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소도경전본훈」 강독, 신선 발귀리의 찬가 본문
세계환단학회 2016년 춘계 학술대회
(-안경전 종도사님 강독 계속)
「소도경전본훈」 강독
신선 발귀리의 찬가
그러면 원본을 한번 볼까요? 우선 PPT를 보면서 아름다운 성우의 목소리로 한번 들어보죠.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혼묘일환混妙一環이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니
일월지자日月之子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원각이능圓覺而能하며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유만기중有萬其衆이니라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신선 발귀리가 소도 제천행사를 딱 보면서, 동방문화의 원형 역사정신을 이렇게 찬양하는 시로 지어서 노래로 불렀어요. 이분의 마음이 흘러가는 모습을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으로 보고 한번 따라가 보면, 우주관과 인간론, 인간관의 원형,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서 아주 큰 진리의 깨달음의 틀을 아주 쉽게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일! 우주만유, 존재하는 것 즉 존재자의 그 존재,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신과 같은 것, 우주 만유 생명의 어떤 근원 그 지극함이여,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걸 이름하여 ‘양기良氣’라 한다. 양良은 양지良知, 양덕良德 할 때 양인데, ‘아름답다, 좋다, 선하다’ 등 좋은 뜻이 참 많아요.
『환단고기』 첫 페이지, 도통한 승려 안함로가 쓴 『삼성기』 를 보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라고 했어요. 우리가 우주 광명 인간이 되어서 나라를 열었는데, 그게 환국이라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 우주 광명 인간이 될 때 환국을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서 둘째 줄에 ‘승유지기乘遊至氣’, 이 신은 ‘지기至氣’를 타고 노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신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가? 지극한 기운, 지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시 근대사의 출발점 동학에서 위대한 선언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가을 우주의 이 여덟 글자에 나타납니다. 선천 팔자 아무리 좋게 타고 났어도 이번 개벽으로 다 무너진다는 겁니다. 후천 팔자, 지기금지원위대강, 지기사상至氣思想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도 중국 중심의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 때문에, 우주광명 원형문화의 우주 생명사상이 제대로 해석이 안 되고 있어요.
발귀리의 송가를 보면 ‘대일기극大一其極이 시명양기是名良氣라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그랬어요. ‘무와 유가 섞여 있다, 구분할 수가 없다, 하나다, 일체다, 무와 유는 둘로 나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형상, 육신이 있고, 이것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잖아요? 공간, 허공은 있지만 이것은 무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허공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움직일 수가 있고, 사물이 이동할 수가 있어요. 이 공간의 실상, 무와 유의 문제인데, 이 무와 유는 일체입니다.
‘무유이혼無有而混하고 허조이묘虛粗而妙라’. 그래서 우리가 무, 유를 하나의 현상세계로 보고 이 무, 유가 존재하는 근거를 허로 보는 것이 좋지 않으냐? 허조이묘虛粗而妙, 허, 텅 빔. 거기서 나타난 조粗. 조라는 건 조박糟粕 한 것인데, 싹을 깔 때 보면 거친 것, 성근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우주의 별자리 세계도 조박한 겁니다.
증산도 『도전』을 보면, 상제님께서 “빛이 나는 데로 가자. 빛나는 데로 가자.” 하시고, 상제님이 다시 “눈을 떠라.” 하시니까 구릿골에 있던 집이 조화로 집째 변산 꼭대기에 와 있는 거예요. 거기 있던 여러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고서 하늘의 별을 보는데 “저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이 자갈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저 무수한 은하계가 우리 인간 중심으로 볼 때는 ‘우주 인간’, 자갈과 같고 모래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텅 빈 우주의 공간, 이 허의 실체는 아직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바 있지만 ‘모든 건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궁극으로 비어 있는 이 ‘텅 빔’ 속에서, 조화의 근원 바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이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여기서 조粗라는 것은 우주의 무수한 은하계, 이 지구 만물의 생명, 바다의 물고기, 아름다운 푸른 산하에 있는 꽃, 식물,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허조이묘라, 묘妙라는 건 오묘한 것인데, 이 우주가 나타나 있는 자체가 너무도 오묘하잖아요.
