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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깨달음 공부 : 다석 사상으로 찾는 참삶의 길[양장] 본문

마스터와 가르침/다석

깨달음 공부 : 다석 사상으로 찾는 참삶의 길[양장]

柏道 2019. 12. 17. 11:14

깨달음 공부 : 다석 사상으로 찾는 참삶의 길[양장]

                        

출판사 서평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동서회통의 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철학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찾는다!



우리말과 글로 철학을 했던 최초의 철학자이자, 함석헌과 김흥호 등 20세기 한국 기독교 사상계를 이끈 지도자들의 스승으로 알려진 다석 류영모(1890~1981). 류영모는 기독교와 유교?불교?노장 사상을 넘나들며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를 공부하고 철저히 금욕적인 삶을 실천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욕망과 생사(生死)의 노예인 제나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인 얼나로 솟나야(거듭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깨달음 공부]는 다석 류영모와 그의 사상을 세상에 알리는 데 반평생을 바친 박영호(1934~ )가 오랜 시간 공부하고 실천해 온 다석 사상을 쉽게 풀이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은 류영모가 일평생 궁구했던 삶과 죽음과 깨달음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다석이 세운 독자적인 종교 철학의 핵심을 보여준다.

[깨달음 공부]는 전체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는 누구인가’에서는 얼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다.
‘2장 종교란 무엇인가’에서는 복을 비는 기복 신앙으로 전락한 현실의 기독교와 여타 종교를 비판하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영성 신앙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3장 생각하는 삶’과 ‘4장 깨달음의 길’에서는 동물적 본능에 매여 사는 ‘제나’로는 죽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얼을 깨달아 진정한 나인 ‘얼나’로 솟나기 위해,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말한다.
‘5장 기도하는 시간’에서는 다석 류영모가 가르쳐준 기도의 의미와 기도하는 법을 알려준다. ‘6장 행복의 조건’에서는 부와 명예와 육체적 만족에서 느끼는 행복의 한계와 정신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 ‘7장 씨알의 나라’에서는 다석과 함석헌의 씨알 정신을 살펴본다. 예수의 정신을 본받고자 했던 다석은 땅 위의 임자는 ‘씨알’이라고 보았으며, 씨알을 억누르고 권력을 휘두르는 위정자들을 경계하면서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다석 류영모가 인정한 참제자 박영호가 팔순에 이르러 내놓은 얼의 소리!

"예수가 남긴 말 가운데 가장 궁금한 말이 있다면 무슨 말일까? 이 사람에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하겠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오 16:19)는 말이다.
이 구절은 복음서에 예수가 베드로에게 한 말로 나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는 누구 한 사람에게만 하늘나라 열쇠를 주려고 이 세상에 온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예수가 분명히 모든 사람에게 한 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면 그 하늘나라 열쇠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은 예수의 말씀에 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요한 18:37)라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주기 위해 왔다는 말이다. ...... 저 위에서 허락하시면 할 것이지만 이 사람의 할 일은 이 책, [깨달음 공부]로 끝내고 싶다. 그동안 이 사람이 지은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머리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는 바이다. 그동안 쓴 글도 사세(辭世) 아닌 글이 없지만 이번 글은 참으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썼다. ...... 여러분께서도 이 글을 읽으시고 제나로 죽고 얼나로 솟나 죽음이 없고 다툼이 없고 결핍이 없는 얼의 나라에서 만나게 되기를 빈다." - [머리말]에서

주요 내용

‘나’는 누구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사는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낳아주었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오히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 같은 시련에 부딪히면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존재를 고민하는 데서 철학이 시작된다.

"우리가 나에 대해서는 의심을 안 한다. 그런데 이 세상이 괴로울 때면 나를 의심하게 된다. 나까지 의심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달라진다. 이렇게 아프고 괴롭고 한 이 나라는 게 뭐냐 하면서 나를 의심하여 나를 부정(否定)하게 된다. 심하면 나를 없애버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자살을 한다. 괴롭다 하면서도 이 세상 재미를 찾고 할 때는 아직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석가가 6년 동안 출가 고행을 한 것은 나를 의심해서다. 나를 의심하다가 어버이가 낳아준 이 제나(몸나)가 참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영원 절대한 얼나를 참나로 깨닫게 된다. 이게 깨달음을 이뤄 성불(成佛)하는 것이다."(류영모) - 2장 종교란 무엇인가(62쪽)

