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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3 -허공(하늘) 본문

천지인 공부/삼일신고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3 -허공(하늘)

柏道 2019. 3. 13. 02:29


性通功完(성통공완)을 꿈꾸며...
三一神誥(삼일신고) 풀이 23 
 허공(하늘)


14회에 걸친 단군신화 연구는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제 다시 삼일신고 본문으로 돌아간다.
화자가 하나님이든, 임금이든
환웅이든, 단군이든 진리로 권위를 입은 자가
오가의 무리든, 원보 팽우든
수가 많든 적든, 옛날이건, 지금이건
상관없이 듣는 자에게 진리를 전한다.
진리의 근본, 반드시 알아야 할
근본 진리는 하늘, 혹은 허공에 대한 것이다.
본문을 보자 
 
蒼蒼非天 玄玄非天(창창비천 현현비천)
天無形質 無端倪(천무형질 무단예)
無上下四方(무상하사방)
虛虛空空(허허공공)
無不在 無不容(무부재 무불용) 
 
푸르고 푸른 것도 하늘이 아니요
검고 검은 것도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상도 바탕도 없으며
이 끝도 저 끝도 없다
아래 위도 없고 사방도 없다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 있으나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고
품지 못할 것도 없다. 
 
캬 ~ 기가 막히다.
천부경의 一始無始一의 해설을
듣는듯 하고 도덕경의 도에 대한 해설을 듣는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하늘이 아니다.
그래서 푸르고 푸른 낮의 하늘이나
검고 검은 밤의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천부경에서 말하는 '시작이라고 할 수 없는 하나'와
같은 개념이며, 불교의 공, 도덕경의 도와 같은 개념이다.
도무지 이름도 붙일 수 없고,
무엇이라 말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의 근원인 '그것'을
천부경에서는 숫자로 '하나'라고 했고,
여기 삼일신고에서는 '하늘'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적인 하늘,
신이 거하는 하늘은 셋째 장, 천궁 편에 나온다.
모든 것은 근원이요, 배경이 되는 이 하늘은
어떻게 묘사할 길이 없기에
'아니다' 혹은 '없다'의 부정의 방법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하늘은 말할 것도 없고,
형상이나 바탕에 대해서도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처음과 끝의 시간이나,
아래 위, 사방의 공간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텅텅 비었다, 혹은 아무 것도 없다고
표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해서도 안되고,
없으니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도 안된다.
그러니까 '그 무엇이라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있다 할 수도 없고, 없다 할 수도 없는 존재...
유영모 선생이 하나님에 대해 표현하기를
'없이 계신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기가막힌 표현이다.
없다 해도 맞고, 있다 해도 맞으며
있다 해도 틀리고, 없다 해도 틀린다.
그러니까 사실 유신론, 무신론 나뉘어 싸울 필요가 없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린다.
설명해도 틀리고, 못한다 해도 틀리며
설명해도 맞고, 설명 안된다 해도 맞다. 
 
이 오묘한 이치를 들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주목해야 한다.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하는 반응이 일어난다면
미안하지만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니
크게 슬퍼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서, 진리와 도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도전하고 모험하다
지치고 지쳐 모든 의욕이 사라졌을 때
이런 선포를 듣게 되면 그야말로 까무러치게 된다.
그 어떤 신, 그 어떤 종교와 사상
그 어떤 위대한 인물이나 성자, 현자라 할지라도
이 놀라운 선언 앞에서는 한 낱 먼지에
지나지 않게 되어 있다.
동시에 이 위대한 진리는 우주만물
모든 것에 생명과 의미를 부여한다.
어떻게 보면 모든 공부와 인생 경험이
이 한 구절, 이 선언을 깨닫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깨달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이 진리를 통해 모든 것을 통찰하고
삶에 적용하여 그야말로 대자유,
영생을 누리는 삶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푸른 오솔길 마을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