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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37절) 부끄럼 없이 옷을 벗어 본문
도 마 복 음
The Gospel of Thomas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Patterson and Robinson Translation
37. 부끄럼 없이 옷을 벗어
이분법적 의식의 초월
그의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언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는 언제 당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린아이들처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옷을 벗어 발 아래 던지고 그것을 발로 밟을 때, 여러분은 살아 계신 분의 아들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His disciples said, "When will you become revealed to us and when shall we see you?"
Jesus said, "When you disrobe without being ashamed and take up your garments and place them under your feet like little children and tread on them, then will you see the son of the living one, and you will not be afraid"
His disciples asked him: When will you appear to us? When will we see you? Jesus replied: When you strip naked without shame and trample your clothing underfoot just as little children do then you will look at the son of the living one without being afraid.
(1) His disciples said: "When will you appear to us, and when will we see you?"
(2) Jesus said: "When you undress without being ashamed and take your clothes
(and) put them under your feet like little children (and) trample on them,
(3) then [you] will see the son of the Living one, and you will not be afraid."
공관복음에는 없는 말이다. 여기서 제자들이 “당신은 언제 우리들에게 나타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는 사실은, 제18절 풀이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자들이 당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내 안에 있는 천국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외적 천국을 상정하고 이런 천국이 언제 이르는가를 물은 것이다. 이런 통속적이고 인습적인 질문에 예수님은 ‘언제’라고 가르쳐주는 대신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신다. 부끄럼 없이 옷을 벗어 발로 밟으라고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엉뚱한 대답을 하셨을까?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처럼 충격 요법의 하나로 툭 던져보신 것인가?
부끄럼 없이 옷을 벗는다는 것은, 제21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옷을 벗고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는다는 뜻일 수 있다. 또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몸을 벗고 죽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후 문맥으로 보아 여기서는 역사적으로 묻은 때를 모두 벗고 에덴동산에서의 타락 이전의 원초적 인간 상태로 되돌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순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옷을 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상태를 회복하라는 말에서 그런 암시를 강하게 받는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는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창2:25)라고 하고, 그 열매를 먹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창3:7)라고 했기 때문이다.
주객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의식이 없을 때는 자신을 대상object으로 분리하여 볼 수 있는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 없기 때문에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할 수 없다. 짐승이나 어린 아이가 벗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우리도 변화를 받아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해방될 때 진정한 초월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주의해야 할 것은, 제22절 풀이에서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분법적 의식이 없던 이전 상태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고 그것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육체적으로 갓난아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분법적 의식을 벗어나는 것은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즉,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될 때 “살아 계신 분의 아들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제3절에 우리가 깨닫기만 하면 우리가 모두 ‘살아 계신 분의 아들들’임을 알게 된다고 한 것을 보면, “살아 계신 분의 아들을 본다.”는 것도 결국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한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참된 정체성을 발견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절초풍하는 일이 없고 두려움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신과 내가 하나이고, 삶과 죽음이 하나인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사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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