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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서』에 나타난 영지주의 본문
『도마복음서』에 나타난 영지주의
‘몸’을 통해본 이원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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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학교 종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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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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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함마디 도서들은 1945년 가을 상 이집트에 있는 룩소에서 북서쪽으로 30km 떨어진 그리스, 로마시에 체로보스키온 Cheroboskion(현재 지명은 낙함마디)로 불린 장소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농부가 13개 가죽 끈으로 묶인 파피루스 코덱스를 봉인된 항아리 안에서 발견하다. 이 코덱스에는 52개의 영지주의 교리문헌과 Corpus Hermeticum에1) 속한 세 작품, 그리고 플라톤의『국가』의 일부분 번역이 포함되어있었다. 이 코덱스들은 근처 성 파코니무스 수도원의 수사들이 당시 초대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고 금서목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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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나스우스(298-373)의 금서칙령과(Brakke 1995:33) 쎄오도시우스 I(347-395)의 390년 칙령으로 이런 책들은 누군가에 의해 숨겨졌을 것이다. 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문서들은 콥트어로 쓰였으며 아마도 그리스어 원본에서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헌들에서 발견된 예수의 어록들이 1898년 옥쉬륀쿠스에서2) 발견된 초대 그리스도교 문헌들에서나 초대 교회 교부들이 인용한 예수 어록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낙함마디 콥트 문헌의 그리스 원본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복음서의 원자료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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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Gospel of Thomas, 이하 GT)」의 콥트어 번역은 1948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소위 낙함마디 코덱스 중 하나로 밝혀졌다. 1948년 봄 낙함마디의 13 코덱스 중 11개가 아직 카이로 유물 중개상인 포키온 타로(Pokion Taro)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쟝 도레스(Jean Doresse)는 문헌들을 사진 찍고 목록을 만들 참이었다. 그는 두 번째 코덱스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콥트어로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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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gallelion pkata Θ omas
“도마에 의한 복음서” (Doresse 200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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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카이로에 있는 카이로 박물관장인 파호르 라비브는 이 새로운 코덱스 사진을 발표하고 그 중에는 GT가 속해있는 두 번째 코덱스 사진도 포함 되어있었다(Labib 1956). GT의 일부분은 미리 알려진 옥쉬륀쿠스의 그리스어 파피루스 구절들과 유사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집트 옥쉬륀쿠스에서 1897, 1903, 그리고 1904년에 발견된 그리스어로 쓰인 파피루스에서 발견된 예수의 어록과 일치하였다(Grenfell과 Hunt,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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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쉬륀쿠스 파피루스(이하 Pap. Oxy로 칭함) 1은 GT 어록 28-31, Pap. Oxy 654는 GT 어록 1-7, 그리고 Pap. Oxy 655는 GT 어록 37-40과 일치한다. 콥트어로 쓰인 GT가 전부 발견된 후, 그리스 파피루스 단편들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3) 그러나 문제는 이 3개 그리스어 파피루스들이 GT의 한 그리스 문헌에서 왔는지는 의문이다. 더 나아가 이들이 콥트어 GT의 번역본이라기보다는 기원 후 2세기경 널리 읽히던 예수의 어록에 관한 그리스어 번역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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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르메티카는 로마제국 후기에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투스Hermes Trismegistus (그리스 신 헤르메스와 이집트 문자의 신 토트의 합성어)라고 불리는 사람이 저술했다는 비밀스런 지혜가 담겨진 문헌들이다. 2~3세기 그리스어로 쓰인 문헌들과 Corpus Hermeticum라는 르네상스 시 만들어진 모음집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G. Fowden, The Egyptian Hermes: A historical approach to the late pagan mind(Cambridg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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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옥쉬륀쿠스는 카이로에서 160km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특히 고고학자들 의 19세기 후반부터 발굴하기 시작하여 그리스-로마시의 수많은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문헌 중 유명한 것들은 메난더의 연극 대본, GT, 그리고 다른 영지주의 문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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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전(經典), 정전(正典)그리고 영지주의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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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형성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한 기원후 306년 콘스탄틴 대제의 즉위이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어, 통일된, 유일한, 그리고 정통교회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틴 대제가 즉위하기 이전 3세기간은 통일된 교회를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여러 형태의‘그리스도교’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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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문서는 콘스탄틴 대제와 정통 그리스도교의 설립이전에 존재했던‘그리스도교’의 한 형태다. 