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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1) - 에크하르트 톨레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1) - 에크하르트 톨레

柏道 2020. 1. 28. 00:11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1) - 에크하르트 톨레


 

당신은 왜 여기 있는가?

 

우주의 신성한 의도와 목적을 펼치기 위함이다.

 

당신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에크하르트 톨레

 

마음은 내가 아니다

 

깨달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진정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자신의 존재와 하나됨으로써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입니다.

 

어떠한 힘 앞에서도 부서지지 않는 그 무엇, 겉거죽이나 나보다 훨씬 위대한 그 무엇에 연결된 상태입니다.

 

내 이름과 모습 뒤에 숨어있는 본래의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결 상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단절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스스로를 외로운 섬처럼 여기게 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엄습하고 안팎으로 갈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무수한 형태의 생명체 너머에는 영원한 ‘오직 하나의 생명’이 자리합니다.

 

그것은 저 너머에 있지만 모든 생명체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영원한 부수어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당장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우리 자신,

 

우리의 진정한 본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생각이 정지되었을 때만 그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만하고 강렬하게 집중하고 있을 때만이 진정한 존재 상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의 헤아림으로는 그것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있음’의 상태에 활짝 깨어 있으면서 그 느낌, 그 앞에 머무는 것이 밝은 ‘깨달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존재(being)'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편입니다.

 

’존재‘라는 단어는 ’신‘이라는 단어처럼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지만, 열린 개념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적어도 그 단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함을 제한된 것으로 축소하지는 않습니다.

 

’존재‘라는 말을 듣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배타적으로 독점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존재‘야말로 당신 자신의 정수입니다.

 

 

’존재‘라고하면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의 현존 상태를 우선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다‘, ’나는 저것이다‘라고 규정하기 이전의

 

생생한 ’있음‘을 가리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라는 단어는 당신 자신이의 존재를 향해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말입니다.

 

 

깨달음이란 만물의 배경을 이루는 ‘하나’의 상태에 머물러 전체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고,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깊은 곳의 진정한 자아와 하나 될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물화된 세상 속의 생명력과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안팎으로 일어나는 고통과 계속되는 갈등의 끝일 뿐 아니라 멈출 줄 모르는 생각의 끝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노예처럼 구속하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해방입니까.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모습들과 형상들의 차원 밑바닥에서 당신은 진실로 만물과 하나입니다.

 

생각이라는 장막에 가려 그 본질을 잊고 있을 뿐입니다.

 

망각으로 인해 이러한 하나됨의 자명한 현실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삼라만상은 하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경험을 통해서 확연하게 알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마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마음의 흐름 속에서 어떤 틈새를 만들 때 마다 의식의 빛은 점점 더 밝아집니다.

 

깨달음이란 생각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

 

 

마음은 도구이며 연장입니다.

 

마음이란 특별한 과업에 사용되기 위해 거기 존재하는 것입니다. 일이 끝나면 내려놓아도 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 중에서 80-90 퍼센트는 반복적이고 부질없는 잡념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부정적인 성질을 품고 있을 때도 적지 않아서,

 

대부분의 생각들이 해롭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부질없고 해로운 생각들로 인해 소중한 에너지가 새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성장함에 따라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조건에 기초해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거짓된 자아를 ‘에고’라고 합니다.

 

 

에고는 마음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며 끊임없는 생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에고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함으로써 창조된 거짓 자아를 뜻합니다.

 

에고에게는 현재의 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와 미래만을 중요하게 여길 뿐입니다.

 

 

지름이 0.2밀리미터도 안 되는 인간세포의 DNA가

 

어떻게 600쪽 분량의 책 100권 정도를 채울 수 있는 지령을 담을 수 있을까요?

 

우리 몸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 속에서 작용하는 지성이 얼마나 광대한지,

 

그리고 우리의 앎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는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 너머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완전히 의식하고 느낄 수 있어야만 그 너머의 것들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는 존재의 심오한 상태입니다.

 

자신의 진정한 존재와 내적으로 연결된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 상태는 마음 너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대립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