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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참전계경 제290사 -天心(천심) 본문

천지인 공부/참전계경

참전계경 제290사 -天心(천심)

柏道 2019. 4. 17. 17:34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302 
 


사람의 가장 근원은 하나님이요, 그 근본 본성은 신성이다.
그러나 이 근원과 본성까지 찾아들어가 확신하기까지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아무리 진실을 말하고, 듣기 좋은 선언을 해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고, 삶의 현장에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과정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공감은 가는데 전혀 실생활에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금 의심과 불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 꿈과 같이 들리고 아련하게 느껴지며, 현실인 것 같으나 현실이 아닌 삶...
바로 그것이 꿈의 실상이듯이 진리를 들어서 알고,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의
삶은 그러하다.


좋은 말씀이라 여기면서도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기지 않고, 삶에 적용하려 해도
스스로 어색하고 이상하여 그만둬 버린다. 이런 경우 아무리 반복하고 또 깨우쳐
주어도 소용이 없다.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 진리가 머무는 자리는

추상적인 정보의식의 자리에만 머물게 되어 안다고는 하지만 행하지를 못한다.
그러니 스스로 잘 안다고 착각하여 교만함을 보이다가 행함으로 증거되지 않는 것

때문에 금방 좌절하고 만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정밀하고 정확하게 진단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리 진리가 선포되어도 공허한 말로만 들리게 되어 있다.
인간의 근원은 분명히 하나님이요, 본성은 신성에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근원과 본성이 자동적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섭리에
의하여 이 진리가 전달되지 못하도록 막는 미혹의 세력이 공중에서 역사하고
있으며 생각을 사로잡는 그물이 우리 의식 위에 쳐져있기 때문이다. 
모든 경전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며 사실적인 묘사로 가득차 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 미혹의 세력은 강하며, 그 영향력은 온 세상에 미친다.
따라서 진리의 빛을 통하여 먼저 이 세력의 존재와 영향력을 파악하고 
정성과 믿음으로 이 세력을 파쇄하고 그 그물망을 돌파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신성으로 통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사람은 벌써 어떤 깨달음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 또한 신비한 경륜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설명되어질 수 없다. 
 
第 290事 報 1階 積 5及
(보 1계 적 5급) 天心(천심) 
 
天心者(천심자)는
無所學而只有天心之向善也
(무소학이지유천심지향선야)라
云善行從(운선사종)하고
云善事作(운선사작)하며
云善心施(운선심시)하니
雖不蹈仁(수불도인)이나
不善不爲(불선불위)하니
可領其福(가령기복)이니라 
 
천심(天心)이란
배운 바 없어도 다만 본래의
천심으로 선을 향하는 것이니라
선행이라 말하면 그대로 따르고
선한 일이라 일려주면 그대로 하고
선한 마음이라 가르치면 그대로 베푸니
비록 어진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해도
불선한 일을 하지 않기에
가히 그 복을 받게 되느니라 
 
배우지 않아도 지혜로운 자가 있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착한 사람이
있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선한 성품을 타고난 사람은 그 자체로
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쉽게 논할 수 없다.
성경에도 보면 이 영역에 대해서는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하는 이와 미워하는 이가 정해진다는 것은
우리의 현재의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될 수 없고,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사실인데.. 태어나서 무언가를 행하기도 전에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 고 하는 선언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
스럽게 해왔다.
심지어는 불합리, 불공평하다는 항의를 하는 사람도 있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오리겐 같은 교부는 전생, 즉 윤회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가룟유다가 배신할 것을 미리 알고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뻔 했다'는
말을 한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도 가룟유다의 배신을 막을 수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나타난다.
예수는 가룟 유다의 배신과 운명이 이미 예정이 되어 있었고, 오래전에
예언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어려운 교리는 억지로 풀려고 해서는 안된다.

의식이 깨어나 성숙하게 되면 별 무리 없이 이해가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조급하지 말고 겸손과 인내로 진리를 묵상하고 연구하는 일을 지속할 일이다.
나다나엘 같은 경우에는 천성적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례다.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실제로 이 선언처럼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를 알아 보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천성이 착하게 태어난 사람은 그 사람의 복이니 그냥 보고 좋아하면 된다.
그러한 자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그에게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자신을 돌아보아 그러한 자에 속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저절로 그 마음에 선을 향하는 의식이 일어나고, 남을 돕고,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좋으며 진리를 향한 열정이 저절로 일어 나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확인이 되면 다시 없이 복을 받은 증거이고, 문제는 그렇지 않을 경우이다.
천성이 게으르고, 악하며,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성향이
자기에게 있음이 확인된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거기에는 이유도 변명도 필요없다. 그것을 따지려 들면 더 상황은 악화된다.
최선의 길은 악한 성향에 대해 투쟁하는 길 밖에 없다.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을 향하여 한 말처럼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사도행전 8:22-23)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면 진리의 말씀과 영적으로 밝은 자를 통하여 지적을 받고
돌이킬 기회를 얻는 것이 최선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선을 향하는 마음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면 감사하라.
그리고 그 천심을 가지고 순수함으로 순종하기를 힘쓰라. 그것만으로도
복된 인생이며, 평안하고 감사한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