우리가 정통 그리스도교의 선입견이 없이 2-3 세기의 그리스도교 형성에 영향을 끼친 문헌들은 다양하다(Layton 1987:xiixxi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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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흔히 권위가 있는 종교인이 저술한 종교문헌으로 신념, 종교 행위, 종교 수사, 혹은 윤리적인 면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경전은 종종 그 종교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그들이 세상, 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일정한 상징체계 안에서 제시한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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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가 태동될 때,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할 만한 특별한 문서들이 상존해있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졌으며, 그 구성원도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 예수처럼, 그들도 처음에는 후대 그리스도교가‘구약성서’라고 명명한, 유대인들의 성서인‘타낙’과12) 다른 책들을13)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예수가 죽고 그의 부활 신앙이 시작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전의 경전들을 다른 방식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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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글을 읽을 수 있는 계층은 지식층들이었기 때문에, 이 경전들은 일반 대중보다는 유대교와 그리스철학 교육을 받은 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형성되기 시작한 경전들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여러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수많은 경전들이 있었지만, 27 권만이 현재‘신약성서’란 이름으로 정전(正典)이 되었고 부분은 그리스도교 경전으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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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2-3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무슨 경전들을 정전으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27권의 정전 이상의 많은 책들이 교회 안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에는 사도들의 편지들, 지혜서들, 계시록들, 전기와 순례 문헌들, 예수의 수난 이야기들, 그리스도교 공동체 삶에 관한 규칙들, 신학적 변증들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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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들 중 특정한 책들을‘신의 감동’으로 쓰다고 판단하고 이들을‘경전’에서‘정전canon’으로 승격시켰다. 후에 첨가된 책들 도 있는데, 그중에서 바울이 저술한 도망간 노예에 관한 편지인『빌레몬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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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교 경전들은 종종 서로 신학적으로 대립되는 내용을 가진다. 1-4세기까지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종교로 형성되기 전까지,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을 가진‘그리스도교 집단들’의 사상 또한 다양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초기 구심점이 없던 시에‘그리스도교’는 다양할 수밖에 없었고, 그 다양성은 다양한 경전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경전들은 문화적, 사회적, 혹은 언어적 차이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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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시리아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 경전과 로마에서 라틴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에서 이 시기에 핵심적인 신학적 내용이라 할지라고 일치하기는 어려웠다.
예수에 관한 정의들, 예를 들어 기적을 행하는 자, 지혜자, 계시자, 메시아, 랍비, 예언자, 혹은 외계에서 온자 등 다양한 묘사를 그리는 경전들이 등장한다. 혹 철학이나 상징체계에 기초하여, 어떤 경전들은 플라톤주의, 다른 경전들은 유대교 종말주의를 주로 다루는 여러 종류의 경전들이 존재했다. 이런 다양한 경전들이 현대인들의 눈에 보기에는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 대표적인 문헌들이 영지주의 글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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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문헌들은 당시 다른 소위‘그리스도교 문헌들’과는 다른 분류의 들이었다. 이것들은 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이 공유해서 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근간이 된 중요한 신념들, 특히 창조주의 전지전능함을 믿지 않는다. 영지주의자들은 사탄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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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그리스도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구성원들을 외부의 사상이나 문헌들을 막고, 구분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생각하기에‘거룩한’책들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였다. 이런 책들을 선별하는 동기는 순전히‘신학적’이었다. 이 책들을 지정한다는 것은 바로, 이외의 어떤 책도 첨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완전히 공인된 한정된 경전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안에 경쟁 교파들 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일종의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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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단이나 종교에서 완전하고 권위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 일련의 책들은‘정전(正典)’이라한다. 예를 들어, 현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 교회는 유대교로부터 물려받은 39권의 책을‘구약성서’로,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27권의 책을‘신약성서’로 받아들여‘정전’으로 삼았다. 아직도 가톨릭과 개신교는 15권의 책들과 구약성서 중 몇 권에 책의‘정전성canonicity’에 대해 의견이 다르지만, 기원후 2세기 말까지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사용하고 있는‘정전’의 기본 틀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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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경전들은 그리스도교의 정전에 속하지 못한 초대 그리스도교 문헌들이다. 그러나 소위‘영지주의 경전’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고 레이튼은 주장한다(Layton 1987:xxii):
첫째, 현재 어떤 형태의 그리스도교도 이 문헌들을‘정경’으로 여기지 않는다. 심지어, 이 문헌들에 대한 반감은 이들이 쓰이기 시작한 단계부터 시작되었다;
둘째 기원후 2-3세기에 쓰인 영지주의 문헌들은 당시 그리스도교의 권위 있는‘정전’의 일부가 되기 위하여 당시 통용되는‘전통적인’문학형태를 취하였다;
셋째, 이 영지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정전’에 한 교리와 해석이다. 특히 이 문헌은 이스라엘의 신, 예수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일반 구원론에 대한 해석을 정면으로 반대한다. 특히 영지주의 신화는 구약성서「창세기」와는 다른 우주, 신, 그리고 인간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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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누스(기원후 100~153년)는 영지주의 문헌 중 가장 독특한 자기만의 신학적인 내용을 지낸 책을 저술했다. 그는 로마에 학교를 세운 터쿨리안에 의하면, 기원후 143년 로마의 감독 후보로 지명될 정도로 초기 그리스도교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발렌티누스는 영지주의 경전을 당시 그리스도교‘정전’에 유입시키려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발렌티누스의 작품인『진리 복음서』는 그 내용은 신약성서 구절을 암시하는 흔적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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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르메티카는 로마제국 후기에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투스Hermes Trismegistus (그리스 신 헤르메스와 이집트 문자의 신 토트의 합성어)라고 불리는 사람이 저 술했다는 비스런 지혜가 담겨진 문헌들이다. 2~3세기 그리스어로 쓰인 문헌들과 Corpus Hermeticum라는 르네상스 시 만들어진 모음집이었다. 더 자세 한 내용은 G. Fowden, The Egyptian Hermes: A historical approach to the late pagan mind(Cambridg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6)를 참고하 라.