류영모는 52세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잠을 깬 이다. 인생이라는 잠을 깬 이가 붓다(부처)이다. 그렇지 못한 이는 아직 잠자면서 꿈꾸는 이에 지나지 않는다. 샤머니즘적인 하느님을 아는 것은 깬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아버지이며 참나임을 깨닫는 것이 깬 것이다. ...... 류영모는 우주의 임자인 하느님이 가장자리 없는 태허공에 거룩한 얼로 충만한 온통임을 깨달았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얼로는 하느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가 52세였다.
- 1장 나는 누구인가(25쪽)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나면 삶의 목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류영모는 삶의 목적을 하느님에게 두어야지 땅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여기 이 제나는 거짓된 생명이다. 참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라는 것도 거짓이다. 하잘것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껏 찾아야 할 것은 오직 참이다. 참이란 생전(生前)을 두고 찾아야 한다. 일생뿐만 아니라 대(代)를 물려 가면서 찾아야 한다. 인류가 그칠 때까지 찾아야 한다. 전 인류가 다 힘을 쏟아서 마침내 알아내야 할 것은 참 하나일 것이다. 진리 하나뿐이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류영모)
- 1장 나는 누구인가(33쪽)

"죽음의 종이 되지 말라."

‘죽음’은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이다. 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을까?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류영모는 "죽음은 없다."고 말하였다.

"죽음은 없다. 그런데 죽음이 있는 줄 알고 무서워한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육체적인 생각을 내던져야 한다. 죽음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 껍데기 몸이 죽는 것이지 얼이 죽는 게 아니다. 몸의 죽음을 무서워하고 싫어할 까닭이 없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 껍데기 몸이 퍽 쓰러져 못 일어나는 것밖에 더 있는가? 이 껍데기 몸이 그렇게 되면 어떤가? 하느님이 주신 얼생명은 영원하다. 얼은 하느님의 생명인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다."(류영모) - 1장 나는 누구인가(35쪽)

류영모는 괴롭고 허무한 몸나의 삶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몸나의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어버이로부터 받은 몸나는 가짜 생명이다. 우리는 참나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일이 얼생명인 참나를 찾는 것이다. 하늘나라에도 참나가 들어간다. 예수가 이르기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얼나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고 했다. 가짜 생명인 몸나는 죽어야 한다. 반드시 죽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짜 생명인 몸뚱이를 연명시키는 데만 궁리하고 골몰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내가 어쩌구저쩌구 하는 제나는 멸망의 생명이라 쓸데없다. 석가의 다르마, 예수의 프뉴마는 같은 하느님 아들인 영원한 생명이다."(류영모) - 1장 나는 누구인가(42~43쪽)

"땅 위의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벌레가 이 우주 안에 없다고 해서 어떻다는 것인가. 지구도 달과 같이 생물이 없이 빤빤하게 있다고 해서 무슨 서운한 것이 있는가? 우주조차도 마침내 다 타버린다는 사상이 있다. 우리가 옷에 묻어 있는 먼지 하나를 털어버린다고 해서 누가 눈 하나 깜짝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인류를 털어버린다고 해서 무엇이 서운하겠는가? 똥벌레 같은 인류지만 생각함으로써 사상을 내놓아 여느 동물과 다르다고 하는데 이 사상이 문제이다."(류영모)
- 3장 생각하는 삶(141쪽)

거짓 믿음의 시대
- 깨달음 신앙과 복빎 신앙에 관하여


류영모에 따르면, 하느님이 주시는 하느님의 생명인 얼을 깨달은 이로는 예수, 석가, 공자, 노자가 있었다. 하느님이 주신 얼을 공자는 덕(德)이라 하고, 석가는 다르마(法)이라 하고, 노자는 도(道)라 하고, 예수는 성령이라고 한 것이 다를 뿐이다. 이름만 다를 뿐 실체는 같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류영모는 예수와 석가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깨달은 스승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현실의 기독교와 불교는 예수와 석가의 본래 가르침을 잊고 예수와 석가를 우상으로 섬기며 복을 달라고 비는 샤머니즘으로 변질되었다. 류영모는 "기독교인들이 타율적인 교리에 얽매여 정말 종노릇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하였다.

