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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기도의 비밀 1700년 첫 번째 비밀-1 : 느낌의 기도로 직접 소통하라 본문
절대 기도의 비밀 1700년
첫 번째 비밀 1 : 느낌의 기도로 직접 소통하라
절대 기도의 비밀 1700년 동안 숨겨진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감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우리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명령에 복종한다.
_ 시에나의 성 카트리나 St. Catherine of Siena
" 저 너머에" 뭔가가 있다. 인식이 가능한 일상의 경계를 넘어선 그곳에, 어떤 실재 presence가, 어떤 힘이 있다. 그것은 신비로우며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이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그것을 느낀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믿으며 그것에 기도한다!
그것은 창조의 그물 Web of Creation이니 성령 Spirit of God이니 하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 고대의 전통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삶에 적용하는 방법 역시 알고 있었다. 고대인들은 후손들을 위해 당대의 언어로 상세한 지침을 남겼는데,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힘을 이용해서 우리의 몸과 관계를 치유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설명했다. 오늘날 몸의 치유, 관계의 개선, 세계 평화라는 이 세 가지 염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기도로 수렴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반적인 기도와는 달리, 이 기도는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침묵의 언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기도가 이미 응답을 받은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이끌 뿐이다. 고대인들은 감사하는 마음가짐의 느낌을 통해서 창조의 힘, 즉 신의 정신 spirit of God과 직접 소통한다고 믿었다.
현대 과학은 20세기에 들어서 신의 정신이 모든 형태의 에너지와 구별되는 에너지 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 같다. 에너지 장은 항상 모든 곳에 존재하며, 태초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양자 물리학의 아버지라 인정받는 막스 플랑크 Max Plank는 에너지 장의 존재는 거대한 지성 intelligence이 물질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암시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힘 뒤에는 의식과 지성을 가진 정신 conscious and intelligence Mind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그는 "이 정신이 바로 모든 물질을 잇는 매트릭스 matrix" 라고 결론을 내렸다. 현대과학은 그것을 단일장Unity field이라고 부르면서 플랑크가 말한 매트릭스에 지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대인들이 암시했던 것처럼, 에너지 장은 인간의 감성에 응답한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부르든, 과학과 종교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저 너머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 어떤 힘이, 에너지 장이,어떤 존재가 끊임없이 우리를 결속시키고 절대자에게 연결시키는"거대한 자석 Great Magnet"
처럼 있다. 이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의미가 되고 유용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당연하다. 궁극적으로는 마음속 깊은데 생긴 쓰라린 상처를 치유하고 국가 간에 평화를 이끌어내는 그 힘이 인류의 생존을 좌우하는 열쇠임을 깨달아야 한다.
2000년에 전 세계적으로 실시한 인구 조사는 유사 이래 가장 정확한 인구 조사라고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에 분포한 가족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연구에서 매우 흥미로운 통계 자료가 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은, 우리는 어떤 목적에 따라 존재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계 인구의 95퍼센트 이상이 절대자
the higer power의 존재를 믿고 있었으며, 그중에서 반수 이상은 그 힘을 "신God"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저 너머에" 무언가가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무언가"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다수가 믿는 절대자에게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을까? 해답은 수천 년 전에 고대인들이 자연의 비밀을 설명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다들 예상하겠지만 인간과 신을 연결시키는 언어는 누구나 겪는 아주 평범한 경험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느낌과 감정의 경험이다.
4세기, 그리스도교의 성경이 일반에 널리 퍼진 이후로 대중에게서 잊혀진 이 특별한 기도의 방식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특별한 느낌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감정을 기도의 언어로 이용할 때 중요한 것은 기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이해하는 데 있다. 오늘날 속세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지구 상에서 가장 외딴 곳에 있는 사원들의 경우를 보면, 우리들 중 95퍼센트의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고 믿는 존재와 소통하는 원형 그대로의 사례가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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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기도다
나는 주지 스님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무릎 아래 돌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냉기가 그날 아침에 겹쳐 입은 두 겹의 축축한 옷 속을 뚫고 들어왔다. 티베트 고원에는 날마다 여름과 겨울이 동시에 찾아온다. 태양이 중천에 떠올랐을 때는 여름이요, 해가 히말라야의 비쭉비쭉한 산봉우리들 뒤로....... 혹은 나를 빙 둘러싼 듯한 사원의 높다란 벽 뒤로 사라졌을 때는 겨울이 된다. 나는 오래된 사원의 돌바닥 위에 맨발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내가 스무 명의 사람들에게 지구를 반 바퀴 도는 여행을 함께 떠나자고 초대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날, 우리 일행은 오늘날 지구 상에서 가장 외딴 곳에 고립되어 있는 장엄하고 신성한 지식의 보물창고에 있었다. 그곳은 티베트 고원의 수도원이었다.
여행 14일째가 되자 우리 몸은 해발 48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적응했다. 우리는 수작업으로 만든 나무 바지선을 타고 얼음이 언 강을 건넜다. 우리가 탄 구식 중국산 버스 바닥은 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깔려 있어서 우리는 수술용 마스크를 쓴 채 서로의 눈을 바라보아야 했다. 몇 시간을 달렸다. 버스는 사원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였지만 통역자는 그렇지 않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행여 바깥으로 튀어나갈세라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옆좌석을 움켜잡다 못해 서로를 부여잡고 마음을 다잡으며 폭우에 떠내려간 다리와 길이 없는 사막을 건너온 것은 여기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바로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따뜻한 휴식 따위는 접어두자. 오늘은 해답을 얻는 날이야.'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얼굴의 아름다운 남자의 눈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내 앞에 가부좌를 튼 그는 절의 주지 스님이었다. 나는 여행 중에 승려들을 만날 때마다 던졌던 질문을 통역자를 통해 주지 스님에게도 다시 던졌다.