2) 옥쉬륀쿠스는 카이로에서 160km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특히 고고학자들 의 19세기 후반부터 발굴하기 시작하여 그리스-로마시의 수많은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문헌 중 유명한 것들은 메난더의 연극 본, GT, 그리고 다른 지주의 문헌 등이다.
3) 그리스 파피루스를 콥트어 번역을 통해 재구성을 처음 시도한 학자는 Joseph A. Fitzmyer이다.(“The Oxyrhynchus Logoi of Jesus and the Coptic Gospel According to Thomas” in Essays on the Semitic Background of the New Testament (London: Chapman, 1971): 355-433); Robert A. Kraft, “Oxyrhynchus Papyrus 655 Reconsidered,” Harvard Theological Review 54 (1961): 253-62)
4) 유세비우스「교회사」1.13.11.
5) H. J. W. Drijvers (East of Antioch (London: Variorum, 1984): 16)은 고 시리아 어 복음서의‘유다 도마’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리아의 타디안이 175년경 4복음서를 종합하여 기록한 Diatessaron 전통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6) 유세비우스, 교회사1.13.10.
7) 에프렘, 「신앙을 위한 설교」7.11.3. 8)『도마행전』#31, #39.
9)「요한복음」은 분명히‘도마’의 어원을 알고 있었다. 「요한복음」11:16에“쌍둥 이라고 불리는 도마”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10) 이 이외에도 도마의 이름이 등장하는 다른 문헌들은 Infancy Gospel of Thomas 와 Apocalypse of Thomas가 있으나, 이들은 유다 도마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11) 이러한 체계는 이야기형식을 빌어 표현하고, 그 종교 구성원들이 어디에서 왔 으며 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지를 설명한다.
12) 유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을‘타낙’이라 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구성 하는 3 내용인 히브리어 단어‘토라Torah(모세오경)’ , ‘네비임’Nebiim(예언서), 그리고‘케투빔’Ketubim(성문서)의 두문자어인 T(a)N(a)K로 지칭하다.
13) 다른 책들은 J. H. Charlesworth, ed. (1983~85) 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Garden City: Doubleday)와 최근 발견된 사해문서(G. Vermes, ed. (1963) The Dead Sea Scrolls in English, Harmondsworth: Penguin Books)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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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마복음서의 문학적 특징과 복음서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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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특징과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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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에서‘복음서’라는 용어는 이 복음서를 베낀 필사자가 후에 첨가한 것이다. GT의 서언부분에 이 책은“비밀어록의 책”이라고 증언한다. 이 어록의 특징은 모든 어록이“예수가 말했다”로 시작함으로 어록의 권위를 강조한다. GT는 간간히 제자들이 예수에게 질문하는 상황이 등장하지만, 그 어록들은 서술구조 안으로 편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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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예수의 삶, 즉 그의 탄생, 생애,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예수는“살아계신 분”으로만 묘사 된다. GT 저자는 신약성서의 복음서와 같은‘복음서’를 쓰려 시도하지 않는다. 여러 어록들을 하나로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형태는『구약성서』의「잠언」과 외경의「벤시락의 지혜」혹은「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지혜문학과 유사하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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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 아니라, 사실 복음서도 이와 유사한 지혜문학형태가 원자료 였을 것이다.
