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유란시아서를 통해 얻은 것들 본문
■ 유란시아서를 통해 얻은 것들
-초롱호박
아침에 유란시아서를 읽으면서 문득 ‘나는 유란시아서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유란시아서를 읽으면서 나는 여러 면에서 분명히 달라졌다.
어떤 점들이 확실하게 달라졌는지
나를 돌아보는 관점에서 대략적으로 정리해 본다.
1. 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한다.
참 행복하고 기쁜 일이다.
전에는 종교가 있었지만 이런 확신이 전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확신은 고사하고
그 개념조차 불확실했다.
지금은 분명하게 우주의 창조주가
실제적인 나의 아버지이며,
나는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분명하게 믿고 있다.
나는 창조주인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그 이유를
어느 정도 깨닫는다.
그냥 은혜를 베풀어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호칭 속에는
감당하기 힘든 가슴 벅찬 의미들이 있음을 안다.
나는 실제적인 아버지의 아들이 맞다.
나는 아버지가 수여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의 분신인 영이 깃들어 있다.
지금 나는 필사 인간으로서
나의 성격과 영이 융합하는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나는 잠시 이 세상에 물질 몸을 입고
영원한 진보의 첫 번째 과정을 마치기 위해
이 행성에 머무르고 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난 몸이기에
반드시 죽음을 거쳐야 물질 몸에서 벗어나지만,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알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인 영원한 영적 존재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2. 잘못된 배타성에서 벗어나고 있다.
내가 그동안 절대적 진리라고 알고 있었던 것,
절대적 윤리라고 생각해 온 것들,
그리고 하나님과 종교에 대한 얄팍한 지식들이
지극히 상대적이며, 왜곡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흔한 말로 내가 아는 것은
아는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정한 진리라는 생각을 거의 다 버렸다.
아주 잘못된 종교적 배타성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지금은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생각들을 존중한다.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자주 부딪치는 상황 속에서
반복하여 깨닫고 고쳐가고 있다.
3. 진정한 영적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동안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신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영적 깨달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진정한 영적 깨달음은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유란시아서는 무엇보다 실천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내가 우주의 아버지의 아들이므로
다른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아들임을 받아들이고
형제 정신으로, 곧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참된 영적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행동하는 믿음을 소망하는 사람이 되었다.
늘 부족하지만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4. 완전해지라는 의미를 깨달았다.
유란시아서가 아니라면 결코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해지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후 저택세계들과 상물질 세계들
그리고 영 세계와 하보나 중앙우주,
최종적으로 파라다이스에 이르는 과정들을 몰랐을 것이다.
완전해지라는 우주의 아버지의 명령 속에
이미 상상 그 이상의 우주 과정들이
준비되어 있으며,
내가 영원한 영적 존재로서 영원한 시간 속에서
그 과정들을 거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완전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 우주에서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그것이 또 일부분일 만큼 우주의 아버지는 무한하다는
계시자의 말은 나를 흥분시킨다.
나에게는 영원히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이 보장되어 있다.
상상만해도 너무나 즐겁고 신난다.
수많은 하늘 존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신비하고 아름다운 우주 행성들이
나를 우주 시민으로 맞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흥분된다.
나는 이제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어서 완전해 지는 길을 가고 있다.
5. 나의 진보는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체험은
나의 체험인 동시에 조절자의 체험이다.
조절자의 체험인 동시에 최상위의 체험이다.
그래서 나의 체험은 동시에 최상위의 체험이 된다.
최상위의 실현 이후
나의 체험은 다시 궁극위의 체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영원한 시간 속에서 결국
절대 수준에 다다를 것이다.
그 과정은 지금 상상할 수도 없다.
그 시간은 지금 계산해 볼 수도 없다.
계시자들은 나의 진보에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지금 내가 알게 된 그런 수준에 이르기까지
내가 진보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물리적 우주와 모든 우주 존재들이
일체화되어 있음을 믿으며,
기꺼이 최상위와 궁극위에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 선을 행하는 일에,
남을 이롭게 하는 좋은 일에,
내게 주어진 완전한 목표를 달성하는 일에
게으르거나, 영악스럽게 잔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더딜 망정 뒤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6. 시간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쫒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60을 넘다보니 인간답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히 진보할 운명이 주어졌으므로
그 영원한 시간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완전함을 달성해 나갈 것임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주려 하기 보다는
우선 먼저 나 자신이
곧 죽을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이 생애가 전부인 것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진보는 한 과정이라도 달성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삶에서 한 과정이라도
제대로 완전하게 달성해보자 생각한다.
나는 내 삶에서 추구할 올바른 방향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7. 유한한 존재 의식에서 벗어났다.
요즘은 조금씩 관점을 바꿔보고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내 삶을 바라보기 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 삶을 바라보려고 시도해 본다.
하나님으로서 나라는 인간의 몸을 입고
내가 사는 삶을 살아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역경과 곤란이
내가 거쳐야 하는 교육이며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다가오는 인간의 삶이 불확실하지만
결국 언젠가 이 유한한 생명을
즐겁게 마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유란시아서를 읽으면서 나는 큰 변화를 겪었다.
우주의 창조와 창조주에 대한 보다 확실한 이해를 얻었다.
전에는 확신할 수 없었던 영원한 삶을
지금은 확실하고 확고하게 믿는다.
그리고 종교적 회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진리의 올바른 방향을 따라 상승하고 있다.
아직 생각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전반적으로 언행은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그리고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점들은 없지만,
나는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날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기회가 닿는대로 남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차분해졌고,
말세론이니 종말론이니 하는 것들에 시큰둥해졌다.
예전에는 호기심도 있었고, 흥미를 가지고 접근했었지만,
지금은 별 관심도 없다.
나는 이미 영원한 삶을 사는 영적존재임을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죽는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것이 자연적인 죽음이든, 세상의 종말이든 그렇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 육체적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부활의 그 아침을 바라보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확신한다.
내가 흥미롭게 여기던
외계 생명체의 존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충분히 서로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인류가 알지 못하는 영역들에서
그런 상호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일반적이고 공개적으로 진행될 그런 시기에
이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유란시아서 자체도
외계 생명체들이
인간들에게 주는 메세지 형식을 띄고 있다.
사실 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며,
이제 전성기를 지나 노년으로 접어들었다.
나는 많은 분들이 보다 젊은 시기에
유란시아서를 읽고 생각의 범위를 넓히기를 바란다.
그들이 평생 깨닫고 성취해 나갈 분량과 그 유익은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유란시아서를 읽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인류의 진화와 진보는 촉진될 것이며,
그런 국가와 사회는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유란시아서는 자율적이고 자주적으로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이웃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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