. 이삭보다 먼저 하갈에게 입을 달아주었다. 입이 생긴 자들은 묻는다. 하갈도 이삭도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은 내게 왜 이러는가. -해설, 서영채 - 다락방

  • P. 152 자주 하는 일이라고 모두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감정과 상관없이 자주 하는, 하게 되는 일이 있다. 무엇에 붙들려서 어쩔 수 없이 늘 하는 일을 좋아해서 한다고 표현할 수 없다. - compoteteaP. 152 자주 하는 일이라고 모두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감정과 상관없이 자주 하는, 하게 되는 일이 있다. 무엇에 붙들려서 어쩔 수 없이 늘 하는 일을 좋아해서 한다고 표현할 수 없다. - compotetea

  •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사랑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말로 설명하는 순간 말한 만큼 진실이 달아나버리는, 이를테면 지금의 내 말들처럼, 밖으로 나온 말들이 오히려 진실에 대한 허기를 부르는, 그 허기 때문에 다시 더 많은 말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많은 말로도 허기를 채울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더보기

    - 하나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사랑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말로 설명하는 순간 말한 만큼 진실이 달아나버리는, 이를테면 지금의 내 말들처럼, 밖으로 나온 말들이 오히려 진실에 대한 허기를 부르는, 그 허기 때문에 다시 더 많은 말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많은 말로도 허기를 채울 수 없는, 그런 것이다.
    121쪽, <사랑이 한 일> 접기

    - 하나

  • 그러니까 잘 번역된 글은 원작과 다른 글이다. 다른 글이어서, 다른 글이기 때문에 원작과 같다. 243쪽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을 수정해야 하겠다. 어떤 훌륭한 번역이나 패러프레이즈도 원작과 같을 수는 없다. 기껏해야 원작을 가리킬 뿐이다. 나는 내 소설들이 위대한 원작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는 수줍은 손가락이기를 바란... 더보기

    - 하나그러니까 잘 번역된 글은 원작과 다른 글이다. 다른 글이어서, 다른 글이기 때문에 원작과 같다. 243쪽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을 수정해야 하겠다. 어떤 훌륭한 번역이나 패러프레이즈도 원작과 같을 수는 없다. 기껏해야 원작을 가리킬 뿐이다. 나는 내 소설들이 위대한 원작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는 수줍은 손가락이기를 바란다. 245쪽, 작가의 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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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했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돼 등단했다. 소설집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 광고》 《신중한 사람》, 장편소설《생의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캉탕》 《독》, 산문집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살다》 《소설가의 귓속말》 등을 펴냈다. 대산... 더보기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했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돼 등단했다. 소설집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 광고》 《신중한 사람》, 장편소설《생의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캉탕》 《독》, 산문집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살다》 《소설가의 귓속말》 등을 펴냈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서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받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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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뛰어넘는 것도 아니고
시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작가인생 40년, 그 시간 속 궁극적 물음들
이승우 「창세기」 모티프 연작소설집


사십 년 가까운 작가인생을 갈망 너머의 구원에 대한 천착으로 채우며 독보적인 성취를 거두어온 소설가 이승우. 그는 ‘관념의 토르소’(김윤식),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르 클레지오), ‘조용하고 진지한 영혼에서 분출된, 감동적이면서 묵직한 소설’(르몽드), ‘갈리마르 폴리오 시리즈에 오른 최초의 한국소설’ 등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수식과 상찬이 전혀 과한 것이 아님을 소설로 인생에 복무함으로써 증명해가고 있다. 한국소설로는 흔치 않은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통찰로 ‘생의 이면’을 파고든 그가 신작 소설집에서 「창세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삶의 궁극적 물음들을 마주 세운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텍스트로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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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뛰어넘는 것도 아니고
시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작가인생 40년, 그 시간 속 궁극적 물음들
이승우 「창세기」 모티프 연작소설집