대부분 학자들은「마태복음」과「누가복음」이“공관복음서 자료”라는 가상의 예수의 어록집을 참고로 저술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약성서]의「야고보서」도 지혜문학 장르에 속하며 초대 교회의 지침서였던「디다케]의 첫 여섯 장들도 지혜문학 장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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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는 대부분“아버지의 왕국”에 한 경구, 잠언, 비유, 예언적인 말들과 공동체 규례들로 짜여있다(Koester 1971:168-87). ‘지혜’는 이 문헌의 주제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진리를 전한다. GT의 지혜는 이런 유형의 유대교, 그리그도교 지혜문학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관계의 핵심적인 내용을 드러내는 어록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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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인간의 본성과 운명, 그리고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본질과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주제이다. 이러한 어록들의 내용은 GT에는 독특한 내용이 아니라, 복음서들을 포함한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들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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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의 어록 구성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어록들의 배열과 순서이다. 콥트어로 쓰인 GT와 그리스어 번역본인 옥쉬륀쿠스(Pap. Oxy. 1)는 같은 어록들의 순서를 다르게 배열하고 있다. 예를 들어, Pap. Oxy. 1은 콥트어 GT의 어록 ##33과 77b를 묶어 배열하다. 원저자의 구성 의도를 헤아리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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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의 부분들이 부분적으로는 하나의 주제로 묶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록 ##62-65는 비유의 신비성이 강조되는 어록들이며, ##96, 97, 98, 107, 109는“왕국(아버지의 왕국)은 xxx와 같다”로 시작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GT의 저자가 원래 참고로 했던 문헌들 중에“왕국은 xxx와 같다”로 시작 되는 어록들을 추리다가, 어록 #98과#107사이에 다른 어록들을 추가했다는 사실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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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의 저자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저자가 아니다. 그는 문전 형태로 쓰인 여러 종류의 어록을 자기 나름의 주제별로 배열한 수집가이며 편집자이다. 이 어록들 각각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편집자가 어떤 신학적인 의도를 가지고 배열하기 보다는 무작위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자료를 배열하였다. GT #16은 이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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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말했다: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내가 세상에 불화, 즉 불, 칼, 그리고 전쟁을 야기시키려고 온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한 집안에 다섯 명이 있을 것이다: 세 명이 두 명을 대항하고, 두 명이 세 명을 대항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대항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대항한다. 이것들은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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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전통적인 어록(Q/「누가복음」12:51, 52, 53)에“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를 이루었다”라는 구절을 첨가하였다. #78은 Q/「누가복음」7:24-25절을 인용하고“그들은 진리를 구별할 수 없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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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저자는 전통적인 어록을 자기 나름대로 취사선택하여 배열하다. 그는 전통적인 지혜에 한 어록들에 신적인 지혜를 첨가하여 대비시킨다. 몇몇 구절들은 복음서와 유사하다. 「마태복음」11:28-30과 GT 90의 비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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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 90
내게오라.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주권은 온유하다. 너는 쉼 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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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 에는 편하고 내짐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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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저자는 예수의 어록을 종말론적 틀 안에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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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51-52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다: “죽은 이들의 평안은 언제 오며, 새로운 세상은 언제 옵니까?”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찾는 것이 이미 도래했지만, 너희들이 인식하지 않는다.”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다: “24명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서 말했고 그들 모두 너희에게 말했다.”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너희 앞에 있는 살아있는 이를 생략하고 죽은 이들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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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적인 하나님 왕국의 도래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건으로 묘사한다. 이런 급진적인 도래사건은 복음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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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 113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다: “왕국은 언제 옵니까?”예수가 답하다: “그것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여기 있다’ , ‘저기 있다’로 말할 것이 아니다. 차라리, 아버지의 왕국 땅에 (이미) 퍼져있고 사람들은 보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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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7:20-21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말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보아라, 여기에 있다’또는‘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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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저자는 왕국의 도래는 예수의 제자들이 자신들에 대한 새로운 지혜를 얻으면 온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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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 3
예수가 말했다: “만일 너희를 인도한 사람들이 너희에게‘보라! 왕국이 하늘에 있다’라고 말하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들 보다 앞설 것이다. 만일 그들이‘그것은 바다에 있다’라고 말하면, 물고기가 너희들을 앞설 것이다. 왕국은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네가 네 자신을 알게 될 때, 너희들도 알려질 것이며, 너희들은 살아계신 아버지의 자녀들이 바로 너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네 자신들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빈곤에 살 것이며, 그 빈곤이 바로 너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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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어록은 영지주의의 주제와 비밀스런 지혜의 급진적인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영지주의는 인간 존재, 천체의 기원, 육체로부터 떠난 혼 등에 한 숨겨진 진실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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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GT와 공관복음서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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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와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의 유사성은 그 병행구절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1897, 1903, 그리고 1904년에 옥쉬륀쿠스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 쓰인 그리스어 GT가 발견되자, 학자들은 이 파피루스를 공관복음서와 대조 연구하였다. 초기 학자들의 의견은 갈렸다. 