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다석어록- 가온찍기 (「·」) 본문
다석어록- 가온찍기 (「·」)
▶ 한글 모음에서 한 금(線)을 내려그은 I로 발음하며 영원한 진리의
생명줄을 뜻한다. 영원한 생명이 시간 속으로 터져 나온 순간이 이 긋
이다. 영원한 생명(얼)이 공간으로 터져 나와 몸을 쓰고 민족의 한 끄
트머리로 이 세상에 터져 나온 것이 '나'라고 하는 제긋(얼나)이다. 이
몸속에서 정신이 터져 나와 가장 고귀한 점수를 딸 수 있는 가치(價
値)가 이 제긋이다.
이렇게 시간.공간.인간의 긋이 모여 영원한 생명인 I 가 나타나 이
어 이어 계속 나타나 이 땅 위 예예 예어 나가는 나인 얼나다. 나는 일
점광명(一點光明)의 긋이다. 그러므로 곧이 곧장 오르고 또 올라 내
속에 있는 곧이(貞)를 살려 내어 내 속에 있는「·」(가온찍기) 내 속에
가장 옹근 속알(德)이 있는 것을 자각하여 깨닫고 나오는 가온찍기
「·」(얼나)가 가장 소중하다.
얼나의 자각(自覺)은 한 번만 할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계속 자각
하기 때문에 끝끝내 자각하고 또 자각하여 마침내 땅 위에 하늘 뜻을
드디고 실천하는 디긋디긋(실천)의 철인들이 되어서 태초의 맨 첫긋과
종말의 막긋이 한통이 되어 영원한 생명(얼나)이 되리라. 이제 임(님)
을 머리에 인 하늘의 아들들은 겸손하게 머리 숙여 모른다고 하지만
그 모르는 속에 참 앎이 있지 않을까? 영원을 모르는 줄 아는 이가 얼
나요 얼나의 표현이 말씀이다.
얼나는 육체가 아니다. 생각하는 정신이다. 정신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정신은 영원하다. (1956)
▶ '긋'이 얼나다. 가온찍기「·」로 나타난 얼나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영원한 생명(얼나)의 긋이 참나다. '긋'자의 가로 그은 막대기(一)는
세상이다. 가로막대기 밑의 시옷(ㅅ)은 사람이다. 가로막대기 위의 기
역(ㄱ)은 하늘에서 온 얼인데 그 얼이 땅에 부딪혀 생긴 것이 사람이
다. 얼(정신)이 몸을 쓴 것이 사람이다. 사람의 참나는 얼나다. 이 영원
한 생명의 긋이 제긋(얼나)인데 그것이 참나다.
요즘엔 제긋인 제 생명, 제 가치, 제 점수, 제 인격을 소홀히 하는 사
람이 많다. 제긋(얼나)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제 맘대로 하려는 사람
이 많다. 그러나 제긋은 내 것이 아니다. 영원한 얼줄의 한 토막이요
영원한 얼줄의 한 끄트머리다. 제긋(얼나)이 제긋이 아니다. 나는 전체
(하느님)에 속한 나지 떨어진 제나(自我)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
기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영원한 생명(얼나)의 한 끄트
머리가 한 점 영명(靈明)이다. 제긋(얼나)이야말로 영원 전부터 이어
이어 여기에 이어져 내려온 한 끝이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가장
독특한 유아독존(唯我獨尊)의 한 끝이다. (1956)
▶ 얼나라는 것의 무한한 가치를 자각하고 날아가는 새를 화살로 쏘아
맞히듯이 곧이 곧고 신성하고 영특하고 영원한 나의 한 복판을 정확하
게 명중시켜 진리의 나를 깨닫는 것이 가온찍기 「·」 이다. 나의 마음
속에 영원한 생명의 긋이 나타난 것이다 기역(ㄱ)은 니은(ㄴ)을 그리
고, 니은(ㄴ)은 기역(ㄱ)을 높이는데 그 가운데 한 점을 찍는다. 가온
찍기「·」 란 영원히 가고가고 영원히 오고 오는 그 한복판을 탁 찍는
것이다. 가온찍기「·」야말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찰나 속에 영원
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늘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며 가온찍기「·」가 인생의 핵심이다.그러나 깨닫는 가온
찍기「·」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끝끝내 표현해 보고 또 표현해 보고
나타내 보고 나타내 보여야 한다. 내가 내 속알을 그려보고 내가 참나
를 만나보는 것이 끝끝내이다. (1956)
▶ 깨달은 다음에는 자기의 깨달은 생각을 나타내 펼쳐 보이는 실천이
따른다.그 실천이 디긋 디긋이다. 디긋이란 딱딱한 땅을 딛고 사는 우
리의 긋(얼나)을 말한다. 머리를 하늘에 두고 곧곧하게 땅을 딛고 반드
시 서야 우리는 산다. 곧이 곧게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것이 정신이다.
