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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293사 -有早(유조)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293사 -有早(유조)

柏道 2019. 4. 17. 17:40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05  
 


요즈음 아이들의 지혜와 재능을 보면
놀라움 정도가 아니라 충격에 빠질
정도이다.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한다.
음악적 재능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과
창의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정말 놀랍다.
또 촛불집회 등에서 발언하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른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이다.
이젠 그 누구도 함부로 어리다고 무시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뛰어남을 보는 것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제대로 가르쳐 행하게 하는 역할이
너무 미흡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와 종교 등에서 이러한 역할을
감당한다고 할지 모르나 이미 세속화의
물결에 침식되어 도와 덕에 관한 가르침은
뒷전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아예 과목자체가 사라진지 한참 되었다.
모든 과목이 지능과 재능, 기술, 성공을
향한 방향으로 집중되어 있으니 이들의
미래가 심히 걱정이 된다.
이미 무한경쟁 속에 빠져 유년기의 삶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 뿐 아니라 대다수가 공감하고
우려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 일어난 엄청난 국가적인
농단사태를 통하여 모든 국민이 달려가는
일을 멈추고 진지하게 인생과 사회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외적인 성공이 결코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면서 모두가 방향전환의 시급함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도덕과목'을 신설하고,
종교단체에 인성함양과 영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미 지나간
패러다임이기 때문에 현재 뛰어난 재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구 패러다임을
적용하는 것은 반발만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럼 지금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이며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격려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믿어야 하고, 자신들을
믿지 말아야 한다. 옛날 자신들이 어릴 때
들은 말들, 즉 '어린 것이 뭘 안다고?'하는
것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어른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얻어내는 길도 많이 알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이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들을 가르치려 하다가는
부작용만 낳게 될 것이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일단 비켜주는
일이요, 깊은 내면의 세계를 일깨워 주는
일이다.
아이들이 능가할 수 없는 어른의 장점하나는
인생을 오래 살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며, 인생에 대한 깊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부모가 그 의식이 깊지 못하면 이제
아이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무시를 당할
일 밖에 남지 않았다. 
 
第 293事 報 2階 重 1及
(보 2계 중 1급) 有早(유조) 
 
有早者(유조자)는
有早年爲善也(유조년위선야)라
人之幼也(인지유야)에
志未定學未浹
(지미정학미협)하여
慧頭開閉(혜두개폐)하고
局量晦明(국량회명)하되
能爲善事(능위선사)하니
可領其福(가령기복)이니라 
 
유조(有早)란
어린나이 때부터 선을
행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어릴 때는
아직 뜻이 서지 못하고
학문도 두루 넓지 못하기에
지혜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며
생각의 범위가
어두웠다 밝았다 하느니라
그래도 선한 일을 할 수 있으니
가히 그에 해당하는 복을
받게 되느니라 
 
어린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을 산
경험이 적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얻는
지혜에 있어서는 어른들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삶의 경험을 통해서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어른들은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인생은 똑똑하고 많이 안다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해 질 가능성이 높지만 동시에
불행해질 가능성도 높다.
그 증거를 최근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에 일부러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바로 이 시기가 깨우칠 좋은 기회이다.
물론 자신이 하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애쓰고 있는 자들에게 해당되지만...
아이들로 하여금 마땅히 행할 길, 즉
하늘의 이치를 일깨우고, 사람이 사는
목적과 도리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똑똑한 아이들은 생각해 볼 것이고
제대로된 결론을 내릴 것이다.
부모가 못배웠다고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부모가 가난했다고 아이들에게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밀어 붙인다면 차라리
비켜 주거나, 입을 다무는 것이 훨씬
좋은 부모역할이 된다.
그리고 일부러라도 아이들 보는데서
성경이나 좋은 경전의 말씀을 펴 놓고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최상의 교육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선을 행하면서 그렇게 하는 이유를
경전의 말씀을 들어서 아이들에게 말해
주면 당연히 부모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증거를 나는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서 자라서 좋은
교육을 받았다. 그 아이들을 보면 우리
부부는 거의 바보수준이다. 아마 아이들이
보아도 한심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영어도 한심하고 미국 시스템을 제대로
모르니 사는 것도 답답하다.
그러나 그래도 아이들이 우리 부부를
인정하는 분야가 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경전을 연구하고 
예배를 드리며 열심히 기도와 강론에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희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나가도
삶을 통한 경륜과 영적인 깊이는 아직
멀었다. 그래서 간혹 한번씩 영적 지혜를
말해주면 아이들이 경청을 한다.
어릴 때부터 강조한 바가 '성공'이 아닌
'성숙'이었다. 성숙한 삶이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부보다
성실을 강조했고, 뛰어남보다 사람됨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것을 어떤 교육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확신하고 가르치며 행하는
삶을 살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었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 누구도 큰소리치지
못한다. 그러나 좋은 길, 최선의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고, 인간의 도리와 선을 행하는
삶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면서 그
선한 본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이 구절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암송했던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게 해 주신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