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301사 -有隣(유린)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13
자신을 제대로 보려면 깨끗한 거울을
볼 것이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사람됨을
바로 알 수 있다.
끼리 끼리 모인다는 말이 공연한
소리가 아니다. 관심사가 같아야
자리를 같이하게 되고, 많은 것을
공유하며 나눌 수 있다.
자기 주위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욕을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비방이 된다. 그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그들과 비슷하다는 의미요,
만일 그들이 싫다면 이미 떠났어야
한다.
미워하면서도 가까이 두는 이유는
닮았기 때문이며, 싫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무언가 욕심이 남아있기
때문이니 달리 변명할 필요가 없다.
기호나 취미를 따라 모이는 모임도
있고, 어떤 정치적 이념과 성취욕을
가지고 모일 수도 있으며, 종교적
신념을 중심으로 모이는 경우도 많다.
모두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한 번 왔다가
가는 운명이고, 한 번 선택을 하게
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하는 삶이기
때문에 마냥 '좋은게 좋다' '내가 좋아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 가족과
이웃에게도 자신의 삶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래서 경전은 때로 아주 엄격하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여 정신을 차릴
것과 바른 길로 들어설 것을 경계한다.
사도 요한이 추천한 가장 아름다운
모임은 '진리 공동체'이다.
그는 나이가 많아졌을 때 믿음의
후손들을 '자녀'라고 불렀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한일서 1:4)
사람 중심으로 모이는 모임도 허망하며,
이익 중심으로 모이는 모임은 결국
큰 싸움으로 끝나게 된다.
이상 중심으로 모여도 자아가 나서기
때문에 탁상공론이나 논쟁만 하다가
헛된 세월만 보내기 십상이다.
'진리 공동체'는 '이것이 진리다'하고
끼리끼리 모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이념공동체'에 지나지
않고 '종교공동체'를 넘어서지 못한다.
진정한 진리 공동체는 열린 마음,
겸손한 자세로 하늘과 진리를 향해
그 의식을 일깨우고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쉼없이 배우고, 배우고 익히는
것을 즐거워하며, 그 열매를 보고
나누기를 기뻐한다.
第 301事 報 3階 剙 2及
(보 3계 창 2급) 有隣(유린)
有隣자(유린자)는
同隣于善也(동린우선야)라
羊不群犬(양불군견)하며
鴻不集燕(홍부집연)함은
理也(리야)라
善者隣善(선자인선)하여
隣不善則去之(인불선즉거지)하며
恐損善德(공손선덕)하니
可領其福(가령기복)이니라
유린(有隣)이란
선함을 이웃과 같이 함이니라
양이 개와 무리짓지 않고
기러기가 제비와 모이지 않는 것은
자연의 이치니라
선한 자는 선한 자와 이웃을 삼고
이웃이 선하지 않으면
그 이웃을 속히 떠나
선과 덕이 손상될까 두려워하나니
가히 그에 합당한 복을 받게 되느니라
선함을 이웃삼고 지내게 되면
어떤 자연스러운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악한 자가 떠나게 되며, 악한 자가
가까이 오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진리를 생명삼고 지내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자들은 모일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들은 자연스럽게 떠나게
된다.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배까지 타고
예수를 따라오던 자들이 하늘의 양식에
대한 진리를 선포하자 다들 투덜대며
가 버렸다.
수천명이 넘었던 무리가 다 가버리고
겨우 12명이 남았다.
예수는 별 개의치 않았다.
칭찬을 하면서도 '너희 중에도 한 사람은
마귀다'는 무서운 말을 서슴지 않고
던졌다(요한복음 6:70).
예수는 알았다. 떡을 먹고 배부른 자들과
기적을 보고 세속적인 욕심이 채워지기를
바라던 자들에게서는 그 어떤 기대도
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추리고 또 추렸다.
12중에서도 또 한 사람을 추려내었다.
그리고 오직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했던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새시대를 열었다.
오늘이라서 다르겠는가?
무수한 사람들이 번영과 평화를 외치지만
그들의 외침이 그리도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심은 진리보다 세속적 욕심이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하나님도 이용하고, 진리도 이용하려 든다.
가능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욕심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결국 그 나중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허무함 속에 사라질 운명이다.
한 번 실험을 해 보았다.
과연 진리의 말씀에만 초점을 맞추고
오직 거기에만 집중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믿음도 있었지만 호기심도 일어났다.
그래서 미친척 하고 진리에만 집중해
보았다. 과연 대단한 저항과 거역이 발생
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거셌다. 그래도 '이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확신과 집념으로 진리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일에 힘을 썼다.
한 15년 지나니 마침내 바람과 풍랑이
거의 잔잔해지고 돛단 배와 같이
세상의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간다.
물론 아직 끝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제는 경험과 증거도 얻은터라
그 중심은 더 강해졌다.
요즘은 내 주위가 고요하다.
평안한 가운데서 열심으로 진리를
연구하고 증거하는 일에 힘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쓸데 없는 전화도 안오고, 사람도 찾아오지
않는다. 간혹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두어시간 도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나면 발길을 끊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불만이 전혀 없다.
아무도 없으면 열심히 연구하고 글을
쓰면 될 일이고, 누가 있으면 도를 나누면
되기에 이래도, 저래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지금 내 주위에는 오직 진리에 관심을
둔 자들 소수만 있다.
[출처] 참전계경 제301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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