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본문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아득한 과거세에 부처님께서 인행시(因行時) 설산에서 동자로 계실때 이야기 입니다.
하루는 산 길을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법문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모든 것은 무상해서 이것은 곧 생하고 멸하는 생멸의 법이다."
설산 동자는 세상에 이렇게도 좋은 법문을 누가 했는가 싶어 사방을 살펴 보았다.
그랬더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험상궂게 생긴 나찰만이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찰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제행무상 시생멸법’이라는 법문을 그대가 했습니까?”
“여기 나 말고 누가 또 있나? 당연히 내가 했지.”
“그런데 그 구절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머지를 마저 들려 주십시오.”
“나도 들려 주고 싶지만 지금 배가 너무 고파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어.”
“그 공양을 제가 마련해 올리겠습니다.”
“나는 사람의 뜨끈뜨끈한 피를 먹는다. 너의 뜨거운 피를 주겠느냐?”
“제 몸을 반드시 공양해 올릴테니 나머지 법문을 좀 해 주십시오.”
이렇게 약속을 하고 보니 자기 몸을 먼저 보시해 버리고 나면 법문을 들을 수가 없기 때문에 먼저 나머지 법문을 들려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이 생멸에 집착함을 놓으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자 이제 나머지 법문을 들려 주었으니 빨리 너의 뜨거운 피를 다오.”
“잠깐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제 몸을 바쳐서 들은 이 귀중한 법문을 저 혼자만 듣고 죽으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절벽이고 바위고 간에 여백만 있으면 마구 써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을 남겼다.
그리고는 즉시 높은 가지에 올라 땅으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 몸이 땅이 닿기도 전에 나찰은 곧 인드라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공중에서 그를 받아 땅에 내려 놓았다.
이때 여러 천신들이 모여 그의 발에 절을 하면서 그토록 지극하게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는 구도의 정신과 서원을 찬탄하였다.
~열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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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모든 現狀은 한시도 固定됨이 없이 變한다는 것이
곧 生하고 滅하는 생멸의법이니
이 생멸에 執着함을 놓으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모든 현상은 한시도 고정됨이 없이 변한다는 것이 곧 생하고 멸하는 생멸의 법이니
이 생멸에 집착함을 놓으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諸行이라는 말은…「법화경」의 '諸法',
「금강경」의 '凡所有相',「화엄경」의 '一切'와 같은 말이다.
一切 모든 것들은 恒常 하지 않아 늘 變하는 生滅法이니
이 生滅에 執着하는 마음만 놓아버리면
이 世上의 法인 생멸(生滅)法을 超越하여 열반의 경지에 들 것이란 말이다.
이 말도 똑같은 말이다. "諸行無常",
즉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생멸법이고 이 세상은 그대로 생멸법이기 때문에
생멸이라는 집착을 놓으면 그대로 고요하다, 열반을 얻는다는 말이다.
『금강경』에서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임을 바로 보면 如來를 볼 것이라 했는데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는 말은 恒常 하지 않으며(無常),
固定된 實體가 없고(無我) 그렇기 때문에 一切는 공(空)으로 虛妄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이 온통 괴로움이라고
부처님께서 삼법인(三法印)의 교설로써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이렇게 無常하여 虛妄하지만 상(相)이 相이 아님을 바로 볼 수 있다면,
다시 말해 無常한 生滅法을 바로 觀하여
生滅에 執着하는 마음만 놓아버릴 수 있다면 如來를 볼 것이다,
고요한 열반에 이를 것이다. 라고 한 것이다. 조금 어려웠나?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사유해 본다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緣起法과 三法印, 中道와 空思想에 대한 바른 見解를 가진다면
아주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렇게『화엄경』·『법화경』·『열반경』의 사구게가 다 다른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다 같은 말인데 이렇게 설명하고 저렇게 설명하고,
방편을 달리하고 관점을 달리하여 근기가 서로 다른 이들에게
다양한 설명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출처]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작성자 Haeun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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