그러면 이것들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법칙성을 얘기합니다.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여기서 체용론體用論이 나오고 있어요. 체라는 것은 본체, 용이라는 것은 작용 또는 현상으로도 말합니다. 어떤 사물의 근원세계와 현실세계로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우주의 문제에서 크게 보면, 우주의 어떤 근원이 되는 본체가 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우주가 벌여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본체와 현상, 또는 사물의 어떤 근원세계와 현상세계, 사물의 양극, 근원과 현실, 본체와 작용은 마치 우리 몸으로 보면 ‘몸과 몸짓의 관계’와 같습니다. 이 몸통이 있고 여기서 몸짓이 나오잖아요. 수많은 몸짓이 나오는데 그 몸짓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삼일기체三一其軆오’, 삼은 일을 본체로 삼고, ‘일삼기용一三其用이니’, 일은 삼을 작용으로 삼습니다. ‘혼묘일환混妙一環이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혼묘일환, 이런 무와 유 그것의 근원이 되는 우주의 텅 빈 허의 조화세계, 무궁한 이 조화의 텅 빈 허의 세계, 거기에서 나오는 조박한 우주의 현상계 허조虛粗. 그러니까 무와 유, 허와 조가 일환一環, 하나로써 일체가 되어 어우러져서 순환합니다. 환環이라는 것은 순환,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체용무기軆用無歧’라, 체와 용이라는 것은, 구분을 할 수 있을 뿐이지 갈라지는 게 아니다,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최근에 보면 서양은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신앙하는 사람이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체용무기, 체와 용은 둘이 아니고 갈라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궁극의 유와 무가 생성되고, 우주 만유가 태어나는 지극히 비어 있는 그 자리는 무엇인가? 거기는 누가 있단 말이냐?
후반으로 들어가서, ‘대허유광大虛有光하니 시신지상是神之像이오.’ 대허大虛, 장대하게 거대하게 텅 비어 있는, 거대한 그 텅 빔 속에 광명이 열려 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모습, 신의 참모습이요.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것은 소도제천 행사를 직접 보면서 대신선이 된 깨달음의 도통 경계를 고백한 거예요. 내가 어떻게 이 우주와 하나가 되느냐? 어떻게 해야 불멸의 생명, 대신선이 될 수 있는가? 우주 조화의 세계, 그 바다를 걸어다닐 수가 있는가?
지금 여기서 본론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대허유광大虛有光 시신지상是神之像’, 우리가 이걸 경구로 해석하면 ‘네 마음을 크게 비워라. 그러면 여기에 광명이 열리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너의 신성의 모습이다’ 이겁니다. ‘이 우주를 비추고도 남을 대광명이 네 몸과 마음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기장존大氣長存하니 시신지화是神之化라’, 이 거대한 기운이 영원히 살아있나니 이것이 바로 신의 조화다, 신의 손길이다, 신의 집이다, 신의 의존처다, 신의 생명 자체다라는 겁니다! 이 텅 빈 대우주의 허공 그 깊은 속에 누가 있느냐? 바로 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신은 광명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유·불·선·기독교의 영성문화라든지 신관이라든지 성령관에서, 또는 불법의 일심법이라든지 참선문화를 보면 아주 대단한 가르침들이 있거든요. 주역의 건곤乾坤이라든지 십익十翼에서 말하는 도교 또는 불가적인 심법, 사유구조를 뜯어다가 해석한 여러 구절도 있습니다. 그 모든 가르침이 여기 보면 ‘진명소원眞命所源이오 만법시생萬法是生이다’ 이겁니다. 이 자리는 참된 영원한 생명이 발원하는 바요, 일어나는 곳입니다. 만법萬法이 여기서 생한다는 것입니다.