정신의 생명은 정직(正直)이다. 정직하게 살려면 역시 하늘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다.
이 긋(얼나)은 영원한 첫 긋을 그리워하고 알고자 하며 영원한 막긋
을 그리워하며 알고자 한다. 그러나 이 긋(얼나)은 오늘 여기 있는 인
간으로서 창조와 종말을 다 알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만이며 거짓이
다. 이 첫긋 막긋을 우리 몸을 입은 사람으로서는 모른다. (1956)
▶ 맘과 '呂'을 가려서 쓰고 싶다. '맘'이란 아직 상대적인 세상에 욕심
을 붙여서 조금 약게 영생하는 데 들어가려는 것이다. 呂이란 모든 욕
심을 다 떼어 버리고 자신을 세워 나가겠다는 것이다. 모으는데 힘을
써 물질을 잔뜩 쌓아 놓고 자기 혼자만이 잘 살려고 약은 수단을 다
부리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물욕을 버리고 呂(淸淨心)이
되어야 한다. 본성의 呂으로 돌아가야 생명이 바로 된다. 내가 우리나
라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 싶은 것은 바로 呂이란 글자이다. 몸뚱이로
살되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지를 말고 의식주를 구하되 내일을 염려하
지 말자. 물질에 매이는 맴(拘束)과 물질을 모으는 몸(致富)은 그만두
고 맘을 비워두자. 그래야 하느님이 들어오신다. (19i6)
▶ 긋(얼나)이다. 이 긋은 제긋이요 이제 긋이다. 이어이어 온 예 긋이
다. 이것이 영원에 대하여 알파와 오메가이다. 이 긋은 하나이기 때문
에 뭐 이러구 저러구가 없다. 모든 것이 이 긋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
들이 많이 배워서 높고 큰 사람이 되겠다는데 무엇이 참으로 높고 큰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참으로 크고 높으려면 한 번 하느님 나라를 차
지하여 휘감겠다는 정신으로 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하느님의 품속
에 들어가야 한다. 무한하고 영원한 곳에 '긋의 끝이 하나로 꼭 찍힌
다. 이 사람은 이를 가온찍기「·」 라 한다. 예수 믿는 이들이 흔히 은
혜 가운데라 하는데 무엇이 은혜 중인가. 정말 은혜는 '제긋'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곧이곧이 찍기 더긋디긋'이다. 선생들은 아는 척을 많
이 해야 학생들한테 환영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는 대접을 못 받는다.
모른다고 하면 부끄럼을 당한다. 이러한데 어떻게 참을 찾을 수 있는
가?(1956)
▶ 맨 처음을 알려면 맨 꼭대기에 가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은 아랫것만 알지 형이상(形而上) 꼭대기 것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다만 형이상도 아니고 형이하도 아닌 중간 존재로서 가운데 있는 나
속으로 찾아 들어가 가온적기「·」 를 성실하게 해야 한다. 가온찍기
「·」 는 참나인 얼나를 깨닫는 자각(自覺)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은 첫긋도 막긋도 아니고 이 긋(나)으로 가온찍기(「·」 )하여 계속 오
늘 이 자리에서 긋수(점수)를 따내야 한다. 이제 오늘을 무시하고, 여
기 예를 무시하고, 이 긋인 나를 무시하고 맨 첫끝과 맨 막끝만 알려고
덤벼들면 자칫하면 잘못되기 쉽다. 첫끝과 막끝도 이 긋(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속에 들어가 참나(얼나)를 안 자만이 형이상(形而
上)도 알고 형이하(形而下)도 안다. (1956)
▶ 맨 첨과 맨 끝을 찾는 것은 이 속(中)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참나
(얼나) 때문이다. 이 마음속에 맨 첨과 맨 끝을 찾는 것이다.
시작이 있고 마침이 있는 상대적 존재인 제나(自我)에게는 절대존재
인 얼나(靈我)가 첨이요 끝이 된다. 얼나가 시간 공간의 맨 첨과 맨
끝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마음속(中)의 얼나가 상대세계
에 얼굴을 쪽 내민 가온찍기(「·」)이다.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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