사십 년 가까운 작가인생을 갈망 너머의 구원에 대한 천착으로 채우며 독보적인 성취를 거두어온 소설가 이승우. 그는 ‘관념의 토르소’(김윤식),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르 클레지오), ‘조용하고 진지한 영혼에서 분출된, 감동적이면서 묵직한 소설’(르몽드), ‘갈리마르 폴리오 시리즈에 오른 최초의 한국소설’ 등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수식과 상찬이 전혀 과한 것이 아님을 소설로 인생에 복무함으로써 증명해가고 있다. 한국소설로는 흔치 않은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통찰로 ‘생의 이면’을 파고든 그가 신작 소설집에서 「창세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삶의 궁극적 물음들을 마주 세운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텍스트로 「창세기」를 다시 읽고 다시 쓴 밀도 높은 작업, 그 가운데 키워드가 되어준 단어 ‘사랑’, 그러므로 이 책은 이승우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이 총동원되었다 할 수 있겠다. 열한번째 소설집이자 첫 연작소설집, 『사랑이 한 일』이다.

이 소설집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에 대한 「창세기」의 일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태어났다. 그 장면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오그라들거나 찡그려졌다.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도,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바칠 것을 요구하는 신이나 그 요구에 순종하는 아버지 대신 그 요구에 의해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 이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믿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내 번역의 방법은 인간의 마음으로, 즉 소설을 통해 신의 마음, 즉 믿음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사랑’이 내게 발견된 열쇠였고, 그래서 나는 이 부담스러운 패러프레이즈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_‘작가의 말’에서

“그러니까 신의 사랑이, 신의 지나친 사랑이 그 일을 만든 거지요.”
‘신’이 아니라 ‘인간’의 텍스트로, 반복과 확장으로 다시 읽기/쓰기


다섯 편의 작품이 담긴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밝힌 의도처럼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사랑이 한 일」을 한가운데 두고 시간순으로 앞뒤에 두 편씩이 더 배치되어 있다. 자기 딸을 불량배들에게 내주는 소돔성의 롯의 이야기인 「소돔의 하룻밤」,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부당하게 내쫓기는 하갈의 이야기 「하갈의 노래」가 앞의 두 편, 이삭이 느끼는 기묘한 허기와 그의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서를 향한 편애에 대한 소설적 해설이라 할 수 있는 「허기와 탐식」 「야곱의 사다리」가 뒤의 두 편이다.

모티프로 삼은 「창세기」의 골자들은 그대로 둔 채 작가가 의문을 품은 지점,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주목해보자. 맨 앞자리에 놓인 「소돔의 하룻밤」과 표제작 「사랑이 한 일」은 우선 독특한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소돔의 하룻밤」의 경우 소돔의 멸망 과정을 보여주는 다섯 개 장면의 문장이 반복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소설의 문장이라기보다는 논리적 변증에 가까운 치밀하고 끈질긴 문장들이다. 성경 텍스트 속 서사의 빈자리를 작가가 디테일하게 채우며 추론하고 납득해가는 과정이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동심원을 그리듯 하는 문장의 반복이 작품을 서서히 확장시키고 거기서 오는 파동에 읽는 이의 눈은 새로이 뜨인다. “밀착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매몰되면 아예 시야가 없어진다. 내부자는 내부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도 잘 보지 못한다”는 듯이.
표제작 「사랑이 한 일」에서 반복되는 문장은 「소돔의 하룻밤」과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 「소돔의 하룻밤」이 이야기를 따라가되 작가가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그 흐름을 밀고 나가는 방식이라면, 「사랑이 한 일」은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 반복되며 화자인 이삭, 그러니까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바쳐라”라는 신의 명령과 그 명령을 따른 아버지 아브라함 양쪽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고자 하는 인물의 내적 투쟁을 격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했던 아들이 스스로 묻고 답한다.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누구에 대한 사랑인가, 누구의 사랑인가. 그 사랑이 조금 덜했다면 신은 아버지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테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나를 제물로 바치겠다 순종하지 않았을 테고, 다시 신이 아버지에게 ‘멈추라’고 하지 않았을 일인가.