만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법사상에 보면 우주 만유, 살아있는 대우주 자체도 법이고, 그것을 깨달은 성자들의 가르침, 부처님의 말씀이라든지 모든 성자들의 말씀, 삶 그 자체도 법입니다. ‘나는 길이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법입니다. 깨달음의 법은 어떻게 우주 생명과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주 현상계의 법칙, 그 속에서 태어난 인간의 삶, 삶에 대한 가르침, 깨달음의 길, 도통법, 그 모든 법이 시생是生이다! 이것은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예요. 진명소원眞命所源 만법시생萬法是生, 영원한 생명이 여기에서 발원하는 바요, 그리고 모든 동서고금의 법이 여기서 생합니다.
그래서 ‘일월지자日月之子오’, 현실세계에서 생명의 근원은 해와 달입니다. 태양이 한순간 멈추면 지구 생명계는 한순간에 다 없어집니다. 소멸됩니다. 바로 이 일월, 생명 현상의 1차 근원인 일월, 일월광명, 일월생명의 씨다, 근원이란 말입니다.
‘천신지충天神之衷이라’. 여기서 신의 문제가 나오는데, 천신天神은 대표적으로 「삼신오제본기」에서 말하는 대우주의 통치자, 우주정치의 주관자 삼신상제, 일상제를 말합니다. 여기서 천신은 우리가 『환단고기』 또는 우리 동방문화의 정서로 보면 천지신명, 신의 마음자리입니다. 신명의 참마음입니다. 충衷이라는 것은 속마음, 참마음, 우주와 하나 된 일심 자리입니다.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와 삼신
여기서 전체적으로 한번 대략 묶으면서 끝내야 될 것 같아요. 여기 보면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원각이능圓覺而能하며’, 이조이선, 비춰 주는데 뭘 비춰 주느냐? 이 우주의 조화 바다를 양기良氣라 했고, 그것은 텅 빔의 세계이고, 거기에서 바로 유무가, 우주 현상계가 태어나는데 우리가 텅 빈 그 대허한 마음을 가지면 거기에서 우주 광명이 열립니다. 그게 바로 신의 존재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를 가리켜 ‘양기’ 또는 ‘대기大氣’라는 말을 쓰고 있죠. 다른 말로 허조이묘의 ‘허虛’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또는 대허유광大虛有光이라 할 때 ‘대허大虛’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대일기극大一其極’ 할 때 이 우주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 살아있는 것, 존재자, 이 존재자들의 궁극의 근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궁극의 존재 근거, 그 존재 자체, 그것을 ‘대일’, ‘대허’, ‘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어떤 때는 우주 생명의 바다 ‘양기’, ‘대기’로도 말하죠. 그런데 그 속에 신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정말로 재미있어요. 이게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 처음 듣는 깨달음의 담론입니다.
초월자 신이 이 우주 현상계, 시공간계를 벗어난 초월의 세계에 홀로 있는 게 아닙니다. 서교에는 전통적으로 그 신에게는 외아들이 있어요. 그러고서 그 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다 피조물입니다. 하늘도 땅도, 모든 인간도 피조물입니다. 석가불도 피조물, 공자도 피조물, 모든 동물, 생물은 피조물이다 이겁니다. 그 피조물 가운데서 성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원래 그런 것이 없는데 다 만든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삼일기체三一其軆 일삼기용一三其用’, 삼은 일을 체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 만유라는 것은 반드시 수의 이치로 돼 있어요. 서양 철학에 근원적 영감, 깨달음을 준 ‘서양 문명의 아버지’라는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어머니 아버지가 원래 아폴로 신전에 가서 기도를 해서 낳았다고 합니다. 아폴로 신이 현생을 해서 피타고라스로 왔다는 거예요. 서양 사람들이 그 쓴 글을 보니까 그런 내용이 있어요.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1861~1947)는 『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서양문명에 지속적인 영감을 끊임없이 내려준 사람은 피타고라스라 했습니다. 이 피타고라스는 3을 우주의 생성의 중심수라 하고, 우주 만물을 생성하고 구성원리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태호복희씨는 수천 년 내려오는 「천부경」을 완벽하게 도통하고, 태극기 팔괘를 제작한 분인데, 이분이 이 우주의 수가 동서남북 중앙 오방위로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북방에 1, 남방에 2, 동방에 3, 서방에 4, 중앙에 5. 그 5가 근원이 되어서 동서남북의 성수成數가 열리잖아요. 6, 7, 8, 9, 10.
