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02사 -其然(기연)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14
상식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선할 수
밖에 없다. 어떤 극적인 반전효과를
얻기 위해서 죄와 악이 등장한 것이지
인간의 근본을 악하다고 하고,
본성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 모든 것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정하는 결론을 얻게 된다.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악이 횡행하는
세상을 산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근원을 악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정신을 차리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어둠과 악의 구름이
걷히고 그 너머를 보면 태양과 같이
밝고 빛나는 진리와 선이 거기 있음을
보게 된다.
바로 거기가 하나님의 자리요, 우리 모든
존재의 기원이다. 어둠과 악은 필요에
의해서 도입되었을 뿐 그 자체가 근본이
될 수 없고, 실체로 있을 수가 없다.
만일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 서로 대립을
일으키는 것이 우주라면 어둠이 득세한
우주와 악이 관영한 세상은 하루속히
없어지는 것이 최선이요, 괴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죽여서 고통을 없애 주는
것이 최고의 선이 될 것이다.
이원론을 넘어서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이런 현상에 홀린
수준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자고로 '견성'을 강조하고,
'하나님'을 만날 것을 일깨웠던 것이다.
모든 것의 근원되신 하나님, 선과
진리, 생명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절대로 보이는 부정적이고 악해 보이는
현상세계를 극복할 수 없다.
기독교에서도 인간의 죄인됨을 강조한
이유는 단 한가지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그 은혜를 입은 감격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일 뿐 인간 자체를
정죄하거나 심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해 놓고
그를 악하다고 벌한다면 그런 인간을 지은
하나님은 또 뭐가 되겠는가?
이렇게 상식적인 논리도 거부하고 인간을
지속적으로 죄인으로 몰아붙이고, 세상을
마귀가 지배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자들은
그 속셈이 뻔하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과 영예를 얻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교묘하게 사람들의 무지와 두려움을
이용하여 오직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자기
명예를 높이려고 하는 거짓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에게 이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
이전에는 어리고 무지해서 속았다 하지만
이제는 명확하게 진리가 빛을 발하고 있으니
속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근원이 악하다면 지금 어떻게 이처럼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그 존재를 계속하고
있겠는가?
第 302事 報 3階 剙 3及
(보 3계 창 3급) 其然(기연)
其然者(기연자)는
然善不然惡也(연선불연악야)라
風蒲無定葉不飄岸
(풍포무정엽불표안)이니
人之性善也(인지성선야)라
性或浪欲善欲惡
(성혹랑욕선욕악)하나
然善而不然惡(연선이불연악)에
返眞也(반진야)라
可領其福(가령기복)이니라
기연(其然)이란
선함이 당연하고
악함이 당연하지 않음이라
바람이 버드나무의 잎은
흔들어도 나무를 저쪽 기슭으로
옮기지는 못하나니
사람의 본성은 착한지라
혹 성품이 물결처럼 흔들려
선한 욕구와 악한 욕구가
함께 일어나기도 하지만
선함이 당연하고
악함이 당연하지 않기에
참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
가히 그 복을 받게 되느니라
삼일신고를 보면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은 '삼진, 성명정
(三眞 : 性命精)'이라 하여
근본적으로 아름답고 선하며 고귀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지 인간이
미혹에 빠져 '삼망,심기신(三妄 : 心氣身)'
수준에 떨어짐으로 혼란이 임하여
선과 악, 맑음과 탁함, 두터움과 박함
등으로 양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생명의 길,
'삼도, 지감, 조식, 금촉(三途 : 止感,
調息, 禁觸)'의 수행으로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어떻게 사람이 삼망으로 떨어졌는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고, 수행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세한 안내도
필요하다.
따라서 삼일신고는 성경의 자세한 내용이
뒷받침 될 때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처음 상태, 그리고 미혹을 받아
타락하게 된 배경, 그리고 율법과 복음의
단계적 출현,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한
회복과 구원의 역사 등을 잘 설명하면
우리 민족경전 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교리들에 대해서도 명쾌한 설명이 충분히
가능하다.
무지와 두려움으로 폐쇄성과 독선을 품고
있으니 갈등과 대립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 진리이다.
참전계경의 가르침도 바로 이런 흐름에
함께 한다.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선함'이지 '악함'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비록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그 잎은 떨어져서 여기저기 흩어질
수 있지만 그 나무 둥치는 움직일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때로는 두려움과
욕심 때문에 어리석은 일도 저지르고,
악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인간의 근본 속성은
선하며, 선한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러한 증거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을 보아도 되고, 남을 보아도 된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악한 마음을 품고,
죄를 지으면 괴롭게 되어 있다.
반대로 선을 행하고, 사랑하고 살면
행복을 느낀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보편적일까?
간단하다. 우리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금수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자도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
미혹과 연약함으로 죄에 끌려 들어간
것이지 그 누구도 천성적으로 악한 자가
없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보다
선하고, 보다 더 아름다워 원래 우리에게
주어진 삼진(성명정)의 근본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나온 것이지, 욕심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악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내 마음이 문제요, 부정적으로
기울어진 집단 의식이 문제일 뿐 사실
우주는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이를 볼 줄 아는 눈을 회복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보이는 것을
자기 원하는대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몸부림이
되고 말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선하신
것처럼 그의 본성을 부여받은 인간도
원래 선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믿음과 수행을 통하여 미혹과 어두움을
벗고 본성으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는
다 사라진다.
이를 부도지에서는 '復本(복본, 본성으로
돌아감)'이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본향으로 돌아감' 혹은 '신의 성품에
참예함'등으로 표현한다.
[출처] 참전계경 제302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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