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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십자천부경(5)/ 본체의 존재와 불변성. 본문
백십자천부경(5)/ 본체의 존재와 불변성.
[한민족학 수요강좌]
백십자천부경(5)
13. 본체의 존재와 불변성 (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하나님 오묘하신 세상섭리는 수 억겁의 세상사가 가고 오면서, 그 쓰임(用)은 변(變)하되 근본(本)은 움직이지 않는(不動) 것이다. 하나님의 작용은 많으나 하나님 자신은 움직임이 없다. 하나님은 세상을 운행하시며 천지간의 모든 것을 섭리하시기 위해 여러 활동과 순환하심을 계속하셔도 그의 존재와 본체는 불변하신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독립 자존성(aseity)이다. * 먼저 한은당 이유립 해설이다. 일묘연 (一妙衍 : 一中大道, 妙能則神, 衍能出神 :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만왕만래 (萬往萬來: 天以創造, 地以進化, 人以循環 : 창조, 진화, 순환 하여도,) 용변 부동본(用變不動本 : 處變達權, 無違化之動力三神一體之原理: 작용은 변화 무상하지만 하나님 자신은 움직임이 없다. 이는 삼신일체 하나님의 원리이다.) * 둘째, 묘묘단 유정수 해설이다. 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용(用)은 변(變)하되 본(本)은 부동(不動)이다. 하나님이 묘하게 펼치니 모든 것이 가고 모든 것이 오나니, 쓰임은 변하되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 셋째, 전병훈 해설이다. 一妙衍萬往萬來 하나님의 묘연이 이루어져 참 내가(眞我) 성선(聖仙)하니 신화(神化)가 하늘에 합하여 만겁(萬劫)의 왕래가 나의 고유한 것이 되니 나의 양신(陽神)이 상하를 종횡하여 두루 가지 않음이 없어 우주가 손에 있으니 일용만사(日用萬事)에 이르기까지 만 가지 기틀의 왕래가 비록 무궁하나 능한 주재자(主在者)가 있구나. 이것이 제세(濟世)의 법(法)이로다. 用變不動本 모든 일에 변화가 오니 내가 그 변화하는 것을 사용한다. 마음에 저울이 있으니 저울로서 일의 경중(輕重)을 저울질 하여 변화에 따라 마땅함을 통제하는 까닭에 용변(用變)이라 말하는 것이다. 부동(不動)의 그 화(化)가 가서 만 가지 변화에 수작을 하나 마음의 근본(根本)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로 치성무위지덕(治成無爲至德)의 세상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겸성극철(兼聖極哲)이 아니면 그 누가 능히 그렇게 하리오. * 필자의 총설(總說)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상과 의지 그리고 목적(目的)이나 작정(作定)과 같이 “존재와 본체(本體)에서 불변적”이다. 불변성은 모든 신적 행동(神的行動)에 그것들의 법칙과 원천으로 존재하는 신적 성질의 항구와 계속이다. 그의 목적과 약속들에 변경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모든 생성(becoming) 이상에 초월하시고 그의 실유(實有)와 속성(屬性)들에서 승강(昇降)과 성쇄(盛衰)가 없으시다. 그는 그 자신 이외의 무엇에 의하여 변경(變更) 될 수도 없고 그자신 안에 어느 원리에 의하여 변경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계획과 도덕적 원리들과 결의들은 영원히 동일하다. 하나님의 불변성을 말하면 하나님은 행동이 없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원칙성(原則性)의 불변이지 세상 운행과 작용(運行作用)을 늘 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늘 동작하시는 자(actus purus)이다. 하나님은 활동적이라서 사람과 더불어 관계를 가지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에 부절(不絶)히 주목하여 변전무상(變轉無常)한 대소만사(大小萬事)를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되 모든 활동을 통하여 그 자신은 성실과 의지에서 불변동일자(不變同一者)로 남이 계신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후회, 의도의 변경이 있으시다면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어법 이시다. 변화는 인간에게 있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건에 관하여 하나님의 근재목적(根材目的)과 구경목적(究境目的)을 종합하여 신적목적(神的目的) 전체(全體)를 살펴보아야 오해가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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