우리가 모든 생명의 본질을 알려면, 중앙에 있는 5, 10 토를 알아야 되는데 그 5, 10 토의 토성土性을 항상 가슴에 안고 진리를 들여다보고, 자연을 보고, 중력을 해석할 때 우주는 왜 이렇게 조화로운 세계인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선 발귀리의 깨달음의 대서사시는, 이 우주의 본성이 허, 텅 빔이고, 그 속에 무한의 생명이 출렁이고 있는데, 그것과 하나가 되려면 마음을 온전히 비워야 된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그냥 적당히 비워서는 안 되고, 90%, 95%, 99%도 안 되고, 완전히 100%를 비워서, 완전한 허의 경계, 자연과 진정한 하나가 될 때 깨달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을 수 있는 인간이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미국의 철학자 캔 윌버Ken Wilber(1949~ )가 최근에 오랫동안 수행을 했는지, 일본의 어느 대선사에게 ‘불교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에 또는 일본에 도통한 사람이 얼마냐?’ 하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중국 불교사에서 깨달은 사람은 천만 명에 한 명 나온다’고 했어요. ‘그러면 일본은 얼마냐?’ 하니까 ‘Not more than a dozen, 한 여남은 명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겁니다. 궁극의 깨달음을 열기가 사실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사가 개벽으로 가는데요. ‘생각을 바꿔야 된다. 방법을 바꿔야 된다. 근원적인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된다’ 이게 동학에서부터 제기되는 ‘다시 개벽 아닐런가’입니다. 이런 영성문화, 수행의 방식을 다 바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우주에는, ‘우주생명의 조화 바다 속에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은 삼신입니다. 신이, 궁극의 존재가 이 대우주 생명의 바다, 기의 바다 그 기운을 가지고서 우주 만유를 빚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태국을 답사하고 방콕 공항에 가서 보니,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누구든지 갑자기 가다가 서요. 서서 뭘 보느냐? 거기에 배 모양으로 된 아주 멋있는 신비로운 조각이 있는데, 좌우에 천상의 신인들이 우주를 창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가운데에서 힌두교의 신 비슈누가 가루다(새의 신)를 타고 ‘우주의 우유 바다’를 막 휘젓고 있어요. 그게 우주 대폭발과 같은 겁니다.
아주 더울 때, 제가 그 유명한 힌두교 사원,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앙코르와트에 간 적이 있어요. 앙코르와트를 가보면 도깨비, 원형 도깨비가 그렇게 많아요. 앙코르와트는 폐허가 되어서 아무도 안 가는데, 거기를 올라가니까 저 산꼭대기를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를 가니까 옛 신전이 있는데 방 위에 입구에 도깨비가 다 있는 겁니다. 힌두교 문화의 근원은 이 우주 조화의 바다 중심에서 우주를 빚어내는 자연의 인격, 자연의 조화신, 도깨비 신입니다. 티베트에도 도깨비 신의 원형이 있어요. 일본에 가보면 박물관, 사찰 같은 데 보면 도깨비 원형이 있는 아주 오래된 신사, 사찰이 있습니다.
힌두교의 문화의 원형, 그 주제가 도깨비인데 바로 그것이 태고의 원형문화입니다. 거기 도깨비는 밑에 뭐가 있냐 하면, 대부분 일본 같은 데도 그대로 원형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 집안, 신당, 사당, 소도문화의 사신邪神을 멀리 내쫓는 수호신이 있어요. 수놈은 뿔 달린 해태인데 그것이 중동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고 세게 여러 곳에 있어요. 거기 박물관에 가보면 해태를 모르니까 라이온이라 하는데, 종자가 전혀 달라서 라이온이 아니거든요.