몇몇 학자들은 GT 내용이 초대교회의 각색이 없는 순수한 예수가 말한 실제 어록이라고 주장하고(Quispel 1957:189207), 다른 학자들은 신약성서의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독립적인 초기 공동체의 전통이라고 주장하였다. 혹은 다른 학자들은 GT는 공관복음서 내용을 영지주의로 각색한 조작이라고 여겼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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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는 공관복음서에 의존하여 작성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증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예들 들어 공관복음서에 예수의 어록이 담긴 서술적인 문장들의 흔적을 GT에서 전혀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GT에 담긴 예수의 비유가 복음서보다 더 원형인 경우가 많다. 이 사실은 GT에 담긴 예수의 어록이 공관복음서보다 이르다는 사실이다(Neller 1989-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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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도마복음서와 요한복음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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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브라운은 1963년 GT와「요한복음」과의 관계를 연구한 첫 학자이다 (Brown 1966-70). 브라운은 GT가 요한복음을 얼마나 사용했나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GT의 원 자료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GT 편집가자 1세기 이미 널리 알려진「요한복음」의 자료는 편집에 사용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GT와「요한복음」은 거의 병행구절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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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퀘스터는 GT와「요한복음」과의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한다 (Brown, 1966-70)(Koester 1990:113-24). 그에게「요한복음」은 원래 예수의 어록에서 발전되어 완성된 복음서이다.17)「요한복음」기자는 이러한 어록들은 특정한 상황에 배열시켜, 그 상황자체가 비평적 주석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반면 GT 저자는 그 어록에 특별한 이해 방식을 주입시켰다. 여러 군데에서 이 두 저자들은 서로 다른 해석학적 목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전통적인 어록을 사용하다. 다음은 그러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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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1
누구든지 이 어록들의 해석을 발견한다면, 그는 죽음을 격지 않을 것이다(Θανατου ου ευσται).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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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 111
산자로부터 사는 자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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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8:51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을 것이다(Θανατον ου µεωρησ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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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8:52
나의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격지 않을 것이다(ου µη ευσηται Θανατο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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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저자의 해석은 예수의 말이 아니라, 그 해석, 즉 그 어록 안에 숨겨진 진리를 찾는 자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 진실은 예수를 발견하는 것, 동산의 지혜의 나무를 찾는 것, 세상의 기원을 발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에 비해「요한복음」저자는 전통적인 어록을 직접 인용하여 예수의 말 자체가 영생을 주는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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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5:10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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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그의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에서「요한복음」저자는 원래 어록에 자기만의 독특한 해석을 첨가한다. 다음 병행구절들에선 GT이 원래 어록을 그래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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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19b
만일 네가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말을 듣는다면, 이 돌들이 너를 시중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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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8:31-32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무르면(µειντε εν),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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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에선 예수의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신비스런 경험이지만, 「요한복음」은 제자들의 신실함을 강조하기 위해‘머무르면’이란 표현을 첨가한다. 그런 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스토아 철학의 금언을 첨가한다(Dodd 1963:380). 계시를 샘물이 솟아나는 것으로 표현한 은유적인 어록들이 GT과「요한복음」에서 각각 두 번씩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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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13
네가 마셨기 때문에, 너는 내가 측정한 솟아오르는 물로부터 마셔 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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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4: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GT #108
내 입으로부터 (나오는 물을) 마시는 자는 나처럼 될 것이다. 나는 그가 될 것이고 감추어진 것들이 그에게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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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7:37-38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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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을 마시는 것을 이용한 은유적인 표현은 고대 종교 문헌에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예수의 어록 중, 물 마시는 것과 연관된 어록은 위에서 언급한 네 구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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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4:14에“영원히”라는 구절이 첨가되었다. 「요한복음」은 한 여인과의
대화 중 나온 구절이며, 그 여인이“목마르지 않은 물”을 요구 하였을 때, 예수는 그 여인에게 전 남편을 데려올 것을 요구하여 신앙을 구축하는 데 복잡한 과정을 거침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GT은 이 샘물로부터 마시는 행위자체를 통해, 비밀스런 지식이 마시는 자에게 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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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예수에 관한 요한공동체의 오랜 전통의 결과물이다(Brown 1979). 요한공동체는 예수의 어록을 해석하고 장황한 연설로 늘리기도 하였다. 그런 어록 중에 하나가 바로 GT에 등장하는 예수의 어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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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분의 신약학자들은「마태복음」과「누가복음」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공 관복음서 자료’라고 알려진 예수의 어록, 즉 Q(독일어에서‘자료’를 의미한 Quelle의 약어)를 기초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신약성서」에서「야고보서」 가 이과 같은 지혜문학이었고 초기 교부들의 문헌인「12제자를 가르침(디다케)」가 그와 같은 종류의 문헌이었다.
15) 이외에도 ##2와 3은“왕”과 관련되고 ## 25와 26은“당신의 형제”와“눈”을언 급하고 ##31, 32, 33, 35는“마을,”“도시,”“집”과 같은 단어들이 언급된다. #34는 이와는 상관이 없는 어록이 추가되었다.
16) 이 주장한 표적인 학자들은 시카고 학의 R. M. 그랜트(“Notes on the Gospel of Thomas,” VigChr 13(1959):170-180)와 뮌헨학의 E. 헨켄(“Literatur zum Thomasevangelium,” ThR 27 N.F. (1961/2):147-78, 306-338)이다.
17) H. Hoester, “Dialog und Spruchueberlieferung in den gnostischen Texten von Nag Hammadi,” EvTh 39(1979): 532-56; “Gnostic Sayings and Controversy Traditions in John 8:12-59,: in Charles W. Hedrick and R. Hodgson, Jr., eds. Nag Hammadi, Gnosticism, and Early Christianity (Peabody, MA: Hendrickson, 1986): 97-110.