"흔히 사람들은 내 정신을 어디에 매어놓으면 일이 잘될 것같이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정신을 붙들어 매어놓고 싶어 하지만 정신이란 어디 매어놓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마음은 자유로운 데 그 본질이 있다. 그 대상이 비록 예수 그리스도라 해도 거기에 매여 살면 그 대상인 예수는 우상이 되고 내 정신은 내려가 죽게 된다. 내 정신은 하느님 한 분을 우러를 수 있도록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매여서는 안 된다. 매어놓지 말아야 할 것을 매어놓고 모으는 것이 아닌데도 모으려고 하는 것이 우상이다. 정신은 어디에다 묶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류영모) - 2장 종교란 무엇인가(81쪽)

예수와 석가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은 자율적인 신앙인이 되라고 하였다. 예수와 석가는 타율적인 종교 조직을 만든 일이 없다. 그 뒤에 생긴 조직적인 기독교와 불교는 예수, 석가와는 관련이 없다. 예수는 얼(보혜사)을 좇으라고 말하였고 석가도 얼(다르마)을 좇으라고 가르치고 세상을 떠났다. 예수와 석가는 후계자를 세운 일이 없다. 조직이 없었으니 후계자가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하느님과 얼로 교통하는 자율적인 신앙이 참된 종교이다. 조직에 이름을 올리는 타율적인 종교를 믿는 사람은 미숙한 신앙인이다. - 2장 종교란 무엇인가(111쪽)

여기서 저자는 예수와 석가가 몸소 보여준 깨달음 신앙과, 오늘날 대다수 종교의 모습인 기복 신앙의 차이를 ‘기원하는 대상’ ‘기원의 내용’ ‘기원의 방법’ 등 3가지 측면에서 면밀히 살핀다.
깨달음 신앙(자각 신앙)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존재인 하느님만이 유일한 기원의 대상이며 하느님이 주시는 얼나를 깨닫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다. 그러나 기복 신앙에서는 세상 만물이 모두 기원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예수, 석가조차도 신앙의 대상,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버린다.
기원의 내용을 보면, 깨달음 신앙은 오직 하느님의 생명인 얼을 깨달아 하느님 아들 노릇을 잘하게 해 달라고 기원할 뿐이다. 이에 비해 기복 신앙에서는 현실의 부족과 결핍을 해소해 달라고 기원한다. 그러나 그런 기원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세상 사람들이 복과 화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나가 고통과 시련을 겪는 불행은, 제나가 참나가 아닌 거짓나임을 깨닫게 하려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나가 불행을 겪을 때가 제나의 거짓을 알게 되어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삶이 무상할수록 오히려 은혜로운 것이다. - 2장 종교란 무엇인가(90~91쪽)

마지막으로 기원의 방법에서는 깨달음 신앙은 명상 기도가 전부인 데 비해 기복 신앙은 제사를 지내거나 절을 하거나 주문을 왼다. 류영모는 예수, 석가가 가르쳐준 깨달음 신앙(영성 신앙)을 가리고 더럽힌 기복 신앙을 버리라고 깨우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부흥회를 해서 병을 고치고 돈이 쏟아지는 것이 얼이 아니다. 하느님의 생명인 얼나를 깨달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 아들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얼이다. 요새 교회가 얼을 팔아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사람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어서 얼의 권능이라 하는데, 요한복음 17장 2절에서 예수가 말한 얼의 권능이란 사람이 지닌 수성을 다스리는 권능을 말한 것이다. 이적 기사를 일으키겠다는 권능 생각은 아주 없어져야 한다. 요새 어떤 이들이 얼(성령)의 권능을 받아 사람 몸에 난 병을 고친다고 거들먹거리고 그의 뒤를 여인들이 따라다닌다는데 그것은 마귀의 짓이다."(류영모) - 2장 종교란 무엇인가(111~112쪽)

거짓된 나를 이기고, 하느님과 얼로 뚫리다
- 다석 사상에서 찾는 깨달음의 길


류영모는 삶의 목적을 ‘맨 처음 나온 데로 돌아가는 것’ 즉 "하느님과 하나 되고자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치 탕자가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아버지(하느님)가 그리워져서 돌아가듯이,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 길은 "제나를 버리고 집을 버리고 나라를 넘고 세상을 끊은 후 하느님과 뚫리는 길이다."