만물의 생명의 본성 일태극수와 암흑물질
우리가 삼신이라 할 때, 이 신은 그 속성 자체가 조교치造敎治 삼신입니다. 조화·교화·치화, 만물을 짓고, 깨달음을 열어주면서 기르고, 그리고 다스립니다. 조교치 삼신, 이 삼신이 우주 현상계에 자기 존재를 현현selfmanifestation하면 그것이 곧 삼극三極입니다. 「천부경」에서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을 말하고 있어요. 신이,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의 일자一者가, 대일大一이 자기를 드러낸 것이 무엇인가? 바로 삼극, 세 가지 존재의 지극함, 하늘과 땅과 인간입니다.
그 일자는 우주 만유의 모든 개별 사물에 보편적으로 다 들어있습니다. 일자에 대해서는 옛날 원효라든지 우리 전통 철학자, 서양 철학자들이 나름대로 이야기를 하는데, 사자성어로 집일함삼執一含三, 한마디로 ‘하나를 잡으면 셋이 포함되어 있다’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쉬운 게 아니에요. 하나를 잡을 때 뭘 잡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를 내가 눈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 우주에 충만해 있는 바로 그 에너지죠. 지금 현대과학에서, 우리가 아는 물질세계는 4%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양성자, 중성자, 소립자, 또 충격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입자 몇 개로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 4%만 인식, 이해하고, 그 지식으로 이런 문명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외계 우주는 자꾸 확장해서 우주 공간이 자꾸 커져요. 무가 커지는 것인데, 무가 커지면서 그 무의 에너지 즉 공간의 에너지도 자꾸 커집니다. 그것이 우주를 밖으로 밀어내는 암흑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 안에서 탄생한 만물은 전부 자기중심을 가지고 각자 은하는 은하대로, 블랙홀은 블랙홀대로 돌고 있습니다. 지구는 지구대로 9대 행성과 함께 태양을 안고 돌잖아요.
그것은 중력의 힘입니다. 이 중력이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네 가지의 힘 가운데서 가장 먼저 생성됐고, 이 중력의 신비가 우주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중력이 무엇인가? 현대과학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인 이 중력의 본질이 뭔지 아직 해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 현상계를, 계란 두 개를 뉘어 놓은 모습으로 그립니다. 왼쪽에 그린 것은 우주가 생기기 전인데, 그것은 수로 나타내면 영(0)입니다. 그것을 또 ‘무’다, ‘무극’이다 그러는데 여기서 우주가 일어났어요. 힌두교 같은 종교에서는, 우주가 잠에서 막 깨어났다고 말합니다. 빅뱅이 되어서, 확 터져서 현상 우주가 생겼어요. 이렇게 유와 무가 있고, 조박한 우주 은하계가 거의 무한의 공간대를 채우고 있어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이 암흑물질의 바다에 만물이, 우주 은하계가 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주 만물은 조화롭게 각자의 포지션 좌표를 유지하면서, 서로 끌어당기면서, 서로 회전하면서 조화로운 우주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암흑물질 또는 만물의 생명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우주의 본체인 일태극수一太極水입니다.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匱化三’이라 할 때 우주 만유는 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에서 비롯됐습니다. 암흑물질은 일태극수의 범주에 있는 것인데, 이 물이라는 것은 진공眞空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우리가 태극을 ‘공과 물이다’ 이렇게 정의하거든요. 십이지지로 말할 때는 술戌의 자리라고 하는데, 술오공戌五空, 물이면서 그 자체는 오행으로 말할 때 진공 토土입니다. 그래서 만유는 일태극수 물에서 태어나지만, 그 생명의 본성 자체는 토입니다.
그래서 암흑물질은 우주의 작은 입자가 뭉친 것으로 봅니다. 궁극으로는 요새 끈이론, 막이론으로 말하는데, 작은 끈들이 덩어리로 뭉치게 해 주는 것이 암흑물질이라는 겁니다. 암흑물질이 있어서 이런 입자들을 뭉칠 수 있게 해서 중력을 가진, 무게와 힘을 가진 하나의 개별적인 물질 덩어리 생명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암흑물질이 바로 태극수의 본성, 토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생명의 조화 바다라는 것을 우리가 아직 다 해석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는 바로 이 우주의 무궁한 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동학 『도전』을 보면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이루지 못하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인간도 자기의 신명이 있습니다. 그 신명이 우리 몸을 영원히 떠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부모, 조상이 천상의 조상신계로 돌아가고, 우리가 그 가신 날을 기리고 제를 올립니다.