18) 그리스어 번역 Pap. Oxy. 6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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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몸’과‘공동체’를 통해서 본 GT의 이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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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은 일반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기초로 한다고 여겨왔다. 이 이원론은 피조물과 창조주, 육체-정신과 혼의 구분이 뚜렷하다. 진정한 자아는 악의 축인 물질세계에 속한 육체로부터 분리되어야한다. 인간 몸 안에 감금된 인간의 혼 혹은 신적인 불꽃은 해방되어야 한다. 그 결과 인간의 몸은 GT 공동체의 극복의 상이었다. 그 결과, 인간의 육체는 혐오의 상이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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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엄청난 부’가 살아야 할 자리에‘빈곤’이 자리 잡은 것으로 묘사되고20) 사람들은 육체의 옷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21) 중요한 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내적인 자아이다. 육체를 평가절하하는 사상은 고대에 종종 발견된다. GT은 아마도 당시 헬레니즘 철학과 종교에 향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이원론이 종종 등장하지만, 도마의 육체에 대한 사상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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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GT에서는 몸에 관련된 묘사가 일정하지 않다. GT #56, 80, 21에서는 몸이 일률적으로 천하고 하등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GT #12, 28, 113에서는 몸으로 상징되는 세상이 가치가 있고 안전한 장소로 묘사되었다(Davies 1983: 70-2).
둘째, 도마저자의‘이원론’묘사는 직-간접적으로 영지주의적 이원론 및 신약성서의 이원론과 대비된다. 신약성서가 육체와 혼의 구분을 주장하지만, 육체도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선하며, 이런 육체는 예수의 부활사건에서 주장하듯이 육체의 부활을 증언한다. 이에 비해 영지주의에서는 엄격하면서도 극단적으로 육체와 혼을 분리한다고 믿고 있지만, GT의 이원론은 이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GT에는 오히려 육체와 혼을 넘어서는 그리스 철학에서 주장하는 보편적인 인간 본질을 의미하는 원자(原子)가 있다고 주장한다. M. 윌리엄은 육체에 대한 형식적인 이해를 비판하면서 육체를 무조건 혐오하는 사상은 실제 영지문헌에서 발견한 육체의 기능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Williams 1996:1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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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GT는 이상적인 이원론과 실제 윤리적인 생활 이원론을 구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극단적인 이원론을 주장하게 되면 극단적인 금욕주의나 방종적인 쾌락주의가 인간들의 윤리적 행동을 지배하게 되지만, GT에서는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기본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22) 이론과 실제는 상호불가분의 관계이며 실제로 플라톤식 인간이해나 우주이해에서 세상 활동과 육체적인 현상에 대한 다양한 태도들이 등장한다. 예들 들어 필로는 플라톤 형이상학과 이원론적 인간관을 주장했지만, 자신의 전통적인 유대인 가계 전통을 이어받아 과도한 금욕주의나 견유학파식의 삶의 형태를 비판한다(Dillon 1977:153). GT를 해석할 때 쉽게 범하는 오류는 너무 단순한 이원론과 거기서 유래한 이원론적 행동이나 윤리적 이상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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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Riley(1995, 178)는 도마의 표적인 3권의 지주의 문서인 GT, 『도마의 책』 , 그리고『도마 행전』은 육체를 무시하고, 육체의 부활을 부인한다고 주장한다.
20) GT #29.
21) GT #36.
22) 크로산(D. Crossan, The Birth of Christianity: Discovering What Happened in the Years Immediately After the Execution of Jesus (San Francisco: Harper, 1998): 268-9)은 GT에서의 이론 theory와 실천praxis와의 관계를 문제시하는 몇 학자 들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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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육체와 혼의 상호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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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에서 육체와 혼에 대한 극단의 대조는 GT 112와 87에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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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112
혼에 의지하는 육체여, 슬프도다; 육체에 의지하는 혼이여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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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112의 후반부는 혼의 육체 의존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플라톤의「파이돈」에서도 발견된다. 플라톤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의 혼과 비하여,‘약한’혼은 죽은 후, 육체를 떠나기가 힘들며, 혼의 순수함을 지탱하기가 어렵다. 플라톤은 쾌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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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쾌락이나 괴로움은) 혼을 육체에 박는 못과 같아 단단히 부착시키고 육체로 만들어 버리는 못과 같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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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에 미치는 육체의 부정적인 향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도 상세히 등장하며 그리스-로마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GT 112 후반 절은 이런 당시의 그리스-로마 세계관을 반영한 것 같다. 그러나 GT 112 전반 절은 육체에 한 관심표명이다. 육체도 혼에 의지하면 불행하다는 것이다. 육체는 육체와 혼의 건강한 관계가 있을 때만 행복하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대부분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이다.
