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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노자 도덕경 10장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노장

노자 도덕경 10장

柏道 2020. 1. 8. 00:20



老子 道德經  10장

 


載營魄抱一

영백을 실어 하나로 껴안는 데에 *營 : 두려워하다, 별의 이름

 

能無離乎

(그것과)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專氣致柔

기를 모아 더없이 부드러움에 이르는 데에

 

能婴兒乎

갓난아이같이 할 수 있겠는가.

 

滌除玄覽

현묘함을 본 것마저 씻어내어

 

能無疵乎

흠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愛民治國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能無爲乎

무위로써 할 수 있겠는가.

 

天門開闔

하늘 문을 열고 닫음에

 

能無雌乎

여성 없이 할 수 있겠는가.

 

明白四達

모든 것을 훤히 깨닫고도

 

能無知乎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가.

 

生之畜之

낳고 기른다.

 

生而不有

낳았으되 가지려 하지 않는다.

 

爲而不恃

행하되 기대려하지 않는다. *恃 : 의지하다, 자부하다

 

長而不宰

나아가되 다스리지 않는다. *長 : 나아가다, 우두머리 宰 : 다스리다

 

是謂玄德

이를 일컬어 그윽한 덕이라 한다.

무어 개인 감상/

 

구별하는 이치는 진리가 아니고,

아기처럼 천진하고 부드럽지 않은 성정은 바른기운이 아니며,

깨달음에 무관한 것이 관여하면 깨달음이 아니고,

다스림에 인위로 하면 백성을 사랑하는 통치가 아니고,

한쪽으로 가치가 기우는 것은 생멸의 뜻에 어긋나고,

(雌를 여성으로 해석하는게 우세합니다. 여권이 없는 시대에 한쪽 성별만 대우하는 현상의 표현 같습니다. 여성을 애욕으로 표현하는 해석도 보긴 했는데, 이야말로 너무 남성중심적 해석인지라 안좋은 해석의 예로 붙여보았습니다.)

명백히 깨닫고도 모르는 것과 같지 않으면 깨달은 것이 아니다.

낳았다고 낳은 자의 것이 아니고,

행함에 반드시 목적을 수반하려는 생각을 버려야하며, (더욱이 목적이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행함)

기른다는 것은 원조하고 돌봐주고 훈육하며 앞날로 이끈다는 것인데 이런 행위들에 이 역시 어떤 잡티같은 목적(지배, 소유)을 가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위(인위를 행하지 않음, 본질 그대로 행함)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이치, 도에 대한 설명 및 도에 거스르지 않는 올바른 작용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진리의 결이 노래처럼 들립니다. 구별이 되지 않는 하나의 진리가 무엇인지, 기를 오롯이 하는 법, 구체적인 무위와 인위의 개념, 알고도 모르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직접적인 언급이 없이 그러는 것이 도이고, 도대로 행하는 것이다고 말하는 형태에서 점점 도덕경의 의도를 느낍니다. 적어도 노자가 쓴 (원조에 가까운) 문장의 의미는, '무위'가 그 의도일 것입니다. 무지한 자를 도로 이끈다던지, 깨닫게한다던지 하는 목적 자체가 없습니다. 그저 그러한것을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를 아는 자라면 인위의 최후의 보루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언사'조차도 무위로 행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 원인은 '도'는 우리가 아는 '지식'이나 '앎'과는 다른 차원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알아도 행위에는 다른 인위적 노력이 필요한 모든 앎과는 다르게, '도'는 그 자체로 내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진정한 이치가 깃들어 있으니 삶 전체에서 도를 찾을 수 있고 과거와 현재의 행위와 존재를 제대로 알고 받아들인다면 앞으로의 모든 것도 도에 따를 수밖에요.

#도덕경전문


[출처]|작성자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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