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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37 】바알세불의 권능일까보냐 본문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 Q37 】바알세불의 권능일까보냐
章 | 말 씀 |
Q 37 | 사람들이 귀신 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들이 기이히 여기더라.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 하거늘,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 내가 귀신을 쫓아 낸 것이 바알세불의 권능이라고 한다면, 너희 자식들은 누구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 내고 있느뇨? 만약 내가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 귀신을 내쫓는다고 한다면, 바알세불의 집안이 스스로 서로 척지어 싸우는 꼴이 되느니라. 스스로 분재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마다 무너지느니라. 만일 사탄의 집이 분열된다면,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가락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지배하심이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하시더라. |
마태 12 | 22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누가 11 |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세인의 비방에 대한 예수의 참으로 강력한 변론이다. 예수의 논리의 강력성은 상대방의 논리를 빌어 상대방을 격파시키는 데 있다.
예수는 분명 당대의 한 엑소시스트(exorcist)였다. 그러나 귀신축출(exoecism)이라는 것은 당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은 누구나 행하였던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카리스마들은 부적이나 주문이나 꽹과리 · 징을 썼다. 그러나 예수는 오직 " 하나님의 손가락 " 으로 귀신을 물리쳤다.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질병을 귀신들림으로 이해했다. 귀신들림이란 하나님의 영역에 귀신이 침범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에게 죄를 졌기 때문에 거룩한 몸에 하나님이 물러나고 귀신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질병(discase)은 죄(sin)와 연관되어 있었다. 보수적인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예수가 귀신을 축출하고 인간의 질병을 고치는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에 개입하는 사태였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역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 무한정한 용서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도덕적 회개나 복잡한 이해타산의 전제가 없이 누구에게나 병고침의 은총을 베풀었다. 그것은 예수 자신의 카리스마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카리스마가 예수를 통하여 베풀어지는 것일 뿐이다. 예수는 천국을 선포했지만, 그 천국의 예수가 이 지상에 억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에 의하여 선포된 것이었다. 예수에게 이 땅은 씨 뿌려진 들판과도 같았다. 곡식은 저절로 장성하여 익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천국은 예수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하여 일어날 뿐이다(to occur through him).
귀신 축출도 단순한 엑소시즘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였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모습의 한 표적이었다. 하나님의 무제한적 힘이 드러나는 증표였다. 그것은 이 세계의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Reign of God)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 승리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병든 자, 불구된 자, 연약한 여인, 세리, 창녀, 이 모든 이들에게 찾아올 수 있었다. 이러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운동에 참여했던 것이다. 어떠한 인간이든지 구원의 사역에서 배제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 예수의 신념이었다.
바알세불(Beelzebul)은 열왕기하 제1장에 바알세붑(Baalzebub)으로 나오는데, 그것은 에크론 지역의 페니키아신(the Phoenician God at Ekron)을 지칭한다.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아(King Ahaziah)가 병낫기 위해 기도드리는 신의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방신이지만 병을 잘 낫게하는 용한 신이었다는 맥락에서 보면 여기 예수사건의 의미맥락과도 상통한다. 바알세불은 결국 바알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알세불(ba al zebul)은 우가리트(Ugarit) 말로 왕자바알(Prince Baal)이라는 뜻인데, 히브리말로 전사되면서 " 똥파리의 王 " 라는 의미의 경멸어 바알세붑(ba alzebub)으로 전화되었다. 똥파리를 휘날릴 때 윙윙거리는 소리로 신탁을 전하는 블레셋신(a Philistine god)이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그것은 꾸며낸 말일 것이다.
마태 10:25에는 " 하늘의 집주인 " (oikodespotes, Master of the Heavenly House)의 뜻으로 바알세불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이 원의에 가장 가깝다 할 것이다.아람어로 전사되면 " 베엘세불 " (Beel-zebul)은 " 똥의 王 " (Lord of Dung)라는 의미가 구성되기도 하고 " 적 " (Enemy)이라는 뜻을 지닐수도 있다. 하여튼 바알세불은 역사적으로 히브리사람들에 의하여 야훼와 대결하는 불결한 신으로 규정되엇으며 간약시대(間約時代)에는 " 악의 힘의 수장 " 을 지칭하는 말로서 일반적으로 잘 쓰였다. 신약의 용법은 그 시대적 의미맥락을 반영하고 있다(마 12:24~27, 막 3:22~26, 눅 11:15, 18~19).
출처: 큐복음서 도올 김용옥 /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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