플라톤 전통을 계승한 플루타크(47-120년)도‘건강하게 살기 위한 제언’에서 몸을 배에 비유한다. 배는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항상 깨끗해야하고 고장이 없어야한다.24) 배에 짐을 많이 적재하면 항해를 할 수 없듯이, 과식과 과음은 육체뿐만이 아니라 혼에도 해롭다. 인간의 육체 행동이 혼에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향을 줄 수 있다. 역으로 혼이 육체에 향을 미친다. 욕심, 시기, 질투와 같은 정신적인 집착은 육체를 소홀이하여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도마 저자는 이런 플루타크의 의학적인 충고나 육체에 관한 이론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마와 거의 동시에 살았던 플라톤 철학자 플루타크가 육체와 혼의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둘 사이에 접한 관계가 있고 상호의존적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주지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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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122는 육체를 완전히 소홀이 하거나, 혹은 혼을 소홀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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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플라톤, 「파이돈」83d.
24) 필로, De tuenda sanitate praecepta (Mor. 122B-137E) 4; 10; 11; 1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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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의복으로서의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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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두 구절에서 육체를 의복과 비교하여 표현한다. 육체를 의복에 비유하는 기법은 그리스-로마 문헌에 흔히 등장하는 플라톤식 표현이다. 그러나 GT 21:1-4에 등장하는 의복으로서 육체는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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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리아가 예수에게 말했다: “우리 제자들은 누구와 같은가?”
2. 그는 말했다: “그들은 자기 것이 아닌 한 들판에 있는 어린아이들과 같다.
3. 그 들판의 주인들이 왔을 때, 그들은 말하기를“우리의 들판을 돌려 주십시오!” 4. 어린아이들은 그들 앞에서 발가벗겨져 그들의 들판들이 돌려지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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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록 후에 두 개의 다른 비유들이 소개된다: 도둑이 집을 몰래 들어오는 이야기 비유(21:5-7)와 추수에 관한 비유(21: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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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21:8의“너희들 중에 지혜 있는 자가 있으라. 그가 곧 오신다”라는 문장은 추수에 관한 비유는 갑작스럽게 오는 메시아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모든 학자들이 21:4의“발가벗는”주제를 육체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25) 이 어록의 해석에서‘들판’은 세상을 말하며, 들판의‘주인들’과‘도적들’은 세상의 권력자들을 의미한다. 분명히 이들은「요한위경」이나「아르콘들의 위격」에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아크론들이다.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신은 최고신이 아니라, 하위신이라는 개념은 이미 플라톤과 후대 유대교 학자인 필로의 창세기 1:26 주석에서 찾을 수 있다.26) 그러나 GT에서는 영지주의식 조물주 전통을 찾아볼 수 없다(Uro 200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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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판의 주인들은 무식하거나 건방진 자들이 아니라, 단지 어린아이들에게 들판을 건네주는 자들이다. 한 들판에 사는 어린 아이들의 비유는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의 윤리적인 태도와 유사하다. 에픽테투스Epictetus(55-135)는 제자들에게 그들 조절 아래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라고 요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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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절 아래 있는 것들은 도덕적 목적과 도덕적 목적에 따른 행동들이다. 그러나 우리 조절 아래 있지 않은 것들 육체, 소유물들, 부모, 형제, 자녀, 나라는 한마디로 우리의 동업자들이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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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에픽테투스는‘조절 아래 있지 않은 것들’을‘다른 사람의 것’(αλλοτριον)28)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편람」에서 자기 조절 아래 있지 않은 것들을 돌려줄 준비를 하고, 마치 여행자가 숙소를 다루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재산을
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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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것을 잃었다”라고 말하지 말라. 단지“내가 돌려준다”라고 말하라. 너의 자녀가 죽었느냐? 그는 돌려보내진 것이다. “내 농지가 탈취 당했다”. 그것도 역시 돌려보내진 것이다. “그러나 한 악당이 빼앗았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부여자가 자신의 통로를 통하여 돌려받은 것이다. 그가 그것을 너에게 준다면, 마치 여행자가 숙소를 대하는 것처럼, 네 소유가 아닌 것처럼 돌보라.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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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 철학 안에서 본다면 이 비유가 세상을 말하는지 아니면 몸을 말하는지 구분할 필요가 없다. ‘도덕적 목적’밖에 있는 모든 것은 한 범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들 앞에서 어린아이들의 옷이 벗겨지는 행위는 육체를 이르는 명확한 제시이다. 육체가 혼의 옷이라는 사상은 고대부터 널리 퍼진 사상이다(MacDonard 1987:23-63). 필로는 옷이 벗겨지는 행위를 묵상과 거룩한 신비를 배움으로 가능한 혼의 승천과 연관하여 설명한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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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21:1-4는 이런 맥락에서 죽음의 순간, 육체는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에픽테투스는 육체와 세상은 인간의 조절 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자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사하게 도마도 세상과 세상의 문화는‘시체’ 라고 GT 56에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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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세상을 이해한 사람은 시체를 발견했으며, 누구든지 시체라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세상보다 우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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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록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 논의 중이지만, 세상에 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명확하다(Haechen 1961:50). 