"스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루에 14시간에서 16시간 동안 염불을 하고, 종과 목탁을 치고, 불경을 외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만, 그 순간 스님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통역자가 주지 스님의 대답을 들려주었을 때, 강력한 감정의 물결이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나는 그 대답으로 여기까지 온 목적을 달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지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 당신은 우리의 기도를 본 적이 없습니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주지 스님은 발 밑의 두꺼운 양모 승복을 바로잡고 나서 덧붙였다.
"당신은 우리가 우리 몸속에 느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하는 행동을 본 것뿐입니다. 느낌이 곧 기도이지요!"
주지 스님의 대답에 실린 명료함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말속에는 2천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그노시느파와 에세네파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금 주지 스님이 대답한 내용과 흡사하게 성경의 요한복음(정확히 16장 24절)의 초기 번역본도 바라던 바를 성취하고 열망을 채웠을 때의 기분에 흠뻑 젖음으로써 기도에 힘을 부여하라고 권한다.
"숨겨진 동기 없이 구하고, 너의 답으로 에워싸여 흠뻑 취하라."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종종 욕망이 수반하는 의심을 뛰어넘어야 한다. 나그함마디 문서 Nag Hammadi Library에서 예수는 이렇게 양극단이 공존하는 감정을 다스리는 힘을 짧게 가르치고 나서 산을 향해 " '산아 움직여라.' 하고 외치면 산이 움직일 것이다." 라고 설파한다.
그렇게나 오랜 세월에 걸쳐 면면이 전해 내려온 지혜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틀림없이 유용하지 않겠는가! 주지 스님과 나그함마디 문서는 거의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게는 잊혀진 기도이다.
과거에서 얻은 신성한 교훈
기도는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신비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가장 사적인 성질을 띤다. 그리스도교와 그노시스 파의 사상을 기록한 고대의 문서들은 말로 하는 기도가 예배 의식에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원래 우리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우주의 힘과 소통하는 교감 능력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도는 사람마다 제각각 독특한 모습을 띤다. 어떤 이들은 기도하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 기도의 방식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할 정도다.
현대의 학자들은 갖가지 형태의 기도를 아우르기 위해 기도의 범주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었다. 특별한 순서 없이 그 범주를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격식이 없는 일상적인 기도, 둘째, 간청하는 기도, 셋째, 예배 의식에서 행해지는 기도, 넷째, 명상적인 기도. 학자들은 어떤 기도든 적어도 네 가지 범주 중 하나에는 속하게 되며 중복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면서도 학자들이 정한 네 가지 범주에 속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기도가 항상 존재해 왔다. 다섯 번째 기도, "잃어버린 방식의" 기도는 순전히 느낌의 감정에 토대를 둔 기도를 말한다. 감정에 기반한 기도란, 무기력감에 이끌려 절대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중 95퍼센트의 사람들이 믿는 지성의 힘 intelligence force과 소통하고 그 결과의 실현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기도다.
감정의 기도는 말도, 손짓도, 그 어떤 물리적 표현도 필요 없다. 단지 기도가 이미 응답을 받은 것처럼 분명하고 강력한 느낌이 피어나도록 유도할 뿐이다. 우리는 이 신비한 "언어"를 통해서 몸을 치유하고 친구와 가족에게 내리는 풍요로운 축복을 느끼며 나라 사이에 퍼지는 평화의 기운을 체험하는 것이다.
가끔씩 이런 형태의 기도를 언급한 자료를 접하면서도 과연 무엇을 보고 대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남서부 사막 지대에 세워진 고대의 석조 건축물들은 원래 "예배당"이었다. 그곳은 지혜를 공유하고 기도를 올리는 성소였다. 땅 속 깊은 곳에 파묻히다시피 지어진 이 완벽한 원형의 석조 건축물들은 이른바 키부kiva 라고 알려져 있는데, 새기고 깎고 색칠한 키부의 벽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들이 잃어버린 기도를 그 옛날 원주민들은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포코너스 지방에서 발굴된 키부의 유적지 내부에는 석조 건물벽에 칠해진 진흙 벽토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진흙 벽토에는 비구름과 풍요로운 옥수수 들판 위를 떠도는 번개의 모습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다른 벽에는 계곡에 엘크와 사슴 같은 야생 동물들이 번성한 풍경을 가리키는 윤곽선들이 그려져 있다. 이런 식으로 고대의 예술가들은 잃어버린 기도의 비밀을 기록해놓은 것이다.
그들은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주변에 그려 놓고 그것에 둘러싸인 채로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 그 모습은 기도자에게 기도가 이미 응답을 받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오늘날 교회나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적과 부활의 장면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들에게 기도는 오감을 총동원해서 온몸으로 체험하는 경험이었다
[출처] 첫 번째 비밀 : 느낌의 기도로 직접 소통하라|작성자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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