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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금강경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석가

금강경

柏道 2020. 7. 23. 16:57

금강경을 보고서

금강경

 

설중수련

 



​​​

 

금 강 경

 

 

 

그 동안 금강경 책을 보고 강해를 듣고 나서의 느낌은

전능하시고 경이로우신 반야(하나님)를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진리를 어쩌면 이렇게 다른 모양으로 나타내시어서

혜안이 없으면 그 깊이 숨겨진 뜻이 하나인 것을

도저히 알 수 없게 하신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보고 또 불경 말씀을 들으며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성경을 통해 알려 주셨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 깊은 뜻을 이해 할 수 있으며

실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성경 말씀을 알려 주셨고

또한 수행을 통한 삶의 체험이 없었다면

어떻게 불경의 이런 심오한 말씀을 이해하며 그 깊은 뜻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불경의 깊은 뜻을 생각 하게 되면서

말씀의 귀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며

또한 먼저 말씀을 받은 자로서

사명감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금강경 서두에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인도의 역사적 배경은 진리가 하나인 것을 증명 할 수 있고

불교의 근본 뿌리를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불자들과 대화를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도

진리는 하나라고 말하며 그래도 불교가 먼저라고 하면서

불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은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금강경의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시는 말씀이지만 그 가운데 4분인 묘행무주분은

 

수행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 아니 나의 문제를

말씀 해 주시고 있어 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이란

 

보시는 상에 머무름 없이 해야한다 하십니다.​

 

상(相)이란 우리 몸의 기관인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 육식(六識)이 발생되는데

이 육식이 바로 상인 것입니다. 이 상을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라 말하며

또한 이 상이 바로 자신의 존재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볼 때 이 상을 가지고 현재, 과거, 미래로

전개 시키면서 번뇌 망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상에 사로잡혀서 살 때 몸에

종노릇 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몸에 종노릇 한다는 것은 몸이 원하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고

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에 끌려 다니며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사람의 영혼이 육신 안에 갇혀서

욕심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살기 때문에 지옥의 삶을

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을 다스리지 못하고 종노릇 하며 사는 그 삶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허망한 삶이란 것을 깨닫기

전에는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종노릇 하며

지옥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부딪히는 삶 속에서

나의 생각을 부인하고 나를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것을, 그래서 그것이 죽음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실제 자신을 부인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실제가 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먼저 수행의 삶으로 보시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무주상 보시는

자기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아무 조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행하는 보시로서 그 공덕이 측량할 수 없는

우주 공간과 같이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물질로 하는 보시든 법보시든 내가 한다는

어떤 생각이나 의식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묘행무주분의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불자들이 부처님께 드리는 보시나 공양은

복을 받기 위해 드리며, 또한 가난한 이웃이나 불쌍한 자들을 돕는 보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보시나

복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행하는 보시는 오히려 업장을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더 짓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법 보시를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교리와 전통에 매여 꼼짝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그 족쇄를 풀어 주라고

하시며 그것만이 우리의 업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비록 우리는 많은 상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과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보시를 행할 때는

우리의 상이 조금씩 부셔질 수 있다는 것을

말씀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 말씀에 순종 하면서 보시를 한다면,

상을 가지고 보시를 행하는

겉의 모습은 똑같지만

 

전혀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상을 조금씩 볼 수 있게 해 주시며

또 그 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게 되면서 자신을 부인 하며 상을 조금씩

부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고 계시는 보시,즉 미혹된 길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보시를 우리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말씀들을 염두(念頭)에 두고

보시를 행 한다고 하지만 속에서는

끝없이 내가 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정받고자 하는 우리의 속성이 끝까지

발목을 잡아 가는 길을 막으며

머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것 같은

상을 깨지 못하여

그 상에 잡혀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라는 존재, 즉 상이 완전히 없어질 때 까지는

그 상이 원하는 것, 즉 아직 깨어지지 않은 상만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1%의 상이 남아 있다면 그 1%의 욕심을 채우기위해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늘 하시는 말씀,

마지막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조금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부처님(반야,하나님)을 위해 일을 한 거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며 끝없이 기다리시고 계시는데,

끝까지 나를깨고 싶지 않은

이 강퍅한 존재가 바로

나인 것입니다.

이글을 쓰게 되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우리네 존재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 하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내가 인정되기를 원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

아니 나의 모습이기에

갈 길이 너무나 멀고멀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모든 상이 깨끗이 없어지기까지 인내하며

정진 할 수 있기만을

기도드릴

뿐입니다.

출처 (의증서원 '금강경')

[출처] 금강경을 보고서|작성자 산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