그러나 스토아 철학 안에서 이 어록은 세상에 대한 적대심이라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무관심의 기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육체는 시체이거나 옷이기 때문에 사라지고 진정한 자아의 조절 밖에 있다. 동일하게 세상은 시체이다. 이 사실을 발견한 사람만이 세상보다 우위에 있어 평안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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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벗는”행위에 한 구절이 GT 37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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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제자들이 말했다: “언제 당신이 우리에게 드러나며,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예수가 말했다: “네가 부끄럼 없이 옷을 벗고 네 옷을 주워 어린 아이처럼 네 발 아래 옷을 놓고 밟으면, 너는 살아계신 자의 아들을 볼 것이며, 너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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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 대해 J. Z. 스미쓰는 이 이미지가 초기 그리스도교 세례에 반영되어있다고 장황하게 주장한다.31) 스미쓰는 이 어록의 주제들, 즉, 탈의, 나체, 옷을 밟는 행위, 그리고 어린아이 같이 되는 것은“어록 37은 고대 그리스도교 세례의식과 그에 따른 창세기 1-3장의 해석 안에 발견 된다”라고 말한다.32)
S. 데이비스는 이 해석을 받아들여, GT의 몇 유사한 어록을 기초로 GT 전체가 세례 후, 세례 받은 자들에게 지시하는 교리서라고 주장한다.33) 그러나 최근 A. De 코닉과 J. 포숨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Conick and Fossum 1991:123-50).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서‘탈의’는 세례 이외의 상황에서 종종 등장하며, ‘옷을 밟는 행위’는 후 문헌에서만 발견한다는 점을 밝혔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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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닉과 포숨의 풍부한 예시들은 GT 37이 세례와 관련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오히려 육신을 버린다는 의미에서의‘옷을 벗는 행위’는 종말론적이며 신비적인 내용을 지닌 문헌에서 신을 보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35) 유사하게 필로는 자신의 거주지가 몸인 사람은 신을 만나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 한다.36) 이런 예들이 분명 세례와는 관련이 없다. 차라리‘옷을 벗는 행위’는 창세기에 기록된‘아담과 이브가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창세기 2:25의 에덴동산의 회복을 의미한다.‘부끄러움’은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후에 오는 현상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성적인 의식이 생기기 전 순진함이나 무성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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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J. Z. Smith, “The Garments of Shame: in Map Is Not Territory: Studies in the History of Religions, SJLA 23 (Brill: Leiden, 1978): 1-23. J. Z. 스미쓰(1978)는 제자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표현과 함께 탈의하는 주제를 침례의식과 연관 지어 해석한다.
26) 필로는‘권력자들’(De confusione linguarum #170-3) 혹은‘천사’
(De confusione linguarum #181)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27) 에픽테투스, Diatribai (Dissertationes) 1.22.10.
28) 에픽테투스, Diatribai (Dissertationes) 2.6.8.
29) 에픽테투스, Enchiridion ( Handbook )11; 176; 「에녹서」11장과 비교하라.
30) 필로, De posteritate Caini 136-7.
31) op. cit. 1-23.
32) Ibid., 2.
33) Davies (op. cit. 117-137)은 GT 4;21; 22; 46; 50; 53; 108을 세례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34) Ibid., 132.
35)「에녹서」22:7-8; 「이사야의 승천」7:5; 9:9.
36) 필로, Legum allegoriae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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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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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더라스는 그녀의 책『Natural Symbols』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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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human body is always treated as an image of society and that there can be no natural way of considering the body that does not involve at the same time a social dimension (Douglas 197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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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스는 몸과 관련된 언어를 통해서 한 사회의 사상을 추적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에서 GT에 나타난 몸과 관련된 언어 분석은 GT의 사회적인 위치와 특히 GT을 신봉했던 지주의 공동체와 당시 사회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이다. GT에는 의례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세례 의식이나 통과의식과 같은 절차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GT를 통해본 영지주의 집단은 집단 전체의 집단의식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개인의 내적인 진정한 자아를 어떻게 찾느냐가 관건이었다. 몸은 공동체의 상징이 아니라, 개개인의 육체이며 세상으로 인간의 자아를 위협하는 존재이다. 도마가 속한 공동체나 사회는 유동적이며,‘지혜’를 통한 구원은 개개인의 책임이다. 이것은 동시 사도인 바울이 신약성서의 바울 서신서들에서 강조하는 정결의례, 교회 공통체를 통한 구원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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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는 다른 영지주의 문서들이나 신약성서의 바울 서신서들과 비교하여, 공동체 내의 성격을 감지할 수 있는 확실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이나 스토아 철학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GT의 신학이나 사상을 그렇게 이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약성서의 바울의 메시아사상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이질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출처] 『도마복음서』에 나타난 영지주의|작성자 byuns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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