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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Q10 】주린 그대들, 우는 그대들 본문
도올의 큐복음서 이야기
【 Q10 】주린 그대들, 우는 그대들
章 | 말 씀 |
Q 10 | 이제 주린 그대들이여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그대들이여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라. |
마태 5 |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누가 6 |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
" 복이 있다 " (makarios)는 표현은 " 축하한다, " (congratulation to) " 행복하다 " (happy is)는 등,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내포하는 함의가 넓고 짙은 말이다. 굶주리고 우는 자들이 배부르고 웃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요즈음과 같이 교회를 나가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 당시에는 " 교회 " 라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 땅을 하늘나라로 만들려는 예수의 가르침에 참여하는 실천행위를 의미했다. 예수의 천국운동의 핵심 중의 하나가 " 열린 공동식사 " (open commensality)였다.
보통 " 산상수훈 " (The Sermon on the Mount)하면 마태복음을 항상 처음 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정돈된 모습 때문에, 마태복음이 원래의 모습인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산상수훈의 오리지날 텍스트는 형식과 순서, 내용면에서 모두 누가쪽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마태는 Q의 순서를 이사야서 61:1~2와 조화시키면서 그 순서를 바꾸었다.
그리고 여기 " 주린자 ― 배부르다 " " 우는자 ― 웃다 " 의 매우 단순한 대구의 아름다움을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배부르다 " " 애통하는 자 ― 위로를 받는자 " 로 증보했는데, 추상적 레토릭을 구사할수록 맛이 떨어진다. " 가난한 그대 " 가 " 심령이 가난한 자 " 로 바뀌는 것과 똑같은 의미의 전화(轉化)이다. 단순할수록 아름답고 오히려 더 강렬한 것이다.
출처: 큐복음서 도올 김용옥 /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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