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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 또 다른 예수 본문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또 다른 예수
서문
지금 여러분이 들고 계신 이 『도마복음』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보통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도마복음』에서 ‘또 다른 예수’를 만나게 되고, 그가 여기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놓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22세에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가 되고, 그 후 신비주의에 관해 방대한 저술을 낸 애드류 하비Andrew Harvey 같은 이는 1945년 12월에 발견된 이 『도마복음』이 같은 해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진 문헌이라고 까지 하면서 『도마복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런 책을 손에 들고 계신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중요한 문서가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문서의 특징은 무엇인지 잠깐 알아보고 지나가기로 합시다.
『도마복음』의 발굴
1945년 12월 어느 날, 무함마드 알리라는 이집트 농부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나일강 상류 나그함마디Nag Hammadi라는 곳 부근 산기슭에서 밭에다 뿌릴 퇴비를 채취하려고 땅을 파다가 땅 속에 토기 항아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혹시 귀신jinn이라도 들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무서웠으나 금덩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아리를 열어보았습니다. 귀신이 나오지 않아 안심은 되었지만, 실망스럽게도 금덩어리는 없었습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가죽으로 묶인 열세 뭉치의 파피루스 종이 문서뿐이었습니다. 문서가 들어 있는 그 항아리가 금으로 가득한 항아리보다 더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그는 단지 고문서도 골동품으로 값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시장에 가지고 나가 오렌지, 담배, 설탕 등과 맞바꾸었습니다. 그 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고문서 전문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그함마디 문서’의 발굴 경로입니다. 4세기 초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을 통치할 하나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로서 기독교를 공인하고,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로 통일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에 따라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젊은 추기경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아리우스파를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는 당시 개별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 27권을 선별하여 그리스도교 경전으로 정경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367년 자기의 신학적 판단 기준에 따라 ‘이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을 모두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이때 이집트에 있던 그리스도교 최초의 수도원 파코미우스Pachomius의 수도승들이 그 수도원 도서관에서 몰래 빼내 항아리에 넣어 밀봉한 다음 나중에 찾기 쉽도록 산기슭 큰 바위 밑에 있는 땅 속에 숨겨놓은 책들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나그함마디 문서의 발견은 1947년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의 발견과 함께 성서 고고학상 최대의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사해 두루마리가 주로 히브리어 성서와 유대교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면, 나그함마디 문서는 특히 신약 성서학과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 연구를 위해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나그함마디 문서 뭉치들 속에는 모두 52종의 문서가 들어 있었는데, 이 문서들은 전부 이집트 고대어 중 하나인 콥트어Coptic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콥트’란 ‘이집트’라는 뜻인데, 콥트어란 고대 이집트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쓰던 말이고, 콥트 사본이란 콥트 말을 그리스어 문자로 적은 사본입니다. 여기에는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여러 가지 이름의 복음서들, 예를 들어 『도마복음』, 『빌립복음』, 『진리복음』, 『이집트복음』, 『요한의 비밀서』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이 바로 『도마복음』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도마가 예수님의 쌍둥이 형제로 알려져 있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님, 그가 전하는 ‘비밀의’메시지가 그지없이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도마복음』 콥트어 사본은 글씨의 필체로 보아 대략 기원후 350년경에 필사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마복음』 자체는 여러 가지 정황을 참작해볼 때 기원후 약 100년경, 그러니까 요한복음이 씌어진 것과 비슷한 연대에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은 50년에서 6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이라 여겨집니다. 그렇게 본다면 『도마복음』은 대략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마가복음』이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기록되었다고 생각되는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 비해 10년 내지 20년 정도 더 오래된 전승을 포함한 복음서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도마복음』이 나그함마디의 콥트어 사본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세기 말 영국 고고학자들이 나그함마디에서 나일 강을 따라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옥시린쿠스oxyrhynchus라고 알려진 고대 쓰레기장에서 그리스ㆍ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파피루스 뭉치들을 발견했는데, 그중 일부 조각들이 나중 콥트어 『도마복음』이 발견된 후 『도마복음』 그리스어 본의 일부로 판명되었습니다. 이 그리스어 파편들은 콥트어 판의 약20% 정도에 해당됩니다. 거기 있는 그리스 문자의 필체로 보아 이 사본은 대략 200년경에 필사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물론 나그함마디의 『도마복음』과 비교해보면 약간씩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합니다.
도마복음의 특성
『도마복음』에 나오는 말씀들 중에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공관복음, 곧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아는 분들에게는 귀에 익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실제적으로 약 50% 정도가 공관복음에 나오는 말씀과 평행을 이루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도마복음』이 공관복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의 심판,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그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gnosis’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점입니다.
