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40 본문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40
sex에 대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오해가 있다.
이 오해는 여성들이 주로 하고 있는데
남성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무지와 두려움이 엄청난 왜곡과
오해를 낳았고, 그로 인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급하게 그 진실을 밝히고 확산되어 가는 피해를
막아야 한다.
다들 동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남자의 성은 절대로 그 근원과 본질이 이기적이지 않다.
물론 삼망에 빠져 두려움과 욕심에 끌릴 때는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며, 집착과 중독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중독현상이야 비단 sex뿐만 아니니
그 부작용에 대해서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남자의 성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본성)을 통해 성(sex)의 본질을 말하려는 것이다.
여자의 성에 대해서는 내 영역이 아니니
말할 수 없고, 다만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들에게
본질을 이해함을 통해 근원적인 문제 해결에
동참해 주기를 기대한다.
여성의 동참 없이 성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에 간곡한 심정으로 호소한다.
흔히들 여성들은 남성을 향해
'남자는 다 늑대다'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한다'
'여성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성적 욕구충족의 대상으로만 본다'
는 등의 말로 비난과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렇게 남성을 몰아가고 경계를 하며
법령을 정하여 통제를 해야 여성들이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인식하도록 한 책임은
전적으로 남성들에게 있으니 변명할 생각은 없다.
지금도 세상에 만연한 성적 범죄의 피해자는
거의 99%가 여성이고 보면
이런 경계와 두려움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삼망에 빠져 중독이나 변태적 상황에까지
이른 자들을 위해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들의 잘못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점검하고,
진지하게 분석하여 치료와 구출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지혜롭고 건설적이다.
한마디로 원래 남자의 성(sex)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성, 그러니까 본성에 의거하여 성(sex)를 보면 정반대다.
두려움과 미혹으로 타락한 후 남성의 성은 조급함과
욕구충족, 착취와 이용으로 변질되었지만
원래부터 그랬다고 보게되면 영원히 불화와 투쟁 밖에 없다.
본래 남성의 성(sex)은 철저히 상대방, 즉 여성을 위한 것이다.
이 원리는 여성에게도 적용된다고 본다.
여성의 성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 남성을 위한 것이다.
성경에서 바울이 복음으로 이 회복을 강조했다.
남편의 몸은 아내가, 아내의 몸은 남편이 주장한다고 했다.
이 말은 억지로 주도권을 넘겨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복음의 비밀이 밝혀지고
성령 안에서 원래 인간에게 심겨진 신성이 드러난 경우
이 교훈이 너무나 지당하며, 아름답고 행복을 위한
지침이 되기 때문에 한 말이다.
이 말을 '네 몸은 내가 주장한다'고 서로 요구를 하게 되면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억지로 욕심을 부리는 꼴이 된다.
아마 남성들, 즉 본성의 빛을 본 남자들은
이 말에 다 동의를 할 것이다.
'남자의 성(sex)은 절대로 자기 만족을 위하지 않는다'는 말에...
사실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상한 말이 아니다.
자기 만족은 사실 상대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 준 결과로
얻는 보너스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남자의 남자다움은 자기 만족을 추구하지 않고,
상대 여성을 신을 대하듯이 존중하고, 받들고, 사랑하여
온전히 상대방의 기쁨만이 목적으로 할 때 드러난다.
이게 본성이 주도하는 성(sex)의 진면목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잊고 상대방의 기쁨만이 남는
헌신과 봉사, 바로 예배의식 차원으로까지 나아가도록
예비된 것이 바로 이 성(sex)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고대 종교적 전통에
성(sex)이 빠지지 않고 중심 자리를 잡은 이유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며 밀교 전통으로 전수했다.
그래서 남자의 구원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난리를 부리는 것으로 증거되지 않고,
보이는 대상, 자신과 완전히 다른 의식과 몸을 가진
여성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통해 증거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몸을 바친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쳐 사랑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러니까 되지도 않는 종교행위나
교리논쟁 따위는 집어치고, 자기 아내를 하나님처럼
섬기라는 것이다.
이런 말은 여성들 기분 좋으라고 맞추는 말이 아니며,
남성들 기분 얹짢게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엄연한 진리며, 드러난 증거로 요구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도가 높고, 영험함을 주장해도
여성을 향한 증거가 없으면 인정 받지 못한다.
도를 닦게 위해 출가했으면, 그 도를 깨닫고
세속에서 증거해야 할 것이다.
원효의 환속이나, 루터의 결혼도 대단한 결단이다.
안타깝게도 남성이 이 깨달음의 수준과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함으로 인하여 끔찍한 대립과
고통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당연히 남성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무지와 두려움에서 나온 삼망의 욕심이
그저 자기 욕구나 채우고, 착취하고 이용하는
자기 파괴적인 행태를 멈추어야 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비난이나 지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오직 지감, 조식, 금촉으로 삼망에서 벗어나
삼진에 이르는 수행을 해야 한다.
그를 통해 성, 명, 정의 삼진에 이르게 되면
이러한 그릇된 일은 사라지고 진정한 성(본성)으로서의
성(sex)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여성들은 남성들을 도와야 한다.
창조의 순서나 재료를 보아도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존재다.
육체구조나 물리적 힘 빼면 남성은 여성을 못따라 간다.
성경의 돕는 존재는 약한자가 강한자를 돕는 구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돕는다.
강한 하나님이 약한 우리를 도우시지,
약한 우리가 강한 하나님을 돕는 일은 불가능하다.
여성들을 조력자라고 해서
비서취급한 것은 남성들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
여성들이 오해 속에서 남성들을 대적하게 되면
남성들의 미래는 심히 어둡다.
남성들의 미래가 어둡다는 말은
여성들도 함께 공멸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체세포 유전자를 통해 자기복제가
가능하다 해도 그런식으로 남성들을 거부하게 되면
음양의 조화를 기반으로 한 물질세계는 사라지게 된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기대한다면
깨달음으로 본성을 회복한 남성들과
그와 한 몸으로 결합되는 여성이 유일한 소망이다.
그게 싫으면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면 되는데
미안하지만 확인한 바로는 그런 세계는 없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데
무슨 재주로 찾으며, 무슨 힘으로 그리 갈 것인가?
[출처] 삼일신고 풀이 40|작성자 푸른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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