제나가 죽으면 그것이 바로 극기(克己)이다. 극기하면 제나가 없어지기 때문에 다음 차례인 출가, 초국, 절세는 저절로 이뤄진다. ‘나’가 없어지는 마당에 집이 어디 있고 나라가 어디 있고 세계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밖에서 보면 한 계단씩 위로 오르는 것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얼나를 깨닫지 못한 이들이 얼나를 깨달은 이의 속생각을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된다. - 4장 깨달음의 길(183쪽)

첫 번째 단계인 ‘제나 이기기’는 "제나가 참나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제나의 태어남을 기뻐할 까닭도 없고 제나의 죽음을 언짢아할 까닭도 없"음을 아는 것이다.
그다음 ‘집을 벗어나기’는 혈연 관계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전도 중에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아우들을 옆에 두고도 제자들을 가리키며 여러분이 내 어머니요 형제라고 말한 예수야말로 출가를 한 사람이다."(185쪽)
세 번째 ‘나라를 넘어서기’는 땅의 나라를 초월하는 것이다. "땅의 나라는 사람이 지닌 수성(獸性)의 산물일 뿐이다. 그래서 권력을 잡은 이들이 특권을 누리고 서민을 내리누른다. 예수와 석가는 수성을 버렸기에 나라의 관리가 되어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에 오르는 것을 거부하였다."(186~187쪽) 현실 생활에서는 평화를 깨뜨리는 배타적인 애국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네 번째 ‘세상을 잊어버리기’는 밖으로는 거짓된 현상 세계를 부정하고 안으로는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하느님과 얼로 뚫림’ 즉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내 생각이 얼로 하느님과 뚫려 참나를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다른 모든 생각보다 하느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시원해지고 기쁜 것이다. "아침에 하느님 말씀을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논어] 이인 편) "하느님의 얼을 받으면 반드시 말을 한다(有德者必有言)."([논어] 헌문 편) 공자가 얼마나 하느님의 얼이 그리웠으면 이런 말들을 하였겠는가? 석가가 나고 죽는 제나를 없애고서(넘어서) 니르바나님을 기뻐한다(生滅滅已 寂滅爲樂)고 한 것은 니르바나님(하느님)과 얼로 교통하는 것으로 기쁨을 느낀다는 말이다. - 4장 깨달음의 길(192쪽)

홀로 고요히 기도하라

"기도는 하느님이 그리워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밖에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예수와 석가는 홀로 명상 기도를 했고, 류영모도 침묵의 기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 의식은 아직 얼나를 깨닫지 못한 제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얼나를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필요가 없다. 예수가 골방에서 홀로 하라고 한 기도는 얼나를 깨달은 이나 얼나를 깨닫고자 하는 이에게 필요한 예배이다."(236쪽)

"두드려라, 찾으라는 것은 떼라도 쓰면서 자꾸 조르면 주신다는 말이다. 종교를 잘 믿으려면 기도를 잘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기도하라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하느님에게로 영원한 생명(얼나)만 구해야 한다. 기도는 혼자서 해야 한다. 제 기도는 제가 해야 한다. 여럿이 모여 할 때는 암만해도 하는 척하게 된다. 거짓으로 하는 기도는 미워해야 한다."(류영모) - 5장 기도하는 시간(238쪽)

"이 사람은 아침저녁 기도에 밝은 속알에 더욱 얼나라 찾아지이다 라고 외운다. 밝은 속알 밝아 하느님께로 뚫린다면 얼나로 하느님 아들이 될 것이다. 참으로 얼나라에서 예 있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극히 높은 데 계신 온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자는 게 예수의 인생관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이러한 인생관을 갖고 싶다. 이런 점에서 예수와 내가 관계가 있는 것이지 이밖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걸 신앙이라 할지 어떨지 예수를 믿는다고 할지 어떨지 나는 모른다."(류영모) - 5장 기도하는 시간(264쪽)

씨알과 민주주의를 말하다

류영모는 백성, 인민을 순수한 우리말로 ‘씨알’이라고 썼다. "씨알이란 말은 원래 있던 말이지만 민(民)을 씨알이라고 한 것은 우리말이 생기고서는 처음일 것이다. 그런데 씨알이라는 말을 퍼뜨린 사람은 함석헌이다."(382쪽)