인간의 위격과 역할에 대한 최종 정의
이제 결론을 보면,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가?
‘이조이선以照以線하야’, 이 우주생명의 조화 바다에서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삼신이 무궁한 광명을 비춰주고 생명선을 열어줍니다. 그 기운을 받을 때 ‘원각이능圓覺而能’, 원각이 일어납니다. 대원각大圓覺이 일어나서 능한 인간이 됩니다. 옛날 안함로 같은 분은 돗자리를 타고 천지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런 경계에서 『환단고기』에 들어있는 『삼성기』를 썼어요.
그리고 ‘대강우세大降于世하야’, 이런 기운이 크게 내려서, ‘유만기중有萬其衆’, 온 천하의 천하창생이 번성합니다.
그러고서 여기서 매듭으로 들어가는데, ‘고故로 원자圓者는 일야一也니 무극無極이오’, 원圓이라는 것은 하늘을 상징하니까 삼신이, 신이 우주 현상세계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게 우리 문화의 원형정신이에요. 신이 따로 있고, 현상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 사고는 너무도 잘못된 겁니다. 본체 세계의 영혼의 생명계는 플라톤Platon의 이데아Idea처럼, 영원한 것은 저 천상의 이데아로 있고 현실세계는 다 그림자일 뿐이라고도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겁니다. 그런 이원론의 자궁에 구약의 정신이 들어가서,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문화 정신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서구 근대역사에서, 근대과학의 우주론에서 크게 정리되고 극복되고 있어요.
삼신은 삼극이고, 그것이 살아있는 하늘과 땅, 인간이고, 그것을 수학 언어로 천일·지일·태일입니다. 하늘의 본성은 원만구족圓滿具足이니까 모든 걸 수용합니다. 진리원상眞理原象 자체, 우주의 생명의 바다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원圓이라는 것은, 일이고 무극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근본정신은 무극입니다.
그다음에 ‘방자方者는 이야二也니 반극反極이오’. 어머니 땅의 정신은 방정한데, 모든 생명, 인간이 태어나는 생명의 바탕, 어머니 지구 생명이라는 것은 음입니다. 음의 근원이라는 뜻인데, 그것을 반극反極이라 했어요. 반反이라는 것은 하늘과 정반대된다는 뜻도 있지만 돌아갈 반反 자로, 하늘의 근원 정신으로 돌아가는, 하늘의 근원 정신과 영원히 일체, 하나 됨의 경계에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이런 두 가지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여기서 결론은 ‘각자角者는 삼야三也니 태극太極이니라.’ 각角은 정삼각형을 말합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영원히, 탄생하기 이전이나 탄생되는 순간이나 성장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나, 천일·지일·태일입니다. 우주 궁극의 생명의 바다, 그 속에 있는 일신 즉 삼신이 현상화되어 나타나서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습니다. 삼위일체 문화원형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할 때 태극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극미세의 양자, 소립자 세계를 들어가면, 그 바탕은 진공인데 거기서 쌍입자雙粒子가 태어나서 쌍생쌍멸雙生雙滅한다고 합니다. 매 순간 수억 조, 수수 억조의 입자들이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이렇게 생성과 소멸의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이 대우주의 생명의 바탕 자체가 진공이고, 여기서 양자 요동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초프라Deepak Chopra(1946~ ) 같은 사람은 ‘이 우주의 진공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허다. 여기에 모든 생명이 일어나는 무궁한 생명력이 있다’고 했어요. 음양의 생명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동양에서는 태극이라 하고, 그 태극을 정의할 때 물물物物이 태극이라 합니다. 소립자, 원자, 이 우주 은하계에 있는 하나의 사물 그 각자가 다 태극입니다. 그것을 거느린 우주정신 자체가 통체일태극統體一太極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생명이 요동을 칩니다.