특히 『도마복음』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씌여졌으리라 생각되는 『요한복음』과 비교할 때, 둘 다 우리 내면의 “빛”(요1:4)을, 그리고 미래에 있을 종말보다는“태초”(요1:1)나 “지금”(요5:25)을 강조하는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다른 점은 『요한복음』이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요3:16)로 하거나, 예수님을 “나의 주요, 하나님”(요20:28)으로 믿는 등 ‘믿음pistis’을 강조한 데 반해 『도마복음』은 일관되게 ‘깨달음gnosis’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마복음』이 이런 특색을 지니게 된 것이 그 당시 이집트, 로마, 그리스를 비롯하여 중동 지역 일대에 성행하던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른바“『도마복음』이 ‘영지주의 복음서the Gnostic Gospel’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영지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영지주의를 두고 기본적으로 ‘영지靈知’, 곧 ‘깨달음’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는 가르침이라고 본다면, 분명 『도마복음』은 영지주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핵심이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모두 악으로 규정하고 인간의 영혼이 이런 악한 물질세계에 갇혀 있기에 거기에서 벗어나야 함을 가르치는 사상체계라 한다면, 『도마복음』에는 그런 생각이 중심 사상으로 강조되어 있지 않으므로 영지주의 복음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도마복음』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특히 2세기나 3세기에 유행하던 영지주의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최근에는 『도마복음』을 ‘영지주의 복음서’라 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등장합니다. 1979년 영지주의 복음the Gnostic Gospel라는 책을 펴내 『도마복음』을 비롯하여 이른바 ‘영지주의 복음서’를 세상에 널리 소개한 프린스턴 대학교의 일레인 페이젤스Elaine Pagels 교수도 『도마복음』에 관한 그의 최근 저서에서 그러한 주장을 일부 인정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도마복음』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면, 영지주의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우주론, 신관, 인간론, 구원관 같은 여러 가지 가르침들 중에서 무엇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 깨달음을 통해 옛 자아에서 죽고 새로운 자아로 부활해야 한다는 점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인 것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감안할 때, 저는 『도마복음』서를 구태여 영지주의라고 하는 한 가지 특수한 사상체계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생긴 결과라고 할 것 없이, 세계 종교 전통 어디서나 심층 깊이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신비주의’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었던 복음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한문으로 ‘영지靈知’라 번역하고 영어로 보통‘knowledge’라 옮기는 그리스어 ‘gnosis’란 용어를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깨침’혹은 ‘깨달음’에 해당하는 말로서, 꼭 영지주의에서 특허를 낸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prajna, 곧 반야般若, 통찰, 꿰뚫어봄, 직관과 같은 계열의 말입니다. 불교에서 반야를 통해 성불과 해탈이 가능해짐을 말하듯, 『도마복음』도 이런 깨달음을 통해 참된 쉼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도마복음』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만 적은 ‘어록語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출생이나 활동 등 행적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한 언급마저도 없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이렇게 어록만으로만 이루어진 『도마복음』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거나, 길거리에서 종교적인 문제를 놓고 논쟁할 때 쓰기 위해서, 혹은 신비적 명상을 위한 화두 비슷한 것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라고 보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해 씌어졌든지. 저는 그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깨달음을 통해 내 속에 있는 천국, 내 속에 있는 하느님, 내 속에 있는 참나를 발견함으로써 자유와 해방을 얻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라는 기본 가르침에 충실한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풀이에서 하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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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 대학 다닐 때 여러 해 동안 성서 그리스어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물론 『도마복음』서가 본래부터 콥트어로 씌어졌던 것은 아니고,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코이네 그리스어에서 번역된 것이라 저의 그리스어 공부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콥트어를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는 없었기에 제가 직접 『도마복음』 콥트어 본을 독자적으로 번역하지 못하고, 여러 서구 전문가들의 훌륭한 번역과 역주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 판을 꾸밀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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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풀이에서 저는 모두 114절로 나뉘어 있는 『도마복음』 본문을 한 절 한 절 꼼꼼히 읽으며 제 나름대로 찾아낸 뜻과 거기에 대한 저의 반응을 중심으로 써내려가고자 합니다. 이 풀이가 다른 학자들의 해석과 다른 점이 있다면,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제 자신의 배경을 살려 다른 종교 전통의 문헌들, 특히 『도덕경』, 『장자』, 불경 등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과 비교하면서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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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도마복음』 본문 자체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최선을 다해 찾아보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말씀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그 말씀의 더욱 깊은 종교적인 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말씀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어떻게 적용 될 수 있을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을 읽고 거기에서 ‘촉발’되어 제 나름대로의 뜻을 찾아보려는 이런 식의 읽기를 ‘환기적evocative’독법 혹은 ‘독자 반응 중심의’독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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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시는 독자들은 물론 풀이에 나타난 저의 생각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독자들도 독자 나름대로 읽으시되 제가 읽은 것을 보시고 이렇게 읽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혹시 제가 읽는 방식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뛰어넘고 본문만 읽으면서 홀로 명상해보는 방법을 취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제가 읽은 방식이 독자 스스로 더욱 깊이 읽으시는 데 약간의 자극제나 일깨움의 실마리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하고 고마워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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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 나름 널리 읽혀지고 있는 졸저 『도덕경』 풀이나 『장자』 풀이에서 저는 노자님이나 장자님의 말을 모두 경어체로 옮겼습니다. 그와 같이 이 책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경어체로 옮겼습니다. 30세 정도의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반말로 했다고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제자들이라 해도 자신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사람들이었을 텐데 “너희는 들으라.”하는 식으로 말했을 거라고 상상하기 곤란합니다. 물론 지금의 ‘개역개정’성경이나 ‘표준새번역’성경에 예수님의 말씨를 모두 반말로 했기에 거기 익숙하신 독자들에게는 이런 존댓말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처음에는 좀 어색해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 읽다가 보면 이런 모습에서 오히려 더욱 친근감이 느껴지는 예수님을 발견하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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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도저히 어색해서 못 읽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 현재 한국 교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개역개정’판의 표현법으로 옮긴 것을 밑에다 함께 실었습니다. 두 가지를 다 읽으셔도 좋고, 마음에 드는 것 어느 쪽을 택해서 읽으셔도 되겠습니다. 두 가지를 다 읽으신다면 말씀을 두 번씩 읽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말씀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음미하게 되는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본문에는 없지만 가독성을 위해, 그리고 색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 절에 제가 생각한 소제목과 부제를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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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런 귀중한 말씀을 함께 읽으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를 받아 더욱 풍요로워지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 가지 좀 특별한 소망을 덧붙인다면, 깨달음을 강조하는 이 책이 한국에서 그리스도교인들과 불교인들을 이어주는 가교架橋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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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봄
오강남
[출처] 또 다른 예수-서문|작성자 byuns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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