함석헌이 강연 시간마다 빠뜨리지 않고 말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씨알’이라는 낱말 쓰기를 권장하는 것이었다. 국민, 백성, 민중, 인민이란 말은 모두 한자에서 빌린 말이므로 순수한 우리말로 ‘씨알’이란 낱말을 민(民)을 대신해 쓰자는 주장이었다. 뒤에 잡지를 낼 때 잡지 이름도 [씨알의 소리]라 하였다. 잡지 창간 전에 천안에 일하면서 공부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농장 이름도 ‘씨알농장’이라 하였다. 함석헌은 농장도 순우리말로 ‘여름질터’라고 하였다. 물론 이것도 류영모에게서 나온 것이다. - 7장 씨알의 나라(382~383쪽)

류영모가 쓴 씨알이라는 낱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싹이 안 튼 씨알은 민(民)의 뜻으로 쓰고, 싹이 튼 씨알은 얼(靈)의 뜻으로 썼다는 것이다. "씨알은 오로지 싹이 터야 씨알 노릇을 한다. 싹틀 가능성을 지녔기에 씨알의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예수가 씨알은 땅에 떨어져 죽어야 씨알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바로 씨알은 싹이 터야 한다는 말이다."(383쪽)

류영모의 씨알 정신은 예수의 씨알 정신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류영모는 이 땅 위에 모든 씨알이 얼나를 깨달아 얼의 나라(하느님)를 이루기까지는 이 땅에 민주주의가 잘 운영되기를 바랐다. 류영모가 남긴 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 임금이라는 것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을 깔고 앉아 충성을 바랐는데 지금 생각하여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사람이 사람 위에 서 있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닌가? 그 뒤로 민주 정치가 발달되어 지금은 밝아진 세상이다. 사람 위에 사람이 없어졌다. 임금이 없어진 세상에 민주 정치가 시행되는 이 땅에 아직도 우스운 사람이 있는 것은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세상에서 높은 분은 하느님 한 분밖에 없다. 이것을 모르고 아직도 우스운 짓을 하고 있는 민족이야말로 마지막에 이른 우스운 민족이 아닐 수 없다."(류영모) - 7장 씨알의 나라(384쪽)

"씨알 위함이 하느님 위함이다. 예수는 모른다 하면서 하느님만 섬긴다 함도, 하느님을 모른다 하면서 씨알만 위한다 함도 다 거짓이다. 이 시대가 민주주의 시대가 되었으니 처음부터 마음이 민주(民主)가 되어야 한다. 씨알이 나라의 임자가 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요 하느님의 길이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그리 된 것이다. 모든 게 씨알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민주주의라면 주의(主義)가 없어져야 한다. 주의가 있으면 전제(專制)가 된다. 우리가 민주주의 시대에 사니 그 민주주의라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우리는 민주 제도가 중하고 귀한 것을 알아야 한다. 대중(大衆)이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는 데서 민주의 무게가 있다.
바른 자리에 옳지 않은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구별하여 내고 옳은 사람이 오르지 않는 것을 구별해야 민주주의의 무게가 있게 된다. 정치의 이상(理想)은 예수가 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 5:48, 한글개역)가 아니겠는가? 이 씨알이 스스로 민주주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을 감격스레 생각해야 참 민주주의가 된다."(류영모, [다석어록]) - 7장 씨알의 나라(384~385쪽)

접어보기

목차

머리말

1장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죽음 앞 최후의 화두
하늘로 머리를 두는 까닭

2장 | 종교란 무엇인가
하느님은 말씀으로 계신다
죽은 믿음의 시대
기복 신앙과 깨달음 신앙

3장 | 생각하는 삶
살아가는 이유
“죽음의 종이 되지 말라.”
생사를 넘어서는 생각

4장 | 깨달음의 길
없이 계시는 하느님
생명의 길, 죽음의 길
영성 신앙이 배척당한 이유

5장 | 기도하는 시간
홀로 고요히 기도하라
몸나의 신앙은 샤머니즘이다
신의 노예가 된 사람들

6장 | 행복의 조건
제나의 행복, 얼나의 행복
시련과 고난이 필요한 까닭
참된 행복이란 무엇인가

7장 | 씨알의 나라
씨알이란 무엇인가
류영모와 함석헌의 씨알 정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얼의 씨앗을 품은 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