일본 동경에 가면 미래과학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앞으로 나올 과학의 여러 가지 진귀한 것도 보여주는데, 위로 올라가면 극장이 있습니다. 누워서 보는 거대 화면으로 보는 30분짜리 영화가 있어요. 이 우주가 처음 생겨날 때 우주의 살아있는 모습인데, 극미의 입자 또는 끈이 막 요동을 치는 겁니다.
그 마지막을 보면, ‘우주는 끈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끈이 뭉쳐서 만물이 태어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 자, 갑시다. 새로운 소식이 들립니다. 그것은 차원을 넘어야죠’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가 차원을 넘어야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물리적 공간계, 시공 일체의 4차원 공간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수행을 해야 됩니다.
인류 역사문화가 탄생하는 문화 창조의 자궁, 소도제천 행사에서 우주의 천신과 어머니 지구의 영신과 그 주재자인 임금님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천제를 올리고 있는데, 그때 신선 발귀리가 한마음이 되었을 때 바로 그 마음의 경계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소도제천 행사의 솟대입니다. 이 문화가 일본에 가보면 그대로 살아있어요.
그 유명한 그 신사를 잠깐 한번 가볼까요? 스와 신사인데, 스와 호수 남북에 남궁, 북궁 해서 네 개의 신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신사에 네 개씩의 솟대를 세워요. 바로 저기에 스와 호수가 있고 솟대를 저렇게 네 개를 세우고 있는데, 저것도 아주 의도적으로 각도를 맞추고 있어요. 신전 바로 정문 오른쪽에 세우고, 왼쪽에 세우고, 저 뒤쪽에 두 개를 세웠는데 저 마쯔리를 할 때는 참 엄청납니다.
저걸 산에서 베어서 내려올 때 온바시라 축제, 스와대사 마쯔리를 행합니다. 그때 내는 ‘스와’라는 말이 뭐냐? 스와는 솟대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넘어가서 ‘세와, 세와’ 했는데 그걸 빨리하다 보니까 ‘스와, 스와’가 된 겁니다. 저 마쯔리를 할 때 현장에 가서 보면 수천 명이 저걸 메고 ‘솨, 솨, 솨, 솨’라고 합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세우라’는 소리예요. ‘세와, 세와, 세와, 세와!’그래서 ‘스와’가 됐어요.
이 솟대를 세우는 문화를 여기서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솟대문화는 북두칠성 문화입니다.
지금은 문화 융합 시대, 원형문화 정신의 결론 메시지
오늘 전체 말씀을 정리해 보면, 우리가 환국, 배달, 조선, 북부여 이후 9천 년 국통 맥에서 문화를 창조한 원형정신은 무엇인가?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 천지부모와 한마음, 한 생명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 생명의 바다에, 바로 그 생명의 존재의 주인인 삼신이 계십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완전히 발현한 우주 광명 인간이 되어야 됩니다. 그것이 불멸의 동방 원형삼도原型三道 정신입니다.
원형삼도는 삼신이 하늘땅 인간으로, 삼극으로, 삼재로, 천지인 사상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동방의 천지인 삼재 합일 사상의 원형이 바로 삼신이거든요. 우주 삼신, 이것이 우주신학이고 서양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신학의 원형입니다. 강단사학자들이 서양에 있는 삼위일체를 뜯어다가 삼신관을 조작했다고, 정말로 잘못된 이야기를 합니다.
유·불·선·기독교의 원형정신, 유·불·선·기독교의 모체 원형삼도가 있습니다. 하늘의 조화 신성을 받아내린 것이 바로 전도佺道이고, 어머니 땅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나온 것이 선도僊道, 신선도神仙道입니다. 그다음에 천지의 원주인인 인간, 인간의 다스림의 도,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의 도의 정신을 근본으로 해서 종도倧道가 나왔습니다. 그러고서 불도가 이 전도에서 나오고, 선도, 신선도가 원형 선도에서 나오고, 그다음에 유도가 종도에서 나왔어요.
