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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41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본문
도 마 복 음
The Gospel of Thomas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Patterson and Robinson Translation
41.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부익부 빈익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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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뭔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받을 것이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작은 것도 빼앗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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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said, "Whoever has something in his hand will receive more, and whoever has nothing will be deprived of even the little he has."
Jesus said: Whoever possesses some will be given more. Whoever possesses virtually nothing will have what little he does possess taken away.
Jesus says:
(1) "Whoever has (something) in his hand, (something more) will be given to him.
(2) And whoever has nothing, even the little he has will be taken from him."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인간 사회에 공통된 원칙인가?
공관복음에 있는 말이기도 한데, 『마태복음』(25:29)에는 ‘달란트’의 비유의 결론에 해당하는 말로 나와 있다. 어느 부자가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놓고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다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다는 이야기. 주인이 돌아와 셈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돈을 잘 굴려서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겼는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돈을 땅을 파고 숨겨두었다고 했다. 주인이 화를 내면서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있는 것도 마저 빼앗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19:26)에 나오는 ‘므나’ 비유도 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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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 달란트 비유를 해방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 의하면, 그 부자란 사람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착취하는 악덕 자본가로서, 그에게서 다섯 달란트를 받고 다섯 달란트를, 혹은 두 달란트를 받고 두 달란트를 벌어서 바친 종들은 결국 사람들을 착취하는 악덕 자본가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데 충실한 사람일 뿐이다. 오히려 자기 달란트를 땅에 묻었던 사람이야말로 악덕 자본가의 술수에 온몸으로 저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현 사회에서 이런 사람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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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마태복음』(13:12)과 『누가복음』(8:18)에도 나와 있는데, 여기서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과 관련된 말로 되어 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가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가 물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는데, 이는 마치 가진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기는 격’이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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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 『도마복음』은 전후 문맥이 없이 이 말만 달랑 나와 있기에 어떻게 적용되는 말인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달란트 비유나 씨앗 비유나 모두 천국의 비밀과 관계된 말이라고 이해할 경우엔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잡힌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 우리 속에 있는 씨앗, 우리 속에 있는 신적 요소, 하느님의 불꽃, 우주 의식, 신령한 빛을 깨닫고 이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라 여길 줄 아는 사람은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던 이런 요소들마저 시들고 메말라 없어지고 마는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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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어느 해석이 옳고 어느 해석이 그르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곧 해석하는 것’이란 기본 원리를 말하려는 것뿐이다. 누구의 해석만 유일하게 옳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성경을 보고 다른 해석을 하고 다른 뜻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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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해석 중 어느 것이 더 성서적인가? 우리가 처한 역사적ㆍ사회적ㆍ심리적ㆍ정서적ㆍ지적 조건이라는 구체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이런 판단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이 중 어느 하나는 절대적으로 진리요 다른 하나는 절대적으로 오류라고 만용을 부릴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이라면 나와 이웃을 하느님께 더욱 가깝게 가도록 하고,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이웃을 더욱 사랑하도록, 궁극적으로 나와 하느님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데 어느 쪽 해석이 더 도움이 될까 물어보는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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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연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기 해석은 절대적으로 ‘성서적’이고 남의 해석은‘인간의 말’이나 ‘인간의 생각’이라 밀어붙이는 억지는 성경 읽기라는 것의 기본 원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말은 성서적’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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