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터학당(學堂)-진리를 깨달아 자유를....나는 나다.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50절)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본문
도 마 복 음
The Gospel of Thomas
오강남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Patterson and Robinson Translation
50.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새로운 정체성의 발견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그들에게 말하십시오. ‘우리는 빛에서, 빛이 스스로 생겨나, 확고히 되고, 그들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 그곳에서 왔다.’라고. 그들이 여러분에게 ‘그것이 너희냐?’하고 묻거든 이렇게 말하십시오. ‘우리는 그 [빛의] 자녀들로서, 살아 계신 아버지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이 여러분에게 ‘너희 속에 있는 너희 아버지를 입증할 증거가 무엇이냐?’하고 묻거든 그들에게 말하십시오. ‘그것은 움직임과 쉼’이라고.”
Jesus said, "If they say to you, 'Where did you come from?', say to them, 'We came from the light, the place where the light came into being on its own accord and established itself and became manifest through their image.' If they say to you, 'Is it you?', say, 'We are its children, we are the elect of the living father.' If they ask you, 'What is the sign of your father in you?', say to them, 'It is movement and repose.'"
50a Jesus said: If they ask you "Where are you from?" reply to them "We have come from the place where light is produced from itself. It came and revealed itself in their image."
50b. If they ask you "Are you it?" reply to them, "We are his sons. We are chosen ones of the living father."
50c. If they ask you "What is the sign within you of your father?" reply to them, "It is movement. It is rest."
Jesus says:
(1) If they say to you: ‘Where do you come from?’ (then) say to them: ‘We have come from the light, the place where the light has come into being by itself, has established [itself] and has appeared in their image.’
(2) If they say to you: ‘Is it you?’ (then) say: ‘We are his children, and we are the elect of the living Father.’
(3) If they ask you: ‘What is the sign of your Father among you?’ (then) say to them: ‘It is movement and repose.’"
이것은 『도마복음』식으로 믿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있도록 하기 위한 간단한 교리문답 형식의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또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도마복음』식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심지어 그런 신앙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면, 그런 사람들이 힐난조로 물어볼 때 자기들은 ‘빛에서 온 사람들, 빛의 근원에서 나온 사람들, 빛의 자녀요, 아버지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임을 분명하고 당당하게 밝히라는 이야기다. 빛이 “그들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할 때 ‘그들’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문법적으로 모호하다.
그러나 이 절을 역사적 맥락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대교회에서는 단순히 믿음의 단계를 지나 사물의 형상을 꿰뚫어보는 깨달음의 단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물’로 세례를 준 세례 요한의 세례는 오로지 ‘첫 단계’에 불과하므로 이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세례 요한 스스로도 자기 뒤에 오실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마3:11, 눅3:16) 세례를 주리라고 예언했는데, 바로 이런 세례를 받아 영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로 세례를 받았을 때는 하느님을 창조주나 심판자로 믿고 우리 스스로를 ‘하느님의 종’으로 여기고 살았지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면 이제 하느님을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보게 되고 자기들을 “하느님의 자녀”이며 “상속자”(갈4:7)로 확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질투하고 진노하는 그런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새로운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성령과 불로 받는 제2의 세례를 아폴루트로시시apolutrosis라 불렀는데, 이는 노예가 노예 신분에서 풀려나는 것과 같은 ‘놓임’이나 ‘해방’, ‘해탈’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제2의 세례를 받는 방법은 일률적으로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세례를 주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형식을 취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은 세례를 받기 전 일종의 세례문답 같은 것이 선행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어디서 왔는가?”하는 것이었다. 도마복음 제50절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디서 왔는가 묻거든 “빛에서 왔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연상되는 것이 있다. 선불교 전통에서 중국 선종禪宗의 육조六祖 혜능慧能(638~731)이 오조 홍인弘忍을 찾아갔을 때 홍인은 그에게 “어디서 왔고 무엇을 구하는가?”하고 물었다. 혜능이 자기는 영남 신주에서 깨침을 구하고자 왔다고 했다. 홍인은, 영남 사람이면 오랑캐들인데 어찌 깨침을 얻을 수 있겠는가 했다. 이에 혜능이 한 대답이 유명하다. “사람에게는 비록 남북이 따로 있겠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따로 없습니다. 제가 오랑캐의 몸으로는 스님과 같지 않겠지만 불성으로는 어찌 차별이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절에서도 우리 속에 있는 빛, 혹은 우리의 근원인 빛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도마복음』의 여러 곳(제11, 24, 33, 61, 77, 83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빛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우리 속에 있는 빛’, ‘모든 것 위에 있는 빛’, ‘빛을 비추라’는 등에 언급하고 있는 데 비해 여기서는 “우리가 빛에서 왔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다.”하는 등, 우리의 ‘근원’이요 ‘바탕’으로서의 빛을 강조하고 있다. 빛에 대해서는 제77절 풀이에서 다시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 안에 있는 아버지의 증거가 “움직임과 쉼”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구약『 창세기』에서 태초에 “하느님의 영이 물 위에 움직이고”(창1:2), 엿새 동안 창조 사업을 다 마치신 다음“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창2:2)라고 했는데, 이런 원초적 ‘움직임과 쉼’이 바로 하느님의 내재하심의 증거라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둘째, 더욱 근본적인 것은 본래 움직임이 없던 근원으로서의 궁극 존재가 움직여 만물이 생기게 되고, 이 만물이 다시 본래의 근원으로 돌아가 움직임이 없는 쉼의 상태에 이른다고 하는 이 엄청난 우주의 순환 원칙이 신의 실재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는 말로 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좀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풀면, 내 속에 영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깊은 평강과 쉼을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임재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말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움직임과 쉼’을 각각 우주창생론적cosmogonicalㆍ존재론적ontologicalㆍ개인 심리적psychological측면으로 본 셈이다. 어느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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