근대에 와서 이제는 종교 중심 시대도 끝났습니다. 철학 중심 시대도 끝나고, 과학 중심 시대도 끝났어요. 한 가지에만 매달려서 거기에다가 사활을 걸면 성공을 못 하고 패망을 당합니다. 이 개벽기에 살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종교, 철학, 과학 모든 인류 동서고금의 문화역사 정신이 융합되는 때입니다.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에 재직했던 박성배 교수님이 예전에 인간 마음 세계를 체험하려고 탄허呑虛 스님 밑에 가서 스님 노릇도 한 적이 있었어요. 나중에 그만두고 미국에 가서 불교 철학박사를 따고 뉴욕대학에서 불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가을개벽에 대한 우리 『도전』을 축약한 『Autumn Calling』이라는 책에 축사를 좀 써 달라고 부탁하니까 ‘아, 나도 칠성경七星經 주문을 읽고 컸다. 아버지 따라서 한 달씩 수행도 했다’고 말했어요. 그래 그분도 동학, 이 참동학의 후예예요. 그때 대한민국 국민 한 3분의 1 정도는 시천주侍天主 주문 읽고, 칠성경 읽고, 태을주太乙呪를 읽었거든요.
바로 이 참동학이 동학에서 선언된 무극대도입니다. 동학에서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니냐’고 했습니다. 앞으로 지구에 인류가 그동안 앓아왔던 병통, 즉 전쟁, 굶주림, 음해, 남을 해코지를 하면서 권력을 잡았던 데서 오는 원한과 그 투쟁과 피의 역사, 거기에 뭉쳐 있는 기운들이 폭발해서 끊임없는 병란이 터집니다.
서양에서는 기후변화를 말하는데, 이 기후변화와 병란의 문제가 하나가 되어서 옵니다. 제가 40년 동안 상제님의 성적과 역사문화를 답사하는데 최근에 이런 놀라운 개벽 증언이 나와요.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많이 병드는 데 공기가 오염돼서 기에 의해서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대일기극大一其極이여 시명양기是名良氣라’, 이 천지우주와 하나 되는 태일 심법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 우주의 생명과 그 신성을 회복해서 우주의 생명 자체가 되어서, 우주의 조화생명 자체가 되고 삼신 자체가 되어서, 우주 역사를 창조하는 진정한 이 우주의 창조자, 창조의 본체 태극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신선 발귀리가 소도문화, 그 원형의 역사문화 정신을 가지고 노래해 주신 우주 생명관, 신관, 역사관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지향할 통일문화 시대 열어나가는 역사관의, 미래 비전의 기초가 된다고 봅니다.
9천 년 역사문화의 완성이 바로 근대사의 이 동학, 참동학입니다. 지금 동학이 천도교로 왜곡되어 있어요. 동학, 참동학은 인류의 새로운 문화운동이에요.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앞으로 『환단고기』를 우리가 제대로 읽고, 앞으로 개벽의 거대한 변혁의 물꼬를, 크고 작은 모든 시련을 태일의 심법으로 넘어설 수 있는, 천지부모와 크게 한마음이 된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대우주의 생명의 바다 그 속에 있는 삼신의 신성 그 자체가 되어서 그 신권神權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앞으로 후천개벽, 가을 우주 개벽의 새 역사의 문을 여는 바로 그 주인공이 될 것을 다 함께 서원하면서 오늘 말씀을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월간개벽. All rights reserved.
'천지인 공부 > 단군과 한민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메르의 엔키와 환웅천왕의 관계 (0) | 2019.02.18 |
---|---|
음양의도: 하도낙서와 팔괘의 구성원리 (0) | 2019.02.18 |
다물흥방가(多勿興邦歌) (0) | 2019.02.16 |
신교와 유불선의 정수 집대성: 다물흥방가 (0) | 2019.02.16 |
고구려의 애국가, 다물흥방가多勿興邦歌 (0) | 2019.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