사랑하지 않는 무엇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힘들지 않지만, 그래서 요구되지 않지만, 사랑하는 무엇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요구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은 힘든 것이다.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무엇이나 누구를 ‘바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랑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는 바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치는 모습을 취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바치는 것이 아니다. 버리는 것이라고 늘 쉽지만은 않지만 바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자기를 주는 상징적 표현이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주는 상징적 표현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자기에게 속해 있으나 자기보다 소중한, 소중하게 여기는 무엇이나 누구를 주는 것이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속해 있는 것 가운데 자기보다 소중하지 않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무엇이나 누구를 주는 것은 자기를 주는 행위일 수 없다. 자기에게 속해 있으면서 자기보다 소중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사랑하는 무엇이나 누구이다. 사랑하는 무엇이나 누구만이, 오직 사랑만이 바쳐질 수 있다. 바치기가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사랑하면 어렵게도 할 수 없게 된다.
_99~100쪽, 「사랑이 한 일」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신은 옳지 않습니다.”
소설의 장인이 보여준 미메시스의 힘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의 명령 앞에 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묻고 또 묻는 것, 의심하고 숙고하고 납득해보려 애쓰는 것, 그것에 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쏟는 것이다. 신의 무리한 명령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입장이 아니라, 영문 모른 채 바쳐지는 자로서 존재하던 이삭에게 입을 달아준 작가는 그러므로 같은 모티프를 ‘너무나 인간적인 것’으로 다시 쓸 수 있었으리라.
당신은 내게 왜 이러는가 묻는 또다른 인물은 「하갈의 노래」 속 ‘하갈’이다.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부당하게 내쫓긴 하갈은 복을 약속하고 후손을 약속했던 신의 목소리를 원망한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신은 옳지 않습니다.” 「사랑이 한 일」과 함께 화자의 독백으로 구성된 작품 속 화자들은 완고한 텍스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육성을 얻는다.
「허기와 탐식」은 나이든 이삭과 그의 두 아들 에서, 야곱의 이야기이다. 맏아들 에서가 아닌 둘째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여 가부장의 권리를 가로채려 하고, 여러 사건 끝에 참회를 한 야곱이 적통을 잇는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러나 작가 이승우는 다른 지점에 주목한다. 왜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편애했는가. 아버지의 칼날에 죽을 뻔했던 그에게 남은 상흔과 그런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이복형 이스마엘이 잡아준 들짐승 고기의 맛. 그것이 사냥꾼인 맏아들 에서에게 투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삭의 편애와 축복은 빗나가고, 자기 것이 아닌 축복을 받은 둘째 야곱은 도망치듯 집을 떠난다. “거의 최초로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존재, 고아이고 나그네가 된 시간에, 크게 두렵고 깊이 외로운 그의 밤 광야의 자리로 그분이 찾아왔다.” “너와 함께하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는 말과 함께. 아버지의 편애는 받지 못했으나 신의 편애를 받은 야곱의 이야기 「야곱의 사다리」로 소설집은 마무리된다.

작가가 수천 년간 변주되고 (재)해석되었을 성경의 장면들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발터 옌스와 한스 큉의 문학 강론 『문학과 종교』는 문학과 종교의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호성, 양면성, 불화스러운 일치, 상호 조명, 변증법이 하늘과 땅 사이에 뻗어 있는 터인즉, 긴장스럽고도 두려운 관계.” 오래도록 신학을 공부하고 소설을 써온 작가 이승우에게, 특히나 “소설쓰기가 일종의 패러프레이즈라는 생각을 한다”는 그에게 이미 쓰인 것을 다시 쓰고 풀어 쓰기에, 그 ‘긴장스럽고도 두려운 관계’에 투신하기에 성경만한 것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압도적 스케일의 문학 텍스트인 구약과 이승우의 손끝에서 재현된 서사, 그 둘이 겹쳐지며 새로이 발생할 의미. 요컨대 독자가 이 책에서 읽어내는 것은 “미메시스를 통해 문학이 생산하는 또다른 앎”(서영채, 해설에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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