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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계경 제177사- 潤資(윤자) 본문
참전계경 (參佺戒經),
8理, 366事를 통한 인생지혜 탐구 189
전통적으로 경건함과 가난(청빈)은 함께 걷는 동행자로 여겨졌다.
예수도 '가난한 자는 복이있다'고 노골적으로 가난한 자를 칭찬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그냥
'가난한 자'라고 한다(누가복음 6:20).
반대로 부자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여 거의 불가능함을 말했다.
그래서 청빈을 공동체 신조로 삼고 무소유를 실천하려고 애를 쓴 사람들은
어느 종교에나 항상 있었다.
불교에서도 탁발은 매우 중요한 수행의 요소요, 얻어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과연 가난은 복일까?
그리고 반대로 부자는 비난과 정죄를 받아 마땅한 악한 자들일까?
177사 참전계경의 가르침은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공부가 될 것 같다.
第 177事 濟 4規 智 5模
(제 4규 지 5모) 潤資(윤자)
潤資者(윤자자)는
潤其資有也(윤기자유야)라
人有資有則無苟願
(인유자유즉무구원)하고
長慈心(장자심)하나니
資有成之於勤(자유성지어근)하고
失之於怠(성지어태)라
義則守(의즉수)하고
仁則潤(인즉윤)이니라
'윤자(潤資)란
가진 자본을 불려나가는 것을 말하느니라
사람이 자본을 가지고 있으면 구차하게
원하는 것이 없어 자비심을 키울 수 있느니라
자본은 부지런함으로 이루고
게으름으로 잃게 되느니라
의로우면 지킬 수 있고
인자하면 늘여나갈 수 있느니라 '
'재물'이라고 하지 않고 '자본'이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재물'은 단순한 물질 그 자체를 말한다면, '자본'이라고 할 때는 사람과 관련된
물질, 그리고 유동성과 생산력이 있는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자본은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서 불어날 수 있도, 잘못하면 털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자본은 의로움으로 지키고, 인자함으로 불려 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런 자본이 있어야 자비심도 강화할 수 있고, 욕심이나 집착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설명하면 여기서 말하는 재물이 가지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있음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집착이나 욕심으로 추구하는 그런 재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여유있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선의 도구로서 재물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정리를 한 번 해보자.
성경에서도 '가난한 자'에 대한 자비와 긍휼을 강조하고 있지만 '가난' 그 자체를
선으로 보지 않는다.
성경이나 다른 경전에서 가난과 검소함을 칭찬하는 것은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또 가진 것을 기쁘게
나누어 줌으로 가난하게 된 자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가난에 빠져 있는 자들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그러한 자에 대해서 바울은 '게으른 자는 먹게도 하지 말라'고 하여
엄격하게 경계하고 있다.
부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재물을 사랑하여 그것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그 위험성과 어리석음을 경계한 것이지 정당한 노력과 수고로 얻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격려한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에 대한 말씀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차원의 의식에서는 노력하여 얻은 것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어도 주위의
어려운 자들을 보고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자가 되도록 도전한다.
바로 참전계경의 지혜가 바로 이에 속한다.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재물이 있어야 자비심이 일어나며,
의로 지키고, 인애함으로 늘여나가는 즐거움과 지혜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재물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재물이 없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이며, 다른 사람이나 나라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자비로 베푸는 활동을 기대할 수가 없다.
심지어는 영적인 의식을 가지기도 어렵다. 가난한 사람은 모든 의식이 물질에
집중되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생각할 여유공간이 그 의식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도 재물을 목적으로 하는 기복신앙에 머물기 쉽다.
얼마든지 재물을 모으고 누릴 수 있음에도 스스로 가난을 택한 자는 사실 가난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적은 것, 없는 것을 견뎌낼 능력을 키웠기에 오히려 남들보다
불편함을 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왜 그러겠는가? 그 이유는 세상의 것들에 대한 관심과 집착을 벗어나
고상한 차원의 지혜와 영적인 성숙을 위해 힘쓰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가난과 불편함을 택할 수 있는 자는 외형적인 부자보다 훨씬 부유한
자에 속한다.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직업과
재물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집착이나 비굴함에 빠지지 않고 여유로움 가운데서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영적인 성숙을 위해 힘쓰는데도 많은 염려와 불안 등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
특히 재물을 통해 훈련하고 함양할 수 있는 의의 효력과 인애가 주는 풍성함을
체험할 기회를 얻어 지혜로움을 더할 수 있다.
게을러서 가난한 것은 수치요 악이다. 사고나 천재지변,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모든 것을 잃고 가난하게 되는 경우는 그를 통하여 인내와 소망,
믿음과 용기를 강화하는 기회를 삼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무슨 벌을 받아 그런 것처럼 여겨 부끄러워 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들어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좌절이나 불평하지 말고 욥처럼 믿음을 테스트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사실 그 이상 영적 성숙을 위한 효과적인 길이 없다
[출처] 참전계경 제177사|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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